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59:9~11 하나님은 나의 산성이시니 저의 힘을 인하여 내가 주를 바라리이다.
나의 하나님이 그 인자하심으로 나를 영접하시며 내 원수의 보응 받는 것을 나로 목도케 하시리이다. 우리 방패되신 주여 주의 능력으로 저희를 흩으시고 낮추소서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내 힘과 내 의지로 이겨낼 수 없는 위기를
만나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저희가 주님을 찾게 하옵시고, 인자하시고 도우시는 주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저희의 영안을 열어 주시어 마귀보다 강하신 주님을 바라보고,
우리의 상황과 형편을 변화시키시는 주님을 의지하므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찬송가 , 요한복음 14장9-12절.
1.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참된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9절에서 빌립이 예수님에게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하자 예수님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고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본 사람은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죄악에 물든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고 그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길입니다.
우리 인간은 인류의 조상인 아담이 범죄하여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이후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더 이상 하나님과 교제할 기회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을 만나 뵐 수도 없게 되었고
또한 그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타락한 이후 하나님 없이 살게 되었고, 그러므로 자연히 점점 더 하나님을 잊어 갔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어 인간은 하나님을 잊어갔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은 비록 타락하여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훼손당하였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회복되어야 할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인간은 근원적으로 하나님을 간구하고 찾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종족도 하나님을 찾지 않는 종족은 없습니다.
문명과 단절되어 살아가는 밀림 속의 원시인들 조차도 자기 나름대로의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들도 신전을 만들고 제사를 드리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이처럼 간절하게 모든 인류가 하나님을 찾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사람도 직접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다는 것이 비극적인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들 나름대로의 생각에 따라 하나님을 만들어 섬기고 있으니
그것이 바로 우상 숭배인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우상을 숭배하지는 않지만 하나님을 찾다가 찾지 못하고
절망 속에서 살아가다가 ‘하나님은 없다!’ 고 단정하여 무신론자가 되어 버리기도 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무한한 우주 속에서 하나님을 찾고자 열심히 천체 망원경을 들여다보지만
하나님이 창조하신 광대한 우주를 보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느낄 수는 있지만
하나님의 모습은 볼 수 없습니다.
반대로 어떤 이들은 ‘하나님을 보려면 네 마음속을 들여다보라’ 고 말하며
내면의 명상을 주장하지만 우리의 마음과 내면을 바라보면 거룩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죄악에 물든 악한 인간의 본성만을 발견할 뿐 하나님은 만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들은 구약 성경의 단편적인 내용만 보고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질투하고 화를 내는 무서운 하나님일 뿐이다’ 라는 잘못된 생각을 하고
하나님을 욕하는 사람들도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인생들을 불쌍히 여긴 하나님께서는 인생들로 하나님을 보고 섬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진정 하나님을 만나 뵙기를 원한다면
먼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보내 주신 예수님을 먼저 만나 보아야 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볼 때 참되신 하나님을 만나 뵐 수 있고 하나님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인생은 예수님을 통해, 분노하고 질투만 하는 심판의 하나님이 아니라
인류의 죄를 보며 안타까운 눈물을 흘리시고 또한 이를 용서하기 위해
사랑하는 아들까지 십자가에 못박으신 사랑의 하나님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성품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만일 누군가 여러분에게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하면
그들을 교회로 데리고 오시면 됩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될 것이고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하나님을 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먼저 하나님과 일치해야 합니다.
10절과 11절에서 예수께서는 하나님과의 일치성을 거듭 강조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곧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며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도
예수님 안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을 본 자는 곧 하나님을 본 것이라는 말씀에 대한 좀더 구체적인 설명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일들을 완벽하게 수행하실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철저하게 하나님과 하나로 일치하고 계셨기에 하나님의 원하는 바를 바로 아시고 또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모든 하나님의 일을 완벽하게 수행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나님 일을 온전히 감당하려면 먼저 하나님과 일치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일치하지 아니하고는 결단코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감당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보고 싶은 드라마나 축구 중계를 보려면 방송하는 채널로 돌려야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감당하기 원한다면 먼저 예수님처럼 우리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야 하고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에게 일치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믿음과 성령을 통해 온전히 하나님과 하나로 연합되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에는 관심도 없고
우선 자기 뜻대로 살고 자기 마음대로 말하며 믿음과 성령없이 행하면서
능력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것을 볼 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진정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그렇다면 먼저 우리가 세상적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진리와 영으로 충만해져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뜻과 생각을 하나님의 마음과 일치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선한 도구가 되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능력 있는 일꾼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3. 예수님에 대한 바른 신앙을 가진 자는 모두 놀라운 능력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12절에서 예수님은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선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은 과장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도행전의 기록이 이를 분명하게 증거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순절 사건 이후 제자들은 능력 있는 선포를 통해 삼천 명, 오천 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놀라운 역사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그 외에도 놀라운 능력들을 행하였던 것입니다.
행5:15 사람들은 병자들을 메고 나와 그 위에 베드로의 그림자라도 지나가기를 원할 정도였습니다. 또한 행19:12 사도 바울 역시 얼마나 그 능력이 컸던지 바울이 지녔던 손수건이나 앞치마만 가져다가 병든 자 위에 덮어도 병과 악귀가 떠나갈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행9:40,41; 20:9-12 베드로나 바울은 죽은 사람까지 살리는 엄청난 이적을 베풀기도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어떤 사람은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사도니까 가능한 일이지
우리와 같은 평범한 신자들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하겠는가?’ 라고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도들과 다른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같은 하나님 한 분이신 하나님을 믿고 있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우리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믿음의 유무입니다.
사도들은 믿음으로 놀라운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도 믿음만 있으면 그런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실제로 오늘날에도 성도들에 의해 기적적인 일들이 수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간증들이 지금도 기독교 방송을 통해 쏟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오늘날에는 사도들이 활동할 당시에 비해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죽은 자가 살아나는
그런 이적은 잘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사도들의 시대는 특별한 시대였습니다.
그때는 교회가 이제 막 설립되고 복음의 확장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 시대에는 특별히 많은 이적들을 나타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예수님을 마음만 먹으면 바로 만날 수 있습니다. 주변에 교회가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와 같은 크고 많은 이적이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하나님이 꼭 필요한 때에는 놀라운 이적들이 일어나는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 한 가지는 이적 중의 최고의 이적은
죽은 영혼을 살리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적과 기사라고 하면 대부분 귀신이 쫓겨가고, 질병이 치유되고, 죽은 사람들이 살아나는 등의 눈에 보이는 일들 만을 생각하지만 이보다 더 위대한 이적은 죽은 영혼을 다시 살리는 이적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여러 이적을 베푸신 근본적인 목적이었습니다. 그만큼 죽은 영혼을 살리는 것이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이적의 궁극적 목표이자 최고의 이적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죽은 영혼을 살리는 이적도 예수님께 대한 올바른 믿음과 사랑만 우리에게 있으면 가능한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는 예수님께 대한 바른 믿음을 가지고 복음을 증거할 때
가장 큰 이적을 일으킬 수 있는 놀라운 능력자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본 절을 통해 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의심하지 말고
온전히 믿으시고, 무엇보다 최고의 은사인 사랑의 은사를 사모하고 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과 사랑을 통해 우리에게도 상상하지 못할
놀라운 역사들을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저희들에게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 믿음을 주시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날마다 만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만난 저희들이 하나님의 마음과 일치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여주시옵시고, 예수님에 대한 바른 신앙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여 많은 영혼을 살림으로 모두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자들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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