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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요15:20-22)죄를 핑개할 수 없어요

70:4~5 주를 찾는 모든 자로 주를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모하는 자로 항상 말하기를 하나님은 광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오니 여호와여 지체치 마소서.

하나님 아버지, 저희 심령을 가난하고 궁핍하게 하시어 주님을 찾게 하옵시고, 저희 기도를 들으시고 지체하지 않으시고 속히 임하시어 저희를 도우시고 건지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이 저희에게 오시지 않으면 살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날마다 주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며 살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찬송가 512장 내 주 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 요한복음 1520-22.

 

20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터이라

20절에서 예수님은 내 말을 기억하라 하셨다. 무엇을 기억하라 하셨나?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제자들이 받을 핍박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고,

제자들이 받을 핍박은 예수님이 당하신 핍박보다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그런데 20절 하반절에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터이라 라고 하신 말씀은

세상으로부터 핍박만 받게 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이 있었던 것처럼

제자들이 전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고도 하셨다.

그러나 18-21절이 제자들이 세상에서 받을 핍박에 대한 예언이란 점에서 볼 때

20절에서 보다 강조되는 것은 제자들도 예수님과 동일한 핍박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기억하라 로 시작되는 20절의 말씀은 비록 예수님이 세상을 떠난 후 핍박을 당하더라도 절망하지 말며 두려워하지 말라는 당부의 말씀이다.

예수님의 이 예언은 요한복음이 기록될 당시 핍박 받고 있던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비록 고난 가운데 있었으나

그들이 당하는 고난은 오히려 예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하는 것이었으며,

또한 자신들이 전하는 말씀이 결실을 맺을 것을 확신할 수 있었을 것이다.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고 하신 말씀은 참으로 당연한 말씀입니다. 

종이 아무리 높아져도 주인보다 높아질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문제가 되는 것은

많은 성도들이 이 평범한 진리를 잊어버리고 자꾸만 높아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머리 둘 곳조차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종들은 지금 하나님이 자신에게 맞는 집을 주셨음에도 감사하지 않고

더 크고 더 좋고 더 화려한 집을 주시기를 원하고 그것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한숨짓고 불평한다는 것입니다.

또 우리의 주님은 때로 아침에 드실 것이 없으셔서 길가의 무화과나무의 열매로 허기를 채우려 하셨고, 때로는 바쁜 사역으로 식사하실 겨를도 없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고자 작정한 성도들은 하루 세끼 식사를 하는 것만으로도 감사기도 하고 먹어야 하는데, 감사하지는 않고 좀더 새롭고 특별하게 맛있는 비싼 음식을 먹기를 원하고

세상 사람들에 비해 잘 먹지 못한다고 한탄하곤 합니다.

그뿐아니라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길을 걸어다니셨고

어린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좀더 비싼 고급 승용차를 가지지 못하여 불평하고

심지어 예수님은 일생을 험한 가시밭길을 걸으셨는데

예수님의 종이라 큰소리 치는 목회자들이 꽃 길만 걸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은 우리의 주인 되신 예수님께 엄청난 핍박을 가한 곳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종 된 우리들이 세상에서 핍박은 고사하고 좋은 대접만 받으려해서 되겠습니까. 우리는 이 세상에서 잠잘 곳이 있고, 매 때마다 먹을 것이 있고 철마다 갈아입을 옷이 있다면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마땅합니다. 만일 이보다 더한 것들을 바란다면 그것은 지나친 욕심입니다.

우리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께서는 가장 큰 선을 행하시고도 평생 세상으로부터 수모와 핍박을 받으시고 결국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행하신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작은 선행하기조차 힘들어 하는 우리들이 예수님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으려 해서야 되겠습니까?

예수님의 종으로서 예수님의 손발일 뿐인 우리는

머리 되신 예수님이 받으신 핍박과 고난을 생각하며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

우리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감당하고 주어진 사역을 잘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21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을 인하여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니라

21절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당하게 되는 이유는 주님의 이름 때문이고,

이것은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에 대한 사람들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셨다.

