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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단1:1-2하나님을 역사의 주관자로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1. 하나님을 역사의 주관자로 인정해야 합니다.

l절을 보면 유다 왕 여호야김이 다스린 지 삼 년이 되는 해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을 에워쌌더니라고 하였습니다. 다니엘서의 시대적 배경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제1차 유다 침공으로 시작됩니다. 느부갓네살이 유다를 침공한 당시의 국제 정세는 애굽과 바벨론이 근동에서의 주도권을 다투고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싸움이 갈그미스 전투인데, 바벨론이 갈그미스 전투에서 승리하여 근동 지방의 패권을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유다는 여호야김이 애굽의 바로 느고에 의해 왕으로 임명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애굽의 영향력 아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방국인 애굽이 바벨론에게 패하므로 힘없는 남유다도 결국 패망하여 일부 왕족과 귀족층의 자녀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 갔습니다.

그리고 2절에서 보듯이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그릇 얼마를 그의 손에 넘기시매 그가 그것을 가지고 시날 땅 자기 신들의 신전에 가져다가 그 신들의 보물 창고에 두었더라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유다 침공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느부갓네살의 유다 침공은 타락한 이스라엘 선민을 징계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이런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역사는 인간들 사이에서 벌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의 기록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 성도들이 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초강대국인 바벨론 제국과 느부갓네살 왕이 절대 주권자가 되어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성경은 하나님이 느부갓네살을 사용한 것으로 기록합니다.

실제로 그는 하루아침에 절대 권력을 휘두르던 자리에서 내려가 소처럼 풀을 뜯으며 하늘 이슬에 젖어 밤을 지새는 비참한 신세로 전락할 것이고 그 후에 겸손하여져서 하나님 앞에 자기의 비천함을 고하며 절대 주권자요 역사를 섭리하시며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33:9-11 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어졌으며 명령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여호와께서 나라들의 계획을 폐하시며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하게 하시도다.

여러분, 이 세상에 아무리 강한 나라도, 아무리 큰 권력을 휘둘렀던 왕도, 세상의 주인이 아닙니다.

그 누구도 자기 마음대로 이 세상 역사를 좌지우지하지 못합니다.

또 그들의 권세나 영화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화무십일홍이라고 합니다. 그 권세와 영화는 꽃이 붉기가 십일을 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사를 볼 때 흥망성쇠하는 세상 나라에 초점을 두지 말고 그 모든 것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허무한 삶, 덧없는 삶을 살지 않고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삶, 진정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다니엘서에서 보는 믿음의 사람, 다니엘과 세 친구가 바로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았기 때문에 승리한 삶을 산 것입니다.

14:26,27 이것이 온 세계를 향하여 정한 경영이며 이것이 열방을 향하여 편 손이라 하셨나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경영하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며 그의 손을 펴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

성도 여러분, 세상을 창조하시며 시간을 넘어, 역사를 초월하여 계신 영원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세상 역사를 주관하시며 의와 진리로, 전능하신 능력과 측량할 수 없는 지혜와 섭리로 이 세상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를 믿어 의심치 말며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을 밝히 알고자 애쓰며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때 진정 우리는 세상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일꾼으로 가치있는 삶,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2. 세상의 시련 속에서도 신앙 정절을 지켜야 합니다.

다니엘서는 남유다가 바벨론에 멸망하여 포로로 끌려온 다니엘과 세 친구의 신앙이야기입니다.

그들이 포로로 끌려와 이름도 바벨론 식으로 바꿔야 했고, 그곳 음식을 먹어야 했으며

그곳의 언어와 풍속을 배워 그곳의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야말로 그들은 우상의 땅에서 믿음을 지켜야 하는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그들이 그곳에서 겪은 일들을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바벨론 황실의 교육을 받을 때 율법에서 금한 우상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어라는 강요를 받았습니다. 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자신을 신격화하기 위하여 자기 신상을 만들어 놓고

다니엘의 세 친구에게도 절하라 하고 만약 거부하면 풀무불에 던져 죽이겠다고 압박하였고,

다니엘의 경우는 정적들이 다니엘을 죽이기 위해 다리오 왕에게 삼십 일 동안 누구든지 왕 외에 다른 신을 경배하고 기도하는 행위를 하면 사자의 밥이 되게 하겠다고 함정을 파 놓았습니다.

