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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음서

눅19:28-34 예수님만 따라갑시다.

1.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

2. 찬송가 : 419장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 461장 십자가를 질 수 있나

3. 성경 : 19:28-34

4.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저희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하여 주시고, 악한 원수 사탄으로부터 지켜 보호하여 주시고 주님의 은혜 가운데 날마다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일평생 주님을 떠나지 않고 주님을 의지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를 깨닫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5 말씀 : 예수님만 따라갑시다.

1. 예수님을 따라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28절은 예수님께서 열므나 비유를 말씀하신 후 드디어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과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의 뒤를 따랐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무리들과 제자들보다 앞장서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가시는 예루살렘 길은 어떤 길일까요? 그곳에는 예수님을 죽이려고 작정한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수많은 무리들도, 또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예수님을 열열히 환영하는 예루살렘 주민들도, 뿐만아니라, 제자들조차도 예수님이 흉악한 죄인이나 당하는 십자가 형벌을 당하러 가시다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도 못하였지만,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구원 사역을 완성하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예수님이 가신 고난의 길, 죽음의 길, 십자가의 길을 우리들이 따라 가기를 원하십니다. 베드로 사도는 벧전2: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가신 고난의 길, 죽음의 길, 십자가의 길을 지금 걸어가고 계십니까?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합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말씀은 자신의 뜻과 생각을 내려놓고 욕심을 버린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여러 가지 힘들고 어렵고, 고통과 고난과 역경까지도 참고 견디며 인내하면서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이 쉬운 길입니까? 결코 쉬운 길이 아닙니다.

예수믿으면 물질의 복과 건강의 복과 자녀의 복과 명예의 복을 받아 이 땅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으로 알았다가 실제로는 광야와 같은 고난과 역경을 건너야 하고 고통과 괴로움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면 과연 누가 즐거이 예수님을 따라 가려고 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래도 따라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를 지셔야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고난과 죽음 뒤에는 영광스러운 부활과 승천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그 너머에 있는 저 천국의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담대히 나아가신 것입니다. 12:2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 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려고 앞장서서 예루살렘으로 가셨으며,

또 우리의 구원을 완성시키기 위해 하늘 예루살렘으로 먼저 올라 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 땅에서 예수님이 먼저 가신 두 예루살렘으로 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와 진리를 실천하기 위해 고난받는 예루살렘을 통과 해야지만

예수님이 먼저가셔 기다리고 계신 천국 예루살렘으로 들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예수님을 따르는 성도들은 예수님이 가신 고난의 길도 따라야 하고,

예수님이 가신 천국의 길도 따라 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두 가지 길을 우리에게 따라오라고 그 길을 먼저 앞장서 가신 것입니다.

8:17,18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를 위해 고난받는 길을 두려워하지 말고 천국의 상급을 바라보며 나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고난에 참여하는 성도들에게 천국에 갈 수 있는 자격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위해 헌신하고 충성하여

천국으로 앞서 가신 예수님을 만나 뵙는 것을 삶의 최종 목표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2. 미리 예비하시는 주님.

29-34절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입성을 위해 미리 나귀를 예비해 두셨습니다.

주님이 평화의 왕으로서 예루살렘에 입성하기 위해서는 어린 나귀가 필요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평화의 왕으로 나귀를 타고 입성하실 것은 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하나님이 예수님이 오시기 500년 전에 스가랴 선지자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게 될 때에 나귀 새끼를 타실 것으로 예언하셨습니다.

그 구약의 예언의 말씀을 따라 예수님은 주님이 타실 나귀 새끼를 예비해 놓으시고

제자들에게 그 나귀 새끼를 끌고 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성경에는 그 나귀의 임자가 누구인지를 밝히지 않았지만 예수님이 쓰시겠다고 하는 말을 듣고 순순히 나귀를 내어준 것으로 보아 나귀 주인도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한 사람이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예수님은 이처럼 주의 사역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미리 예비해 놓으십니다.

1) 예수님은 유월절에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위해 다락방을 예비해 놓으셨고,

2) 아브라함이 이삭 대신 번제로 드릴 양을 하나님이 모리아 산에 미리 예비해 두셨습니다.

3) 또 모세에게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시킬 사명을 주실 때 권능의 지팡이를 준비해 주셨으며,

4) 솔로몬 왕이 하나님에게 일천번제를 드리자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백성을 하나님의 뜻대로 잘 다스릴 수 있도록 지혜와 함께 부도 준비하여 주셨습니다.

5) 또한 초대 교회 사도들이 권능있게 사역할 수 있도록 오순절에 성령 충만함을 내려 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은 우리에게 사역을 맡기시면서 사역을 감당하기에 필요한 모든 것을 미리 다 예비해 두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주의 일을 하기 위하여 말씀 안에서 무엇이든지 구하면 다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앞서 말씀대린 대로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라가는 것도 결코 힘들거나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이 힘과 지혜와 능력을 주셔서 나의 십자가도 결코 무겁지 않고 가벼우며, 환란 풍파도 이겨낼 수 있도록 감당치 못한 시험 당함은 허락지 않으시고 능히 감당할 시험만 주심니다. ,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면서 우리가 부족하고 가진 것이 없어도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가 진정 주님을 섬기려는 마음과 의지만 있다면

하나님께서 은사나 재능이나 지혜나 물질 등 모든 것을 구하는 대로 주실 것입니다.

