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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요15:7-8)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66:1~4 온 땅이여 하나님께 즐거운 소리를 발할찌어다. 그 이름의 영광을 찬양하고 영화롭게 찬송할찌어다. 하나님께 고하기를 주의 일이 어찌 그리 엄위하신지요 주의 큰 권능으로 인하여 주의 원수가 주께 복종할 것이며, 온 땅이 주께 경배하고 주를 찬양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이다 할찌어다.

하나님아버지, 저희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찬송하고 영화롭게 찬송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행사는 엄위하시어 크신 권능으로 우리의 모든 대적을 물리치시고 승리케하시니 경배하고 찬양합니다.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요한복음 157-8.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9절에는 두 가지의 사랑이 나온다. 먼저는 하나님이 예수님을 사랑하신다는 말씀이 나오고 이어서 예수님은 우리 성도를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은 예수님이 성도에 대한 사랑의 모델이 된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사랑하신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사랑하시고 동일한 정도로 사랑할 뿐 아니라 하나님이 예수님을 사랑하였으므로 예수님께서도 성도들을 사랑한다는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말씀이 아닐 수 없다.

삼위 일체 하나님 사이에 있는 신적 사랑이 우리 인간을 향한 사랑에 있어서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은 피조물인 인간으로서는 너무나 감격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9절에서 두 번 사용된 ‘사랑하다’의 뜻은 모두 무조건적이며 이타적인 신적 사랑을 뜻한다는 사실과 더불어 결정적이며 불변함을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예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는 예수님 안에 거하여야 한다.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는 말씀은 ‘내가 소유하고 있는 그 사랑 안에 거하라’ 는 말씀이고, 사랑은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사랑을 강조하시면서

제자들에게 그 안에 거하라 머물러 있으라고 하시고 예수님 안에 살아라고 하셨다.

그러면 예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인가?

첫째는 예수님의 사랑이 지닌 특성에 대해 말씀드리면,

예수님의 사랑은 조건이 없는 사랑이며, 자기를 희생하는 사랑이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먼저 베푸는 사랑이다. 이뿐 아니라 변함이 없고 또 영원히 지속되는 사랑이므로 누구든지 그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는다. 목마른 사람(55:1),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이들(11:28)을 포함한 세상 모든 사람들이 바로 예수님께서 부르시는 대상이다.  예수님의 사랑은 결코 조건적이지 않다.

2:11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니라.

고전1:26-31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 세상의 약한 것들을,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신다.

둘째는 우리가 얻은 구원이 지닌 영원한 효력이다.

예수와 연합한 자들,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는 자들은 이 특권과 축복을 아무 에게도 빼앗기지 않는다. 주께서 이 관계를 끊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의 관계가 영원하듯이 그리스도와 성도의 사랑의 관계 또한 영원하다.

따라서 ‘아가페’ 사랑이 지닌 가장 두드러진 특정은 이해나 조건이 전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하나님의 사랑은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세상적인 사랑과 거리가 멀다.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앞선 9절에서 예수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모델로 하여 성도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주고, 제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사랑 안에 거하라고 명령하셨다.

그런데 10절에서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제자들도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어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라고 명령하시고 있다.

10절에서도 앞서 9절에서 설명한 것처럼 예수님의 계명 준수를 성도의 계명 준수의 모텔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성도의 삶의 모델이 됨을 부각시키고 있다.

우리가 진정 본받을 수 있는 삶의 유일한 표준은 바로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히 준수하는 삶을 사신 그리스도이시다.

우리가 예수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있는 전제조건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복종하심으로 이 일에 본이 되셨다.

성경은 빌 2:8 예수님이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고 증거하고 있다.

성도가 예수님의 사랑 가운데 거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복종하여야 한다.

말씀의 순종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왜 순종이 어렵냐 하면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것을 추구하며 살면 말씀에 순종하기 어렵다. 하지만 영적을 것을 추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리라고 다짐하는 사람은 순종이 어렵지가 않다.

 

11절에서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1~10절의 참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통해 교훈을 주신 목적이 제자들 속에 기쁨이 충만하도록 하기 위한 것임을 밝힌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들의 삶 가운데 나타나는 두드러진 특정 중에 하나가 기쁨이 충만하다는 것이다. 성도는 기쁨의 사람이다. 그래서 신학자 바클레이는 ‘그리스도인은 웃음을 지니고 있는 그리스도의 기사이며,침울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이라 부를 가치 가 없다’ 고까지 말하였다. 바울은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의 특정을 잘 보여 주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항상 기뻐하는 것이다(살전5:16). 

