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119:92-94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
내가 주의 법도를 영원히 잊지 아니하오니 주께서 이것들로 나를 살게 하심이니이다
나는 주의 것이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의 법도를 찾았나이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이 하나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세상 속에서 고통만 겪다가 죽어서 지옥으로 떨어질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 가운데 찾아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의 이유와 기쁨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저희들의 삶이 새롭게 되었습니다.
저희들은 결코 하나님의 은혜를 잊을 수 없으며, 이제 저희들은 구원하신 주님의 것이니
오늘도 저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기를 원하여 이 새벽에 나왔습니다.
저희들을 만나 주시고 말씀하여 주시고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찬송가 401장 천성을 향해 가는 성도들아, 요한복음 11장11-15절
1. 예수님은 우리의 친구가 되십니다.
11절에서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기 위해 가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나사로를 친구라고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이 나사로와 얼마나 가까우셨으면 친구라고 부르셨을까요?
나사로는 아마도 예수님과 비슷한 나이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눅10:38,42에서 보면
나사로는 자기의 집을 예수님의 휴식처로 제공하여 예수님이 편히 쉴 수 있도록 해 드렸다는 기록이 있고 또 마21:17에서도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계실 때 예수님의 숙식처로 삼으신 곳이 나사로의 집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사로 뿐만 아니라 그 누이들도 예수님을 아주 친밀하게 섬겼으며, 영적인 깊은 대화도 나눈 친구로 여기셨던 것입니다.
요15:13,14절에서 예수님은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대로 행하면 예수님의 친구가 되고
예수님은 친구인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목숨을 버리신 것입니다.
우리도 나사로처럼 예수님이 인정하시는 친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예수님의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우선 예수님의 생각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친구는 서로 생각하는 것이나 추구하는 것이 같아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서로의 생각이나 추구하는 것이 다르면 대화도 안 되고 함께 일 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주된 관심사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사랑 그 자체이십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누구를 사랑하셨습니까?
요3:16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을 사랑하셨고 그 창조물 중에서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듯이 우리 인간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사랑은 서로 사랑할 때 더 가치 있고 빛나고 진실한 사랑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만큼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주셨습니다.
막12:29-31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하시고 또 요13:34,35에서는 하나님의 자녀들 간에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그래서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는 그 은혜에 응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친구 사이는 서로 우정을 주고받는 사이입니다. 한쪽은 사랑을 베풀기만 하고
또 다른 한쪽은 사랑을 받기만 하면 그 둘의 사이는 친구관계가 지속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만약 우리가 예수님의 은혜만을 구하고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합당한 삶을 살지 않는다면 예수님과 친구관계가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에게 이미 받은 구속의 은혜에 대하여 항상 감사의 예배를 드려야 하며,
언제나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으로 사랑을 표현해야 하며, 또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여
충성으로 응답할 때 예수님과의 친구관계가 더욱 더 돈독해질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결국 예수님의 친구란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예수님의 말씀에 즐거이 순종해야 예수님의 참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과 진정한 친구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 성도들의 죽음은 잠자는 것과 같습니다
12절은 제자들이 나사로를 깨우러 가신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오해하였습니다.
제자들은 나사로를 깨우러 가시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나사로가 죽은 것이 아니라
다른 가벼운 병으로 잠자고 있는 상태로 오해했습니다.
그래서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라고 오해한 제자들의 말을 들은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시금 분명하게 14절에서 “나사로가 죽었노라”고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죽음을 잠든 것으로 여기십니다.
그래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은 것에 대해서도 잠자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세계속에 계시는 예수님에게는 죽음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육체적인 죽음이 영원한 죽음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영은 죽지 않도록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예수 믿어 구원받는 우리나 믿지 않고 지옥으로 들어가는 불신자들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머지않아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종말의 때에 모두 깨우실 것입니다. 이것이 첫째 부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5:28,29절에서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재림하셔서 잠자는 자들을 다 깨우시고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대 앞에 세우십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천국으로 들어가 영생을 얻게 하시고,
불신자들은 영원한 멸망의 심판을 받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는 이 세상에서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생으로 가는 과정일 뿐입니다. 그래서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복된 일입니다.
그것은 단지 잠시 동안 ‘잠들어 쉬는 것’ 입니다.
우리가 밤이 되어 일을 끝내고 편히 잠자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죽음은 예수님을 위해 수고하며 고난 받던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하늘나라에서 영생 복락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신자들처럼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더구나 충성된 우리의 죽음을 슬퍼하지도 실망하지도 마시고, 감사함으로 평안히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잠자고 있는 우리들을 다시 부활시켜 영원한 안식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14절에서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었다고 말씀하신 후 15절에서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함이라” 하시고 나사로에게로 가자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말을 전해 들으시고 즉시로 가지 않으시고는 내가 거기 있지 않은 것을 기뻐한다고 하셨습니다. 그것도 너희를 위하여, 제자들을 위하여 가지 않으셨고 제자들을 믿게 하려고 가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예수님은 나사로에게 가지 않아 나사로가 죽었고, 나사로를 죽게 내버려둔 것은
너희들로 믿게 하려고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현재 제자들과, 마리아와 마르다의 믿음으로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제자들과 마리아와 마르다의 믿음의 단계는 예수님이 함께 계시면 죽지 않는다는 믿음에 머물려 있습니다. 그리고 죽음은 비극이라는 기존의 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마르다는 예수님이 거기 계시지 않았음을 한탄하였습니다.
분명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에게는 죽음이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면 인간은 죽지 않습니다. 아무리 불치병에 걸린 자라도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면 죽지 않습니다. 그 당시 제자들도 그것을 믿었고, 마르다와 마리아 역시도 이 사실을 조금도 의심없이 믿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들이 모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 모르고 있는 사실을 제자들로 보고 믿게 하려 함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제자들만큼 예수님을 확실히 믿는 자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아직도 그들이 도달하지 못한 믿음의 분량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흉악한 귀신에 사로잡히고, 병마에 사로 잡힌 자라도 예수께서 함께하시면 죽지 않을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은 있었으나 죽은 자, 심지어 장사한 지 나흘씩이나 지나 썩어 냄새나는 자도 살리 수 있다는 믿음은 가지고 있지를 못하였습니다. 그때까지도 그들은 확실한 부활 신앙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3년동안이나 함께하였지만 그것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을 제자들이 분명히 알아야 하고 믿어야 할 때가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제 예수님이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이며,
그것을 믿는 모든 이들을 마지막 때에 예수님께서 친히 살리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신앙을 제자들과 후세 신앙인에게 보여주시기 위하여 나사로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놀라운 계시의 기적을 베풀 일을 앞두고 모든 사람들은 한탄하고 있을 때 예수님은 홀로 기뻐하셨던 것이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도 이런 부활 신앙을 확실히 믿고 감사하며 찬송하며 저 천성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갑시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저희들이 일생동안 주님을 친구로 삼고 살게 하여 주시옵시고,
성도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삶의 새로운 시작이며,
예수님은 우리의 부활이시고 생명이심을 믿어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는 이것을 저희들이 믿는 믿음을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저희들이 이러한 천국 신앙을 가지고 앞길의 장애를 두려워하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 천성길을 걸어가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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