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51:22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날마다 말씀 앞에 나아가 내 속의 정한 마음을 부어주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여 주시고, 구원의 즐거움이 회복되고,
자원하는 심령으로 하나님의 일을 기쁨으로 감당하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찬송가 197장 이 세상 험하고, 요한복음 13장28-30절.
28 이 말씀을 무슨 뜻으로 하셨는지 그 앉은 자 중에 아는 이가 없고
예수님께서 만찬 도중에 제자들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머리짓으로 요한에게 누구인지 물어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요한에 예수님에게 누구냐고 묻자 예수님께서 내가 떡을 찍어주는 자라고 하시면서
가롯유다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유다에게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고 말씀하시자
유다는 떡 조각을 받아 들고 그대로 나가 버렸습니다. 이런 상황을 제자들이 듣고 보고서도
그러나 이것을 그 당시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하나님이 모르게 하셨다고 해도 잘못된 표현이 아닐 것입니다.
만일 제자들 중에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를 알고 누군가가 제동을 걸었더라면
유다의 계획은 차질을 빚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요한이 예수님을 팔 자가 누구인지 직접 묻고 대답까지 듣고도
유다가 배신자라는 것을 확실하게 감지하지 못하였습니다.
만약에 요한이 알았다면 베드로에게 말했을 것이고 다혈질의 사람인 베드로가 가만히 보고 있었을 리가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깨닫게도 하시고 모르게 하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 인생의 해답을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와 시에 대답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말씀을 가까이하고 깨어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때와 시를 기다려야 합니다.
29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 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의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흑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더라
제자들 중 어떤 이들은 예수께서 유다에게 하신 말씀이 명절 때 쓸 물건을 구입하라고 하신 것이거나,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도록 지시하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이는 인간의 이해력이 지닌 한계성을 잘 보여 줍니다.
주의 말씀을 듣는다고 모두가 깨달아 확실하게 알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해의 빛을 주실 때에만 그것이 나타내는 바를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주의 제자들 중에 일부가 그랬듯이 이해의 빛이 없는 이들, 곧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주의 말씀을 논리나 추정에 의존하여 이해코자 하는 어리석음을 종종 범하게 됩니다.
유다가 회계의 책임을 맡고 있던 터라 그들의 추정은 타당한 것처럼 보일 수 있었으나 사실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한편 본절에서 요한이 당시의 이러한 상황을 굳이 밝히는 것은 예수님과 동고동락한 제자들조 차 예수의 대속적 죽음에 대한 이해가 없었음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예수께서는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한 걸음씩 앞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었지만 제자들조차도 이에 대하여 전혀 무지하였던 것입니다. 세상 죄를 담당하신 어린양 예수께서 고난의 길을 고독하게 홀로 걸으시는 이러한 모습은 레16:8,10에서 백성의 죄를 홀로 짊어지고 광야에 외롭게 버려진 아사셀 염소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30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마치 바늘 방석에 앉아 있는 것같이 불편하였을 가롯 유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신속하게 움직인 것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예수님과의 결별이었고, 축복받은 무리인 제자들의 무리에서 영영 떨어져 나가게 된,
그의 인생을 비극으로 향하게 한 발걸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사자는 물론 제자들 역시 이 사건이 갖는 영적 의미를 전혀 알지 못하였습니다.
30절에서 ‘밤이더라’ 란 표현을 한 것은 매사에 있어서 시간적 배경을 밝히기를 좋아하는 요한의 특성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한이 ‘제십시’, ‘제 육시’, ‘제칠시’ 등과 같은 구체적인 시간을 나타내는 표현을 쓰지 않고 단지 ‘밤’ 이라는 표현만을 쓴 것은 상당히 암시적입니다. 문학적 소양이 뛰어난 요한은 가롯유다가 어두움의 세력 가운데 포함된 사람임을 암시하고 그의 앞에 불행한 일이 전개될 것을 암시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이러한 표현을 쓴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실제 성경에서 어두움은 영적무지, 타락, 버림받음, 심판 등 좋지 않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30절 말씀을 통하여 첫번째로 생각해 볼 것은
제자들 중 하나가 예수님을 팔 것이라는 예언을 하시자 어리둥절한 제자들,
그리고 떡 한 조각을 가롯 유다에게 건내시는 예수님,
예수님으로부터 떡을 받고 밤에 어둠 속으로 나가버리는 가롯유다의 모습이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가롯 유다는 결국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하신 마지막 식사 장면을 기록하면서도
처음부터 마귀가 벌써 가롯유다의 마음에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도 내내 그를 향한 사랑과 애정 그리고 안타까움을 표현하셨습니다.