이처럼 참 믿음의 사람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우상의 나라에서 신앙을 지키기에는 너무나도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적당히 타협하고 위기를 넘기기 위해 우상에게 절하지도 않았고, 기도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비록 진수성찬이지만 부정한 음식을 먹지 않고 채식을 하며 자신의 몸을 더럽히지 않았고, 풀무불에 던져질 것을 알면서도 왕이 세운 금신상에게 절하지 않았고,

사자굴에 던져 사자의 밥이 될 줄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향한 기도를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이 고난은 당하였지만 비참하게 죽지 않았고 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어려움과 위기, 시련에 굴하지 않았으며 세상에 동화되지 않으면서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았고,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참믿음을 보였으며, 그로 인하여 결국은 승리자가 되어 이방나라 왕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자신들은 더한 높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도 세계 각처에서 다니엘과 세 친구와 같이 믿음의 도전에 직면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경책만 들고 있어도 감옥에 들어가고 예배드리다 걸리면 총살을 당하기도 합니다. 이슬람 국가나 공산국가에서 지금도 만행이 자행되고 있고 우리와 같은 민족 북한 동포도 겪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다니엘서처럼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죽지 않고 탈출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많은 사람들은 순교를 당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분은 신앙의 위기를 만나면 믿음으로 이겨낼 자신이 있으십니까?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교회 다닌다고 엄청난 시련을 겪는 것도 아니고, 예수 믿으면 죽인다고 협박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다만 신앙 양심을 지키려고 하면 불신자들의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며, 불신자들에게 전도하면 간혹 손가락질과 비난을 받거나 조롱을 받기도 합니다.

또 사회생활을 하면서 예배를 드린다고 회식을 가지 않고 술도 먹지 않으면 불신자들에게 왕따와 같은 불이익을 당하거나 손해와 힘든 수고를 감내해야 하는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때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고, 잘못된 선택으로 신앙적 양심으로 갈등하고 번민하게 됩니다. 비록 우리들이 신앙인들이며 하나님을 경외하지만 우리들 역시도 현실에 발붙이고 살아가며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복지와 삶의 혜택에 무관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바로 그러한 갈등 중에 있는 우리들에게 다니엘서는 무엇을 택할지,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비록 손해를 당할지라도 억울한 희생을 당하게 될지라도 신앙 정절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다니엘이나 세 친구의 이야기를 성경에 기록하고 우리 신앙인들이 읽어라고 하시겠습니까? 본받아라고~

구약 뿐만아니라 신약에서도 혹독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신앙을 지켰다고 고백합니다.

20:23, 24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도 바울은 복음을 증거하기 위하여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는 줄 알면서도 자신의 생명조차도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중세시대 성도들은 로마로부터 3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수 많은 박해로

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그것도 비참하게.

12:11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여러분, 그런데 그분들에 비하면 우리의 신앙은 너무나도 보잘것없고 초라한 신앙이고 무엇하나 내세울 것 없는 신앙입니다. 여러분의 심령 가운데는 이러한 신앙적 결단이 굳게 서 있습니까?

어떤 손해, 어떤 어려움, 어떤 시련이 닥친다 해도 신앙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에 두며

타협하지도 않고 굴복하지도 않을 각오가 되어있습니까?

그런 믿음은 그저 만들어지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이 구원의 믿음은 우리들에게 거저 주셨지만, 강하고 담대한 믿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은 내 자신이 키워 나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다니엘서와 같은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다니엘과 세친구와 사도바울과 초대 교회성도들은 예배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주일을 지키지 못하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제가 그분들에게 문자를 보냅니다.

성도님 왜 주일 예배를 드리지 않으셨어요 주일에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라고 전화하거나 문자하지 못합니다.

굉장히 조심스럽게 성도님들의 마음을 상하지 않고 다치지 않게 하기위하여

성도님 지난 주에 교회에 안 보이셔서 문자합니다. 별일 없으시죠?” 라고 문자합니다.

전화하기도 조심스럽습니다. 혹시 시험들까봐 기분나빠 다른 교회로 가버릴까봐 말입니다.

여러분 제가 새벽에도 이미 말씀을 드렸지만 새벽에 들으신 분은 재방송이라 생각하시고

처음 들으시는 분을 위해 다시 말씀드립니다.

우리 교회는 다른 교회도 요즘 대부분 그렇지만 새벽예배 드리는 수가 전 성도수의 10%도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새벽기도 나오시는 분만 계속 나오시고 어쩌다 한번씩 나오는 분도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는 한달에 한번 한주간 동안 그것도 5일만 전교인 작정 새벽예배를 드립니다.

