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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단2:31-35. 멸망하는 세상과 영원하신 하나님

2:31-35. 멸망하는 세상과 영원하신 하나님

세상은 불안정한 구조를 안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파멸에 이를 뿐입니다.

다시31-35절에서 우리는 앞에서 느부갓네살이 꿈에 본 신상이 세상을 상정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신상을 이루는 각 부분은 세상에 등장할 대제국들을 상정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신상은 위로부터 각 부분이 금, , , , 진흙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특별히 발은 철과 진흙이 섞여 있었습니다. 이러한 큰 신상은 이 세상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바로 세상의 불안정성입니다.

여러분, 어떤 물체든지 중심이 아래 있을 때 안정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세상을 상징하는 신상은 무게 중심은 아래가 아니라 맨 위에 있었습니다.

비중을 보면 금은 19.3, 은은 10.5, 구리는 8,7, 철은 7.8입니다.

즉 신상은 머리부터 무거운 것이 차례로 놓여 있고 맨 아래는 조금만 충격을 주어도 부서져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는 진흙과 철이 엉켜있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이 신상이 오래 버틸 수 있겠습니까? 신상은 불안정한 상태이고 오래지 않아 부서질 것입니다. 현 세상이 바로 이 신상의 상태와 같습니다. 현 세상은 매우 불안정한 상태이며 머지 않아 무너질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상은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역사를 보면 세상의 모든 나라들은 다 무너져 내렸습니다.

황금같이 찬란했던 바벨론도, 은과 같았던 페르시아와 놋과 같이 눈부셨던 헬라도, 강철 같이 강했던 로마도 결국 종말을 고하였습니다. 이는 그 나라들이 모두 불안정하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울러 이러한 세상 나라만 아니라 세상 자체도 세상 나라들이 종말을 고한 것처럼 종말을 고하게 될 것입니다. 34절과 35절을 보면 한 돌이 난데없이 신상을 향하여 날아와 진흙으로 된 신상의 발을 쳐서 부서뜨리자 신상은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심지어는 마치 겨와 같이 바람에 날려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는 불안정한 이 세상은 언젠가는 무너져 내리고 완전히 사라지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불완전한 이 세상은 영원하지 못하고 언젠가는 무너져 내리는 것은 물론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물론 세상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종말을 고할 것이지만 사실 세상은 그 자체의 불안전성 때문에 가만 놔둬도 스스로 파멸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기후변화 과학자의 말을 인용하면 지구는 현재 말기 암환자 상태로 합니다.

돌이킬 수 없고 회복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북극 빙하 사라짐, 바다의 평균기온 2도 상승, 육지도 기온이 50도 이상 상승, 불볕더위와 열대아 현상, 산불, 태풍, 폭우, 지진, 화산폭발의 위험까지.

우리는 이 사실을 결코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의 근거, 우리의 삶의 토대를 바르고 굳건하게 세워야 합니다. 약하고 불안정 한 세상, 허울만 그럴듯한 세상의 면모를 본받거나 진흙같이 부스러지기 쉬운 세상에 삶의 토대를 세워서는 안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생명도 세상과 더불어 허망하게 무너지고 끝장나고 말 것입니다. 참으로 반석 위에 세운 집처럼 우리 삶의 바탕을 굳건한 것,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것 위에 세워야만 합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의 삶을 이처럼 굳건한 반석과 같은 토대 위에 세우는 길이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영원히 계신 하나님, 그분의 참되고 진실한 말씀, 영원히 쇠하지 않을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소망의 터 위에 세워야 합니다. 이처럼 토대 위에 여러분의 삶을 세운다면 비록 우리 가 이 세상 가운데 살아가지만 허무하게 무너지는 결말을 맞이 하지 않을 것입니다. 도리어 세상 나라가 멸망하고 세상이 소멸되는 중에도 영원하신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이 우리의 생명을 온전히 보전할 것이며 하나님을 의뢰 하는 자들이 들어 갈 하나님 나라 가운데서 굳건히 세움을 입게 될 것입니다.

