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119:9~12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찬송을 받으실 주 여호와여 주의 율례들을 내게 가르치소서.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은 항상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다는 신전의식을 가지고 살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고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마귀에게 속아 넘어 가지 않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어 모든 일에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 복된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오늘 이 새벽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 때에 성령님께서 풀어 깨달아 알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찬송가 , 요20장1절.
1. 예수님의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근본입니다.
1,2절은 안식 후 첫날에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시몬 베드로와 요한에게 말하여 그 사실을 확인하는 장면입니다.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무덤이 비었다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시신이 사라져 무덤이 비었다고 해서 부활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께서 실제 죽었던 것이 아니라 기절했다가 다시 살아났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 간 후 부활했다고 거짓말한다고 하고,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을 장례 직후 다른 곳으로 옮겨 갔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하려는 사람들의 근거 없는 말입니다.
오히려 당시의 상황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확실하다는 것을 명백히 말해줍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증거는 수없이 많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의 중요성은 기독교 신앙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님의 부활이 근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기독교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부활의 종교라 합니다.
예수님은 생전에 제자들에게 자신이 고난을 받고 죽으신 후에
삼일 후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계속해서 예고하셨습니다.
그 예고대로 주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삼일 만에
죽음을 이기고 무덤에서 일어나 부활하시어 빈 무덤을 만드신 것입니다.
만일 막달라 마리아나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에서 예수님의 시신을 찾았을 때
예수께서 그곳에 그대로 누워 계셨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몸에 향품을 바름으로 위안을 삼았을 것이고,
제자들은 스숭의 시신이 없어지지 않은 일로 안도하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탄생하지 못하였을 것이며 우리에게는 아무런 소망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대로 다시 사셔서 빈 무덤을 만드심으로 평소에 하신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는 말씀을 증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절대로 무덤에 갇혀 계실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라 죽으실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죽어도 다시 사실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값을 위해 죽으셨고
이틀 동안 죄값으로 무덤 속에 머물러 계셨고, 우리의 죄값을 다 갚으신 후에 무덤 문을 열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우리의 죄를 벗기시고 의로워졌음을 확증하셨습니다.
만약에 주님께서 다시 사시지 않았다면 우리의 구원이 보장될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기독교의 위대한 역사는 예수의 탄생과,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15:14에서 예수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다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며 또 믿음도 헛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부활하심으로
우리 믿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소망을 주셨고 기독교의 근간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이 영원한 진리요 우리의 소망인 것을 믿는 것입니다.
2. 장래에 우리의 무덤도 빈 무덤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무덤이 비었다는 것을 동해 또 한 가지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무덤도 빈 무덤이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부활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6:3-5에서“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 합한 자가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받는 세례에는 두 가지 의의가 있습니다.
하나는 죄 씻음이고 또 하나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죽음은 곧 나의 죽음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나도 함께 죽은 것이고, 또한 예수님의 부활은 나의 부활입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우리의 죽었던 영혼이 살아났으며 우리의 몸이 죽어도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바울은 고전15:20에서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 고 하였습니다. 첫 열매가 있다는 것은 둘째, 셋째 열매가 계속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그리스도를 뒤이어 부활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죽어 무덤에 들어간다하더라도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우리도 무덤에서 부활하여 우리의 무덤이 빈 무덤이될 것입니다.
그러면 무덤이 없이 화장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느냐고 걱정하는 분이 계십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나님이 흙으로 인간을 만드셨기 때문에 가루가 되어 바다의 물고기 밥이 되어도,
나무뿌리의 양분이 되어도 흙으로 돌아간다하여도 우리를 재창조하시어 부활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죽음을 보지 않고 천국으로 바로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다시 오시면 됩니다. 그러나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죽는다 하더라도 두려워하거나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죽어 껍질인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지만 알맹이인 영은 즉시로 천국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오랜 세월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거치는 관문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죽으면 끝이다 한번 사는 인생 즐기다 죽자’ 라고 말하지만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여진 것이지만 그 후에 둘째 죽음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 모든 사람은 자신의 죄 때문에 지옥으로 ᄄᅠᆯ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둘째 사망이 없습니다.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가 예수의 피로 인하여 정결하여 졌기 때문에 예수님의 공로로 인하여
우리는 죄가 없는 사람이 들어가는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의 빈 무덤은 죽음을 정복하신 그리스도의 승리요
또한 예수님과 연합한 우리의 승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당하게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라고 선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롬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3. 주를 위한 헌신의 정도가 사랑을 가늠하는 척도입니다.
1절에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요한은 마리아만 기록하였지만 다른 복음서 막16:1에 보면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도 동행하였습니다. 그녀들은 전날이 안식일이었으므로 계명에 따라 안식하고 안식일 다음날 주일에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기 위해 새벽 미명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던 것입니다.
이 여인들의 행동은 우리에게 예수를 향한 그들의 마음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게 합니다.
그것은 사랑이었습니다. 예수를 참으로 사랑했기에 정성을 다해서 향품을 준비할 수 있었고,
아직 해도 뜨기 전인 새벽 미명에 무덤을 찾게 되었던 것입니다.
누가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려면 그 사람의 헌신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말로만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주님을 위해 헌신하는가로 판가름 납니다.
우리 입술의 신앙 고백이 헌신으로 뒤따를 때 그 마음의 진심이 담기는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더라도 주님을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주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며, 믿음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참으로 사랑한다면 막달라 마리아처럼 예수님을 위해 헌신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일일지라도 예수를 위해서 기꺼이 포기할 수 있어야 하고,
또 그분을 위해서라면 사람들의 비난과 손가락질과 박해도 참고 받아야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말이 참임을 인정받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사랑을 증명해 보여 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행동으로 그분께 대한 사랑을 증명해 보여야 합니다.
롬14:8,9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하시어 우리에게 천국의 소망을 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과 연합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고, 예수님이 부활 하실 때 우리도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천국 신앙으로 살아가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나의 구세주 되신 예수님을 사랑하되 말로만 사랑하지 말고 마리아의 헌신을 본 받아 몸으로 충성봉사하며 헌신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