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57:1~3 하나님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서 이 재앙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내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긍휼이 여기시옵소서
저희들의 영혼이 악한 원수 마귀에게서 피하여 주님의 날개그늘 아래에 거하며
이 재앙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나이다. 저희 인생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주실 분은
오직 위대하고 강하신 여호와 하나님뿐이심을 믿사옵나이다.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찬송가 28장 복의근원, 요한복음 14장1-3절.
모든 근심의 근본적 해결책은 온전한 믿음뿐입니다.
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제자들이 이제야 비로소
예수님이 자기들 곁을 떠나가실 것이라는 사실을 어렴풋하게나마 알았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지금까지 믿고 의지해 왔던 예수님이 자기들 곁을 떠나시게 되리라는 사실을 직감하게 되면서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처럼 두려움과 불안, 근심과 걱정에 사로잡혀 있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고 하시며 제자들에게 믿음을 강조하셨습니다.
여기에 우리가 깊이 새겨야 할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두려움과 불안, 근심과 걱정에 사로잡힐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에게 돈이 많으면 걱정, 근심이 없을텐데’
‘내가 건강하다면 아무런 염려도 없을거야’
그래서 모든 근심과 걱정, 염려를 벗어나는 길은 돈과 건강이라 생각하여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헛된 곳에 쏟아 붓고 있습니다.
이 소원 성취만 되면 모든 근심과 걱정, 염려와 불안으로부터 해방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까? 많은 돈이 있다고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또한 높은 지위에 올라갔다고 모든 염려와 불안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돈이 많으면 그 돈을 잃을까 더욱 불안해하고,
또 그 재물로 인해 새로운 염려와 걱정거리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납니다.
또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일수록 그 지위를 지키기 위해 낮은 지위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염려와 불안, 걱정과 근심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길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오늘 1절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나님을 믿고 주님을 굳게 믿는 것입니다. 곧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예수님의 약속을 믿으며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막아주지 못하던 염려와 불안, 근심, 걱정에서 해방되어 참된 평화와 안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오직 하나님 홀로 인간의 생사 화복을 주장하시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를 평강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염려와 근심에서 해방되기위해
이 땅의 그 어떤 것들만 쫓는 헛된 노력을 할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어
세상의 모든 근심과 걱정에서 벗어나 평강의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을 믿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 믿음을 강조한 것이며,
그 믿음의 대상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과 하나님을 믿는 것은 똑같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사람들 중에는 ‘나는 이 우주에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결코 부정하지 않는다’ 라고 합니다.
우주의 법칙이나 세상만물이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는 것을 볼 때 분명 하나님이 계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는 믿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유일한 구원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셨고,
제자들에게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고 명령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수님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절대 분리될 수 없습니다.
빌2:6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는 본래 근본 하나님의 본체로서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라 하십니다.
예수님은 위격에서는 성부 하나님과 구별되는 성자 하나님이시지만 한 하나님이십니다.
더욱이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분리할 수 없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류의 운명을 십자가 구속 사역을 감당하신 그리스도의 손에 맡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는 결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하나님을 똑바로 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내가 하나님을 믿어야지 하고 마음먹는다고 해서 믿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음을 주셔야 믿듯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는 하나님을 믿을 수 없으며,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을 절대로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만 믿는 유대인들은 자기의 의지로 믿는 인본주의자들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님을 주라 시인하는 신본주의자들입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있습니다.
2절과 3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버지 집에 처소를 예비하러 가실 것과
처소가 예비되면 그들을 영접하러 다시 오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말씀을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재림에 대한 말씀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분명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 승천 재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성도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대하면서 이 해석만 할 뿐
그 이상의 어떠한 감동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이 말씀을 듣고 ‘그래, 이 말씀은 십자가와 부활, 재림에 관한 말씀이지’ 라고 해석하며 단지 교리적인 의미를 이해하는 것으로 만족할 뿐 그 이상의 의미와 은혜를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 말씀을 놓고 어떤 이들은 ‘그렇지, 이 말씀처럼 주님은 반드시 오신다고 했지, 그렇다면 그때는 언제쯤일까?’ 라고 하며 성경이 계시하지 않은 주님의 재림의 때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지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진정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단순히 부활과 재림에 관한 교리가 아닙니다. 더구나 이 말씀을 대하며 그때와 시기에만 관심을 집중한다는 것은 더욱 잘못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예수님의 이 말씀을 통해 진정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우리 인간의 사랑과 비교하면 더더욱 분명해집니다.
이 땅에서 가장 큰 사랑은 부모님의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말은 틀린 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친구 간의 사랑이나 남녀 간의 사랑이 깊다 해도
우리를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신 부모님의 사랑에 비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의 사랑에도 한계는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세상의 부모들은 자식들을 한없는 사랑을 쏟아 기르지만 막상 자식들이 장성하여 조금만 섭섭하게 하면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하며 자식 키워 봐야 아무 소용없다 하며 후회하는 말을 합니다.
하지만 우리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우리를 위해 하늘의 모든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희생을 감당하신 후에
‘너희를 향한 나의 사랑이 이젠 충분하다’ 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더.
그리고 세상의 부모들처럼 ‘이제는 너희가 나에게 은혜를 갚아라’ 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후에도 우리의 처소를 예비하러 하늘로 가셨습니다.
또한 처소가 예비된 후에도 단지 천사만을 보내시는 것이 아니라 친히 우리를 데리러 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예수님의 관심은 오직 우리 성도들을 끝까지 사랑으로 돌보고 모한히 베풀기만하는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끝없는 사랑을 바로 지금 우리 모두가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말씀을 받고는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토록 큰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는데
과연 나는 어떤 모습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는가?’ 라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은 성전을 사모하는 것이고 말씀을 가까이하는 것이고 날마다 하나님에게 기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 사랑과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이것뿐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세상이 주는 근심걱정에 얽메여 살지 말고 하나님을 믿고 또 예수님을 믿음으로 항상 평안과 안식을 누리는 저희들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믿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을 통하여서만 하나님에게로 가는 유일한 통로이심을 밝히 보여 주시고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심을 감사합니다.
끝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배반하지 말고 그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길은 예배자로 살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고 기도의 삶을 사는 저희들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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