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성가 나의 백성이 겸비하여
찬송가 212장
삼상13:8-14 사울의 월권
인간의 공명심은 실패에 이르게 하는 요인이 됩니다.
삼상13:1,2에서 사울의 나이가 40세가 되었고 이스라엘의 왕이 된지는 2년이 지났다.
암몬 족속를 물리치고 왕권이 강화되어 완전한 왕정체제를 갖추어 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사울은 먼저 3000명의 정예부대를 조직하였는데
그중 군사 2000명은 사울 자신과 함께 믹마스와 벧엘 산에 배치하였고
1000명은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함께 베냐민 기브아에 배치시켰다.
1) 사람은 언제 실수를 하게 되는가? 어느 시기에 실패를 하게 되는가?
사람은 누구든지 어떠한 성공을 거두고 나면 교만이 찾아온다.
자신이 잘나고 자신이 잘해서 잘된 것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물론 자신이 그 일에 열심을 다하고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성취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결코 자기 혼자서 성공을 일궈 놓은 것은 절대 아니다.
가문이 미약한 사울이 왕이 된 것도 하나님이 선택하여 사무엘이 기름 부었기 때문이다.
사울이 강대한 적 암몬의 나하스를 물리칠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신이 크게 감동하였기 때문에 그리고 백성들이 순전히 따라주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그런데 서서히 사울은 자신의 힘과 능력을 내세우고 자신의 공을 부각 시키려 하였다.
사울은 이전에 암몬과의 전쟁에서 이스라엘 군대 33만이라는 대군을 모아서 승리하였습니다.
그때처럼 이번에도 블레셋을 물리치고 또다시 백성들에게 환호와 찬사를 받고 싶어 하는 공명심이 있었던 것같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사울은 그 공명심 때문에 망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죄까지 범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간에게 있는 공명심이라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창11장에 나오는 시날 평지에 세운 바벨탑이 왜 무너졌습니까? 인간의 공명심에 때문입니다.
홍수 이후에 하나님이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가득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는데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하였지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자기 이름을 내기 위하여 탑을 쌓은 것입니다. 그래서 어ᄄᅠᇂ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언어를 혼잡하게 하셔서 바벨탑을 더 이상 짓지 못하게 하시고 사람들을 흩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라는 말씀을 명심하고
모든 일에 이런 마음으로 하라고 사도 베드로는 우리에게 벤전4:11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고 한 것입니다.
또 사도 바울은 고전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자신이 한 모든 일은 다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녹17:10 우리가 주의 명령을 다 이행한 후에 자신을 자랑하거나 내세울 생각을 하지말고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할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사실, 우리는 의를 행할 줄도 모르고 선도 행할 줄 모르는 죄인들입니다.
그나마 하나님께서 우리를 말씀으로 가르치시고, 은혜를 베푸시고, 성령으로 도와주시고, 우리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셔서 의도 행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 봉사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자랑할 게 무엇이 있고 내세울 게 무엇이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하나님 앞에 겸손하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만 돌리며 일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그럼 사울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잘못하였나 알아보자.
삼상13:3-7을 보시면 사실 이번 전쟁은 이스라엘이 먼저 걸었다.
자신의 땅에 있는 블레셋을 몰아내기 위하여, 요나단이 게바에 있는 블레셋의 수비대를 선제 공격함으로 블레셋과의 전면전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을 대비하여 사울을 중심으로 길갈로 모였다.
그리고 블레셋도 이스라엘과 싸우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믹마스에 진을 쳤다.
그런데 생각 외로 블레셋은 강대국이었다. 엄청난 군대를 몰고 온 것이다. 병거가 삼만명, 마병이 육천명, 그리고 백성의 수는 셀 수 없이 많아 해변의 모래 같이 많았다고 기록하고 있을 정도였다.
그 광경을 보고 놀란 이스라엘은 위급함을 보고 절박하여 굴과 수풀과 바위 틈과 은밀한 곳,
웅덩이에 숨었고 일부 백성들은 요단강을 건너 도망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사울이 무엇을 잘못한 것인지를 발견하여야 한다.
1. 사울은 기도하지 않고 전쟁하였다.
하나님의 자녀는 어떤 일을 행하기 전 하나님에게 항상 기도하여야 하는데 기도하지 않았다.
전쟁은 작은 일도 아니고 국가의 중대사이다. 그리고 전쟁은 하나님께 속하였기 때문에
전쟁 전에 반드시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 전쟁에 임했어야 했다.
