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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우리의 모든 상황을 아시고 도우시는 예수님.

119:81-83나의 영혼이 주의 구원을 사모하기에 피곤하오나 나는 오히려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나의 말이 주께서 언제나 나를 안위하시겠나이까 하면서 내 눈이 주의 말씀을 바라기에 피곤하니이다. 내가 연기 중의 가죽병 같이 되었으나 오히려 주의 율례를 잊지 아니하나이다

하나님 저희들이 때로는 하나님의 기도응답을 기다리다가 지치기도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저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저희들에게 위로가 되긴 하지만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나 하며 기다리다가 저희들의 눈이 피로해졌습니다.

불에 그을린 가죽부대처럼 저희가 쓸모 없는 자 같이 여겨지지만

그래도 저희는 하나님의 법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이루어지게 하실 줄 믿고

오늘 이 새벽에도 나왔사오니 저희들의 예배를 받으시고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찬송가 492나의갈길 다가도록, 요한복음 111-

1. 우리의 모든 상황을 아시고 도우시는 예수님.

11장에서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이적을 보이셨습니다. 

나사로는 부모없이 마르다와 마리아, 두 동생과 함께 예루살렘근처 시골마을 베다니에 살고 있었으며, 3절에서 보듯이 나사로는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과 나사로는 어떤 인연으로 아는 사이인지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마리아와 마르다에 관한 내용은 녹10:38-42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집에 방문하셨을 때 마르다는 예수님을 대접하기 위하여 분주하였으나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 아래 앉아 예수님의 말씀만 듣고 있었습니다.

참다 못한 마르다가 예수님에게 다가와 동생이 저의 하는 일을 도와주라 하소서 하였으나

예수님은 마리아가 말씀 듣는 것을 좋아해서 택하였으니 그냥 두라고 하신 내용이 있으며,

그리고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후에 요12장에서 마리아가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자 예수님은 그것을 나의 장사를 예비했다고 칭찬을 하신 내용이 나옵니다.

이러한 정황을 통해 예수님과 나사로는 비슷한 나이로 아주 친밀한 사이였던 것 같습니다.

나사로의 누이들도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자라고 하였고

예수님 스스로도 11절에서 우리 친구 나사로라고 하셨습니다.

그러한 친밀한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나사로가 병이 들자 두 동생, 마르다와 마리아는

지체하지 않고 즉시 베레아 지방에 계신 예수님에게 오빠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사람을 통해 전하였던 것입니다. 성경은 나사로가 어떤 병을 앓고 있는지, 병명을 구체적으로 알려주지는 않았으나 매우 위독한 상태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나사로의 누이들은 ‘예수님 빨리 오셔서 저희 오라비를 고쳐 주세요’ 라고하지 않고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라고만 전하였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이렇게만 전해도 예수님이 다 아시고 도와 주시리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형편과 처지를 다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때로는 힘들고 지쳐 낙망하고 쓰러져 일어날 힘이 전혀 없을 때에 예수님은 우리 곁에 조용히 다가오셔서 우리를 도우시고 이겨낼 힘을 주시어 다시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예를 들어서 만약에 자녀 된 우리가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다면 그런 사실을 부모님이 알고 계신다면 그리고 충분히 도와줄 경제적인 재력이 있으시면 지체하지 않고 도와주실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자녀들이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어 살다가 힘든 일을 겪고 있을 때,

나에게 가진 돈이 없다면 집을 팔아서라도 자식을 도와주고자 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부모자녀 뿐 아니라 피를 나눈 형도 그러해야 하며, 또 피를 나누지 않은 친구라도

진정한 친구라면 친구가 도움을 요청할 때 두 말 않고 도와주는 친구가 참 친구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진정한 친구이며,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우리의 모든 처지와 형편을 다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마귀의 유혹에 빠져 물질적인 어려움을 겪든지, 원치 않는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던지,

이 험하고 악한 세상 속에서 여러가지 고난과 환란과 어려움을 당하고 있으면,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지켜만 보고 계시지 않습니다.

네 죄로 인한 고통이니 당하라고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양의 처지와 상태를 세밀하게 살피고 계시는 선한 목자이십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를 죄에서 건져 주시고 환란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인간은 얕은 지식으로 하나님을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항상 언제나

우리가 생각하고 판단한 것 보다 더 좋은 결과를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불행이나 큰 어려움을 만나 미처 하나님에게 간구하지 못하여도

그 처지를 잘 아시고 돌보아 주시고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힘들고 곤란한 일을 당하여 예수님께 간구하고 부르짖는다면

예수님께서 언제나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도와주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사로의 동생들이 예수님에게 빨리 오셔서 도와 달라는 간청을 하지 않고

병들었다는 말만 하였는데도 예수님은 친히 죽은 나사로를 살리러 가신 주님이신데

우리의 기도를 외면하시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리 큰 불행을 당할지라도 예수님께서 그 사정과 형편을 이미 아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고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위로자요 피난처 되신 예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환난에서 구해 주실 것입니다.

