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요한복음

(요19:35~38)간증하는 성도가 되자

요1935~38. 십자가의 능력으로 죽은 영혼은 살아납니다.

1. 주님을 만난 성도는 사람들에게 간증해야 합니다.

35절에서 예수님이 십자가 못박혀 죽으신 모습을 요한이 직접 본 것을 전하여 믿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은 네명의 여인들과 몇몇 유대인들과 로마의 병사들과 함께 예수님께서 심문을 당하시는 전과정과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십자가 위에서 말씀하시고, 돌아가시는 장면을 가장 가까이에서 생생하게 지켜보고 기록한 사람입니다. 이처럼 증인은 다른 사람을 통해 전해 듣는 것보다 자신이 직접 지켜본 것을 말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게 믿을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도 예수님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반드시 예수님을 만난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예수님을 만나지 않고 복음을 전하면 전도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신비한 체험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면 예수를 만난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아무에게나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선택된 사람만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믿지 않는 사람이 있고,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믿음은 내가 믿으려고 해서 믿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믿음을 선물로 받아야 합니다.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깨달아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진다는 것은

하나님에게 믿음을 선물로 받았다는 증거이고, 믿음이 있다는 것은 예수님을 만났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찾아오셔서 항상 함께 하시기 때문에

믿는 사람들은 예수는 구원자 그리스도라는 확실한 증거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예수의 증거를 가진 사람은 반드시 세상에 전해야 합니다.

복음을 듣고 먼저 믿음을 받은 사람은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분부하신 말씀이 마28:20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복음을 듣고 믿음이 생긴 사람이 전해야만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될 수 있되고,

세상 끝날까지 복음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만약 복음 전파가 중단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가정적으로 보면 내 대에서 믿음이 끝나게 됩니다. 부모는 믿는데 자녀들이 믿지 않습니다.

교회적으로 보면 교인의 수가 계속해서 줄어들고, 교회는 어린 자들과 젊은 자들이 사라지고

연로하신 성도님들만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일반 성도와 집사는 없고 장로와 권사만 있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복음 전파는 구원받은 사람의 의무입니다. 의무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이 말씀은 받은 성도 여러분은 거룩한 부담을 가지시고 단 한 사람이라도 좋으니

전도 대상자를 마음에 품고 그 전도 대상자를 위하여 계속해서 기도하고 전도하고

매 주일 마다 초청하여 강권하여 내 집을 체우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순응하는 착하고 성실한 충성된 일꾼이 되어 하나님이 부어 주신 축복의 약속들을 대대손손 이어 나가시기를 축복합니다.

2.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신앙을 공개적으로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38절에서 산헤드린 의원이던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드러나지 않은 예수의 제자였는데, 그가

예수님께서 운명 하시자 빌라도에게 찾아와 예수의 시체를 구하여 가져가서 장사 지냈습니다.

여기에서 보듯이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의 알려지지 않은 제자였습니다.

그는 예수를 믿기는 하였지만 공개적으로 드러내지는 못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예수의 제자라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 잘 알고 있습니다.

환란과 핍박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이제껏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숨긴 것입니다.

당시 산헤드린은 지금의 국회의원에 준하는 유대 최고의 권력 기구였습니다.

산헤드린 회원에게는 부와 명예와 권력이 보장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으면 일순간 모든 특권을 박탈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종교지도자들이 예수를 믿는 사람을 출회하기로 결정하였기 때문입니다.

뿐만아니라 자칫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를 믿으면서도 차마 드러내지 못하고 숨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세상의 지위와 재물을 다 버리고, 심지어는 가족도 버리고 예수님을 쫓아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제자로서의 삶에 충실하기가 어렵습니다.

지금 우리는 자신의 신앙을 공개적으로 들어내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종교를 금지한 공산국가에서는 공개적으로 자신의 신앙 고백을 고백하게 되면

자신이 그동안 힘들게 쌓아 올린 사회적인 지위를 한순간에 잃게 되고, 감옥에 들어가거나 죽지 않을 정도의 음식만 주고 죽을 만큼 고된 노역을 하거나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확고한 믿음과 용기가 없이는 자신이 예수를 믿는다고 공개적으로 고백하기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공개적인 신앙 고백은 죽기를 각오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자기 신앙을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그 신앙을 끝까지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올바른 신앙입니다.

다니엘은 자기신앙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면 사자 굴에 던져지게 되는 위기를 맞이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씩 같은 시간에 자신의 집에서 창문을 활짝 열고

누구나 볼 수 있어도 개의치 않고 예루살렘 성을 항하여 하나님께 기도 드렸습니다.

