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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영원 전부터 존재하시는 예수님.(히1:10~14)

영원 전부터 존재하시는 예수님.

10-12절은 예수님께서 태초에도 계셨고 영존할 것이며,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천사보다 우월하신 예수님의 영원성과 불변성을 말씀한 것이다.

우선 태초에와 주는 영존할 것이요.

예수님은 시간이 생기기 전, 영원 전부터 계셨다는 것을 이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다.

예수님은 만물이 생기기 전, 영원 전부터 계시며, 만물이 있는 현재에도 동일하게 계신다.

또 앞으로 만물이 사라질 미래에도 예수님은 창조주로서 존재하신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늘 변함이 없으신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하시고

관계를 계속해서 이어 나가실 것이다. 뿐만아니라 예수님은 연대가 다함이 없는 분이시다.

이 세상이 완전히 사라진다 하더라도 여전히 동일하게 존재하실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은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 세계를 포함한 영원 전과 영원 후에도 동일하게 존재하시는 영원자와 초월자이시다.

만세 전부터 상고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입었나니"(8:23)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어떤 존재보다 우월하신 이유다.

그런데 천사는 피조물이다. 영원 속에서 존재한 것이 아니라, 태초 이후에 시간이란 틀 속에서 만들어진 존재다. 또 이 세상도 마찬가지로 시간의 틀 속에서 창조된 존재에 불과하다.

천지가 창조되고 만물이 조성된 이래 모든 피조물들, 사람은 죽고 후세대가 다시 살아나고, 동식물은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고, 나라들이 멸망하고 다시 생겨나고 있다.

만물은 항상 끝이 있었으며 늘 변화가 있었다. 꽃씨를 흙에 심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싹이 트고 잎이 나고 꽃이 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이내 꽃과 잎은 시들고 줄기와 뿌리는 마르고 죽어 사라지게 된다. 이것이 계속 반복되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만물들을 창조하신 우리 하나님은 결코 죽지 않으시고 변하지도 않으시며 영원히 살아계신다.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이 계신다.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하느니라" (1:17)

그러므로 우리가 일생동안 섬기며 경배할 대상은 누구인가? 천사도 아니고 이 세상도 아니다.

나를 지으신 하나님 뿐이다.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 뿐이다. 나를 인도하시는 성령님 뿐이다.

그런데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참 경배 대상을 잊은 채 살아 가고 있다.

즉 눈에 보이는 세상의 돈, 명예, 학력, 외모 등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주인이 되어 자기 마음대로 자기 뜻대로 살거나 심지어 타락한 영적 존재인 마귀를 섬기며 살아가기도 한다. 참으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섬겨야 할 분은 오직 영원성과 분별성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는 분이심을 믿어야 한다.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요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1:8)

우리 인간을 포함한 만물의 생성과 소멸은 단지 영원토록 변함없으신 주님의 통치 안에서 이루어질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주님의 영원성과 불변성 앞에 겸손히 무릎 꿇어야 한다. 진정 우리는 늘 주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 가운데 말씀에 순종하는 주님의 백성으로 살아야 한다.

 

2. 우리 인생은 영존하시는 주님 앞에 참으로 덧없는 것이다.

11, 12절은 주님께서 지으신 모든 피조물들은 다 옷과 같이 낡아지리니 의복처럼 갈아입을 것이요 그것들이 옷과 같이 변할 것이나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피조물의 가변성을 말한다.

모든 피조물은 다 옷과 같이 낡아져서 영원토록 지속되지 못하고 변하여

언젠가는 끝을 맞이 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우리 인생이 영존하시는 주님 앞에서 참으로 덧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신다.

인간이 아무리 지구와 우주를 탐사할 수 있는 과학 기술을 발달시키고

많은 질병을 물리쳐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는 약품을 개발하며

사람들을 전인적으로 성숙되게 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여전히 영존하신 주님 앞에서 덧없기 짝이 없는 존재들일 뿐이다.

실로 인생은 유한하며, 가변적이며 영원하지 못한 존재들인 것이다.

때문에 시103:15,16에서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면 없어지나니 그곳이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라고 고백한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이러한 사실들을 안중에도 없다.

세상 사람들은 영존하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눈에 드러나는 현상 세계에만 몰두하여, 인간만이 지구와 우주를 지배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고 착각하며 살고 있다.

