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성가 믿음으로 나아가네 찬송가 542장 삼상14:1-10 요나단의 믿음
지난 시간에 13장에서 어떤 사건이 있었느냐 하면 사울이 성령충만함으로 암몬족속을 물리치고 왕권이 공고해지자 교만하여져서 하나님에게 기도도 하지 않고 블레셋과 전쟁을 일으켰다. 그런데 막상 전쟁을 하려고 보니 블레셋의 병거와 마병의 수가 너무나도 많아 이스라엘 군사들이 급에 질려 다 도망하고 600명 정도만 남은데다, 사무엘은 약속된 시간이 다 되어가도 오지 않아 조급한 마음에 사울 자신이 제사를 드려버렸다. 그래서 사무엘에게 사울의 왕위가 계속되지 못할 것이라는 선고를 받게 되고 이스라엘은 큰 위기에 빠지게 된다. 그때 용맹스러운 요나단이 활약하게 된다.
1. 우리의 믿음은 환경을 초월하는 진취적인 믿음이어야 합니다.
1절에서 사울의 아들 요나단은 자기의 병기를 드는 부관에게 “우리가 건너편 블레셋 사람의 부대에게로 건너가자”고 하였습니다. 단둘이 적진에 들어가는 것은 누가 봐도 상당히 무모한 행동입니다. 그것은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요나단의 이 행동은 사울과 같은 만용도 아닙니다.
사울은 기도도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지도 않고 전쟁을 벌였지만, 6절에서 요나단은 병기든 자에게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요나단은 한 행동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한 것입니다.
비록 단둘이서 적진으로 들어간다하더라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면 능히 이길 수 있다는 확신으로 한 것입니다. 요나단의 믿음은 환경을 초월하는 진취적인 믿음입니다.
2절을 보면 사울의 군사들은 겨우 600명 정도 남았고 사기가 다 떨어져 기브아 변두리 미그론에 석류나무 아래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스라엘군은 전의를 상실하였고, 메뚜기떼와도 같이 많은 블레셋 군대를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3절에서 사울 곁에는 제사장 아히야가 에봇을 입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도움은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조차 잊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13장에서 하나님에게 범죄한 사울은 사무엘에게 이런 말씀까지 전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삼상13:13,14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
그러나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과 달리 요나단의 신앙은 살아 있는 진실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면 군사의 수나 싸우는 병기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당하고 자신있게 병기든 자와 단둘이서 적진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게될 때에 요나단의 신앙은 상황과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고 상황과 환경에 억눌려 꼼짝달삭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환경을 초월하여 하나님이 하신다는 진취적인 신앙을 가졌습니다. 이런 진취적인 신앙은 여호수아와 갈랩에게서 배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출애굽하여 광야에 들어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의 접경지대인 가데스바네아에 도착하여 가나안을 정탐하기 위하여 모세는 12명의 정탐꾼들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40일 동안 가나안을 탐지하였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가나안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런데 12명의 정탐꾼들이 같은 지역을 보고도 다르게 보고하게 됩니다.
10명의 정탐꾼들은 민13:31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고 하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보지 않고 그곳 사람들을 본 것입니다.
그리고 부정적인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크게 낙심하고 원망 불평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었기 때문에
민14:7-9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다른 정탐꾼들과 같은 상황을 보았지만 그것을 보는 눈이 달랐던 것입니다.
다른 정탐꾼들은 인본주의적 안목으로 본 까닭에 부정적인 보고를 하였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능히 이길 수 있다는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보고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부정적인 보고를 듣고 따랐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모두가 다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이에 반해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믿음을 가졌던 여호수아와 갈랩만이 출애굽2세대와 함께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11: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만이 천국을 차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변 환경으로 인해 마음이 약해지거나 의기소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바울도 빌4:13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하지 않았습니까?
특별한 능력있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가지되 진취적인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이루어주십니다.
막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그러므로 상황과 환경에 매몰되는 말고 형편에 따라 믿음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느 때나 항상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계속해서 나아가면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2. 신앙의 장애를 두려워하지 않을 때 놀라운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4절과 5절을 보면 요나단이 블레셋 사람에게로 건너가려는 어귀 사이에
보세스와 세네라는 거대한 절벽 바위가 있었습니다. 이 바위들은 험한 바위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 바위들은 깎아지른 듯 높이 솟아 있어서 쉽게 넘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블레셋 군도 다 도망가고 600명밖에 되지 않는 이스라엘군을 쉽게 공격하지 못한 것도
이 바위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험난한 길도 요나단은 두려워하지 않고 헤쳐 나간 것입니다. 만약 요나단이 험난한 길을 가지 않고 평탄한 길로 돌아갔다면 블레셋 병사들에게 포위되어 사로잡히거나 죽임을 당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도 그 길로 가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한 그 험한 길을 갔기에 블레셋 병사들도 허를 찔리고 만 것입니다. 이처럼 요나단은 장애 앞에서 그 장애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전진했기에 이스라엘이 승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믿음의 길은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평탄하고 형통한 삶을 살다가도 예상치 못한 장애물이 우리 앞에 놓여 있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려고 하면 할수록 우리의 인생길은 험한 길일 수도 있고 어렵고 힘든 길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마7:14 예수님께서 그 길이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걸어간 믿음의 길도 험난한 길이었습니다. 고후11:23-27 복음을 위하여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번 맞고, 세 번 태장으로 맞고, 돌로 세 번 맞고, 세 번의 파선과, 수없이 많은 강의 위험, 강도의 위험, 이 방인의 위험, 그리고 시내의 위험, 광야의 위험, 바다의 위험, 그 거짓 형제의 위험, 거기에 더해서 자지 못하고, 굶고, 주리고, 목마르고, 춥고, 헐벗었다고 했습니다. 물론 옥에 갇힌 것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여러분, 이처럼 큰일을 한 위대한 사역자일수록 더 많은 환란과 풍파의 장애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고후4: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장애물들은 우리가 전진하는데 분명 어려움을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또한 그런 장애를 뛰어넘으려면 고통이 따르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으로 전진할 때 우리 앞에 놓인 장애물들은 더 이상 장애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우리가 신앙의 승리를 거두는데 큰 도움을 주는 디딤돌이 되는 것입니다.