66:22 “내가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는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륨이 항상 었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 라"()

벧전3:12,13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샤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 을 바라보도다"

2. 세상은 매력적이며 위세 또한 크지만 실상은 허망하기 그지없는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꿈에 본 신상은 크고 광채가 매우 찬란하며 그 모양이 심히 두려운 것이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신상은 종아리와 발만 흙이고 모두 빛나는 금속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신상의 광채가 크고 찬란한 것은 이 세상의 특징을 보여 줍니다. 세상은 사람들이 화려하고 찬란하고 거대한 조형물들을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세상을 사랑하고 숭배합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이루어진 세상은 사람들에게 강요하지 않아도 사람들 스스로가 세상을 사랑하고 숭배하고 있습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에도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주었습니다. 참으로 세상의 찬란한 광채는 사람들이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입니다.

한편 세상은 이렇게 매혹적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 위세가 대단합니다.

본문의 신상에 제시된 금신상의 각각의 부분들은 모두 세상을 호령하는 제국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 제국들은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에게 굴복하게 하고

그렇지 않으면 무력을 사용하여 죽이고 해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도 자신이 가진 힘으로 물질에 대한 탐욕이나 육신의 정욕 등에 굴복하지 않으며 이를 사랑하지 아니하고 이를 숭배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핍박하고 심지어는 죽음에 이르게 하기도 합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성도들, 의를 지키는 자들, 믿음의 순결을 지키는 이들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과연 우리가 이 세상의 찬란함이나 그것의 위세에 눌려 두려워 하거나 그것을 흠모하고 그것에 굴복해야만 할까요? 우리는 이 세상을 상징하는 신상의 발이 쇠와 진흙이 섞여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세사의 권력과 부, 명예로 찬란하게 빛을 발하며 그 모양이 심히 두려운 신상의 발이 쇠와 진흙으로 섞여 있다는 것은 그것이 너무나도 쉽게 허물어질 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마디로 세상 사람들이 흠모하고 두려워하는 그 모든 것이 허망하기 그지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본문의 묘사처럼 세상의 권세와 영광, 아름다움의 실상을 잘 지적한 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본문에서 의미하는 세상을 호령하던 제국들을 보십시오.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 제국 등이 모든 나라들은 사람들에게 크나큰 흠모의 대상이기도 하였고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였습니다. 그 나라들은 실로 강성하며 광대하여 누구도 허물어 뜨릴 수 없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역사보면, 세상의 어떠함을 대변하는 그들 제국들은 영원할 것처럼 보였지만 너무나 쉽게 명멸을 거듭하였고 현재는 그 자취조차 남아 있지 않을 정도였습니다(35).

여러분, 사람들이 그토록 흠모하고 그토록 두려워하는 세상의 실상이 이렇습니다.

그것은 겉으로 보면 너무나도 대단해 보이고 그 힘은 가공할 만큼 큰 것으로 보여 지지만

실상 그 모든 것은 허울뿐이며 아무것도 아닙니다. 허망하기 그지 없으며 무가치하며

그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실상 어리석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세상의 실상을 정확히 직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을 사모하며, 무엇을 두려워하며 살아야 할지를 정확히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이 정작 사모할 대상, 그것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이며 세상을 지으시고 사람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 세상 나라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며 사람들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 인생은 참으로 가치있고 의미있는 것으로 세워질 것입니다.

10:25“회오리 바람이 지 나가연 악인은 없어져도 의 언은 영원한 기초 같으니 라"()

10:28“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올 능히 지육에 멸하실 수 있는 이툴 두려워하라n ()

요일2:17 “이 세상도그 정욕도 지 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돗을 행하는 자는 영 원히 거 하느니 라

3. 그리스도는 보배로운 산 돌이신 동시에 부딪쳐 무너뜨리는 돌이기도 합니다.