첨단 과학 기술을 소유한 인간, 심오한 이성적 판단 능력을 소유한 인간,

대단한 사회 지도력을 소유한 인간, 그 인간만이 온 우주의 모든 만물들 중 가장 위대한 존재라는 신념에 사로잡혀 있다.

실제로 인간들이 이처럼 영존하시는 주님을 무시하고 자신들을 최고의 자리에 올리려 하는 시도는 처음부터 시작되었다. 11장의 바벨탑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인간들의 교만은 끝이 없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대적하고 자신들의 이름을 온 천하에 드러내고자 하여 탑을 쌓아 올렸다(11:4).

또한 인간들은 기원전 6세기 경에 항해 기술이 한창 발달함에 따라

항해에 견딜 수 있는 큰 배들을 제조한 것을 보고, 위협적인 바다도 인간이 극복해내었다고 극찬하였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복제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드디어 인간이 생명을 창조할 수 있는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닌 인간을 위한 이 모든 노력들은 인간의 교만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들은 인간의 유한성이나 가변성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어리석은 소리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4:14)

결국 그들은 죽음을 앞두고 자식들에게 마지막 유언을 하는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지난날 자신들의 말과 행동에 대해 뼈져리게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뜨거운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영존하시며 지고하신 주님께 용서를 구하면 다행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훗날 죽음 앞에서 그와 같은 고백을 하는 어리석은 사람들과 달리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주님의 위대하심과 지고하심 그리고 우리 인생들의 덧없음을 깊이 깨닫는 자들로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벨전1:24)

그리고 덧없는 인생 이 땅에서의 삶에 아무런 미련이나 욕심 없이 겸손히 살아야 한다.

우리 모두는 이 땅에서 나그네다. 주님께서 보내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곳에 왔으며 또한 주님께서 부르신다면 오늘이라도 가야 한다. 늘 겸손히 주님을 청종하며 살아야 하겠다.

 

3. 천사가 성도를 섬기는 것은 주님의 십자가로 가능케 되었습니다.

14.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신 이유는 우리 성도들을 섬기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참으로 황송한 말씀이다. 왜냐하면 모든 피조물 가운데 가장 성결한 천사가 타락한 아담의 후손들을 섬긴다는 것이다.

성경은 천사가 여러 면에서 우리 인간보다 우월하다고 말씀하고 있다.

시편89:5에서는 천사들을 거룩한 자라고 하였다. 천사는 사람과 달리 한 점의 죄도 없다.

또한 인간보다 총명하며 지혜로우며, 인간에게 지혜와 총명을 부어 준다(9:21. 22).

더욱이 천사들을 하나님의 궁정 신하들이다. 1:6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천사들은 우리 인간들보다 월등한 존재들이다.

그런데도 이들이 타락하여 불완전하기 짝이 없는 죄인인 사람들을 섬긴다는 것은 말이안된다.

심하게 표현하면 하늘의 궁정 신하들이 땅의 벌레같은 자들을 섬긴다는 뜻이고

왕족들이 천민들을 찾아다니며 섬긴다는 것과 유사하다.

그렇다면 본절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무슨 이유로 천사들이 사람들을 섬기다는 것인가?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의 위대하심 때문이다.

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쩍에 맞음으로 너회는 나음을 얻었나니" (벧전2:24)

우리는 모두 타락하여 땅의 벌레만도 못한 죄인들이었다.

천사는커녕 세상의 미물보다도 더 가치없는 추악한 죄인들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사역을 통하여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다. 우리는 왕의 피로 말미암아 구원 얻은 후사들이 된 것이다. 베드로 사도가 증거하는 바와 같이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 대하여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다.

따라서 하나님의 종인 거룩한 천사들에게 섬김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위대함이다. 주님의 십자가는 볼품없지만,

그 사건으로 영적 세계는 놀라운 변화를 맞이한 것이다.

즉 거룩한 천사들이 죄인이었던 인간들을 섬기게 된 것이다.

만약 십자가 사건이 없었다면, 천사들이 죄인을 섬길 이유가 없다.

하나님의 궁정 신하들이 땅의 벌레만도 못한 우리들을 지속적으로 섬길 수 있는 것은 추악한 죄인이었던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주님의 십자가 사역의 위대하심은 만방에 선포되어지는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부르심이 얼마나 위대한가? 우리가 이 사실을 깊이 묵상하며,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