간혹 성도들 중에는 신앙 생활을 하는 데 있어 아무런 역경이 없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야 신앙 생활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신앙 생활 중에 고난이 없으면 신앙적으로 나태하여지고 결국 타락하게 됩니다.
초대교회는 핍박으로 인하여 엄청난 부흥을 이루었지만 기독교가 국교로 공인된 중세 교회는 타락하고 부패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신앙 생활에 장애가 없음으로 영적으로 각성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신앙 생활에서 넓은 길, 안전해 보이는 길은 오히려 위험한 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편하게 신앙 생활을 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우리가 신앙적으로 승리를 거두려면 오히려 좁고 협착한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나아가는 길에 장애가 있을 때 그것을 장애로 여기지 말고 도리어 자신의 승리를 위해 하나님이 마련해 주신 방편이라 생각하고 정면으로 맞서서 믿음으로 헤쳐 나가야 합니다.
373장 고요한 바다로 1. 고요한 바다로 저 천국 향할때 주 내게 순풍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2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으로 인하여 더 빨리 갑니다.
풍랑은 배에 타고 있는 사람에게는 분명 고통을 줍니다. 그러나 그 바람에 돛만 잘 맞추면, 목적지에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가 우리 앞에 놓인 장애나 시련을 잘만 이용하면 우리는 장애나 시련이 없을 때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 앞에 놓인 장애를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히 믿음의 길을 달려 가시기 바랍니다.
시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3. 행함 있는 믿음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6절을 보면 요나단은 곁에 선 부관에게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고 하며 블레셋 진영으로 들어갔습니다. 우리가 믿는다고 말만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 결과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믿고 작정하고 선포하고 믿는 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대로 실천할 때 도와 주시고 역사하십니다.
13절을 보시면, 요나단이 믿음으로 두손 두발로 험난한 절벽을 타고 올라갔을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으로 블레셋 병사들을 쓰러뜨릴 수 있지 않았습니까?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믿음이 있다면 이렇게 실천적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도 그 믿음 그대로 역사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죽을 곳에서도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약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라고 하면서 약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눅11:10 구하는 이 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모두가 가만히 있으면 소용이 없고 믿고 실천할 때에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부터는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는다고 원망할 것이 아니라
자기의 믿음대로 먼저 실천하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거기에는 상당히 많은 난관들이 있을 것입니다.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라는 마귀의 속사귐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마치 감나무에서 감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듯이 하나님의 도우심만 기다려 보십시오. 절대로 역사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믿음을 따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행하고 실천해 나가면 어느 순간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실 것입니다. 그런즉 이제부터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주저 앉아 가만히 있지 마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이 함께하실 것을 믿고 믿음대로 실천하시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약1:25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4. 요나단의 병기든 자와 같은 믿음으로 주님께 충성해야 합니다.
7절을 보시면 요나단의 명령에 그의 부관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당신의 마음에 있는 대로 다 행하여 앞서 가소서 내가 당신과 마음을 같이하여 따르리이다” 이러한 요나단의 부관도 요나단 못지않은 믿음이 있었습니다. 물론 요나단의 부관은 요나단의 명령에 복종해야하지만 믿음이 없었다면 요나단의 무모한 계획에 반대하여 요나단을 따르기를 거절하거나 사울에게 달려가 보고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나단의 부관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요나단의 말을 따랐습니다. 요나단의 무기 든 자는 생명을 걸고 요나단에게 충성하기로 다짐을 한 것입니다.
우리도 요나단의 무기든 자와 같은 충성과 믿음을 가지고 우리의 대장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되어 영적 전쟁을 해야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충성스런 군사가 되어 그리스도께서 어디로 가든지 마음을 같이 하여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절대적인 신뢰입니다. 그 신뢰는 내가 가려고 노력해서 가져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야 가능합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잡히시기 전날 밤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나를 배반하리라고 하셨을 때 베드로가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고 다시 말씀하시자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말이 하루가 채지나기도 전에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세 번씩이나 그것도 저주하며 맹세까지 하면서 말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예수님과 같은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고 예수님과 같은 마음을 가지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베드로는 성령을 받고 믿음이 생기자 예수님의 복음을 담대히 전하며 예수님의 뒤를 따라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까지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의 군병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 충성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인도하는 곳이 어디든 그를 따라야 합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참으로 무모하고 어리석은 일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군사이기에 무조건적으로 그리스도와 마음을 같이 하여 따름으로 그리스도께 충성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께 대한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결코 그리스도를 따를 수 없으며 결과적으로 그리스도께 충성할 수 없습니다.
정녕 여러분은 요나단의 무기든 자의 충성을 예수님께 보이심으로 크고도 놀라우신 은혜를 풍성히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합심기도 1. 우리의 환경과 여건, 형편을 초월하는 진취적인 믿음을 주시기를 기도. 2. 믿음과 신앙으로 나아갈 때 장애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기도. 3. 믿고 결단하고 선포하고 행함 있는 믿음주시기를 기도. 4. 성령충만함으로 주님의 충성스러운 일꾼이 되기를 기도.
찬송가 35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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