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119:96-98내가 보니 모든 완전한 것이 다 끝이 있어도 주의 계명은 심히 넓으니이다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주의 계명이 항상 나와 함께하므로 그것이 나로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하나님 아버지 이 세상에서 인간이 보기에 아무리 완전한 것이라 해도
그것에는 다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만은 끝이 없고 영원합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하나님을 한없이 사랑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하루 종일 묵상하기를 원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항상 저희들에게 있기만 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지혜로 악한 원수 마귀를 다 물리쳐 이겨낼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새벽에도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을 받기를 원합니다.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찬송가 355장. 부름받아 나선이몸, 요한복음 11장16-21절
1. 주를 위한 용기는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기 위하여 다시 유대로 가자고 하셨을 때
다른 제자들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죽이려고 하기 때문에 두려워하여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16절을 보시면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라고 하며
예수님과 함께 행동하기로 결심을 굳혔고, 다른 제자들에게도 함께할 것을 권하였습니다.
도마가 목숨을 걸고 예수님과 함께 가겠다는 결의는 칭찬할 만하지만
죽으려고 가자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나사로는 이미 죽었고, 바리새인들이 예수님도 죽일 것이니 우리도 주를 따라 죽자는 뜻입니다.
도마는 예수님께서 유대로 올라가시는 이유를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아직까지는 도마를 비롯한 모든 제자들에게 부활 신앙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위험에 처해 있는 스승에 대한 의리와 의협심으로 따라가자는 것입니다.
그에 반해 예수님은 죽음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심으로
부활의 진리를 제자들에게 가르치시어 제자들의 믿음을 굳건히 세우려 하셨습니다.
하지만 도마가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릴 것이라는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였지만,
예수님이 가시는 곳이 죽음의 길이라 하더라도 따르고자 하는 그의 믿음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왜 예수님을 따라가고 있습니까?
돈을 위해서 따라가고 있습니까? 건강을 위해서, 복된 삶을 살기 위해서, 천국가기 위해서,
예수님이 그저 좋아서 따라가고 있습니까?
그 이유와 목적에 따라 우리가 예수님과 끝까지 동행할지 아닐지가 결정되기도 합니다.
부를 위하여 예수님을 따라갔다가 부를 주시지 않으면 떠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병을 고쳐 주지 않는다고 예수님을 떠나고,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예수님을 떠난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목적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으러 가자고 큰 소리친 도마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 형을 받기 위해 골고다 언덕을 오르실 때 도마는 무서워 숨어 있었습니다.
우리의 각오와 결단은 믿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성령의 도우심과 성령의 인도하심과 성령의 역사하심을 바라는 것뿐입니다.
도마는 후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뵙고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라고
고백하였고, 성령 충만함을 받아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였습니다.
우리도 도마처럼 주님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리라는 각오와 결단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성령 충만함을 받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끝까지 주님과 동행해야 하겠습니다.
2. 예수님은 죽은 자에게 새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17절에서 예수님은 마침내 나사로가 있는 베다니에 도착하셨습니다.
그러나 나사로는 이미 죽어 장사 지내고 무덤에 있은 지 나흘이나 되었습니다.
죽어서 장사 지낸 사람이 간혹 되살아나는 예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최소 삼 일을 기다렸다가 장례식을 치릅니다.
그러나 나흘이 지나 시신이 부패해진 나사로에게는 생명에 대한 희망이 전혀 없는 상태였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산 자보다 나사로처럼 죽은 자들이 더 많습니다.
이미 죽어서 무덤 속에 있는 사람들도 있고,
사단의 권세에 붙잡혀 그 영혼이 죽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베다니와 약 3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가까운 곳에 있는 예루살렘에 거하는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인본주의 종교와 인간의 탐욕 속에서 행하는 그들은 살았다 하나 죽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셨듯이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것처럼 영이 죽은 자들이
영이 죽은 자들을 영생의 길로 인도한다고 하면서 실상은 죽음의 길로 끌고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나사로의 죽음에 대해 슬퍼하기만 할 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조문객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애타게 같이 슬퍼해 주고 위로해 줘도 죽은 자를 살려내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들 자체도 죽음에 점점 가까워 가는 운명에 갇힌 자들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생명과 단절되어 영혼이 죽은 자들이 있는 곳으로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오신 이 세계는 이처럼 사단의 유혹과 죄로 인한 죽음의 세계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죽음의 세계에 생명을 주시고자 오신 유일한 구세주이십니다.
