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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우리에게 있는 믿음은 성령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119:104-105 주의 법도로 인하여 내가 명철케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자녀인 저희들은 주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 속에서 교훈이 되어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살아갑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이 없고 하나님의 말씀이 없음으로 거짓된 말과 행위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저희들이 거짓을 미워하고 진리를 사랑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저희들이 가야 할 인생 길을 밝히 비추어주시는 빛이 되시고,

저희의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등불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일평생 주님을 따라 살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천국까지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찬송가 장 , 요한복음 1127-29

 

1. 우리에게 있는 믿음은 성령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른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시고 이것을 네가 믿느냐? 라고 질문하시자

마르다는 본문27절 말씀과 같이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줄 내가 믿나이다 라고 명쾌하게 대답하였다. 

마르다의 신앙 고백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한

베드로의 신앙 고백과 일치한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베드로와 마르다와 같은 신앙 고백을 드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신앙고백이 베드로와 마르다보다 더 크고 놀라운 고백이다.

왜냐하면 베드로와 마르다는 예수님과 동시대에 살면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직접 받았고,

예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을 옆에서 지켜보고 알았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예수님에게 직접 듣지도, 보지도 않고,

다만 2000년 전의 사건을 기록한 성경 말씀을 통하여 읽고 들어서 믿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라고 말씀하신 대로 우리는 복된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읽고 듣는다고 다 믿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베드로와 마르다와 같이 예수님을 보고 믿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그것을 보고도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성경 말씀을 읽고 들어서 우리는 믿지만 읽고 들어도 믿지 않는 사람은 우리 주변에 수없이 많습니다. 그 차이는 바로 성령의 역사인 것입니다.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베드로나 마르다에게 임하신 성령님이 지금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성령님께서 임하셔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셔서 믿는 것이지 결코 내가 믿으려고 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얼마나 놀랍고 큰 은혜입니까?

그러므로 아직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는 사람이 내 주변에 있다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과 함께 성령하나님께서 그 마음에 찾아가 주셔서 그들도 우리와 같이 믿음을 주시기를 간구해야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2.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장소에 있어야 합니다.

11:17-20의 말씀을 다시 돌아가 살펴보면 예수님이 나사로가 죽어 무덤에 들어간지 나흘만에

베다니에 오셨습니다. 그때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조문하러 나사로의 집에 모여 왔습니다.

그 가운데 누군가가 예수님이 오고 계신다는 말을 전하였는데

마르다만 예수님을 마중하러 나와서 대화하고 있었고 마리아는 함께 나오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왜 마르다만 예수님에게 마중을 나오고 마리아는 나오지 않았는지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경을 푸시는 분들이 마리아는 많은 사람이 조문하러 와서

그 조문객들을 맞이 하기에 바빠서 예수님을 마중 나오지 않았다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평상시 예수님을 대하는 마리아의 태도로 봐서 예수님이 오셨다는 말씀을 들었는데도

마중 나오지 않고 마르다만 보냈다는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전에도 예수님이 집에 방문하셨을 때 마르다는 예수님을 대접하기에 바빴지만

마리아는 예수님과 함께 대화하는 것을 더 좋아하여 마르다와 함께 음식을 만들지도 않아서

마르다가 예수님께 불평할 정도였습니다. 그런 마리아가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도

조문객들을 맞이한다고 예수님을 마중하러 나가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아닐 것입니다.

마리아가 많은 조문객들 사이에 둘러 쌓여 예수님 오셨다는 소식을 듣지 못하고

마르다만 듣고 마리아에게 미쳐 예수님이 오셨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뛰어왔을 것입니다.

그래서 마르다와 예수님 둘만의 대화가 오간 것입니다.

마르다가 예수님에게 신앙고백을 한 후 이어지는 말씀이 본문 28절 말씀입니다.

28 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형제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마르다가 예수님과 대화를 하던 중 마리아에게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미쳐 전하지 않고

예수님에게 달려왔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예수님과 대화를 마치고 마리아에게 달려갔는지

아니면 대화 도중에 예수님께서 그런데 마리아는 어디 있느냐고 찾으셔서

마리아에게 달려 갔는지 그것 역시 성경은 기록되지 않아 알 수 없습니다.

