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119:1~5 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이여, 여호와의 증거들을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참으로 그들은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고 주의 도를 행하는도다. 주께서 명령하사 주의 법도를 잘 지키게 하셨나이다. 내 길을 굳게 정하사 주의 율례를 지키게 하소서.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행하고, 하나님의 증거를 지키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구하여 복을 받아 누리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저희들이 불의를 행치 아니하며. 주의 도를 행하고, 주의 말씀을 잘 지켜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 살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찬송가 , 요19장39~42절.
1. 진실한 믿음은 위기의 순간에 빛이 납니다.
39절에서 니고데모가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왔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전에 한번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었던 유대 관원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하시는 사역을 보고 하나님께로서 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에게 출회 당할까 두려워 사람의 눈을 피해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것입니다.
이후로 예수님께 대한 믿음은 가졌으나 적극적으로 드러내 놓고 예수를 따르지는 못했습니다.
우리는 자칫 잘못하면 니고데모나 아리마대 요셉을 용기도 없고 두려움이 많은 비겁자라고
진실한 믿음이 없다고 비난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비록 사람을 두려워하여 자신의 신앙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지 못하였어도 그 진실성을 의심해서는 안됩니다. 만일 그들의 신앙이 진실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하여 장사를 지냈겠습니까?
우리들은 눈에 보이는 데서 활동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신앙이 좋다고 말합니다.
물론 사실입니다. 믿음이 없이 성도들에게 나서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활동적으로 일한다고 다 그 신앙이 진실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환란을 당하고 위기가 닥칠 때에도 변함없이 그 신앙으로 나아가야 진실한 신앙인입니다.
이처럼 진실한 신앙은 위기의 순간에 드러납니다.
예수님이 많은 이적과 기적을 보이실 때 제자들이 하늘을 찌를 듯한 믿음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군병들에게 잡히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때에 다 도망가 버렸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모든 제자들이 주를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바치겠다고 장담하며 큰 소리쳤지만, 요한만이 예수님 곁을 끝까지 지켜보는 증인이 되었습니다.
들어내어 놓고 따르던 제자들은 다 숨었는데, 숨어서 아무도 몰래 따르던
니고데모나 아리마대요셉은 오히려 위기의 순간에 그 믿음을 드러내 보인 것입니다.
니고데모가 가져온 몰약과 침향 백근은 보통 왕의 장례식 때나 사용될 만큼 아주 많은 양입니다. 이것은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진정한 유대인의 왕으로 인정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위기의 때에 니고데모와 요셉은 예수님을 장사함으로써 자신들의 신앙을 만천하에 당당하게 고백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편안하고 좋은 일이 있을 때만 굳건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하여도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더 믿음이 강해져야 진정한 믿음의 소유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훈련시키시고 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신8: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또한 사도 바울도 우리의 인생에 환란과 풍파가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하신다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약1:2,3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오늘 성도들 중에는 자기의 신앙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며 교회에서도 앞장서 활동적으로 주를 위해 봉사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이에 비해 어떤 성도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자기 신앙을 드러내지 못하고 겨우 주일 예배나
드리는 연약한 신앙을 가진 분들도 있습니다. 이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신앙이 진실하지 않다고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언제 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성령의 능력에 힘입으면 위기 때에 자기 신앙을 드러내어 하나님께 인정받는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모두가 다 이러한 진실한 신앙인이 되도록 기도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2. 예수의 죽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40절에서 니고데모가 가져온 향 재료들로 예수의 시체를 유대인의 장례법에 따라 처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살아 계실 때에는 머리를 둘 곳조차 없으셨는데 그 장례식은 왕의 마지막 가는 길처럼 화려하게 치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이 장례식에 조문객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다른 이들은 차치하고라도 예수님이 아끼고 사랑하시던 제자들조차 대부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장례식에는 평소에 제자처럼 보이지 않던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이 또한 제자들의 연약한 믿음을 사용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 중 하나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시자,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하기 위해 예수님의 죽음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기절했다가 깨어나서 다시 살아났다고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은 거짓 주장이고 억지입니다.
