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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단1:6-7신앙의 정체성

하나님 아버지.

예배자를 위한 축복기도

말씀증거를 위한 기도,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1. 성도는 세상 속에 살아가지만, 세상에 동화되어서는 안됩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1차 유다 침공 때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다니엘을 비롯하여 유다의 왕족과 귀족층 자제들을 바벨론에 끌고 가 볼모를 삼기 위해서입니다. 느부갓네살이 유다의 왕족들을 볼모로 데려온 이유는 유다가 바벨론을 배반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포로들에게 바벨론식의 교육을 시켜 바벨론에 충성하게 만들어 바벨론 제국을 원활하게 통치하고 굳건하게 세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유다만 아니라 바벨론이 정복한 모든 나라에 대하여 그런 정책을 사용했습니다. 그 가운데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바벨론의 관리로 발탁된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과 세친구는 바벨론식의 교육을 받았지만 바벨론의 문화와 풍습에 동화되지 않고 여호와 신앙을 굳게 지켰습니다. 다니엘과 세친구는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거룩한 정체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오늘을 사는 우리 성도들에게 신앙의 본이 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이 시대에 다니엘과 세 친구와 같은 신앙을 본 받아야 합니다.

지금은 마지막 때이기 때문입니다.

24장에서 예수님이 마지막 때의 모습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9-12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또 딤후3장에도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우리는 볼모로 잡혀와서 이 땅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는 사탄이 공중 권세를 잡고 있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 문화가 알게 모르게 사탄의 악한 문화들의 영향력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또한 이 세상에서 우리의 자녀들이 학교에서 진화론과 무신론적 교육을 받으며 살고 있어

신본주의 신앙에서 벗어나 인본주의에 빠지고 있습니다.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은 좋으나 싫으나 돈을 벌어 먹고살기 위해서는 세상을 위한 일들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세속에 동화되기 쉽고, 돈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물질만능주의에 빠지게 되고 자칫 잘못하면 사탄의 종으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딤전6:9,10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그러나 우리는 비록 사탄이 공중 권세를 잡고있는 세상에서 세속적인 교육을 받고

세상의 문화와 풍습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하더라도,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려서는 안됩니다. 물론 우리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로서 세상의 학문과 세상의 문화를 완전히 무시하고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우리도 세상의 학문을 배워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 세상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다니엘과 세 친구처럼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면 더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절대로 세속에 물들어 자신을 더럽혀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벗어난 삶을 살면 안됩니다. 육신을 위해 살아서는 안됩니다.

딤전5:6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육신의 평안과 즐거움만을 추구하며 살고,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을 즐기면서 세상 속에 파묻혀 살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성도와 교제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 예배와 말씀과 기도 생활을 게을리하거나 멈추면 안됩니다.

이 사실을 한시도 잊지 말며 세속으로부터 자신을 거룩히 지켜고 진리 안에 살아야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복과 은혜를 풍성히 받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에 하나님 아버지에게 기도하신 내용을 보면

예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잘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17:15-17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2.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든지 성도로서의 신앙 정체성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6절에서 다니엘과 세 친구의 이름이 소개되더니

이어지는 7절에서는 그들의 이름이 개명되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자신과 자신의 친구들의 이름 앞에 유다 자손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니엘이 유다 민족이라고 자신들의 혈통을 자랑스럽게 알릴 수 없는 상황입니다.

지금의 현실은 유다 자손이라고 밝히는 것은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다 민족은 바벨론에 침공을 당하여 왕궁과 성전이 파괴되어 폐허가 되었고

그 안의 많은 보물들은 다 빼앗겼으며, 자신의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왔으며,

머지않아 곧 멸망할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다니엘은 수치와 부끄러움을 무릎쓰고 유다 자손이라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유다인이라고 밝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아무리 이방 땅에 포로로 사로잡혀 온 볼모 신세이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하는 선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믿는 하나님은 여전히 전지전능하시며 거룩하시며 살아서 역사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들도 나라는 망할 지경이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란 사실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뿐만아니라 자신들이 비록 우상을 섬기는 이방 땅에 포로로 잡혀온 신세이지만 절대로 하나님을

배신하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갈 것이라고 선포하며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굳건히 지키며 살아가겠다는 다짐의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다니엘서 1-6장을 통해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신앙적으로 적당히 타협하지도 않고 신앙이 변절되지도 않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벨론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것은

우상에게 받쳐진 음식이고 그것은 율법에서 부정한 음식으로 규정된 음식이었기에 먹지 않았고,

왕이 세운 금신상에게 절할 것을 강요 받았으나 절하지 않았으며,

왕 외에 다른 누구에게도 기도하거나 구하지 말 것을 정했으나 하나님을 향한 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포로로 잡아 온 바벨론 제국이 멸망하고 이어서 들어선 매대와 바사 제국에서도

우상숭배를 거부하여, 결코 타협하지도 순응하지 않았습니다. 위기와 어려움 속에서도,

심지어 죽을 수 있어도 그들은 신앙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한치의 물러섬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이처럼 의연하고 당당하게, 굳건하게 참 신앙인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그들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를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오직 거룩하신 하나님만을 섬기는 백성임을 항상 마음에 새기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 충성, 봉사, 헌신한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모습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선진들은 현실이 어떠하든, 상황이 얼마나 열악하든, 아무리 크고 어려운 반대에

