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71:5~6 주 여호와여 주는 나의 소망이시요 나의 어릴 때부터 의지시라.
내가 모태에서부터 주의 붙드신바 되었으며
내 어미 배에서 주의 취하여 내신바 되었사오니 나는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나의 소망이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죄악 가운데 저를 택하여 주시고 지금껏 은혜 안에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날이 더할수록 분명하고도 확실한 믿음으로 주님만을 바라보며 주님만을 의지하며 천국가는 그날까지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살아가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찬송가 468장 내맘에 한 노래 있어, 요한복음 15장23-25절.
23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
예수님을 미워하여 죽이려고 하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선민이라 자부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하나님을 잘 알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자랑하지만
실재로는 하나님을 미워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그들의 말과 삶을 살펴보면 하나님에게 속하지 않고 마귀에게 속한 자들이었으며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였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전혀 없었던 것이다.
오직 자신의 배만 채우고 남들에게 높아지기만을 바라며 살았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이
이 지식과 마음을 가졌더라면 하나님과 하나이신 예수님을 배척할 수가 없을 것이다.
오늘 이 시대에도 신자라고 하는 종교인들도 마찬가지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겉으로는 교회를 다니고 예배에 참여하여 말씀을 들으면서도 말씀과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몰래 불법을 저지르며 자신의 이속을 챙기기에 급급할 뿐이다.
결국은 가면이 벗져지고 그런 사람들로 인하여 교회와 성도가 욕을 먹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전도의 문을 막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알지도 못하고 믿지도 않고 말씀을 따르지도 않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대하는 태도에서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눈에 보이셨던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으나 죄인을 위하여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또한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하나님은 동일한 신성을 지니신 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에 대한 각 사람의 태도에 따라 그 사람을 판단하시어 상이나 벌을 내리시는 것이다.
24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저희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면 저희가 죄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저희가 나와 및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유대인들 중에서도 율법학자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제사장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나타내어 알게 할 책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도리어 예수님을 미워하고 죽이려고 애쓰다가 결국 죽였다. 그들이 하나님께 대해 적대적임을 결정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예수님을 향한 그들의 적개심은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신앙과 경건이 얼마나 허구적인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드러낸 것에 불과하다.
그들의 실상이 이와 같았으므로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놀라운 일들을 보고서도
예수님을 인정하거나 받아들이기는커녕 제거하고자 힘쓴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의 비유에 등장하는 악한 농부들이었다.
그들은 포도원의 주인이 보내는 종들을 심히 때리거나 돌로 쳤으며,
주인의 상속자인 아들이 오자 주인의 유업을 차지하고자 그를 죽인 반역자들이었던 것이다.
예수님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하나님을 향한 반역 의지를 여실히 드러낸 것이며,
이 일이 증거가 되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성도인 우리는 하나님에게 구원과 은혜를 받기만 하고
아무런 일을 하지 않는다면 예수님에게 책망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22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선포한 말씀이 신적 권위를 지닌 말씀이라는 것을 암시하셨으나 24절에서는 예수님이 하신 일을 아무도 못한 일이라 하신 것은
예수님이 신적 권위를 갖고 계신 분이라는 것을 밝히신 것이다.
여기서 아무도 못한 일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들을 말한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들은 예수님께서 자연 법칙의 제한을 받지 않으시는
신적 전능함이 없으면 행할 수 없는 일이었다.