육신이 죽은 자에게 예수님이 오시면 살아납니다. 영혼이 죽어 절망 가운데 살아가는 인생이라 하더라도 예수님이 임하시면 새생명으로 살아나며 새희망이 샘솟아 나는 것입니다.
절망 가운데, 외로움 가운데 살아가는 부모, 자녀, 형제, 자매가 있으시다면 예수님을 소개하시고
기도하시면 꺼져가는 불씨에 장작을 넣어 다시 살아나듯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만약 우리에게도 예수님이 오시지 않았다면 우리도 사단의 죽음 권세의 종이 되어
아무런 희망없이 의미없이 고통 가운데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찾아오시므로 죄와 죽음에서 해방되어 천국의 소망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주님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을 굳게 믿고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 의심하며 불평해서는 안 됩니다.
21절에서 마르다는 슬퍼하며 늦게 오신 예수님에게 “주님이 여기 계셨으면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소연하며 깊은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다 보면 마르다처럼 슬프고 불행한 일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는 슬픔과 괴로움에 눌려 하나님의 선하심과 섭리에 대해 의문을 품고 원망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하나님의 자녀들을 악한 길로 이끄시지 않습니다.
때로 하나님께서 잠시 우리에게 어떤 시련을 허락하실 지라도
그것은 근본적으로 우리를 위해서이며,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사로를 죽기까지 기다리신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마르다는 예수님에 대해 비록 서운한 마음을 가졌을 지는 몰라도 불평과 원망은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녀의 믿음을 볼 때 본 절의 이 말을 불평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 가운데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지 못할 때
앞에 닥친 시련 앞에서 원망과 불평을 쏟아 놓기 쉽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대한 원망과 불평과 불신은 사단에게 틈을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작은 불행이 더 큰 불행으로 이어집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 제일세대들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감사하였을 때는 형통했습니다.
하나님이 내리신 열가지 재앙으로 애굽 왕 바로의 권세를 이기고 기적적으로 출애굽 하였습니다.
그러나 광야에서 불평 불만을 계속 쏟아내자 결국 하나님의 징계 속에서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광야에서 죽임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불행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 찬송을 드리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립니다.
대표적인 인물로 욥은 극심한 시련을 당했으나 그러한 시련 가운데서도
입술로 범죄치 않고 하나님을 원망치 않고 믿음을 지킨 결과 갑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또, 바울과 실라도 복음을 전하다 빌립보 감옥에 갇히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감사 찬송을 부른 결과 옥문이 열리고 간수장에게 믿음을 심어주어 그와 그집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원망과 불평은 사단의 역사를 일으키게 하고
감사는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의 역사를 일으키게 합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어떤 어려운 처지에서도 불평과 원망대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분의 의로운 행사를 결단코 의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사망 권세 이기시고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을 구주로 믿음으로 인하여
저희들도 죽음의 저주에서 벗어나 영원한 새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 험하고 악한 세상 가운데 살아가면서 내 뜻과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어려운 일을 당하고
고난과 역경을 당한다 하더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원망 불평하지 말고
항상 감사하며 찬송하며 믿음의 예배를 드리며 말씀에 순종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주님이 가시는 곳이 어디든지 가리지 않고 따라가는 믿음을 주시고 성령 충만함을
부어주시어 아골 골짜기 빈들이라 하더라도 복음 들고 가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요한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 갑시다. (0) | 2022.04.06 |
---|---|
우리는 살아있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0) | 2021.09.22 |
예수님은 우리의 친구가 되십니다. (0) | 2021.09.22 |
예수님은 사랑하는 자를 절대로 버리지 않으십니다. (0) | 2021.09.22 |
우리의 모든 상황을 아시고 도우시는 예수님. (0) | 2021.09.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