제가 지난번 고난주간 새벽 예배 때 말씀을 요약하고 참석한 인원을 단톡에 올려서 아시겠지만

전교인의 20%도 나오지 않습니다. 새벽예배 나오시는 분은 주일 예배를 비롯한 모든 공예배에 다 나오십니다. 100% 다 나오시는 분은 제가 알기론 한두분 많으면 네다섯분 정도 되는 것으로 아는데 제가 물어 보겠습니다. 주일 예배를 안 드리는 것이 죄일까요? 아닐까요? 죄입니다.

출애굽기 20: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라와 하지마라 두 가지 명령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지마라는 것을 하는 것도 죄지만, 하라는 것을 하지 않는 것도 죄가 됩니다.

그런데 성경이 하지 마라는 것을 우리가 지키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거짓말하지마라, 도적질하지마라, 간음하지마라, 살인하지마라 다 잘지킵니다.

그러나 하라는 명령은 잘 못지킵니다. 지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렵습니다.

주일성수하라, 어렵죠? 선행하고 구제하라, 합니까? 사랑해라, 용서하라, 희생해라.

누가 다 지킬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래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성경은 확정적으로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명령에 순종하면 의를 행하여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죄를 지어 화를 당합니다.

31:14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거룩한 날이 됨이니라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모두 죽일지며 그 날에 일하는 자는 모두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어지리라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에게 제사를 드리지 않고 일하면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예배 안 드린다고 주의 종이 죽이지는 못하지만

성도님들이 주일 예배를 안 드리면 주의 종이 죄라고 해야 합니까? 하면 안됩니까?

해야 됩니다. 안하면 직유무기입니다. 그대신 지혜롭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시험들어 교회를 안 나오거나 다른 교회로 가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지금 이시대는 세상이 산업화되고 분업화되고 세분화되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주일과 상관없이 일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회사 사표내야 하나?

그것은 자기 믿음대로 하시면 됩니다. 주일예배 못드리면 새벽예배라도 드리는 믿음을 보이면

좋지만 그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대근무를 하는 분들이 믿음이 좋은 분을 저는 못봤습니다.

삼성은 모르겠으나 포스코는 34교대로 돌아갑니다. 7-3, 3-11, 11-73개조가 나뉘어져 돌아갑니다. 그러면 주일날 7-3시 걸리면 예배를 못드립니다. 그리고 11-7시까지 근무한 사람은 집에서 잠을 자야 하기때문에 또 예배를 못 드립니다. 거이 한달에 1,2번 주일성수를 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직업을 선택할 때 교대근무를 하지 않는 직업을 선택해야 합니다.

만약 지금 교대근무로 인하여 예배를 잘 드리지 못하는 것에 마음에 찔림이 있으면

하나님에게 주일성수할 수 있는 직업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제가 다니던 교회에 장로님이 포스코 현장 근무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장로님이 주일성수를 못하시니 마음에 짐이 되어 주일성수할 수 있도록

교대근무가 아닌 상주근무 팀으로 가게 해 달라고 중보기도를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새벽마다, 금요기도회 마다 장로님을 위해 장로님이 주일성수를 못하시는데

일반 성도님들에게 본이 되지 않으니 주일성수할 수 있게 해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장로님이 목사님에게 주일성수 안 한다고 누군가가 자꾸 이야기를 하는데

회사가 교대근무인데 그걸 자꾸 말하면 어쩌냐? 이해해줘야 한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자신이 중보기도 요청한 사실을 새까맣케 잊어버리고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장로님이 상주근무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렐루야 하면서 하나님이 우리 중보기도팀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다고 목사님도 기뻐하시고 다 잘되었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장로님이 매주일마다 제일 앞자리에 앉아서 예배 드리시고 대표기도도 빠지지 않게 계속 잘하게 되니 얼마나 잘된 일입니까? 그런데 몇 달이 못되어 주일날 장로님이 또 안 보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에게 물어보니 상주근무는 돈이 얼마 안되어 다시 교대근무로 바꾸셨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기도해서 응답 받았는데 돈 때문에 다시 교대근무로 바꾸었으니 성도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그러고 몇 년이 못되어 장로님에 대한 또 다른 중보기도가 올라왔습니다.

장로님이 교대근무 하시다가 정년퇴직을 1년 앞두고 이때까지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는 실수를 하였습니다. 기계가 돌아가다 철근이 한 번씩 걸리는 경우가 있는데 근무 규칙은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걸린 부분을 뺀 다음에 재가동해야 하는데 평상시에도 정지했다가 다시 돌리면 공장 라인이 올스톱되기 때문에 빨리 뛰어나가 제거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날에도 문제가 생겨서 늘 하든대로 걸린 부분을 제거하려고 하다가 철근에 옷이 걸리어 압연기에 빨려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이 공장을 스톱시켜야 하는데 때마침 다른 사람이 화장실에 간 틈에 벌어진 일이라 비명소리를 듣고 뛰어 가서 멈췄으나 이미 팔과 머리까지 끼여 버렸습니다. 그래서 모든 의사들이 다 사망한다고 했습니다.