예수께서 죽으셨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예수의 죽음은 사형을 직접 집행했던 군병들이 확인하였고, 또 빌라도도 이 사실을 확인하였습니다,
또 본문에서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의 예수님의 장례가 이를 입증해 주고 있습니다.
만일 요셉이나 니고데모와 같이 유대 사회가 인정하는 인물들이 아닌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장례를 치렀다면 대적자들이 하는 말이 어느정도 설득력이 있어
속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 사회의 중심적 역할을 하는 산헤드린 의원들인 두 사람이
예수의 장례를 준비하고 집례했기에 예수님의 죽음의 확실성은 더욱 입증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죽어 장사된 사실을 확실하게 하시고자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들을 쓰신 것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예수께서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믿고 인정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래야 부활의 신앙도 가질 수 있고, 또 우리의 죄가 사해진 것도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이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증거가 명백한데도 믿지 못한다면, 하나님에게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직접 보지 않고 믿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3. 소유에 집착하는 태도는 성도다운 것이 아닙니다.
41,42절에서 요셉이 자신의 소유로 되어 있는 새 무덤에 예수님의 시신을 매장하였습니다.
아마도 골고다 언덕에서 멀지 않은 곳에 요셉 소유의 묘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무덤은 아직 아무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었습니다.
그 무덤은 요셉이 자신의 사후를 위해 준비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러한 사실이 보여 주듯이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실 때에도 남에게 빌린 마구간을 사용하셨고, 천국으로 가실 때에도 남의 무덤을 빌려서 사용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의 창조주이시고 모든 만물의 주인이시지만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 성도들이 본받아야 할 태도 가운데 하나가 이와 같은 무소유입니다.
모든 사람은 세상에 올 때에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빈손으로 왔다가 세상을 떠날 때에도 역시 빈 손으로 가게 됩니다. 자신의 재물이 아무리 많아도 그것을 가지고 갈 수는 없습니다.
누구든지 죽으면 빈손이 되어 그 근본인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므로 재물에 집착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산다는 성도들 중에도
세상의 재물에 너무 집착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진정으로 하나님께 소망을 둔 사람의 태도가 아닙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도는 예수님의 본을 받아 자신의 소유에서, 재산에서, 물질에서 자유해야 합니다. 물론 재물을 소유해서는 안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성도는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일하고 성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에게 많은 돈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이것에 대한 집착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그분의 것이고
우리는 다만 관리를 위임 받은 청지기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거기에 집착해서는 안됩니다.
자신이 열심히 일하고 성실하게 저축해서 모은 돈일지라도
그것은 모두 주의 것이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 사용하여야 합니다.
이 땅에는 그 돈을 필요로 하는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많음을 잊지 마십시요
당장 끼니조차 잇기가 어려운 이웃이 옆에서 애타게 양식을 기다리는데
성도라는 사람이 이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신의 통장에 새겨진 잔고만 생각하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다면 그는 신앙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요일3:17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
성경은 부를 탐하는 것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주께 받은 일반 은총들을 충분히 활용해서 돈을 많이 벌고 또 저축을 하되,
그것을 자신을 위해서 쓰지 말고 그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을 쫓아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 나라의 그리스도인들은 무소유에 대한 개념이 적습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너무나 가난한 나라에서 서러움을 받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흩어 구제하면 더 풍성하게 해 준다는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나 바울처럼 세상의 소유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무소유의 삶을 추구하는 이들이 죄에 빠지지 않으며 가장 성도다운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한 화목 제물일 뿐 아니라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면서 여전히 세상 소유에 마음을 두고 탐하며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지 말고, 철저히 자기를 비움으로 땅에 있는 것들에 집착하지 말고, 남을 위해서 희생하며, 저희에게 주신 재물로 십자가의 사랑을 전하여 영혼을 구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