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103:10~13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사랑이 많으시고 인자와 긍휼하심이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때로는 실수하고 넘어지고 실패하여도 저희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너무나도 잘 아시고, 체휼하지 않으시고 오래 참으시고 우리를 죄를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의 죄를 멀리 옮겨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의 그 크고 놀라우신 사랑과 은혜를 날마다 체험하기 위하여 오늘 이 새벽에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말씀에 순종하며 살기를 원하오니 은혜를 내려 주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찬송가 , 요19장1~6절.
오늘 말씀에 나오는 본디오 빌라도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말씀드립니다.
만약 본디오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형을 내리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에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반드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하는데
빌라도가 무죄 방면해 버리면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차질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빌라도가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쓰임 받았기 때문에 칭찬하고 본받아야 할까요?
그렇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불의의 병기로 쓰임 받았기 때문에 비난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역사에 가정이란 없습니다만, 만약 빌라도가 무죄 방면했다면 대제사장과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폭동을 일으켜 십자가 형에 처해지도록 했거나, 아니면 대제사장의 군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빌라도의 판결은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1. 사람을 의식하고 행하게 되면 편법을 쓰게 됩니다.
1절에서 빌라도는 예수님을 채찍질하라고 명하였습니다. 예수님에게 죄가 없다는 것을 빌라도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채찍질하도록 한 것은 예수님을 채찍질한 후에 풀어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빌라도 생각에 예수님을 적당하게 채찍질하고 풀어주면 유대인들도 만족하리라 판단했지만 오산이었습니다. 빌라도는 유대지도자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법에 따라 소신껏 행동할 만큼 정의감이나 용기가 없는 사람이라 예수님을 채찍질함으로써 유대인들에게 만족을 주고 그들을 달래서 예수님을 석방하려는 편법을 사용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빌라도의 인격을 알 수 있습니다. 빌라도의 행위를 보고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적당히 타협하고 넘어 가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의 반응에 휘둘리면 안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지금 그리스도인들이 권력자들의 눈치나 보면서 좋은 것이 좋다고 불법과 적당히 타협하고 편법을 행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불법과 타협하고 편법을 쓰고 탈법을 행하면 반드시 의로우신 하나님에게 책망을 받고 징계를 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사람의 생각이나 뜻에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합니다. 우리의 선택과 결정이 하나님의 뜻에 근거 된 것이라면 누가 무슨 말을 하든 개의치 말고 추진해야 합니다. 설사 그 과정에 심각한 위기가 예상될지라도 마귀와는 타협을 해서는 안됩니다. 바울도 갈1:10에서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하랴 하나님께 좋게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다니엘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니엘은 날마다 하루에 세 번씩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에 예루살렘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적들이 다니엘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하여 누구든지 어떤 신에게든지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지겠다는 법령을 정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구차하게 불의의 세력과 타협하기를 거부하고 정면 돌파를 했습니다. 정해진 기간에 기도를 하지 않거나 사람들이 보지 못하도록 창문을 닫고 몰래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이전에 하던 그대로 정해진 시간에 창문을 활짝 열어 두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루에 세 번 기도하는 것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결단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며 비굴하게 살기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의롭게 죽기를 작정한 것입니다. 바로 이런 신앙과 결단을 우리가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들을 할 때 사람의 눈치를 보지 말아야 합니다. 여론이 언제나 옳고 선한 것은 아니므로 그것이 어떻게 반응하든지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에 충실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이 분명함에도 여론을 의식하고 머뭇거리는 사람이나 하나님께서 금하셨음을 알면서도 여론을 의식하여 소극적으로 라도 동조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언제나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삶의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빌라도처럼 편법을 쓰지 않고 다니엘이 했던 것처럼 정면 돌파하는 삶을 사시기를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2. 예수님을 모욕하는 자들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고 무지합니다.
