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3. 내가 깊은 곳에서 368. 주 예수여 은혜를 내려주사
삼상14:36-42 하나님과의 바른관계 정립
말씀을 받을 때 1) 강찬수목사 개인이 전하는 말씀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자 스피커 역할 2) 제가 전하는 말씀을 저도 다 지키지 못한다. 제가 전하였으니 제가 더 지키려고 노력한다.
제가 전하는 말씀과 다른 행동을 하는 부분이 있으면 찾아와서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1. 모든 일에 기도하고 행해야 합니다.
36절.사울이 이르되 우리가 밤에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여 동틀 때까지 그들 중에서 탈취하고
한 사람도 남기지 말자 무리가 이르되 왕의 생각에 좋은 대로 하소서 할 때에
제사장이 이르되 이리로 와서 하나님께로 나아가사이다 하매
사울은 백성들이 소와 양들을 잡아먹고 기력을 회복하자 블레셋에 계속 공격하자고 하였습니다.
사울은 이왕 시작한 전쟁 전세가 유리할 때 적을 섬멸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 백성들도 계속되는 승전으로 사기가 올라 “왕의 생각에 좋은 대로 하소서”라고
하였으나, 제사장 아히야가 사울이 또다시 기도하지도 않고 자기 생각대로 계속 전쟁하려고 하여
하나님에게 물어 보고 결정하자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모든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승패는 오직 하나님께 달려있기 때문입니다(잠21:3).
여러분, 교회와 성도는 부패한 세상에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하고
어둡고 죄악 많은 세상에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반대하고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을 못 본 체하거나 방치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여 올바른 길로 가도록 인도해야 한다.
그 사명을 감당하지 않으면 개인이면 파멸의 길로 가는 것이고, 직장, 사업장, 공동체는 무너지고,
나라이면 망국의 길로 가는 것이며, 전세계적이면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가 노아 시대처럼 죄악이 관영하거나 소돔과 고모라 같이 불법과 탈법이 만연하면 예수님이 재림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대로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일에 선택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 일을 하기 위해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합니다.
그 선택의 결정이 잘못되지 않으려면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결정하는 것이 옳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대학 입시를 위해 왜 기도 합니까? 좋은 대학 가기 위해서? 아닙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좋은 대학, 의대나 법대나 유망 학과는 기도 안해도 공부만 잘하면 갑니다.
내가 받을 점수로 갈 수 있는 대학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어느대학 어느학과가 내 적성에 잘 맞는지? 하나님이 나에게 정해주신 대학과 학과가 어딘지 그것을 찾아 가기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일류대학 유망 학과를 들어 간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뜻하지 않으시면
하나님이 정해 주신 대학에 가지 않으면 적응하지 못하고, 실패하게 됩니다. 반면 삼류대학이라
세상 사람들이 몰라주는 대학를 간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정해주신 대학이라면 성공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 자녀들의 직장도 마찬가지고 결혼도 마찬가지고 자녀 출산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다 정해 주십니다. 나라의 흥망성쇠가 하나님의 손에 달렸듯이
개인의 생사화복이 하나님의 손에 달렸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우리는 예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반대로 예수님이 하라고 하시는 대로만 하면 성공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삶의 모든 전반적인 부분에서 다 말씀하시고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대사라는 신앙 서적을 지은 김하중 장로님은 주중대사, 통일부 장관, 청와대 안보수석을 역임하셨습니다. 그분의 간증을 들어보면 정말 신기합니다. 아주 작은 일에도 하나님에게 물어본다고 합니다. 할까요? 말까요? 라고 묻고 하라 하시면 하고 하지마라 하시면 안하신답니다.
기도 응답대로 행동해서 틀린 적이 없다고 합니다. 나중에 유튜브에서 간증을 들어보시기 바란다. 우리는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인생에 있어 정말 중요한 것은 반드시 기도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사울이 진작에 중요한 일을 기도하고 결정했으면
그 결말이 적어도 비참하게 죽는 것은 면했을 것입니다.
