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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요13:33-35)이웃을 위해 십자가를 지며 그들의 발을 씻기는 사랑의 실천

53:1-3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는 자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각기 물러가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하나님 아버지, 세상사람들은 어리석어서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자신의 욕심을 따라 살아갑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자기가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하나님을 믿는 지혜로운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지혜로운 자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어리석은 자를 따라 살지 않게 하옵소서.

저희들은 하기 싫어도 주님의 뜻이라면 해야 하고,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이 원하시면 하고,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주님을 위해 사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자신을 위한 삶은 실패의 삶이고, 주님을 위한 삶은 성공의 삶이라는 것을 항시 잊지 않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찬송가 416장 하나님은 외아들을, 요한복음 1333-35.

 

33. 소자들아.  이 호칭 속에는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깊은 애정이 담겨 있습니다.

소자들아는 ‘나의 아이들아’, ‘아들들아, ‘사랑하는 아이들아 등으로 표현됩니다.

마치 임종을 앞둔 아버지가 세상에 두고 가는 사랑하는 자녀들을 향한

안타까운 심정과 애절함이 느껴집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앞으로 겪어야 할 고난과 역경들을 잘 알고 계시기에, 측은해하시는 것입니다.

성도들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은 이처럼 사랑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주님이 맡겨 주신 양 때들인 성도들을 말씀으로 인도하는 목회자들이 바로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사역에 임해야 합니다. 목자 되신 주님의 마음과 눈을 가지고 주님의 양들을 돌볼 때

비로소 참 사랑으로 섬기며 선한 목자이신 주님께로 바르게 인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 ‘아직 잠시’라고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하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의미합니다. 어떻게 보면 마치 이 말씀은 마28:20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말씀과 배치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승천하신 후에도 제자들과 항상 함께 계셨습니다.

다만 인간 예수로서가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으로 함께 하셨다는 것이 다른 것뿐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사는 날은 그리 길지 못합니다. 따라서 주어진 시간들을 잘 활용하여

이 땅에서 사는 동안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완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도 허비해도 좋을 만큼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의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은

일차적으로는 바로 그 다음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동참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제자들은 예수께서 체포당하셨을 때 모두 뿔뿔이 흩어져 도망 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실 때 제자들이 지금 당장은 따라오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후일에는 따라가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승천하심으로 성령이 강림하신 이후 사도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성도들이

예수님의 뒤를 따라 순교하였으며 그런 고난의 행진은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들 모두가 장차 예수님 재림 이후 부활에 동참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천국에서 영원토록 영생복락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 34절에서 예수님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이 말씀에 대해 뒷부분인 ‘서로 사랑하라’ 는 말씀에만 주목하여

이 말씀을 단지 사랑에 관한 말씀으로만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사랑의 말씀을 하시며 그 앞에 분명하게 이를 ‘새 계명’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맞추어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하나님께서는 죄로 더럽혀진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스라엘을 구약의 선민으로 택하시고 그들을 구약 구속사의 통로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언약을 맺으신 후 그들이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반드시 준수해야 할 사항들을 각종 율법과 계명 형식으로 주셨습니다. 이것을 요약한 것이 바로 십계명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구약 선민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주신 인류 구원을 위한 구약 구속사의 통로로서의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이방의 우상 숭배에 빠져 그 지위와 특권을 모두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해 새 언약을 맺으리라 약속하신 후

때가 차서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심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렇게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께서 완전한 순종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 의해 파괴되었던 모든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십자가의 피로써 새 언약을 세우시고 새 언약을 통해 이루어질 새로운 공동체, 즉 교회가 준수해야 할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34절에 기록된 새 계명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거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옛 계명들을 어겼을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받고 얼마나 큰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방의 침입을 받고 나라가 멸망하여 이방 땅에서 포로 생활하는 등 말로는 다 표현하기 어려운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계명을 완성한 가장 큰 계명을 어겼을 때에는

그 얼마나 무서운 심판을 받겠습니까? 더구나 이 계명은 동물의 피가 아니라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맺은 새 언약의 계명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라’ 는 예수님의 이 새 계명은 지키면 좋고 안 지켜도 그만인 정도의

사소한 말씀이 아니라 반드시 준수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면하지 못하는

매우 엄중한 명령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준엄한 심판이란 곧 영원한 멸망의 지옥 형벌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이런 예수님의 새 계명을 앞에 두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우리 자신을 살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사랑의 실천에 있어 참으로 부족한 우리들의 초라한 모습을 발견하고 무엇보다 크고 귀한 이 계명을 지킬 수 있는 최고의 은사, 곧 사랑의 은사를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며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34절은 우리가 형제와 이웃을 어떻게, 얼마만큼 사랑해야 할 것인지 그 기준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실천해야 할 이웃 사랑의 기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기준에 근거하여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이 기준은 율법의 파괴가 아니라 완성이라는 점을 유념해야합니다.

우리가 실행해야 할 사랑의 기준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바로 그 질과 분량과 방법입니다. 여기에는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포함되며, 끝까지 사랑하는 것과 친구를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리는 것 등이 포함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힘써 실행해야 할 사랑의 모델입니다.

우리의 사랑이 여기에 미치지 못하면 사랑을 논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이론이 아니며 개념도 아니며 실행입니다. 실행이 따르지 않는 사랑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 속에서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모습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방법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보여 주셨던 기준대로 우리 역시 행하는 것입니다.

 

-, 35절에서 예수님은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서로 사랑하는 것이 제자 됨을 알리는 진정한 표지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성도요

그리스도의 제자 된 표지를 가지고 있는지 다시 한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이런 예수님의 말씀에 근거하지 않고

일반적인 통념에 근거하여 그리스도인의 표지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인에 대한 표준을 제시해 보라고 질문한다면

아마 많은 성도들은 우선 교회에 출석하고, 다음에는 술, 담배 안하고 등등의 기준부터 제시할 것입니다. 물론 이와 같은 기준도 성경 전체로 볼 때 전혀 틀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보면 우리 성도들에게 예수님은 이와 전혀 다른,

그리고 이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구체적이고도 차원 높은 기준을 제시하고 계십시다.

즉 ‘서로 사랑하는 자, 그것도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같이 사랑하는 자’ 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준으로 볼 때 과연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스스로를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자신있게 답할 수 있을까요?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는 단지 교회에 출석하여 세례를 받고 몇 가지 기본적인 사항을 지키는 것만으로 스스로 만족하는 기독교인이라는 타이틀의 종교인이 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진실로 예수님께서 교회와 성도를 온몸으로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이웃과 하나님을 진실되게 사랑함으로써 세상 사람들에게 참된 그리스도와

천국을 보여 줄 수 있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께서 저희들에게 ‘서로 사랑하라’ 는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웃을 위해 십자가를 지며 그들의 발을 씻기는 사랑의 실천이야말로

진정한 계명의 실천이 아닐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세상 사람들처럼 부와 명예로 자신의 지위를 알리는 표지를 삼지 말고

오히려 낮은 모습으로 이웃을 섬기는 사랑의 실천을 통해 우리가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요

참된 영광의 소망을 품은 자들임을 증거해 나가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