성도는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핍박을 받는 사람들이므로 세상으로부터 내가 핍박을 받고 있다면

내가 예수님의 이름을 잘 드러내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피할 수 없고

또 피해서도 안 되는 것이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은 예수님의 인격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의 인격은 완전한 신성과 완전한 인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인간이신 동시에 완전한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러나 당시 유대인들은 이것을 이해할 수 없었고 또한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들의 이러한 영적 무지와 편견, 그리고 불신이 예수님을 아는데 큰 장애가 되어

예수님을 무조건 거부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말았는데,

이것은 근원적으로는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만약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았다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거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구약의 일부 내용만을 왜곡되게 받아들였기 때문에 하나님도,

그리고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도 바로 알 수 없었던 것이다.

21절 말씀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내신 자라는 자기 계시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자랑하면서도 실제로는 하나님에 관해 무지 한 자들이었다. (14:9) 예수님을 거부하는 모든 이들은 하나님에 대해 무지한 자들이라 하셨다. 

당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뿐 아니라 오늘날 역시 이 세계에는 예수님을 거부하는 이들이 너무나도 많은데,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님을 모른다는 것이다.

22 내가 와서 저희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앞에 18-21절은 제자들이 세상에서 핍박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고

22-24절은 제자들을 핍박하는 자들은 죄와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경고를 하셨다.

22절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거부한 자의 죄는 결코 핑계할 수 없다고 하신다.

“내가 와서 저희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고 하신 것은 율법이 있기 전에는 죄를 알지 못하였으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죄를 알게 되었다는 사도 바울의 고백과 유사합니다.

그런데 22절에서 예수님이 저희에게 하신 말씀은 그 원리에 있어서는 율법과 마찬가지이나

그 결과에 있어서는 율법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두려운 것입니다.

예수님의 오심과 함께 각자의 죄를 비롯한 모든 것이 밝히 드러났으므로 구원의 길을 외면하고 그릇 행한 사람들은 그 책임을 면할 방법이 없어진 것이다. 이제는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는 모든 사람이 알지 못하던 시대 속에 있었으므로

하나님께서 허물치 않으셨으나 이제는 다르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이미 선포하셨기 때문에 예수님께로 오기를 거부한 사람들은

그 죄에 따르는 책임을 고스란히 떠맡게 되고 만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율법에 따라 심판을 받지 않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을 믿는지의 여부에 따라서 심판을 받게 된다.

주님이 땅에 오사 진리를 밝히 선포하심으로

이제 그 누구도 죄에 대하여 핑계나 변명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복음을 증거하며 죄의 용서를 전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는 지금껏 법과 양심을 지키며 살아왔고 또 세상 사람으로부터 욕먹을 짓을 한 번도 하지 않았는데 어찌 내가 죄인이냐?’ 라고 말하며 화를 내곤 합니다. 하지만 법이란 무엇입니까?

인간이 지켜야 할 도덕과 윤리 가운데 객관적으로 인정된 것만을 모아 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법은 도덕의 최소한의 요약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또 그런가 하면 인간의 양심이나 세상의 여론이란 어떠합니까? 

과연 인간의 양심이 그토록 믿을 만하며 세상의 평판이 절대적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의 절대 다수가 부패하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옳다 한다고 진리가 아닌 것입니다.

누구도 자신은 선하고 의롭게 살았으므로 예수를 믿지 않았다는 이유로 심판을 받는다면

하나님께서 의롭지 못하시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과연 이 말이 정당성을 가질 수 있을까?

성경은 이 세상에 의인은 하나도 없다고 하셨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으며,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것만이 죄 문제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인 것이다. 

이 믿음을 가진 이들은 누구라도 하나님의 은혜와 약속에 참예하게 되나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구원받을 길이 없다. 하나님의 자비가 미치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로 제한 되어있다.

따라서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을 거절하는 사람들은 심판을 기다리게 될 뿐이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사소한 일처럼 보이지만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이것에 의해 좌우된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이 정해 주신 절대적인 법을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아울러 우리 모든 성도들은 완전하신 예수님을 닮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우리 또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답게 거룩하고도 온전한 삶을 살아

세상의 부패를 방지하는 소금이 되고 어둠을 밝히는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제자는 세상에서 핍박을 받아야 하는데 핍박은 고사하고 사람들에게 대접 받고 풍족하고 평안한 삶만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말하면 상대가 싫어하고 공격할까봐 예수님의 이름도 꺼내지 못하는 연약한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에게 성령충만함을 더하여 주셔서 세상을 향해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을 강하고 담대하게 선포하게 하시어 건질자를 건지게 하시고 대적자에게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