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105:1~4 여호와께 감사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하는 일을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며 그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말할지어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들은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의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에게 주신 은혜 중 가장 크고 귀한 것은 구원의 은혜입니다.
저희들이 천국가는 그날까지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는 자가 되고, 또한 저희들에게 베풀어 주신 모든 은혜를 알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시고, 그러기 위하여 이 새벽에 나왔사오니 말씀에 은혜를 내려 주시고 저희의 기도에 응답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찬송가 , 요19장12~16절.
1. 대개의 사람들은 개인의 이익 뒤에다 정의를 둡니다.
12절에서 빌라도는 예수를 풀어주려 하였지만 유대인들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만일 빌라도가 예수를 무죄로 풀어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빌라도는 약하나마 마음속에 남아있던 양심이 무너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로마 황제는 빌라도를 탐탁케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만일 빌라도가 이 사건을 잘못 처리하여 유대인들의 원성을 사서
황제에게 잘못 보이게 된다면 그는 정치적으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굳이 예수를 무죄 방면할 이유가 없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연약한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정의롭게 살아야 하는 것은 알지만, 믿음이 없거나 성령에 이끌리지 않으면
자신이 불이익을 당하거나 자신의 이익과 상반되면 정의를 포기하고 버립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정의는 그리 신뢰할 만한 것이 못됩니다.
각종 이익집단이 데모하는 모습을 보면, 자신들이 국민들을 위해 정의를 구연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상 그들은 정의 구연보다는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이란 이처럼 간사해서 사람을 신뢰하고 의지하면 낭패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배제하고 정의를 외치는 사람들, 예수를 따르지도 않으면서 정의의 사도처럼 행세하려는 사람들은 믿을 수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믿는 사람들 중에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를 위해서라면 죽는 것까지도 불사하겠다는 제자들의 결심이
너무도 쉽게 무너지는 것을 우리는 겟세마네에서 보았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사람을 신뢰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무지한 일 인지 잘 알려줍니다.
물론 성도들 가운데는 신실한 성도들도 있지만 믿는 사람이라고 반드시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거듭나서 새롭게 된 사람,
예수님이 그 인생의 주인이 되어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 만이
개인의 이익보다 주의 영광과 정의를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둘 중 어디에 속하는지 스스로 진단해 보아야 합니다.
날마다 말씀으로 자기 진단을 소홀히 하거나,
아예 하지 않고 성령에 이끌리지 아니하고 육신적인 생각에 이끌려 살게 되면
정의를 버리고 이익을 따라가다 가는 반드시 후회하고 눈물 흘리게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보다 예수님을 중시한다 하면서도
실제로는 예수님을 자신의 것을 보호하기 위한 명분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이비 이단이나 복음을 완전히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그들은 신앙과 경건을 말하지만 그 이면에는 탐욕스러운 모습이 숨어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빌라도나 이단이나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처럼
양심과 정의를 버리고 이익과 욕심에 이끌려 살아서는 안되겠습니다.
덤전6: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은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벧후2:3 그들이 탐심으로써 지어낸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득을 삼으니
그들의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멸망은 잠들지 아니하느니라 하였습니다.
이처럼 모든 일의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도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지 않고
정의로운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 인간의 어떤 상황과 환경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생각으로 불법적으로 편법으로 자신의 뜻을 이루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합법적으로 정의롭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손해와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정의를 버리거나 양심에 반하는 행위를 하지 않아
하나님에게 믿음을 인정받아 복을 받아 누리는 삶을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2. 주의 통치를 거절하는 자는 이미 주의 백성이 아닙니다.
14-16절에서 빌라도와 유대인들 사이에 긴박한 줄다리기가 끝이 나고
마침내 유대인들이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빌라도는 예수를 유대인들의 왕이라 조롱하였으나
유대인들은 가이사 이외에는 아무도 자신들의 왕이 아니라고 잘라 말하였습니다.
이 부분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며,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그것은 그들의 영적 무지와 하나님께 대한 불신이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유대인의 왕이라는 사실은 예수님이 나시던 밤에
동방에서 별을 보고 찾아온 박사들에 의해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 일로 인해 헤롯은 후환을 없애고자 베들레헴을 중심으로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2세 이하의 사내 아이들을 학살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그들의 왕됨을 단호하게 거부한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것과 같으며, 그들의 이러한 영적 상태는
마21:33-41에서 예수님이 악한 소작인 농부들의 비유의 말씀 속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그들의 행위는 하나님의 통치나 권위에 대한 정면 도전입니다.
실제 유대인들은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선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함으로써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 되기를 포기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일이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발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누가 참 성도인지, 교인인지 분간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구분하는 것은 의외로 쉽습니다.
주님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참 성도이고, 이를 거절하는 이들은 교인입니다.
바울은 고전9:27에서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라고 말하며 언제나 항상 자기 자신의 생각을 내려 놓았습니다.
주님의 통치를 온전히 따름으로 자신이 주의 백성임을 증거한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가 살아가는 올바른 모습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속에서 예수님이 머리되심을 인정하십니까?
우리가 성도임을 인정받으려면 우리의 인생 전체를 통제하는 분이 예수님이어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고자 할 때 우리는 비로소 성도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영향력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도 주의 통치를 거절한다면 그는 성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참으로 경외하는지의 여부는 예수를 대하는 태도를 통해서만 입증됩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고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내 생각대로 세상적인 방법대로 살면 하나님을 업신 여기는 것입니다.
3. 세상의 양대 세력인 정치와 종교는 진리의 가장 큰 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16절에서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야합한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을 시키도록 내어주었습니다. 이런 사실이 보여 주듯이 예수께서는 정치와 종교 세력에 의해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양대 세력인 정치와 종교가 진리의 가장 큰 적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줍니다.
로마 파견 총독으로서 유대의 정치적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빌라도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인 산헤드린에 의한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한 것에서 보여지듯이
정치와 종교는 역사 속에서 언제나 진리의 가장 큰 적이 되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지구상 곳곳에서는 사단의 사주를 받은 정치와 종교 세력들이 진리를 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치나 종교가 인간의 복된 삶을 실현하리라는 망상을 버려야 합니다. 사실 기독교도 인본주의화 되어 세속 종교의 하나로 전락하게 될 때
진리에 역행하는 세력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중세의 가톨릭이 바로 그와 같은 반 진리 세력이었음은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정치 권력자들과 대적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정치를 통해 인간 사회의 질서가 유지되도록 권세자들에게 협조하되
그들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본분에 충실하도록 견제하고 위증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아울러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섬기는 기독교만이 참된 구원의 길을 제시하는
참된 종교임을 알 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진리가 인본주의자들에 의해 변질되지 않도록
성경의 바탕 위에 우리의 신학과 신앙을 굳게 세워 가기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정치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기독교가 인본주의적인 종교로 빠지지 않도록 기도에 힘쓰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정의롭게 살아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욕심을 따라 가지 않고 세상 시류를 따라 가지 않고 오직 말씀만 따라가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하나님의 백성인 저희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저희들에게 힘들고 어려운 고난의 길을 가라고 하시더라도 원망불평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 만을 믿고 주님 만을 의지하며 주님만 따라가면 반드시 복된 길이고 승리의 길이 될 줄로 믿습니다.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