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드리겠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찬송가 435. 나의 영원하신 기업, 442. 저 장미꽃 위에 이슬
눅18:35-43 거지 소경 바디매오.
하나님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연일 계속되는 전교인 작정새벽기도로 피곤하고 지치고 힘들어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저희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입기 위하여 오늘 이 새벽에도 주님을 간절히 찾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하나님에게 부르짖어 기도할 때
저희들을 만나 주시고, 저희들의 기도에 응답하여 주시고, 크신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예수님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1. 믿음이 굳건해야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를 잡고 성공할 수 있습니다.
눅18:35-38절은
예수님께서 여리고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한 소경이 길가에 앉아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이 소경이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이냐?“고 주변 사람들에게 물으니
그들이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소경이 크게 소리질러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을 뒤따라가는 많은 사람들이 ”잠잠해라“ 조용해라 시끄럽다 하며 소경을 꾸짖습니다.
그러나 이 소경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외쳤습니다.
이 소경은 예수님을 어떻게 알고 예수님에게 불쌍하게 여겨 달라고 부르짖었을까요?
그것은 아마도 이 소경이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질병에 걸린 사람이라도 예수님을 만나면 다 고침을 받았다는 소문과
모든 질병을 치유하시는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메시아이실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서 소경인 자신도 고쳐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생겨 더 간절하게 부른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소경 바디매오는 자기에게 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에서 기회가 언제나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누구나 만날 수는 있어도 아무나 만날 수 없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 때 만나야합니다.
은혜 받을 수 있을 때 은혜 받아야 하며, 은혜 받을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은혜의 장소에 있어야 합니다. 소경이고 거지인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만날 기회를 놓치지 않고 기회를 잡아서 기적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만난 바디매오에게 무엇이 있어 기적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까? 그것은 바디메오에게 믿음이 있어 기적을 체험한 것입니다.
어떤 믿음?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믿음! 어떻게 그 믿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까?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의 소문을 듣음으로!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그러므로 들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도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혹시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분이 계십니까?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은 먼저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어떻게 만납니까?
예배의 장소에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말씀으로 만나야 합니다. 말씀이 들려지고 이해되고, 깨달아지고, 은혜를 받고 회개가 일어나면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났다면 예수님을 만난 그 기회를 붙잡아 기적을 체험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공적인 인생을 살기 위해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은? 그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오늘 바디매오가 눈을 뜨기 위해 사람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열정적으로 기도한 것도 있었지만
본문 42절에서 예수님이 바디매오에게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라고 하신 것만 봐도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 곧 메시야로 믿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하되 믿음의 기도를 해야 하고, 그 믿음은 말씀을 들어야 생깁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을 가까이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세상적으로 능력이 뛰어나고, 많이 배우고, 재산이 많아도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를 잡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를 잡으려 한다면 믿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다윗도 믿음이 있었기에 자기에게 주어진 기회를 잡았습니다.
목동으로 있다가 전쟁에 참여한 형들에게 음식을 가져다 주러 갔다가 적장 골리앗과 대결하는 기회를 갖게 된 것입니다. 이때 믿음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믿음없이 골리앗과 맞섰다가는 죽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이 이기게 하신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골리앗과 맞서 싸우고 이기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주어지는 기회를 잘 살려 성공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세상적인 조건이 아니라 육신적인 능력과 재능이 아니라 바로 믿음입니다.
준비없이 오는 기회는 전혀 무의미한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기도를 하고 믿음이 있어야 응답도 받고 담대해지고 지혜로워지고 성령충만하게 되어 직장과 사업장 일도, 모든 가정사도, 교회의 사역도 성공적으로 감당하고 축복의 사람이 됩니다
2. 주님의 관심을 끌려면 바른 신앙의 터 위에 서 있어야 합니다.
