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119:98-100 주의 계명이 항상 나와 함께하므로 그것이 나로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내가 주의 증거를 묵상하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승하며
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승하니이다
하나님 아버지! 악한원수 마귀가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하여 온갖 계략을 다 부리지만
저희들이 항상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한다면 넘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마귀를 물리쳐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주시는 교훈과 하나님이 주시는 법을 지킨다면
이 세상의 그 어떤 학자와 박사에게 배우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이해하게 되며
더 지혜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오늘 이 새벽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지혜를 배우기를 원하오니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듣고 행하게 나이다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찬송가 , 요한복음 11장21-절
1. 우리는 살아있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21-27절은 베다니에 오신 예수님과 마르다 사이의 대화 내용입니다.
이 대화를 통해 우리는 마르다의 신앙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21절을 보시면 마르다는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계시지 않아 오빠가 죽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마르다가 예수님께서는 죽어 가는 자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믿었음을 의미합니다.
22절에서는 이제라도 예수님께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주실 줄 믿는다고 하였으며, 또 27절에서는 마지막 날의 부활도 믿었고,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인 것도 믿는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하여 마르다는 참으로 훌륭한 믿음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 당시에 이렇게 훌륭한 신앙 고백을 한 사람은 베드로 밖에 없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마르다의 신앙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지식에 치우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마르다는 살아있는 믿음, 자신의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하며 체험하는 믿음을 가지지못하였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의 초월적 능력은 믿었으나 장소와 상황에 따라, 시간에 따라,
인간의 이성과 상식에 따라 제한하였던 것입니다.
마르다는 분명히 당시 어떤 사람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고 있었으며
어떤 질병이라도 능히 고치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고 있었으나,
예수님이 지금 죽은 나사로를 그것도 나흘이나 지나 썩은 냄새가 나는 사람을 다시 살리실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고, 그 엄청난 기적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르다가 가진 신앙의 한계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원하시면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역사하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면 기적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들 역시도 마르다처럼 예수님의 전능하심을 믿지만 현실 문제에 부딪치면
그러한 신앙을 드러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이런 화석화된 신앙을 깨어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 어떤 환경에서도 예수님께서 우리의 이해와 사고를 초월해 역사하시고
우리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이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초월적인 능력과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이며
어떤 상황과 순간에도 담대함을 잃지 않게 될 것입니다.
2. 예수님은 기도하지 않아도 되는데도 기도하셨지만, 우리는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입다.
22.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라고 마르다의 고백은 비록 오빠는 죽었으나 마르다는 지금이라도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구하면 오빠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24절에서 마르다가 마지막 날의 부활만을 고백한 것이나
제39절에서 정작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기 위하여 무덤에서 돌을 옮겨 놓으라고 했을 때
마르다가 이를 저지한 것으로 보아 마르다가 즉각적 부활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22절의 말을 하였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예수님께서 못하실 일이 없다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는 마르다였지만
이미 죽어서 썩어 냄새나는 자신의 오빠를 당장 다시 살려내 실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21,22절을 연결하여 해석해보면
예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하나님이 다 주시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만약 나사로가 죽기 전에 오셨더라면 나사로는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르다가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게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는 것은 마르다의 훌륭한 신앙을 보여주는 것이나, 꼭 구해야만 들어 주시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으로 믿는 믿음은 완전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마르다의 말은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기도하여야 어떤 것을 이룰 수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마르다가 그렇게 알게 된 것은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기간 동안 새벽 미명에 한 적한 곳에서
기도하셨고, 때로는 혼자 산에서 밤이 맞도록 기도하기도 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에게는 기도 생활이 습관처럼 몸에 배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기도해야만 어떤 것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기도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평상시에 기도를 하시고 기적을 일으키신 것이
구약의 모세나 사무엘이나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로 여겨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모든 기적이 예수님의 기도로 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기도를 하지 않으시고도 많은 기사와 이적을 일으키셨습니다. 그러니 마르다와 같이 예수님의 가장 가까운 성도이고, 여제자라고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예수님의 신성에 대해 완전한 신앙을 가지고 있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의 기도와 관련된 이 오해는 시급히, 그리고 반드시 시정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는 이제 곧 십자가를 지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시정하지 않고 십자가에 달리신다면 현재도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수님을 구약의 모세나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나 의인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기적을 통해 그것을 확실하게 입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기도하심으로써 비로소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어떤 일이든 능히 하실 수 있는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기도의 과정을 통해 나사로를 살리셨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까? 기도의 본을 보여주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엄청난 기적을 일으키실 때에는 기도하셨기 때문에
우리들도 하나님에게 기도해야 기적을 맛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기적을 바라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유명한 목사님이나
능력이 많은 부흥 강사님이 기도해야 기적이 일어난다고 믿는 것도 잘못된 믿음입니다.