34절에서 사람이 손대지 아니한 돌이 나옵니다. 이 돌은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이 돌은 흙과 철이 섞여있는 신상의 발을 쳐서 부서 뜨림으로써

결국 신상 전체를 부서 뜨렸습니다. 이처럼 손대지 않은 돌이 나와 신상을 부서 뜨렸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신상 곧 세상을 심판하여 멸하실 사실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결국 본 절을 포함한 느부갓네살 왕의 환상은 궁극적으로 세상의 심판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의 구원자이신 것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의 구원자이신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우리가 한편으로 간과해서는 안되는 사실은 그는 세상의 심판주가 되신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종종 반석에 비유됩니다. 이때 반석은 대부분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보호와 도움등을 나타내고자 할 때 하나님을 반석에 비유한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종종 그리스도를 반석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이 경우 반석은 꼭 긍정적인 의미로만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반석이 그리스도와 관련하여 사용될 때 한편으로 그리스도께서 구원자가 되심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리스도께서 심판주이심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사야28:16을 보면 하나님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 요 귀하고 견고한 기춧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 하리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시온에 두시겠다고 한 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그것을 믿는 자가 다급하게 되지 않게 된다는 것은 심판 날 구원을 얻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말씀을 자기에게 적용하심으로써 여기서 말하는 돌이 자신을 가리키는 것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12:10). 베드로 역시도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하여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보배로운 산 돌이 되심을 증거하였습니다(벨전2:4-6).

산 돌이란 살리는 돌이란 의미입니다. 실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세상에 보내신 산 돌이십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보배로운 산 돌이 되지만 그를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기도 합니다(벧전2:7,8). 성경에서 모퉁이의 머릿돌은 보통은 좋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말하는 모퉁이의 머릿돌은 말 그대로 모퉁이에 놓여 있어서 사람들로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을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그를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십니다. 주님은 이와 관련하여 말씀하시기를 마21:44“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믿는 자에게는 그리스도가 산 돌이 되지만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고 배척하는 자에게는 그리스도가 거치는 돌이 되는 것은 물론 그들을 깨드리고 부수는 바위가 됩니다. 실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느냐 여부에 따라 그리스도는 보배로운 산 돌이 되시기도 하고 거치는 반석과 부서 뜨리는 돌이 되시기도 합니다. 이 같은 그리스도의 행사는 그의 재림의 날에 명백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심판날 당신을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고 당신을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영원한 심판에 던지심으로 실로 두렵고도 떨리는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그날에 여러분들은 그리스도를 어떤 분으로 맞이 하길 맞이 하길 원하십니까?

이에 대하여 복된 대답을 하길 원하신다면 미루거나 지체하지 말고 바로 지금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여러분의 삶의 반석으로 삼고 그분을 의지하며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십시오.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홍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 하여 세움을 받았고"(2:34)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혈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 리요 하더라"(6 : 1617)

4. 세상 모든 것이 허물어져도 하나님은 당신의 교회를 굳건히 세우실 것입니다.

35절을 보면 신상과 손대지 아니한 돌의 상반된 결국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34절에 의하면 손대지 아니한 돌에 의해 그 발을 맞은 신상은 먼저 발이 부러졌습니다.

이처럼 신상의 발이 쉽게 부러진 것은 신상의 발은 쇠와 진흙으로 만들어 졌기 때문입니다.

쇠는 강하지만 진흙과 결코 연합할 수 없으며 그렇기에 작은 충격으로도 쉽게 부서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진흙과 쇠로 된 발이 부서지게 되면 신상 전체는 그 기초가 무너짐으로 연쇄적으로 붕괴되면서 부서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신상이 무너지고 부서진 것은 이 세상과 세상 나라들은 결코 영원하지 않고 반드시 멸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신상이 붕괴되고 그 신상을 이루는 재료들이 다 부서진 것과 달리 신상의 다리를 친 손대지 아니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손대지 아니한 돌은 일차적으로는 세상을 심판할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이어 손대지 아니 한 돌이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게 되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역사를 통해 세워질 교회가 견고하게 세워지며 온 세상 위에 우뚝서게 될 것임을 나타내 줍니다. 특별히 우리는 본절에서 손대지 아니 한 돌에서 시작된 교회가 태산에 비유되고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여러분, 산은 항상 그 자리에 있습니다. 때문에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산은 영원한 것의 상징이었습니다. 이를 감안하면 교회가 태산/ 즉 거대한 산에 비유된 것은 교회가 영원할 것임을 상징합니다. 이처럼 교회가 영원히 산처럼 견고히 서게 되는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으로 인치신 교회를 온전히 보호하고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 곧 세상 나라가 다 멸망하고 흥망성쇠를 거듭해도(37-43)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백성들이 영원히 견고히 설 것임은 멀리갈 것도 없이 본서를 통해서 확인되는 바입니다.