그렇지만 그에비해 가롯유다의 목소리는 어느 곳에서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가롯유다의 침묵은 괴로워하는 예수님의 마음을 더욱 더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가롯유다의 침묵은 은밀하게 악을 도모하는 죄인의 음흉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팔려는 악한 생각을 들키지 않으려고. 침묵으로 일관하며 자신을 감추고 있는 것입니다.
가롯유다의 침묵은 예수님을 팔아 넘길 정도로 마귀에게 완전히 잡힌 상태를 잘 보여 줍니다.
유다가 마귀에게 잡혀 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돈을 사랑하고 부정적인 생각과 교만입니다.
유다는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그 발을 씻긴 마리아를 책망하면서
그 향유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었으면 더 좋았겠다고 말하여 예수님께 핀잔을 들었습니다.
그는 도적이라 가난한 사람을 생각하여 말한 것이 아니라 돈을 훔쳐가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육적으로 생각한 유다는 예수님이 자신이 기대하는 메시아가 아니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통치하기를 바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다가 침묵한 것은 자신이 예수님을 메시아가 아니라고 판단한 교만한 모습이고,
또한 멸망의 길에서 속히 돌이키라고 계속 부르시는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단호 한 거절입니다.
두번째로 생각해 볼 것은
제자들 중 하나가 예수님을 팔 것이라는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그가 누구일지 궁금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고 말씀하시고는 떡 한 조각을 가롯유다에게 주셨습니다. 가롯유다가 떡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떡은 성찬의 떡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너희를 위해 찟기는 내 몸이니라 고 말씀하신 그 떡입니다.
예수님 사랑의 결정체인 그 떡이었습니다.
그러나 가롯유다가 그 떡을 받은 후에 오히려 그 속에 사탄이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에게 내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말씀, 예수님의 사랑, 예수님의 은혜는 매일,
심지어는 우리가 죄를 마음에 품은 순간에도 다가옵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의 문이 예수님께 열려 있지 않으면 오히려 사탄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유다에게 주신 떡 조각은 악한 길에서 속히 돌이키라는 마지막 권면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그 권면을 거부하고 어둠의 깊은 밤의 길로 같습니다.
유다가 곧 나가니 밤이라 라는 표현은 시간적 배경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가 빛에 속한 자가 아니라 어둠에 속한 자였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가 더 깊은 어둠을 선택한 자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과 오랜 시간을 함께 했지만 그는 어둠 속에서 살아왔고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내려갔습니다. 본문은 마치 어둠이 그를 삼킨 것처럼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떠나면 어둠이 우리를 삼켜 버립니다.
가롯유다는 빛을 거부하고 어둠을 택한 죄인의 안타까운 종말을 보여줍니다.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과 오랫동안 함께 했으면서도,
심지어는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의 떡을 받아 먹었음에도 그는 결국 캄캄한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우리가 사망과 어둠에서 건짐을 받고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된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묵상하며 날마다 감사와 찬양가운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더 생각해 보면
가롯유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떨어지자 곧장 만찬석상을 빠져나와
대제사장에게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고작 은 삼십을 바라고 메시아 예수님을 팔아 버렸습니다.
예수님을 팔아 넘긴 대가로 얻은 은 삼십이 그에게 기쁨을 주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금방 후회하고 은 삼십을 다시 가져다 주었지만, 대제사장에게 싸늘한 냉대를 받고 쫓겨나
끝없는 죄책감과 절망감으로 비참하게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서는 어떠한 기쁨도 소망도 없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없이 얻은 물질은 성공이 아니라 실패이며 더 무서운 심판이라는 것입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제 아무리 화려한 삶을 살고 있다 할지라도
실상은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30절을 통해 파멸의 길을 걸어가는 가롯유다의 모습을 보며 진정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생명의 길을 가고 있는지 다시 한번 진지하게 되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혹 주님의 말씀처럼 본다고 하나 실상 소경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살았다 하나 실상은 죽은 모습은 아닌지,
겸손한 마음으로 내 삶을 되돌아보며 하나님 앞에 더욱 낮은 모습으로 엎드림으로써
참된 빛과 생명을 얻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성찬과 예배에 참여하더라도 복음으로 깨어있지 않으면 선 줄로 생각했다가 넘어지기 쉽다는 것을 기억하고 항상 말씀과 기도로 깨어 있는 저희들이 되어,
악한 원수 사단 마귀에게 우리의 마음을 내어주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돈을 사랑하지 말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만하지 말고 겸손함을 잃지 않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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