 

2. 예수님의 희생하심으로 우리는 구원받았습니다.

4-7절을 보시면, 예수님은 나사로가 병든 것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되게 하는 일이며

또 동시에 예수님에게도 영광을 얻게 되는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무덤에 있는 나사로를 살려 내시는 역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고 또 예수님도 영광을 얻게 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뜻은 예수님이 죽었던 나사로를 다시 살리시는 능력을 보이시어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인정하고, 예수님을 존경하고 칭송을 한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무덤에 들어가신 후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실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도 요한이 요12:16에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승천을 ‘영광을 얻으신’ 것이라 한 말씀에서 증명되기도 합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나사로의 부활 사건 이후 십자가 죽음을 준비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려 내시려고 “유대로 다시 가자"고 하신 말씀 속에는

나사로를 다시 살리심으로써 예수님에게 죽음이라는 결과가 온다는 것을 아시고,

사랑하는 나사로에게 부활의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기 위하여 죽음을 각오하셨듯이

죄인 된 우리를 지옥의 심판에서 건지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친히 오르신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놀라운 구원의 은혜 속에는 죄인을 살리시려는 예수님의 한없는 사랑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친히 고난의 길을 걸으시고 자신을 희생하신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죄사함 받고 의롭다 칭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우리는 그 은혜를 믿음으로 거저 얻었지만, 주님은 그 은혜를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영광을 다 버리시고 낮은 죄인의 모습으로 이 죄악 많은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지 우리는 다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예를들어 우리가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입장에선 우리는 하나의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쓰다가 망가지면 버리는 피조물로 여기지 않으시고 자신의 생명을 바쳐 고쳐 주시는 사랑은

엄청난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은 거룩한 하나님이 죄인 된 피조물인 우리 인간의 처지로 오신 것 만으로도

말할 수 없는 수모이고 자기비하인데, 그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이 땅에서 33년 동안 편히 주무시지도 맛있는 것을 배풀리 드시지도 않았고 한 벌 옷과 낡은 신으로 사시면서

어리석은 백성들에게 천국 복음을 가르치며, 귀신을 쫓아 주시고, 병든 자를 고쳐주시고,

죽은 자를 다시 살리며, 죄인들을 회개케 하시는 사역을 쉬지 않고 감당하시다가 끝내는 제자의 배반으로 십자가 처형에 넘겨져 온갖 수모와 고통을 당하시고 목숨까지 희생하신 것입니다.

그것도 자신의 피조물인 인간에게 멸시천대 받으며, 조롱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머리엔 가시 면류관, 손 발엔 대못이 박히는 극한의 고통을 받으시다가 끝내는 옆구리에 창에 찔리시고 온갖 물과 피를 다 쏟으신 후 죽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받은 천국 구원의 은혜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눈물과 땀과 피가 서려 있습니다. 또한 자기 목숨을 내어 놓는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큰 희생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살아 가고 있습니까? 우리의 삶이 주님의 그 크고 놀라우신 은혜와 사랑에 눈곱만큼이라도 보답하며 살아 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이러한 주님의 사랑과 희생을 잊지 말고 그 은혜를 소중히 여기고 늘 감사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헛되게 하지 말고 예배의 삶을 살고 기도의 삶을 살고 사랑의 삶을 살고 순종의 삶을 살아감으로 주님의 은혜에 보답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새벽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 드립니다.

저희를 구원하시기 위해 흘리신 예수님의 땀과 눈물과 피를 잊어버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외면하거나 모른체하거나 배신하는 모습들이 우리 그리스도인 가운데 얼마나 많이 나타나고 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을 따라 헛되고 헛된 세상 연락을 즐기며,

아무런 의미없이 욕심을 따라 눈으로 보고 입으로 먹고 마시고 몸으로 노는 일에 허송세월하는 것이 바로 그러한 모습입니다. 마귀의 유혹에 빠지지 말고 모든 세상적인 욕심들을 다 내려 놓고 오직 주의 나라와 주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험하고 악한 세상 속에서 주님 말씀 따라 살기 위하여, 주님의 뜻을 이루어 가기 위하여 몸부림치며 살아가는 주님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예수님은 다 지켜보고 계시고, 모든 것을 다 아시며, 위로하여 주시고 새 힘을 주시어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하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