여러분, 본서는 바벨론, 메데·바사제국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굳게 지키며 형통한 다니엘의 이야기, 그리고 그의 세 친구의 믿음의 행적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세상을 대표하는 제국들, 제왕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함에도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는 여전히 형통하였고 여전히 의연하였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삶은 실로 제국보다 제왕보다 영광스럽고 위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느 왕이 온 우주를 창조하신 영원하신 하나님과 교통하며 그분의 뜻을 밝히 헤아려 알며 어느 위대한 군주가 풀무불, 사자굴 속에서도 목숨을 지킬 수 있으며 제국이 격변하는 가운데서도 형통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는 이러한 일을 실제 체험하였고 그것을 우리에게 확실히 증거해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세상 나라가 흥망성쇠를 거듭한다 해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성 도들, 하나님을 참으로 경외하는 성도들이 지체가 된 교회 역시 영원무궁할 것임을 예표한다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참으로 우리가 지체로 서 있는 교회, 교회 안에 속한 우리들 성도들은 제국보다 영원하며 제왕보다 위대합니다. 제국이나 제왕들은 그들이 권세를 차지할 때에는 자신들의 권세와 영화가 영원할 것이라 종종 생각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착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쇠하고 허물어진다 해도 당신의 교회, 교회의 지체들인 우리들 성도들을 굳건히 붙드시며 세우실 것입니다. 우리가 풀무불에 던져지든, 사자굴에 던져지든 어떤 환난과 시련 속에서도 건지시고 살리실 뿐아니라 태산처럼 흔들림 없는 삶을 살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사실을 잊지 말며 어떤 형편에서든 어느 누구 앞에서든 더욱 당당한 삶, 의연한 삶을 한결같이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125:1,2“여호와툴 의지하는 자는 시용 산이 혼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산들이 예루살캠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지금부터 영 원까지 두르시 리로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8:37“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률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 라"()

오늘 말씀에는 드디어 다니엘이 꿈의 내용과 해석을 느부갓네살에게 진술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당시 다니엘은 누구도 할 수 없는 일, 누구도 하지 못할 일을 시도하고 마침내 이를 느부갓네살에게 입증해 보인 것입니다. 이는 누가 보아도 특별한 일, 대단한 일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시초부터 그것이 자신 스스로의 능력으로 알게 된 것이 아니며 하나님이 알게 하신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무언가 특별한 일, 남들이 하지 못할 일을 할 때 종종 그것이 자신만이 가진 특별한 능력 때문임을 은연 중에 강조하며 그것을 인하여 타인들로부터 마땅히 자신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처럼 대단한 일을 한만큼 타인들로부터 찬사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결코 성도들에게는 합당치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될지 모르지만 성도에게 있어 그것은 교만이며 위선일 뿐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 남이 갖지 못한 어떠한 능력이나 은사를 소유하든 그것으로 교만해지거나 자기를 자랑해서는 안됩니다. 만일 그런 태도를 고집하고자 하는 유혹이 여러분 마음에 자리한다면 바울 사도가 전한 바 고전4:7“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냐"라는 권면과 책망의 말씀에 귀기울여야 합니다. 더 나아가 바울 사도가 그처럼 무수한 일, 특별한 일을 행하였음에도 고전15:10“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고백한 것처럼 도리어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감사하는 간증을 올려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1. 어디에, 누구 앞에서 있든 성도는 하나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참 성도는 자기 유익이 아닌 하나님과 다른 사람의 유익을 먼저 구합니다.

3. 본질적으로 세상은 날이 갈수록 더욱 악해지고 타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청년회 여름수련회를 위해, 수능 입시생을 위해, 새로이 임명된 집사님들을 위해

사명.(주님이 홀로가신 그길)

1. 한소망교회의 부흥과 담임 목사님의 건강과 사역을 위하여, 부목사, 사모, 간사, 셀리더, 사역자, 중직자, 봉사자, 새가족을 위해, 낙심자가 돌아오길, 중보기도와 전도를 위해

2. 가정복음화, 우리의 가정과 직장과 자녀를 위해(학업, 직장, 결혼, 출산, 믿음과 신앙)

3. 병든자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