이 사실을 굳게 믿고 주님 섬기는 데 필요한 것을 늘 구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1:5 너희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3. 거룩한 산 제사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30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직 아무 사람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를 구해 오라고 하셨습니다. 아직 아무도 타지 않은 나귀 새끼는 순결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마귀와 사귀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신랑으로 맞이 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을 세상과 겸하여 사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신부가 마귀와 짝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랑 되시는 예수님도 흠없는 순결하신 주님입니다.

죄악 많은 이 세상에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지만 예수님의 삶에서 도덕적으로 흠이 될 만한 것을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1)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세리나 창기같은 죄인들의 무리와 교제하여 순결하지 않다고 하지만 그것은 그들을 회개시켜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2) 또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안식일에 병을 고쳤다고 율법을 어긴것이라 공격하였지만

안식일에 사람을 고치지 마라는 율법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시고 율법을 완성하신 분입니다. 그런 분이 어떻게 안식일을 어기고 율법을 어길 수 있겠습니까?

3) 그리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여 신성모독 죄로 십자가 형에 처하였지만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증명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사랑과 의로 점철된 흠 없는 순결한 삶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은 그 흠없는 자신을 인류를 위한 속죄제물로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어린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시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다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헌신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마땅히 흠없이 순결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도덕적으로 불결한 생활을 한 고린도 교인들에게 고전5:8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고 말하였습니다. 누룩 없는 떡을 먹는 전통은 출애굽의 유월절에서부터 유래된 전통입니다. 바울은 속죄 받은 기쁨을 누리는 성도가 도덕적으로 죄를 짓는 일을 누룩있는 떡에 비유한 것입니다. 성막이나 성전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떡은 누룩없는 떡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순결하고 흠 없이 하나님께 헌신하는 생활을 할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는 2:15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흠있는 제물은 받지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흠 많은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처럼 순결하게 하나님께 헌신하는 생활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우리는 먼저 늘 회개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영원한 속죄의 피로 깨끗한 심령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다음으로는 거룩한 생활을 추구해야 합니다.

세상에 대한 탐심이나 허영을 버리고 간음이나 이웃을 속이는 일, 거짓말 같은 옛사람의 생활을 멀리해야 합니다.

끝으로 적극적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베드로 사도가 벧전4:8에서 증언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렇게 흠없는 존재로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하는 성도가 천국에 넉넉하게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을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흠없는 제물로 드리기를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살전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저희들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이 앞서가신 예루살렘으로 따라가는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미리 예비해 놓으셔서 능히 자기 십자가도 질 수 있게 하시고, 맡겨진 사역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힘과 지혜와 능력을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또한 저희들이 흠 없는 순결한 상태로 거룩한 산제사로 하나님께 드리기 위하여 날마다 회개하는 삶을 살고 거룩한 삶을 살고 사랑하는 삶을 살아 가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주님의 말씀대로 구해야 얻을 수 있습니다.

31절과 34절은 주님이 나귀를 구하러 가는 제자들에게 누가 묻거든 주님이 쓰시겠다고 할 것을 명령하신 것과 제자들이 주님의 말씀대로 행하여 나귀를 얻은 일을 보여 줍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교훈을 얻습니다. 우리가 우리 삶에 필요한 것을 하나님과 이웃에게 얻으려면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행해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보내신 두 제자는 나귀 주인에게 주님이 일러 주신 말씀 그대로 말했습니다. 그 결과 나귀 주인이 거리낌없이 나귀를 내주었습니다.

여러분, 만일 그 제자들이 나귀 주인에게 우리가 쓰겠다고 했다면 나귀를 얻을 수 있었을까요? 그렇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날강도로 망신을 당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하나님과 이웃에게 구할 때 우리의 방법대로 하면 구하는 것을 제대로 얻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오해와 망신만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주님은 하나님과 이웃에게 구할 때 어떻게 하라고 가르치셨습니까? 우선 주님은 하나님께 구하는 자들은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구하라고 하셨습니다(6:33). 그렇습니다. 우리는 세속적인 무엇을 구하기에 앞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만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십니다. 그럼에도 자신들의 욕심을 따라 사리 사욕으로 하나님께 구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이런 성도들은 하나님께 구한 것을 받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주님 말씀대로 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주님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도움받으려면 먼저 대접하고(7:12) 선행과 사랑으로 대하라고 했습니다(벤전3:8-16).

이것이 진정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는 비결입니다. 그럼에도 인색하고 이기적으로 이웃을 대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어려운 지경에 처했을 때 이웃에게 도움을 얻지 못합니다.

성도 여러분, 이처럼 주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구하는 성도만이 하나님과 이웃들로부터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원리를 잊지 말고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삶에 필요한 것을 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과 이웃 섬기기에 부족함 없는 생활을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너회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연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연 이루리라" (15:7)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률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셔

기빼하시는 것을 행함이라"(요일 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