3절에서 빌라도의 군병들이 예수님을 조롱하며 모욕하였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손바닥으로 예수님을 때리기까지 하였습니다. 지금도 세상에는 이처럼 예수님을 업신여기고 예수님을 모욕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모욕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예수님에 관해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보내신 구원자이시며,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안다면 절대로 예수님을 모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님에게 굴복하여 구원을 호소할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예수님의 실체에 관해 무지하기에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예수님을 반대하고 거룩하신 이름을 모독하는 말들을 서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세상적으로 많은 지식을 가졌다 하더라도 가장 어리석은 사람들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둘째는 자신들이 악을 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어두움 가운데서 행하는 이들의 행위가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악을 행하는 자들은 자신들의 악행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빛으로 오선 예수님을 거부하고 모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가장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중병에 걸린 사람이 건강해지려면 병을 숨기거나 의사를 멀리해서는 안됩니다. 속히 병원을 찾아 의사에게 자신의 상태를 정확하게 말하고 건강검진을 하고 의사의 올바른 진단과 처방에 따라 수술을 하든지 약을 먹어야 합니다. 병든 사람이 자신이 병든 것을 애써 감추고 의사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을 싫어하여 모욕하고 멀리한다면 그 사람은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것이며, 죽기를 작정한 사람일 것입니다. 사전에 미리 충분히 치료하면 회복 가능한데도 자신의 어리석음과 무지로 인해 중병이 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불신자들이 교회에 오지 않고 예수님을 멀리하는 것은 자신의 죄가 드러나는 것을 싫어해서입니다.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영적인 질병이 치유되는 죄 사함을 받고 완전히 죄에서 자유하게 될 것인데, 오히려 교회 다니는 성도들에게 의지가 약하여 종교적 신앙에 빠지게 된다고 비난합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문제가 가장 심각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처지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심판 받아 멸망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것을 알지 못하니 이런 오만하고 교만한 말들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멀리하고 대적해야 할 분이 아니라 그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고서 도움을 청해야 할 유일한 구원자이십니다.
그것을 알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지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가서 후회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3. 성도에게는 매순간 선택의 결단을 해야 합니다.
6절에서 예수님을 석방하려는 빌라도의 의도를 알아채고 대제사장들과 하속들이 일제히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야 한다고 소리 쳤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예수에게 죄가 있고 없고 상관없이 예수를 제거하여 없애는 것이었으므로 빌라도의 태도를 받아들 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미 그들은 여론을 조성하는 일에 성공했으므로 빌라도를 통해 예수를 제거하는 일에 승산이 충분히 있다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빌라도의 어정쩡한 태도입니다. 그는 예수에게 죄가 없음을 알았고 또 자기 아내로부터 예수를 해롭게 하지 말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석방하고자 구실을 찾았습니다. 총독의 권한으로 얼마든지 석방하는 것이 가능함에도 그가 적당한 명분을 찾고자 고심한 이유는 유대인의 민심을 잃지 않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민심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그는 할 수만 있다면 양심의 짐도 덜고, 민심도 잡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경계해야 할 삶의 방식이 바로 이것입니다.
영적 세계에서는 언제나 둘 중 하나 만을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길 수 없으며, 그리스도의 제자이면서 동시에 마귀의 종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어느 하나를 택하면 다른 하나는 반드시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신앙 생활에서 실패하는 대부분의 원인은 버려야 할 것들을 버리지 못하고 욕심에 이끌려 둘 다 잡으려 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양자 택일을 요구하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진정한 예수의 제자가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유능하고 뛰어난 사람이라도 이것이 선행되지 않으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못합니다.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 요한, 마태 등이 주의 부르심을 받을 때에 어떻게 하였습니까? (마4:20)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쫓으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즉시로 예수를 쫓기 위해 자신들의 생업을 버렸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말씀을 잘못 받아들여 제대로 예수를 믿으려면 사업체나 직장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또 실제로 이단들이 이렇게 하라고 지시합니다.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자기 부인은 삶의 중심이 나에게서 예수 그리스도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내가 중심이 되던 삶이 그리스도께서 중심이 되시는 삶으로 전환되는 것이 곧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올바른 신앙 생활을 하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나 자신을 철저히 버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나와 그리스도가 공존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신앙 생활에 실패합니다. 나를 선택하든지 그리스도를 선택하든지 결단을 내리는 것이 가장 최 우선적인 과제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저희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하게 하옵소서. 사람의 기분을 맞춰해야 할 말을 하지 않고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게 하옵소서. 또한 우리 주변에 영적 중병에 걸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인간적인 문제 때문에 낙심하여 교회를 나오지 않고 하나님께 예배 드리지 않는 연약한 자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고, 사람과 상관없이 오직 하나님께만 예배 드린다는 마음으로 주의 성전에 올라오게 하옵소서. 나의 생명과 육신과 재능과 물질은 다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내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지 말고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어 나 자신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주님을 위한 선택을 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복과 은혜를 풍성히 받아 누리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요한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19:12~16)정치와 종교는 복음의 적일 수 있다. (0) | 2023.04.30 |
---|---|
(요19:7~11)마귀도 하나님 말씀으로 유혹하고 공격한다. (0) | 2023.04.30 |
(요18:38~40)쉽고 편한 길은 정도가 아니다 (0) | 2023.04.14 |
(요18:32~37)땅의 것을 추구하지 마라 (0) | 2023.04.14 |
(요18:28~31)사탄의 특징 (0) | 2023.04.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