두분 부부금술이 얼마나 좋았는데 아내 되시는 권사님이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딸은 결혼해서 믿음이 없어 제대로 예배를 드리지 않다가 그런 사고를 당하니 자신이 부모님 말을 안 듣고 예배를 잘 안드려 그리되었다고 통곡하고, 아들도 아버지를 살려만 주시면 예배를 잘 드리겠다고 회개하고, 그래서 응급실에 들어가시고 한달 내내 교회에서 계속 중보기도 드렸습니다.

저도 병원에 두 번씩이나 찾아가서 식물인간이 된 장로님에게 의식은 있을 것으로 보고

갈 때마다 하나님에게 회개 기도를 드리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깨어나게 하셨습니다. 의사들도 다 기적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살아나시고 퇴원하셔서 기도 제목대로 자기 발로 스스로 걸어서

교회 나와 예배드리게 해 달라고 기도한 대로 지금도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뇌 기능이 많이 손상되어 5살짜리 정도의 지능을 가진 지적장애가 되어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성도의 믿음이 좋다 좋지 않다는 무엇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예배를 잘 드리느냐 아니냐로 판명됩니다.

교회에서 장로,권사, 안수집사 교회의 중직자라 하더라도 예배를 제대로 드리지 않으면

믿음이 좋다할 수 없고, 반면 믿은지 몇 개월 되지 않은 새가족이 모든 공예배를 다 드리면

믿음이 좋다고 할수 있습니다. 물론 믿음이 좋은지 나쁜지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지만~ 그리고 그 다음이 말씀대로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선하고 착하고 거룩하고 진실하고 신실하게 말씀에 순종하며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마지막 때에 환란과 핍박이 와도 견디어 낼 수 있는 영적 능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청년들에게 계속해서 채근합니다. 말씀 읽고 듣고 묵상하고QT 암송하라고

그냥 내버려두면 하지 않습니다. 영적으로 시들어 버립니다.

영적 전쟁에서 판판이 깨어집니다. 조금만 흔들어 버려도 다 무너집니다.

목사가 말하기 싫어도 해야 되고 청년들이 듣기 싫어해도 말해야 합니다.

그래야 영이 잠들지 않고 죽지 않습니다. 세상이 얼마나 악하고 강한데 어떻게 이깁니까?

어른들도 다 넘어지는 판에

하나님이 예배 드려라 하면 예배 드려야 합니다. 드리지 않으면 죄를 짓는 것입니다.

기도하라 하면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 역시 불순종의 죄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기도하지 않으면 안되고 기도해야만 할 정도의 문제가 생깁니다.

직장과 사업장 문제든지, 건강과 질병 문제든지, 자녀나 가족문제든지

전도하라 하면 전도해야 합니다. 전도하지 않으면 교회가 부흥되지 않고 교회가 부흥되지 않으면 교회에 분쟁이 생기고 교회에 평안하지 못하면 나의 영적부분에서 문제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여러분 자신을 정직하게 돌아보며 이에 대한 깊은 반성과 결단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을 통해 여러분들이 더욱 굳은 신앙적 각오와 결단을 하며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불의한 이방 땅에서 보인 불굴의 신앙의 면모를 배워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서 펼쳐 보이시므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우리 가운데 나타나게 되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성도의 노래

다니엘과 세 친구와 같은 신앙의 정절을 지키게 해달라고.

하지 말라는 말씀만 지킬 뿐 아니라 하라는 명령도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시길

주일예배 뿐만아니라 모든 공예배를 잘 드려 믿음이 굳건하여 어떤 환란과 시련도 이기는 힘을 주시기를.

 

선한능력으로

오늘 이시간 특별히 병든자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기도 ( 박신영집사님 남편 오정현성도, 이봉진 집사님 남편 이준영님, 이명규 성도의 부친 이두환님, 이인희집사님의 오빠 이원택님 ), 민정훈집사 딸 민지원, 성희주권사

한소망교회의 부흥과 담임 목사님의 건강과 사역을 위하여, 부목사, 사모, 간사, 셀리더, 사역자, 중직자, 봉사자, 새가족반을 위해

가정복음화, 우리의 자녀를 위해(학업, 직장, 결혼, 출산, 믿음과 신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