부딪쳐도 충성스럽게 자기 사명을 감당하고, 자기 본분을 지킨 이들은 하나같이 자기 신앙의 정체성을 견고히 지키며 살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신약에서는 바울 사도가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정말 충성되게 헌신하였고, 유럽에 많은 교회들을 세웠습니다. 그 일을 행함에 있어 바울에게도 무수한 박해와 방해, 반대가 뒤따랐으며 그것이 그의 생명을 위협할 정도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처럼 한결같이 헌신된 자세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그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하는 사도이며

그리스도의 명령을 순종하는 그리스도의 종이란 사실을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바울이 기록한 서신들 앞부분을 보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불신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그 중에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교제하면서 우리가 참 신앙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은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충성되이 감당할 수 있는 길은, 죄와 타협하지 않고 선을 행하다 낙심하지 않으며, 오로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간직해야 할 신앙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데에 있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환경이 달라지고 주변의 사람들이 어떤 태도를 취하든

우리들은 이 사실을 잊지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며 살아야 할 거룩한 백성임을 결코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벧전2:9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3. 하나님은 거룩한 삶을 살라고 우리에게 성도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환관장 아스부나스는 다니엘과 세 친구의 이름을 바꾸어 주었습니다.

다니엘(하나님께서는 재판관이시다)에서 벨드사살(벨이여 그의 생명을 보존하소서)

하나냐(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에서 사드락(월신의 명령)으로,

미사엘(하나님과 같으신 이가 누구인가)에서 메삭(므로닥같은 이가 누구인가)

아사랴(여호와는 돕는 자이시다)에서 아뱃느고(느보의 종)으로 개명하였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본래 이름은 모두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잘 반영하여 주는 이름이었지만

환관장이 지어준 새이름은 바벨론의 우상들과 관계된 이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벨론 왕이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이름을 개명한 것은

그들이 히브리 민족의 정신을 지우고 바벨론 사람이 되어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식 이름은 하나님의 백성임을 나타내는 것인데, 바벨론 왕은 이들이 바벨론에 동화되기를 바라고 바벨론과 바벨론의 신들을 위하여 살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악한 마귀는 다니엘과 세 친구가 마귀의 종이 되기를 바라고 이름을 바꾸어 주었지만,

우리 하나님은 마귀의 종된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를 성도라는 닉네임을 주셨습니다.

성도란 죄인 된 우리를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하게 하시고,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를 살리시어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이라는 뜻이고, 또한 그리스도인이라고 칭하여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자,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행하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과거에 우리가 죄악을 저지르며 사망을 향해 달리는 삶에서,

오로지 유한하고 썩어질 세상의 것만을 위해 사는 삶의 자리에서 건져내셔서 생명의 삶을 살고,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는 삶을 살게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이름을 전적으로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 이전 것은 지나가고 완전히 새로운 것,

더럽고 추한 마귀의 종에서 정결하고 아름답고 축복된 것으로 개명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본래 죄인이었습니다. 심판 받고 멸망 받아 지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축복된 삶을 살게 하시려고 우리의 이름을 성도로, 그리스도인으로 새롭게 지어주셨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새 이름을 주신 뜻이 무엇일까요?

우리들 모두가 그 이름에 걸맞은 삶을 살아라고, 성도답게 거룩하게 진실하게 성실하게 살고,

그리스도인 답게 그리스도를 위한 삶을 살아라고 지어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지어주신 새 이름이 무색해지지 않고 이름값을 하면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처한 상황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첫째, 포로되어 바벨론의 포로로 사로 잡혔다는 사실과 왕을 위해 바벨론 제국을 위해 살도록 교육받았다는 사실과, 바벨론 왕실에서 내린 음식을 먹고 포도주를 마셔야 한다는 사실과 그들의 이름이 바벨론식으로 개명되어 그 삶 자체가 바벨론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란 불가능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도 의연하게

신앙의 삶을 살아가는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모습을 증거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의 삶에서 신앙의 힘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를 확인 할 수 있습니다. 그처럼 신앙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들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믿었기 때문이며 하나님을 향한 참되고 진실된 신앙의 결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디에 있든지, 어떤 삶의 자리에 처해 있든지, 거기에 개의치 않고, 또 상황과 형편에 굴하지 않고, 당당히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들도 성경에서 보여주시는 신앙의 힘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하나님의 역사가 얼마나 크고 놀라우며 위대한 것인지를 체험하고 내가 체험한 하나님의 역사를 세상 가운데 드러내는 간증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먼저 찬양하시고 다 함께 하나님에게 부르짖어 기도하겠습니다.

내눈 주의 영광을 보네.

1. 성도는 세상 속에 살아가지만, 세상에 동화되어서는 안됩니다.

2.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든지 성도로서의 신앙 정체성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3. 하나님은 거룩한 삶을 살라고 우리에게 성도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나의모습 나의소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