따라서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시고 동시에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시라는 것을 믿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인정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죽이고자 했던 것은
그들이 얼마나 패역한 자들이었는지를 너무나 분명하게 증거하고도 남는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이적들이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역사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적들을 일으키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과 그리스도로 믿기는 커녕 오히려 배척하며 핍박하였다는 것은 그들이 이제 더 이상은 무죄를 주장할 수 없다고 예수님이 선언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는 두렵고 떨리는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오히려 두려운 심판의 기준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말씀을 단지 유대인들에게만 적용되는 말씀일까요? 아닙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은혜를 가벼이 여기면 책망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유대인의 심판 속에서 반드시 새겨야 할 교훈이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든 인류가 죄 가운데 살다가 결국 사망으로 멸망하게 되는 것을
불쌍히 여기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대속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는 것을 깨닫고 증거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인간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은혜를 받은 것으로 만족할 뿐
그에 따른 책임과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습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치듯 은혜가 넘칠수록 책임과 심판의 무게도 더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토록 비참하게 멸망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들이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많이 받은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것을 지적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되 그 은혜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주신 은혜와 축복으로 끝나지 않고 최소한 하나님을 높이는 간증이라도 해야 합니다. 거기에 더하여 하나님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은혜 받은 것에 합당한 삶을 살면 더욱 풍성한 은혜를 베푸시나
은혜를 받아먹기만 하면 더 이상 은혜를 베풀지 않으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25 그러나 이는 저희 율법에 기록된 바 저희가 연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 니라
저희가 연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하신 말씀은 예수님께서는 시편35:19과 69:4에 기록된 다윗의 시를 인용하시며 예수님의 죽음이 무고한 자의 죽음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오늘날의 법 이론을 비추어 보아도 예수님은 무죄로 판명됩니다.
또한 당시의 로마법에 비추어 보아도 분명히 예수님의 십자가형은 무고한 재판이었습니다.
현대법에도 무죄 추정의 원칙에서 죄를 입증해야 합니다. 죄의 증거가 없으면 무죄입니다.
그런데 복음서의 기록을 봐도 어느 누구도 예수님의 죄를 입증하지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고발한 자들의 주장이 엇갈림으로써 거짓이 들어 났습니다.
그리고 재판장은 정확한 증거가 없이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에게 유리하게" 판결하는 것이
대원칙입니다. 이 원칙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로마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의 무죄를 알면서도
유대인들의 압력에 못 이겨 십자가형을 언도하고 만 것입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불법재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을 고백할 때마다
예수님께서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셨다고 신앙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땅에서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죽기까지 순종하시다
십자가에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신 예수님을 하나님은 지켜보기만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결과적으로 볼 때 예수님을 부활 승천하게 하시고 천하 만물이 예수 이름에 무릎 꿇는
가장 높은 보좌에 앉히심으로 예수님을 무한히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로 인하여 세상에서 무고하게 고난 받는 자를
하나님께서 장차 어떻게 보답하실지를 보여 주는 가장 분명한 예표가 되기도 합니다.
이 땅에서 그리스도로 인하여 무고히 고난 받는 자에게는 하늘의 놀라운 보상이 주어집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 땅에서 당하는 고난과는 비교할 수 없이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위해 무고히 고난 받는 자들을 하늘 보좌에 앉히시고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을 심판하는 권세를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무고히 고난 받는 것을 결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또한 믿음과 신앙으로 인하여 작은 물질을 손해 보고 자존심이 상하여도 슬퍼하거나 낙심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계시며 하늘의 놀라운 상급으로 갚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이 땅의 악한 인간들도 무고히 재판을 받아 무죄가 입증된 자를 위해
형사 보상 제도라는 것을 만들어 보상해 주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늘의 완전한 입법자이신 의로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인해 무고히 고난 받는 자를 그냥 내버려두시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갚아 주십니다.
놀라운 축복으로 그 모든 것을 갚아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로 인하여 고난 받는 자처럼 복된 자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받는 고난은
복으로 들어가는 관문이고 고난이 크면 클수록 영광 또한 크다는 것을 깨달아
고난이 닥쳤을 때 오히려 더 감사하고 찬양하는 우리가 되기를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나를 미워하는 것은 예수님을 미워하는 것이고 예수님을 미워하는 것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삶 가운데 돌이키지 않는다면 그에 합당한 심판을 받고 사망에 이르게 되고 지옥으로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또한 저희들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엄청난 복과 은혜를 받아 누렸으면 날마다 하나님에게 감사 찬양 드리고 하나님이 나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다른 사람들에게 간증하고 하나님에게 받은 은혜를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어 주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복과 은혜를 헛되이 하거나 가벼이 여기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세상에서 주의 이름으로 인하여 받는 핍박과 고난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회복시켜주시고 더 풍성하게 되갚아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주의 이름으로 인한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고 강하고 담대하게 선포하며 나아가는 저희들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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