그것이 바로 사울의 만용이고 불신앙적 행동인 것이다.
하나님에게 기도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 정도 일은 하나님의 도움 없이 내 힘으로 가능하다는 교만의 발로이다.
그런데 아주 작은 일도 기도하지 않으면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장벽이 높고 거대하게 느껴진다.
내 힘과 내 능력으로 적을 물리쳐야 한다고 생각하면 적이 나보다 객관적으로 더 강성하면
두렵고 무섭고 떨리게 된다. 자신감과 용기를 잃어버리고 당황하게 되고 자신감을 상실하게 된다.
그러나 세상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내 편이라는 사실을 믿으면
그 어떤 상대라 하더라도 어떤 난관에 부딪힌다 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무서워하지 않는다. 왜?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해 주시기 때문이다.
농사나 짓던 사울이 성령충만함을 받게 되니 두려움 없이 강하고 담대하게 강력한 카리스마를 내 뿜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저 강대한 암몬을 물리쳤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사울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모든 백성들이 두려워 떨고 일부는 숨고 일부는 도망하는 모습을 지켜본 사울은
자신의 마음도 불안하고 다급하고 조급하였다.
제사장 사무엘이 빨리 와서 전쟁 전에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면 백성들이 사기가 올라가고
전쟁에서 승리할 것 같은데 7일 동안 기다렸으나 사무엘 선지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자 도망가는 백성들의 수가 더욱 더 많아졌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기다리지 못한 사울은 해서는 안될 월권 행위를 하고 말았다.
제사장 만이 하나님에게 제사를 드릴 수 있는데 그것을 어기고
자신이 직접 하나님에게 제사를 드리고 말았다. 이처럼 두려움에 떨게 되면 악수를 두게 된다.
2. 사울은 월권행위를 하였다.
아무리 왕이지만 절대로 해서는 안될 일이 제사다. 그것은 제사장만이 드릴 수 있고
그것을 어긴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불순종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는 어떤 예배입니까?
사울의 이 말만 보면 사무엘은 사울과 정한 기한에 실제로 오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울이 제사를 드린 직후에 사무엘이 온 것으로 보아 사무엘은 정한 기한이 지나기 전에 온 것이 분명합니다. 아마도 사울은 정한 7일이 되도록 사무엘이 나타나지 않자 그날 저녁이 이를 때까지 조급함을 견디지 못하고 제사를 드렸을 것입니다.
하여튼 사울이 적어도 6일이상 사무엘을 기다리고, 또 사무엘이 오지 않자,
제사장의 고유 권한을 침해하면서까지 자신이 직접 제사를 드린 것으로 볼 때
하나님의 뜻을 어기면서까지 제사만 드리면 된다는 생각을 한 것같습니다.
이것은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흡니와 비니하스가 저지런 범죄와 같은 의미이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지 않고, 제사를 만홀이 여기면서 전쟁터에 법궤만 들고 가면 되는 것으로 생각한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을 진실로 경외하지 않으면서도 제사만은 꼭 드리면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만일 진실로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율법을 어기고 마음대로 제사를 드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율법을 어긴 사울의 제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당시 율법은 제사장이 하나님의 대리인인 왕의 역할을 하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도 왕이 있으면 좋겠다고 하여 하나님이 사울에게 기름을 부으셔서 백성들을 통치하는 권한만 준 것이지 제사장의 직무까지 주신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사울이 월권행위를 한 것이다.
제사는 하나님이 세우신 제사장만이 드릴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제사장이 아닌 사람이 제사를 드린다면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제사입니다.
그래서 13절에서 사무엘이 사울에게 하나님께 망령되이 행하였다고 책망한 것입니다.
제사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규례에 따라 드려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만일 하나님이 정하신 규례와 관계 없이 그저 형식적으로, 드리는 자의 마음대로 드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은 물론 도리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구약의 제사 제도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신약에 와서 예배로 변화된 것입니다.
따라서 신약의 예배도 하나님이 정하신 원리에 따라 드려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이 정하신 예배의 원리를 무시하고 그저 아무렇게나 형식적으로 드린다면
우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도리어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헛예배가 되는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란 어떤 예배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진노가 무서워서 마지못해 형식적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경외의 표시로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드리는 예배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요4:24에서 분명하게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예배의 원리는 ‘신령과 진정’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는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히 선포되고, 받은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새겨진 말씀대로 세상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전5:1너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이 제물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그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
사1장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악을 행하고 드리는 예배는 아무리 많은 헌금을 드리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찬송하고, 힘찬 설교가 선포되고 오래 기도하여도 성전 마당만 밟고 갈 뿐이고, 하나님은 받지도 않으시고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사29:13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여러분, 우리가 신령과 진정없이 드리는 모든 예배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분노를 일으킬 뿐입니다.