그래서 대적들의 함정에 빠져 사자굴에 던짐을 당하였지만 하나님께서 기적적인 방법으로 사자의 입을 봉하여 버리고 오히려 대적들이 사자의 밥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다니엘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신앙으로

신앙의 지조를 지켜야 합니다. 언제 죽어도 죽는 목숨, 일찍 죽어서 천국가는 것이 현명합니다.

믿음을 배신하고 신앙을 버리고 구차하게 비참하게 이 생을 살아서 무슨 영화를 보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신앙을 지켜 죽음을 선택하느냐? 신앙을 버려 삶을 선택하느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오늘 이 시대의 성도들은 과연 몇 명이나 신앙을 선택하겠습니까?

내가 죽을지언정 예수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큰 소리친 베드로는 제자들과 함께 도망을 갔다가 예수님이 어떻게 되는가 궁금하여 따라갔다가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인하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직장에서 쫓겨나지 않습니다. 왕따를 당할 수는 있습니다.

그것이 두려워 예수 믿고 교회 다닌다는 것을 밝히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예수 믿어라고 전도한다고 감옥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거절을 당하기는 합니다.

마음에 상처를 입기 싫어 내가 다니는 교회에 같이 가자고 한마디 말도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예수를 배신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장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 이렇게 나약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을까요? 세월이 갈수록 세상이 험하고 악하기 때문일까요?

예수 믿는다고 하면 세상 사람들에게 암묵적으로 비난받고 조롱받기 싫어서

예수 믿어라고 하면 너나 잘 믿으라고 하면서 절대로 믿지 않을 것 같아서 말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성령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기 위해서는 모든 공예배를 다 드려야 하고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말씀대로 살기를 애쓰고,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기도하기를 쉬지 않아야 하는데, 영이 잘되는 것보다 육이 잘되기를

바라고 세상일에 바쁘고 세상일을 더 중요하게 여겨서 그런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만 신자이고 교회 밖에서는 불신자가 되어 세상과 주님을 겸하여 섬기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나타내야 할 곳은 교회 안이 아니라 교회 밖, 곧 세상입니다. 우리를 대적하는 세력들이 우글거리는 그곳에서 자신이 성도임을 공공연히 고백할 수 있어야만 진정 그리스도의 제자라 할 수 있습니다.

3. 예수의 십자가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38절에서 예수의 제자인 것을 숨긴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자 담대히 빌라도를 찾아가서 예수의 시체를 다라고 요구합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앞서 말씀드렸듯이 예수님을 마음 속으로 믿고 추종하던 제자였으나

자신의 신분의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워하여 숨겨 오다가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자

자기의 신앙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예수의 시체를 요구한 것입니다.

요셉이 이처럼 자신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신앙을 드러낸 까닭이 무엇일까요?

무엇이 그를 이렇게 변화시켰습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위력이 있습니다.

예수의 십자가는 약한 자를 강하게 하고, 핍박자 사울을 전도자 바울로 변화시키고,

죄인을 의인으로, 사단의 종을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을 바꾸어 줍니다.

예수의 십자가는 죄의 세력을 멸하고, 죄로 인하여 심판을 받지 않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게 되는 놀라운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바라보는 사람마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되고 예수로 인하여 죄의 멍에를 벗어 버리게 됩니다.

더 이상 죄에게 종 노릇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십자가는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열쇠입니다.

십자가가 있는 곳에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고 사람이 변화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철저한 유대인이고 기독교를 대적하는 세력의 중심에 섰던 바울이 변화될 수 있었던 것은

예수의 십자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십자가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강조했으며,

그의 인생에서 십자가는 가장 큰 자랑거리였습니다.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우리는 십자가의 의미와 중요성을 이해하고 그 능력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것이 요셉을 변화시켜 새 사람이 되게 한 것처럼 오늘도 많은 이들의 인생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저희들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셔서 2000년 전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장면을 직접 목격하지 않고도 사도 요한의 복음의 말씀을 통해 믿어지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들 또한 복음의 목격자가 되었으니 복음의 전도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저 불신자들을 내가 변화시켜 믿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듣고 믿은, 십자가를 전하기만 하면 믿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변화시키시는 분도 하나님이심을 알고, 저희들은 말씀에 순종하여 전도대상자를 사랑하고 그를 위하여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에 초대하여 그 귀한 한 영혼을 살리는 일을 감당하므로 자자손손 대대로 축복의 사람이 되고,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