40절에서 예수님이 발걸음을 멈추게 된 것은 소경 바디매오의 절규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여리고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의 관심을 끈 것은 소경 거지 바디매오 뿐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서성들은 예수님이 로마 군대를 몰아내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었고,
제자들 조차도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면 자신이 한 자리 차지하려고만 마음 먹었지
그 누구도 예수님을 진정한 나의 구세주로, 그리스도로 여기지 않았는데 오직 소경 거지 바디매오만이 그리스도를 예언된 다윗의 후손으로 믿고 주님의 이름을 부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발걸음을 멈추고 관심을 가지고 지켜 보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됐다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 대상이 됐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절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세상 물질과 명예와 권세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관심밖에 있으며 마귀의 관심 속에 있으므로
그들에게는 결코 주님의 은총이 임하지 않으며, 오직 마귀가 주는 저주만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은 오직 예수님의 관심권 안에 있는 사람에게만 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여러분 우리는 늘 예수님의 관심권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언제나 바디매오같이 예수님을 높이는 신앙, 또 의뢰하는 신앙, 그리고 뜨겁게 부르짖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내 자신이 예수님께는 별 관심도 없이 세상 것들만 관심을 가지고 살면서
예수님의 깊은 사랑과 은혜를 바란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왕으로 여기고, 찬양하고 경배하며, 말씀에 순종하고, 열심히 봉사할 때
예수님은 우리에게 관심의 눈을 돌리시고 주목해 보실 것입니다.
(시34:15)“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 귀는 저희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3. 우리 앞에는 기도의 훼방꾼과 기도의 조력자가 있습니다.
39절에서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은 예수님께 부르짖는 바디매오에게 ‘잠잠하라!’ 라고 꾸짖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에게 기도할 때도 기도의 훼방꾼이 있습니다. 예배의 훼방자가 반드시 있습니다.
불신 가족일수도 있고 직장 동료일 수도 있고 불신 친구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예배를 못 드리도록 하고, 기도를 훼방하는 자들이고 사단의 하수인 역할을 합니다.
사단이 가장 싫어하는 일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예배하고 말씀 읽고 기도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감사와 찬양의 기도, 믿음의 기도, 회개하는 기도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훼방합니다. 다니엘이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하루에 3번씩 기도할 때 그것을 훼방한 것이 사단이었습니다
마귀가 다니엘의 기도를 싫어하고 훼방하였는데 우리의 예배와 말씀과 기도도 당연히 싫어하고 방해합니다. 그것을 알지 못하면 마귀에게 끌려 다니며 예배를 드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가 힘들고 기도하는 일이 귀찮아질 때가 있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릴려고 작정하면 세상일이 생깁니다. 하나님과 깊은 교제의 기도를 드리고자 다짐하면
이상하게 기도할 수 없도록 피곤하고 쉬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럴수록 마귀의 역사라는 것을 깨닫고 아무 생각없이 예배의 장소로 나오고
피곤해도 일어나면 새벽에 나와서 기도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했을 때,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100세에 주신 아들을 설마 죽이겠나? 내가 죽여도 다시 살려 주시겠지? 그런 믿음으로 순종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것은 아무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순종부터 하고 보는 훈련을 통해 굳어진 즉각적인 반응일 수 있습니다.
주일이면 당연하게 예배를 드려야지 그런 마음으로 특새는 당연히 해야지, 모든 공예배도 마찬가지
우리에게는 우리의 기도를 방해하는 사단보다 더 큰 기도의 조력자이신 성령님이 계십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서 부르짖게 하시고 기도할 내용을 알려 주시고 기도를 도와주십니다.
사도 바울은 롬8:26에서 “이와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처음 기도할 때 사단의 훼방이 있어도 포기하지 말고 끈질기게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성령께서 도와주심으로 즐겁고 은혜스럽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사단이 훼방한다고 포기하면 안됩니다. ‘잠잠하라’ 고 해도 바디매오처럼 또 부르짖으십시오.
예배의 승리자가, 기도의 승리자가 곧 신앙의 승리자가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4. 주위 환경을 보지말고 오직 주만 바라봅시다.
바디매오는 자신을 꾸짖는 사람들의 제지와 방해에 개의치 않았습니다.
