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106:3~5 정의를 지키는 자들과 항상 공의를 행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여호와여 주의 백성에게 베푸시는 은혜로 나를 기억하시며 주의 구원으로 나를 돌보사, 내가 주의 택하신 자가 형통함을 보고 주의 나라의 기쁨을 나누어 가지게 하사 주의 유산을 자랑하게 하소서.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이 정의와 공의로 살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게 하옵소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행복하지만, 불순종하면 불행합니다. 시편 말씀처럼 주의 택하신 자가 형통함을 보고 주의 나라의 기쁨을 나누어 가지게 하시고, 주의 유산을 자랑하며 살아가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찬송가 , 요19장17~18절.
1. 예수께서는 죄인들을 위해 스스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17절에서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히기 위해 골고다로 끌려 가셨다고 수동적으로 기록하지 않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나가셨다고 능동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타인에 의한 강제적인 것이 아니라
예수님 스스로 자발적으로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표면적으로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유대인들의 감정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로마 총독 빌라도에 의한 종교적, 정치적 사건으로 예수님이 억울하게 희생당하신 것이지만,
실제로는 예수님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몇 번이나 거듭하여 당신이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또 예수께서는 붙잡히실 때에도 원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피하실 수 있었지만 순순히 결박을 당하셨습니다.
단지, 가롯 유다와 대제사장과 빌라도와 같은 사람들을 불의의 병기로 사용하셨을 뿐입니다.
예수께서는 구약의 예언대로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스스로 십자가를 지시고 대속 죽음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럼 왜 하필 참혹한 십자가 형벌로 죽으셨을까요?
십자가는 당시 로마 반역자나 강도와 같이 흉포한 자들 만을 처형하는데 사용하던 사형 틀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에게 십자가는 수치의 대명사였습니다.
예수의 좌우편에 두 강도의 십자가는 수치스런 사형 틀이지만, 아무 죄 없이 대속하신 예수의 십자가는 자랑스러운 십자가이고,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 것입니다.
예수의 십자가는 죄인들이 구원을 얻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귀히 여기고 자랑스러워해야 합니다.
일평생 십자가를 바라보며 우리를 위해 스스로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하고
예수님을 위해 우리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리고 예수님을 위해 살아야 할 것입니다.
히12:2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2. 예수는 인간과 하나님 모두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18절에서 예수께서는 마침내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인간의 구주로 오셨으나 도리어 인간들에게 버림을 받아
수치와 형벌의 도구인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게 된 것입니다.
예수께서 인간이 인간에게 내리는 가장 무겁고 심한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은 인간에게 철저히 버림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 또한 인간적으로 볼 때 육체적 고통보다 더 큰 정신적인 고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창조주가 피조물이 되셨고, 하늘의 보좌에서 내려오시어 죄악 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이유는 바로 인간들을 사랑하셔서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인간들은 그런 예수를 철저하게 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그 심적 고통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을 위해 목숨까지도 버렸는데인간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예수님의 마음은 참으로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하나님으로부터도 철저히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비록 인간의 몸을 입으셨지만 근본 하나님의 아들이신데도 철저히 버림을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마27:46을 보면 십자가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고 외치셨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그렇게 외치셨겠습니까?
예수님은 자식이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비참한 마음과 고통스러움을 체험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처럼 인간과 하나님 모두로부터 버림받는 비참한 고통을 당하신 것은 인류를 구속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바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인간과 하나님 모두로부터 버림받는 십자가 수난의 길을 가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십자가를 보면서 예수의 처절한 고통을 생각지 않습니다.
단지 십자가를 구원의 상징뿐만 아니라 축복의 상징으로만 생각할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가 구원과 축복의 상징이 되기까지 예수께서 인간과 하나님 모두로부터
버림을 당하셨고 그 고통으로 인해 몸부림치셔야만 했었던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의 죄의 심각성을 깨달아 가슴을 치며 다시는 옛 사람의 본성에 따라 죄 가운데 사는 일이 없도록 자신을 늘 십자가 아래로 쳐서 복종시켜야 하겠습니다.
벧전 2: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3. 예수의 십자가 수난은 구속 원리의 엄정함을 보여 줍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보면서 하나님께서는 굳이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는 방법으로 인류를 구원하셔야만 했는지 한번쯤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라 얼마든지 다른 방법으로도 인류를 구원하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막14:36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럼에도 굳이 십자가에서 죽는 방법을 택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에는 명백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의 십자가 수난을 통한 인류 구속이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속성을 만족시킬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시고 피조물의 대표인 아담과 선악과 언약을 맺으면서 이를 지킬 때에만 생명을 보장해 주시기로 약속하시고 만일 이를 어길 경우에는 필히 죽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아담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어기고 범죄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죽음은 필연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공의로우셔서 하나님이 정한 법과 말씀을 절대로 바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님은 절대 공의의 하나님인 동시에 절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일단 정하신 언약의 법대로 인간에게 죄의 책임은 지게 하면서도 그 죄를 범한 인간이 죄를 회개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 다시금 영생을 얻을 새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대속의 법을 충족시키는 그 누군가가 인간을 대신하여 죽어 언약의 법에 따라 죄의 대가를 치르는 대신 인간은 회개하면 다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구속의 원리를 인간의 범죄 이후 새로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그 대속 희생 제물이 될 자와 그 대속 희생 제사를 집전할 자 각각은 먼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은 흠이 없어서 전적으로 타인의 죄를 담당할 수 있는 완전한 인간이어야 했고,
또 반대로 인류에게 하나님의 완전한 용서를 보증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자신이셔야 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양쪽 모두에게 완전한 중보자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인 동시에 인간이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먼저 인간인 자가 하나님이 되거나 전적 타락한 인간이 완전한 제물이 될 수는 없는 것이므로, 먼저 하나님이신 분이 완전한 인간이 되시고 완전한 중보자이시고,
제물로서 구속 사역을 감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성육신 하시어
하나님인 동시에 인간이 되어 십자가에서 대속 희생을 치르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은 구속 원리의 엄정함을 보여 준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는 역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는
누구도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명백히 보여 준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의 십자가를 볼 때 우리의 죄악의 심각성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 수난을 당하셔야만 했던 구주 예수님,
또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의 독생자마저 십자가에 내어주어야 했던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기억하면서 늘 감사하는 생활을 할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다른 구원의 길이 없음을 확신해야 하겠습니다.
행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벧전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홈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이 세상에는 아무 생각없이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들도 상당이 많습니다.
우리는 이 둘 중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는 언제나 예수의 생각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생각하시고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가를 항상 생각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예수님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아야 하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람을 대해야 합니다. 우리의 존재 가치는 예수와의 관계에 전적으로 달려 있으므로 우리는 예수님에게 집중해야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을 더 의식하고, 재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거나,
자신의 위치를 세우기에 급급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오직 주의 영광을 들어내는 삶을 사시기를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죄인 된 저희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은 스스로 자원하여 피조물인 인간의 손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히셔서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을 사랑하여 인간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으나 인간으로부터도 하나님으로부터도 철저하게 버림을 받음으로 정신적인 고통은 더 견디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조금만 고난과 고통을 겪으면 불평하고 원망하는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오늘 말씀을 동하여 예수님의 고초와 고통에 비하면 저희들의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 알고 어떤 힘듦과 어려움이 닥친다 하더라도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잘 참고 견뎌내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