2. 기도에 응답이 없으면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37절 사울이 하나님께 묻자오되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리이까
주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기시겠나이까 하되 그 날에 대답하지 아니하시는지라
하나님께서 사울의 기도에 침묵하신 것은 사울 자신에게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관계가 바르게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울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지만, 나와 좋은 관계를 맺는 사람과는
만나면 반갑고 밥도 같이 먹고 차도 같이 마시며 대화하고 싶지만,
관계가 좋지 않으면 같이 밥 먹는 것이 불편하고 차 마시며 대화하는 것은 더더욱 싫어집니다.
그것은 서로 사랑하는 부부관계나 부모 자녀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내가 좋을 때는 아내가 어떤 것을 요구해도, 들어 줄 수 있는 것은 다 들어 줍니다.
그러나 싸워서 관계가 틀어지면 속된 말로 꼴로 보기 싫고 말도 하기 싫습니다.
자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들이 맘에 드는 행동을 할 때는 용돈을 요구하지 않아도 용돈 있냐? 고 물어보고 있다. 해도 더 줍니다. 그런데 맘에 안들면 벌써 다 섰냐? 어디에 섰냐? 왜 그리 낭비가 심하냐? 하고, 잔소리를 합니다. 저는 화가 나면 집사람이나 아이들이 물어도 대답도 안합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도 똑같으십니다. 하나님도 우리와 같은 인격을 가지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하나님이 사울의 기도에 응답하고 싶으시겠습니까?
보잘것없는 지파의 자손을 기름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아 주었고,
아람과의 전쟁에서 성령 충만함을 부어주어 승리하게 하여 왕권을 공고하게 하여 주었더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자신의 공명심에 빠져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에게 기도도 하지 않고 전쟁을 일으키더니, 전세가 불리하니 그때서야 사무엘 선지자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그것도 정한 날짜까지 기다리지도 않고 사무엘이 늦게 온다고 제사장도 아닌 자신이 번제를 드려 버리고, 전쟁에 지게 생겼는데 아들 요나단의 믿음의 결단으로 승기를 잡으니,
그때서야 하나님의 힘을 빌려 승리하려고 제사장에게 에봇을 가져 오라고 하다가, 전세를 보니
기도 안해도 이기겠다 싶으니 됐다. 안 가져와도 된다. 하면서 다 잡은 승기에 발만 담궜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적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것도 먹지 마라고 금식을 선포하고 어기면 죽인다고 협박하고, 전쟁을 계속할지? 말지? 하나님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블레셋을 끝까지 물리치자고 하다가 제사장 아히야가 그래도 하나님에게 물어보시고 해야 안되겠습니까? 하니
그제서야 블레셋 잔당을 추격할까요? 하고 물어보고 있으니, 여러분이라면 대답해 주겠습니까?
저라도 안 들어 주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죄악을 품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어주시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하지 마라는 것만 골라서 하고, 하나님이 하라는 것은 하지 않으면서,
무슨 일이 생기고 잘 안되고 급하면 하나님을 찾고, 아무일 없고 하는 일도 잘되고 급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이런 것을 이기주의적인 신앙이고 욕심을 부리는 것이 기복신앙입니다.
그래서 기도 응답이 없으니 제비를 뽑게 되고, 그래서 사울은 자신의 잘못된 명령으로 그리고 그 명령도 모른채 꿀을 먹은 요나단을 밝혀지게 되고,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이 자신의 명을 거역하여 죽게 된 상황을 겪게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인가 안되고 문제들이 자기와 자신의 아들에게서 일어난다면 깨달아야 합니다.
사울의 기도에 응답이 없는 것은 요나단의 잘못이 아니라, 전적으로 사울의 잘못입니다.
그래서 사울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갈수록 틀어지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보면서,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 역시도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응답이 없을 경우
먼저 스스로를 돌아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기도응답이 없으시다고 무조건 우리의 잘못과 죄 때문이라고 단정 짓지는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인내심을 길러내고 연단시키기 위하여 즉시 응답하시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도응답이 없으면 무조건 내가 하나님 앞에 지은 죄가 없는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린 것은 없는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고 회개하지 않은 것은 없는지? 먼저 자기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기도의 자세가 갖추어지지 않았을 때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바르지 않으면
하나님은 침묵과 무응답으로 우리의 잘못을 지적해 주시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죄가 없는지 그것 때문에 응답이 없는지 살펴야 합니다.
