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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요18:38~40)쉽고 편한 길은 정도가 아니다

103:1~5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의 죄악을 사하시고, 모든 병을 고쳐 주시고, 마귀의 공격에도 지켜 주시고, 생명의 위협에서 건져 주시고, 주의 인자하심과 긍휼하심으로 인도하여 주시고,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고 만족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 인생을 날마다 새롭게 하시는 주님의 그 은택을 잊지 않고 이 새벽에도 주의 전에 나와 찬양하며 경배하는 저희들의 예배를 받아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찬송가 , 1838~40.

 

1. 참된 진리는 탐구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38절에서 빌라도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하지만 빌라도는 진리에 대해 관심이 있어서 물어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하면, 예수님의 답변을 듣기도 전에 자신의 심리를 종결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절대적인 진리를 말씀하셨지만, 빌라도는 상대적인 진리를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참된 진리란 인간이 탐구하고 연구해서 깨달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깨닫기 위해 고행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며

깊은 명상을 하기도 하지만 그런 방법으로는 진리에 이를 수 없습니다.

일부 종교인들 중에는 자기 나름대로 진리에 이르렀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의 말이나 사상 중에서 일반인들이 깨닫기 어려운 것들도 깨닫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말이나 사상이 한 시대 동안 인류 문명에 영향을 끼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말이나 사상이 인류에게 영원한 영향을 줄 수는 없습니다.

세상의 진리는 상대적이라 세월이 흐르면 옛 것이 되고 맙니다.

또 그것들은 생명을 구원하는 것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합니다.

참된 진리 곧 인류에게 영원히 영향력을 끼치고 생명을 구원하는 진리는

인간의 노력이나 수고로는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참된 진리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생명을 얻는 진리는 예수를 믿을 때 비로소 얻어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바로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기 때문입니다(14:6).

고전 2: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8:31,32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예수를 영접한 사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만 진리에 이를 수 있습니다.

예수가 없는 곳에서는 구원의 진리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들이 있고 그들 나름대로 구원의 길을 가르치지만

예수가 없는 종교에는 구원도 없고, 진리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종교들이 가르치는 진리라는 것은 사람이 만들어 낸 것으로서 참된 진리가 아닙니다.  

진리는 예수를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예수 자체가 바로 진리가 되십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를 믿도록 힘써 전도해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2. 우리가 중요시할 것은 사람들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입니다.

39절은 예수에게 혐의가 없다고 확신하게 된 빌라도가 이 사실을 백성에게 알리고

그들이 예수의 석방을 원하기만 하면 즉시 풀어주겠다고 합니다.

빌라도의 이런 행동은 마치 예수님을 배려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 빌라도의 행동은 자신의 직무를 유기하는 행동이었습니다. 

빌라도는 재판을 맡은 사람으로써 피고를 심리하여 죄의 유무를 가린 뒤

혐의가 인정되면 유죄를, 혐의가 발견되지 않는다면 풀어주어야 합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아무런 죄도 찾지 못했으므로 마땅히 예수님을 석방했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금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타협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빌라도가 용기도 없고 정의롭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를 고소한 유대인의 지도자들을 무시할 수 없었다 하더라도

빌라도는 유대 총독으로서 모든 일을 법에 따라 공정하게 처리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빌라도처럼, 인본주의적인 정치 지도자들과 행정가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알아볼 수 있습니다. 우선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이 사람들의 지지여부에 달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옳고 합당한 일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이 원치 않으면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절대로 이렇게 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람을 두려워하여 사람의 눈치를 보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합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지만

성도인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먼저 생각하고 구해야 합니다.

5: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살전2:4오직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정치를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더더욱 그리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개인의 인권보다 국익을 우선 순위에 둬야 된다고 하지만

기독교적인 관점으로 볼때에는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대를 위해서는 소를 희생시킨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한 영혼이 천하보다도 귀하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한사람이라도 억울하게 희생시켜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왜 이 세상에 오셨는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 구원하려고 오셨습니다.

인권을 유린당하고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사람들, 가난하고 병들고 힘이 없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다정한 이웃이자 친구가 되셨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의 본을 따라 이 땅의 힘없고 소외되고 약한 자들이 불이익을 당하거나

인권을 유린당하지 않도록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여 주고 그들의 편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을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서 만약에 자신이 희생되어야 할 소 가운데

포함되어 있다면 과연 그런 주장을 쉽게 할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빌라도처럼 사람들의 눈치나 살피면서 비굴하게 행동해서는 안됩니다.

성경 말씀을 기준으로 하여 옳고 그름을 분별한 뒤에는 마땅히 의의 편에 서야 합니다.

그래서 신앙 생활을 제대로 하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자신이 속한 정당이나 단체가 어떤 결정을 내렸다 하여 그것이 불의라는 것을 알면서도

침묵하거나 지지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우리는 아무리 많은 사람이 옳다고 생각하여도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하시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민주 사회에서 다수의 의견이 존중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불의한 것까지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이든 항상 최우선 적으로 생각할 것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합니다.

 

3. 많은 사람이 가는 쉽고 편한 길은 대개의 경우 정도가 아닙니다.

40절에서 흥분한 유대 군중은 빌라도에게 예수님 대신에 강도인 바라바를 풀어주라고 외쳤습니다. 유대인들은 생명의 구주이신 예수를 버리고 도적의 괴수를 택한 것입니다.

물론 바라바를 연호한 사람들 중에는 정확한 이유도 모르면서 남들이 하니까 따라하는 사람도 많았을 것입니다. 군중 심리에 이끌려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 사회에는 이와 같이 군중 심리에 이끌려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분명한 삶의 목표없이 많은 사람이 하니까 따라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편하고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기독교인들 중에는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지 묻지 않고 그저 사람들이 많이 몰려 가는 곳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를 따라가는 진리의 길은 좁고 험합니다. 핍박이 따르기도 하고 고난과 시련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피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왕이면 좀더 편안하고 수월한 길로 가면서 하나님의 복도 받고, 하나님의 나라에도 들어 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쉽고 편안한 길,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은 대개 정도가 아닙니다. 그런 길로 가면 하나님의 나라에 이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로 가는 길은 결코 쉽고 편안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행14:22에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 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고자 하면 어려움을 피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을 선호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따라야 할 길은 주께서 명하신 길뿐입니다.

설사 찾는 사람이 적거나 없을지라도 이 길로 행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게 됩니다.

7: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딤후4:3-5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빌라도 앞에 서서 심문을 받으시는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그분이 왜 그곳에 서셔야 했으며, 유대인의 지도자들이 그토록 집요하게 예수를 제거하려 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서 예수에게 속한 우리가 이 세상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확인하게 됩니다. 세상은 우리를 싫어하고 미워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서 고난당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또 악한 세상과 짝하여 살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로 그리스도를 알게 할 의무는 있지만 그들과 연합하거나 타협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을 아시고 주의 뒤를 따라 가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저희들이 예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심을 믿는다면, 세상속에서 사람들에게서 진리를 찾으려는 어리석은 노력을 하지 않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옳은 길이라 주장하더라도 말씀에 위배되면 절대로 따라가지 말고 사람들에게 그 길은 아니라고 담대하게 선포하게 하옵소서. 사람들은 편한 길로 가려 하고 쉬운 길로 가려고 하고 돈만 되면 무슨 일이라도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것이 좋아 보이지만 결국은 망하는 길이고 심판의 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힘들고 어려워도 잘 안되는 것 같아도 주님만 따라가므로 결국은 승리하는 역전의 하나님을 체험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