내 믿음으로 내가 기도해도 기적은 일어납니다. 물론 의인의 중보기도도 역사하는 힘이 큽니다.
하지만 자신은 간절한 마음이 없고 기도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이 기도해서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어떤 분은 자기 자녀가 좋은 대학에 합격을 위해 기도부탁하고,
가족 중 누가 병에 들면 치유되기를 위해 기도를 부탁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기도하지 않고
새벽기도 한번 나오지 않는다면 과연 하나님께서 들어 주실까요?
중보기도해주는 사람보다 그 누구보다도 더 자신이 간절하게 기도해야 하고
하나님에게 부르짖어야 하고 포기하지 않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 말씀은 어린아이와 같이 순전한 마음으로 믿어야 기적이 일어납니다.
23.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지금까지 마르다의 말을 듣기만 하셨던 예수님께서 마르다에 하신 첫마디는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란 말씀이었다. 이 말씀은 마르다가 가장 간절히 바라고 듣고 싶은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마르다와 그녀의 가족이 가장 바라고 원하는 말씀이지만
마르다는 자신이 가장 듣고 싶은 말씀을 예수님이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죽었다가 다시 살아 돌아온다는 것은 이성적인 인간으로서는 믿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경험되어지고 객관적으로 입증되어진 것들 이외의 새로운 사실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마르다는 나사로가 즉시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도 중대하고 또 생소한 것이었던 것입니다.
오늘을 사는 지금 이 시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잘 알면서도
실제 자신의 생활에는 그 말씀을 그대로 적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제대로 받아들이는 방법은 지적 분석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믿음입니다.
주님의 말씀들에 대해서 분석이나 평가를 하기에는 우리의 지적 능력이 너무나 보잘것없으며
단지 우리가 주의 전능하심을 믿고 전적으로 의지할 때
비로소 주님은 그의 놀라우신 능력을 우리는 보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기적을 체험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말씀을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네가 기도한다고 세상이 변화되겠나 라고 생각하니 수요기도회에 나와서 나라와 민족과 세상 열방을 향하여 기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더라도 형시적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내가 기도한다고 질병이 치유되겠나 라고 생각하니 간절한 마음보다는 의심하는 마음이 더 크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내가 기도한다고 이 문제가 쉽게 해결되겠나 라고 생각하면서 기도하면
기도하면서도 근심과 걱정과 염려 가운데 기도하고 기도하고 나서도 개운하지가 않는 것입니다.
기적은 내가 일으키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누가 일으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일으키십니다. 우리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기도할 뿐입니다. 기도만 하면 되는 것이지 기적이 일어날 것인지 일어나지 않을 것인지 생각하지 말고 믿음으로 기도만 계속하면
하나님의 뜻이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불신과 교만과 판단을 버리시고 어린아이와 같은 순전한 마음으로 계속기도하시어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이 지금도 살아 계시어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이 죽은 신앙이 아니라 살아 역사하는 신앙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은 기도하지 안으셔도 되는데 기도의 본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기도하셨는데 우리는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임을 깨달어 항상 하나님 앞에 기도하되 말씀 그대로 순수하게 믿고 기도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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