가인의 예배가 그렇습니다. 예배를 가볍게 취급하고 제물만 있고 신령과 진정은 없는 예배를 드렸다가 열납받지 못함은 물론 불신앙과 살인자가 되어 하나님의 진노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합니다. 그러한 예배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사울은 핑계와 변명으로 일관하고 진정한 회개를 하지 않았다.
여러분들 죄는 전념성이 있다. 죄는 중독성이 있다.
그 말은 죄는 쉽게 전달되고 또한번 죄에 빠지면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이다.
여러분들이 작은 죄를 저질렀다면 그것으로 중단되어야 한다.
죄를 자백하고 용서를 구하고 작은 처벌을 받으면 그 죄에 대해 해결되어 깨끗해진다.
그러나 그 죄를 숨기거나 자신이 죄를 짓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거나
죄가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고 살게 되면 계속해서 죄를 짓게 되고
그 죄가 반복됨으로 인하여 점점 더 큰 죄를 짓고 눈덩이처럼 커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고 만다.
기도하지 않고 전쟁을 벌여 사태가 심각해졌으면 뒤늦게라도 회개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오히려 더 큰 죄를 저지른 사울이었다.
사울이 번제를 마치자마자 사무엘이 도착한 것이다. 조금만 더 참았으면 되는데 말입니다.
사울이 번제를 드린 사실을 안 사무엘은 왜 제사를 드렸냐고 책망하였다. 사울은 정황을 설명하였다. 적은 엄청난 병력을 앞세워 포진해 있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백성들은 다 도망가고
제사장 사무엘은 오지 않아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기 위해 번제를 드렸다는 것이다.
그것은 죄에 대한 핑계와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왜 그것이 핑계이고 변명인가? 왜냐하면 블레셋은 7일이 지났지만 쉽사리 공격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 역시도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망가는 백성들에게 충분히 믿음의 말과 긍정의 말로 용기를 복돋아 참고 인내하며
기다리게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자신이 자신의 힘으로 뭔가 이루어 내려고
했던 마음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자존심이고 자만심이고 교만이다.
그로 인하여 사울은 사무엘에게 책망과 함께 저주의 말을 받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으면 멸망하지 않을 것인데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인하여
사울은 왕위에서 폐위되고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으로 새로운 왕이 세워질 것이라는
충격적인 예언의 말씀을 듣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회개하지 않았다.
죄는 냉혹하고 치명적이다.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러므로 핑계하지 말라 변명하지마라 남 탓하지마라 상황 탓하고 현실 탓하고 그러면서 자신의 과오는 인정하지 않고 계속해서 어긋난 길로 가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며 산다면 그 길은 멸망의 길이 되고 만다.
상상할 수 없는 어려움이 닥치고 죽을 만큼 힘들고 괴로운 현실에 빠져들고 만다.
사울의 미래만 보아도 우리는 알 수 있다. 반면 다윗은 사울 보다 더 큰 죄들을 많이 지었지만
하나님에게 순간 순간 기도하였다 회개하였다 겸손하였다 자신의 죄를 깨닫고 죄의 굴레를 빨리 끊었다. 그 결과 사울과는 정반대로 엄청난 축복을 받았다. 이스라엘의 왕과 메시아의 조상이 되었다.
합심기도
1. 사울은 기도하지 않고 전쟁하였다. 크고 작은 일에 기도하고 하자
( 6.2 전교인 체육행사, )
2. 사울처럼 월권행위를 하지 말자.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자.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교회의 질서를 무너뜨리지 말자.
3. 사울처럼 핑계하지말고, 변명하지 말고 진정한 회개를 합시다.
찬송가 135장
광고
6월2일(일) 13:00~17:00 호서대 대운동장 교회설립 16주년 기념 체육대회가 있습니다.
한소망교회 공동체가 하나 되길 소망합니다.
1,2부 감사예배를 장영환 목사님 인도로 드리고 호서대로 이동하여 점심식사를 드시고
체육행사가 송영준 안수집사님 사회로 진행될 것이고
종료 후 교회에서 저녁식사가 준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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