마리아에게 선생님이 너를 부르신다고 마르다가 말한 부분이 맞다면 예수님이 마리아를 찾으셨다는 내용이 생략된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마리아와 함께 가지 않은 것에 대한 미안함으로 예수님이 너를 찾고 계실 것이라는 예수님의 마음을 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성경에 자세히 기록되자 않은 내용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가 이 자리에 오기를 바라는 것도 사실이고, 예수님이 베다니에 오셨다는 것을 뒤늦게라도 안 마리아가 예수님을 찾아 오는 것도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마리아와 마르다가 자신의 오빠 나사로가 무덤에서 다시 살아 나오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죽어 장사한지 나흘이 지나 썩은 냄새가 나는 오빠를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게하는 역사적인 장면을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도 예수님이 역사하시는 장소에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에게 기도하여 질병이 치유되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현장에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승천 하신 후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서 120명이 모여 기도하고 있을 때

성령이 각 사람들에게 임하셨습니다. 그때 그 자리에 있어야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장소에는 기를 쓰고 함께 있기를 소망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매 주일 마다 드리는 주일 예배를 성수해야 하는 것이고

수요일마다 대광교회 성도들이 한 자리에 모여 기도하는 자리가 중요하며

새벽에 새벽기도 동역자들과 함께 모여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복되고 귀한 자리입니까?

오늘 이 새벽에도 성도여러분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므로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역사하심을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복과 은혜들을 풍성히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영적인 잠을 자는 사람과 함께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을 찾고 부르고 간절히 기도하는 성도님들에게 임하셔서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잊어버리지 않으시기를 축복합니다.

 

3. 예수님이 부르시면 모든 일을 제처두고 달려가야 합니다.

29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

이 말씀만 보아도 마리아는 예수님이 오셨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빠 나사로가 병들어 시름시름 죽어 가고 있을 때 예수님이 오시기를 얼마나 애타게 기다렸을까요? 예수님만 오시면 오빠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것인데, 기다리는 예수님은 오시지 않고 하루 이틀 그야말로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기다렸으나 결국 예수님은 오시지 않고 사랑하는 오빠는 고통 가운데서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부모없이 오빠를 부모처럼 의지하며 살아왔는데 너무나도 갑자기 허무하게 오빠가 죽어 버리고 말았는데 예수님은 오빠가 죽은지 사흘이나 지나서야 드디어 오셨다는 소식을 언니 마르다에게 전해들었습니다. 그것도 예수님께서 나를 찾으신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기분이 어떠했을까요?

만감이 교차했을 것입니다. 조금만 일찍 오시지 왜 지금 오셨지? 이보다 더 중요한 무슨 일이 있으셨기에 못 오셨지? 갖은 생각을 다하면서 예수님에게 달려왔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주일 아침에 어떤 마음으로 교회에 오시는가요?

제가 집사일때도 솔직하게 말씀 드리면 하나님이 오늘 어떤 말씀을 나에게 주실까? 하는 기대하는 마음으로 주일날 오지 않았습니다.

목사님이 전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언제 나의 고난이 그치고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할 날이 올 것인가? 하는 기대감으로 말씀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냥 주일이니까? 의무적으로 온 날이 대부분이었고, 11시 예배에 늦지 않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서둘러 왔고, 차량운행을 하면서 오늘은 어떤 성도님이 예배를 드리지 못한다 하는 소식을 들으며 안타까워하고, 약속한 시간에 성도님이 나오지 않으면 예배에 늦지 않을까? 근심하며 애태우며 교회로 오든 날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교역자가 되어 아이들에게 어떻게 전할까?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 말씀에 은혜를 받을까?

오늘은 예배에 나오지 않는 아이가 없겠지? 코로나 때문에 장기간 나오지 않는 아이가 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마음으로 옵니다.

그리고 수요일이면 귀하디 귀한 시간을 내어 나오시는 성도님들에게 은혜를 끼치고 어떻게 기도의 동기를 불어 넣을까? 성도님들을 위한 기도를 하나님께서 응답하여 주시기를 바라며 교회로 달려 옵니다. 아무리 제가 열을 내고 힘을 다하여 기도해도 하나님이 들어 주시지 않으면 어쩌지라고 걱정하다가도 하나님이 기도하면 들어주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 약속을 의심하는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저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하며 나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이 부르실 때 모든 일을 다 제처두고 달려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그가 계신 것과 반드시 상주시는 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을 기쁘시기 해 드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면 그것으로 만족합시다.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지든지 그렇지 않든지 그것이 참 믿는자이고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취할 마음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 드립니다.

우리는 성령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시므로 예수님은 그리스도라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시간과 장소에 우리도 함께하기를 소망합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지체없이 달려가되 그것을

하나님께서 기쁘하신다는 사실을 잊지말고 주님 제가 왔습니다. 라고 기도하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저희들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