바디매오는 이에 굴하지 아니하고 더욱 크게 소리쳐 지나가시던 주님을 불러 세움으로써
이런 방해물을 극복하였던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이 뭐라 하든, 그리고 어떻게 생각하든,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보면서 외쳤던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이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녹19장에 나오는 삭개오도 키가 작고 사람들이 많아 예수님을 볼 수 없게 되자 뽕나무 위로 올라가서, 자기 자신의 약점과 다른사람들의 방해를 지혜롭게 극복하였습니다.
이는 삭개오에게 그만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신앙 생활을 함에 있어서 우리에게도 역시 주위 사람들의 많은 반대와 제지를 가하며,
심지어는 핍박을 받기도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도 학교 혹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고 소외를 당하기도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런 것에 굴복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본을 따라 따라 배척 당하고 핍박 받는 것으로 하늘의 상급이 크다는 사실을 믿고
기쁨과 자랑으로 여겨야 할 것입니다. 때로는 같은 신앙인들의 시기질투와 미움과 다툼이 있기도합니다. 그래서 시험을 당하거나 상처를 받을 때도 있습니다.
또는 영적지도자와 중직자들에게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다 연약한 인간이기에 잘못과 허물이 없을 수가 없으므로,
우리는 그로인해 절망할 이유가 없습니다. 지상의 교회는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의인이라 칭함을 받는 죄인들의 모임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사역하고 봉사하면서, 함께 신앙생활하면서, 다른 사람으로 인해 상처를 받을 수도 있고 그로 인해 신앙 생활에 방해를 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굴복해서는 안됩니다. 그럴수록 바디매오처럼, 삭개오처럼, 지혜롭게 잘 헤쳐 나가며 극복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보고 기대하는 분은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이지 결코 우리 주위의 환경이나 사람이 아님을 기억해야할 것입니다.
5.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 주님을 따라 갑시다.
43절은 예수님의 은혜로 눈을 뜬 바디매오의 반응입니다.
막10:52에서 예수님은 바디매오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네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라’ 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디매오는 집이나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즉시로 예수님을 쫓았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과거에 다 죄로 인해 영혼의 눈이 어두웠던 사람들입니다.
영적으로 보면 우리 또한 바디매오와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비록 육의 눈은 떠서 세상을 볼 수 있었지만, 영적으로는 소경이 되어 어둠 속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런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영혼의 눈을 뜨게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도 보고 우리의 실상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그 이후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바디매오의 눈을 뜨게 해 주신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그 눈으로 세상의 정욕적인 것들을 보고 쫓으라고 눈 뜨게 해 주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을 보고 온전히 섬기라고 눈을 뜨게 해 주셨을 것입니다.
바디매오는 그런 주님의 뜻대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로 살고 있습니까? 신앙의 눈을 뜬 후 여전히 세상 것을 쫓고 있지는 않습니까? 세상의 정욕을 쫓아 살면 영안이 다시 어두워진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눈뜨게 해 주신이 신앙의 눈으로 천국을 소망하고 진리를 추구하며
하나님없이 사는 불쌍한 영혼들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죽은 영혼을 살리는 일에 잠자는 여을 깨우는 일을 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말씀대로 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고 예수님을 위하여 사는 참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제자들은 육의 눈을 뜨고 있었으나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 될줄 알고 자리 다툼이나 하고 있었을 때에, 육의 눈이 어두운 바디매오가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야 되심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래서 육의 눈도 뜨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구원자됨을 바로 알기를 원하십니다. 바디매오처럼 예수님이 그리스도 되심을 확실히 믿고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날마다 기적을 체험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바디매오처럼 우리의 시선을 주님께로만 향하게 하여 예수님을 귀중히 여기고 예수님의 관심을 받으며 인자하심을 바라며 살게 하옵시고, 예배와 기도의 방해꾼인 마귀에게 휘둘리지 말고, 무조건적으로 주님 말씀에 순종하여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예배하고 기도하여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게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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