바울은 옥중에서도 기뻐했고(16:25),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도록 성도들에게 권하였다(4:4). 

기쁨은 성령이 충만한 사람, 곧 예수와 연합한 사람들의 삶 속에 나타나는 열매들 중에 하나이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 행복한 사람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확 인하게 된다. 이것을 통해서 모든 사람은 기쁨의 상태가 충만하게 되는 삶을 얻게 된다.

이것은 순간적으로 기뻐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이 기쁨 가운데 거하는 사람인데, 예수와의 연합이 아니고서는 이것을 기대하기가 불가능하다.

이 기쁨이 세상적인 것과 다름은 예수께서 주시는 기쁨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그분이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평안과 마찬가지로 이 기쁨도 예수님의 것, 즉 하늘에 속한 것이요 사람이나 그밖에 어떤 것들이 빼앗아 갈 수 없는 특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기쁨을 소유한 이들은 일이 잘 되고 어려움이 없을 때만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과 환난이 사방으로 둘러싸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역시 기뻐한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이들은 반드시 이 기쁨을 소유하도록 힘써야 한다.

마음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나 마음의 즐거움은 이 세상 어떤 약보다도 좋은 보약이 되어 그 사람의 얼굴을 빛나게 한다. 근원적인 기쁨인 예수의 기쁨이 자기 안에 있는 사람이라야 진정한 의미의 행복을 말할 수 있다.

우리는 과연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고 그 사랑으로 기쁨이 넘쳐날 수 있을까요?

‘아니, 연약한 인간이 예수님의 사랑을 어떻게 실천한단 말인가?

그리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힘든 일인데 어떻게 기쁨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뿐만 아니라 사랑의 실천은 희생과 봉사가 따르고 힘듦과 어려움이 따르는데

그것이 어떻게 기쁨이고 행복이란 말인가?’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물고기는 물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듯이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지 않으면 열매 맺을 수 없고, 장작불의 재료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인 경우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삶은 심판 만이 기다릴 뿐입니다.

예수님과 동행하지 않는 세상적인 기쁨과 즐거움은 죄만 만들어 갈 뿐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그 사랑 안에 거할 때에만 기쁨과 행복이 보장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 자유의 구속이며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것이 짐이라고 여겨 벗어나려 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은 어거스틴의 말처럼 결코 하나님을 떠나서는 참된 안식과 기쁨을 얻을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진정한 기쁨과 감동은 세상 쾌락을 추구할 때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할 때 맛볼 수 있는 것이며 진정한 자유 역시 진리 가운데 행할 때에만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만일 우리가 진정한 자유와 기쁨을 원하거든 육신의 정욕을 따라 행동하지 말고 먼저 십자가의 피로 죄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최선을 다하여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면 땅에서도 죄와 사망에서 해방된 참된 영적 자유와 함께 사랑을 실천한 자만이 맛볼 수 있는 기쁨을 체험하게 될 것이며, 장차 천국에서도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자유와 기쁨 속에서 영원한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통해

그리스도와 성도의 존재와 연합에 대한 심오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비유를 통해 주시는 예수님의 명령은 참으로 간단명료 합니다.

즉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그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삶의 형통함과 충만한 기쁨을 얻으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축복과 기쁨의 비결을 그 어떤 다른 곳에서 찾으려 하지 말고

이 말씀 속에서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 머물며 그 사랑을 실천하는

우리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약속대로 우리의 기도에는 형통함이 있을 것이고

삶은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으로 넘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려면 부모님과 함께 살아야 하듯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면 하나님과 함께 살아야 하고 자녀가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 주시는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당연하듯

우리의 생명의 주관자 되시고 모든 것이 은혜 가운데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귀의 꾀임에 빠져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삶을 살게 되면 불행의 연속이고 심판의 길을 걷는다는 것과 하나님 안에서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삶이 인생 최대의 기쁨과 행복이라는 사실을 다시한번 깨달아 알고 우리와 우리의 자녀손들이 인생을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