사59:1-3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이는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워졌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을 냄이라
또는 우리가 극단적으로 죄가 너무 중대한 경우 처음부터 기도 자체를 거절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렘7:13, 16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제 너희가 그 모든 일을 행하였으며 내가 너희에게 말하되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였고 너희를 불러도 대답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런즉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어 구하지 말라
내게 간구하지 말라 내가 네게서 듣지 아니하리라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할 때, 아니 기도하기 전이라도 먼저 우리의 삶과 행위에 어떤 잘못이 없는지? 혹은 우리가 두 마음을 품거나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솔직한 자세로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약1:6,7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약4:2,3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할 때 응답이 없다고 낙심해서도 안되겠지만,
회개는 하지 않고 무작정 내 요구만 들어 달라고 때를 쓰는 잘못된 기도를 고집해서는 더더욱 안되겠습니다. 그리고 항상 하나님의 뜻과 자신의 뜻을 살피며 과연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를 드리고 있는지, 또 현재의 삶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인지를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살핌으로써
늘 하나님의 선하고도 놀라운 응답을 받는 복되고 아름다운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고 판단하십니다.
40절과 41절에서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지 않은 이유를 알기 위해 제비를 뽑을 때, 사울은 요나단과 함께 한쪽에 서고 나머지 백성들은 반대 편에 서도록 하였습니다.
이것을 볼 때 사울은 분명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셨던 이유가 자기와 아들 요나단이 아니라
백성들에게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울 자신은 늘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고
또한 아들 요나단도 아닐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39절에서 보듯이
그 죄가 요나단에게 있다 할지라도 반드시 죽이겠노라는 식의 맹세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맹세를 한다는 것은 아들에게 잘못이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 것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요나단이 뽑혔습니다.
그러면 백성들은 죄가 없습니까? 백성들도 죄를 지었습니다. 가축들을 피째 먹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백성들의 죄를 묻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사울의 잘못된 명령에 기인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도자인 왕이 무리한 명령에 피곤한 전쟁을 한 후 허기로 인해 잠시 이성을 잃고 고기를 피째 먹었지만, 이내 사울의 명령대로 돌 위에서 가축을 잡은 것으로 보아 고의로 그러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도 그들의 이러한 중심을 보시고 연약함으로 인해 저지른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결코 행위만을 따지시고 심판하는 분이 아니라 언제나 중심을 보시고 게다가 인간의 연약함까지 헤아리시며 판단하고 심판하시는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가장 잘 보여 주는 예로 가롯 유다와 베드로에 대한 주님의 판단을 들 수 있습니다.
이 둘은 모두 주님을 배반했다는 점에서 동일합니다.
하지만 가롯 유다는 끝내 주님의 사랑을 거절하고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닭이 세 번 울자 예수님의 말씀이 떠 올라 즉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통곡하며 회개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배드로의 배반은 연약하기 때문에 저지르는 실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베드로의 모든 허물을 용서하시고 다시 사도로 세워 더 크게 사용해 주셨던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그러나 회개하는 죄인과 회개하지 않는 죄인으로 구분됩니다. 회개하는 죄인은 용서함을 받지만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며 혹 어떤 범죄와 실수를 했을 경우
언제나 다시 하나님 앞에 나아와 겸손히 무릎 꿇고 엎드리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시103:14) 우리가 진토로 만들어진 연약한 자임을 잘 아실 뿐 아니라
(마26:41) 행위보다 마음과 중심을 더 중하게 보며 판단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동시에 어떠한 경우에도 사람에게 하듯 위선과 가식으로 하나님을 대하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항상 불꽃 같은 눈으로 인간의 폐부와 심장까지 감찰하시는 분으로(렘17:10) 위선과 가식으로 자신을 위장하는 사람들을 가장 엄중한 심판으로 다스리는 분이기 때문입니다(눅11:39-44), 예수님께서 이중적이고 가식적인 바리새인과 서기관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23:27,28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요1: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1. 모든 일에 기도하고 행해야 합니다. 2. 기도에 응답이 없으면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3.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고 판단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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