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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우리의 소망과 기쁨과 힘이 되시는 예수님

찬송가:506. 예수 더 알기 원함은, 요8:56~59

 

1. 우리의 소망과 기쁨과 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53절에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에게 “너는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따져 묻는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본문 56절의 말씀입니다.

아브라함도 나의 때 볼 것을 소망으로 삼고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은 유대인들에게는 상당한 충격입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예수님을 보기를 소망하다가

예수님을 만나 보고는 기뻐하고 즐거워하였다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태초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셨다는 사실을 유대인들이 알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을 유일한 성경으로 아는 유대 율법주의자들도

아브라함이 메시아에 대한 소망을 즐거움으로 삼았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그 씨에 대한 축복의 언약이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메시아를 보내실 것으로 해석하고 자신의 후손들에게 가르쳐왔습니다.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구약의 많은 선지자들이 메시아가 오심을 알고

메시아 오시기만을 고대하고 소망하며 그것을 믿음의 힘으로 삼고 살았던 것입니다.

히 11:24,25절에서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이처럼, 모세도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세상의 부귀를 버리고 백성들과 함께 고난 받는 길을 택하였고

눅20:41-44절에서는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사람들이 어찌하여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시편에 다윗이 친히 말하였으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의 발등상으로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그런즉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으니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뇨 하시니라

이처럼 다윗도 그리스도를 대망하며 살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구약의 신앙 영웅들은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고 믿음으로 산 것입니다.

그것으로 신앙의 즐거움과 소망과 힘으로 삼고 하나님께 충성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 승천하심을 믿음으로

구원받은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천국의 소망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며

주님을 더욱더 의지하고 믿음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구약의 아브라함이 수천 년 후에 오실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하나님께 충성하고 헌신했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의 은혜를 이미 얻었고, 주의 성령이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니

더욱 주님만을 바라보며 내 삶의 기쁨과 소망과 힘으로 의지함이 마땅합니다.

또 아브라함과 선지자들이 보지도 못한 그리스도를 예언하는 일에 힘썼다면

우리 또한 항상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거하고 그 은혜를 힘입어 살면서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2. 온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수고하신 주님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57절은 유대인들이 예수님께서 아브라함을 보셨다고 하신 말씀에 반발한 내용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나이가 오십도 되지 못했는데, 마치 수천 년을 산 사람처럼

아브라함을 보았다는 말씀에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의 당연한 반응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30대 초반의 예수님을 오십에 가까운 나이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외모를 오십에 가까운 나이로 본 것은

그만큼 예수님이 공생애 기간 동안 육신적으로 심한 고생을 하셨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태양 볕을 맞으면서 논밭을 돌보며 일하는 농부는 나이에 비해 상당히 나이가 들어 보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육체는 고생이 심할수록 빨리 늙습니다.

예수님의 나이가 50대로 보이는 이유는 예수님이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매일 온 마을을 걸어 다니시며 쉴 틈 없이 백성들을 가르치시는 사역을 하시고

예수님에게 찾아오거나 예수님이 직접 찾아가셔서 온갖 병자들을 치유하시는 사역을 하셨고,

안식일에도 조차도 쉬지 않고 구원 사역을 하셨으며,

또 밤이 되어서도 잠도 제대로 주무시지 않고 아버지 하나님께 새벽기도를 드리셨습니다.

또 육체적인 수고뿐만 아니라 그 마음도 아파하시고 안타까워하시어 쉴 틈이 없었던 것입니다.

죄와 사망의 그늘 아래 놓인 무지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 진리를 알려 주셨지만

돌아오는 것은 대적들로부터 비난과 조소와 능욕과 죽음의 위협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외모가 겉늙어 보이신 것입니다.

이사야는 예수님의 이러한 외모에 대해 사 53:2,3에서 이렇게 예언하였습니다.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성도 여러분, 우리들 중에는 하나님께 충성하고 수고하는 성도가 있는가 하면

자기 유익을 위해서만 평안하고 안일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는데, 그 은혜를 입었다고 고백하는 우리가

주님을 위해 수고하는 일을 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찬송가 185장에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네 죄를 속하여 살길을 주었다

너 위해 몸을 주건만 날 무엇 주느냐 너 위해 몸을 주건만 날 무엇 주느냐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밤낮으로 고생하시느라

그 외모가 상하신 주님을 생각하고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도 복음 전파를 위해 너무나도 큰 수고와 고생을 하여 건강이 나빠져서

만성 눈병을 앓았을 뿐만 아니라 복음을 전하다가 대적들에게 잡혀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눈병과 매 맞은 흔적을 갈 6:17에서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라고” 증언했습니다.

우리도 주님처럼 바울처럼 하나님을 위해 온 정성을 다하여 수고한 흔적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후일 예수님을 만나 뵈올 때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라고 칭찬과 상급을 받을 것입니다.

 

3. 예수님을 배척하는 것은 영원한 불행을 자초하는 일입니다.

58, 59절은 예수님이 신성을 강조하자 유대인들이 신성 모독자로 정죄하고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네가 어떻게 아브라함을 보았느냐는 유대인들의 반발에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있는 창조주이시고,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태초부터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역사하신 분이십니다.

당연히 아브라함보다 먼저 계셨던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사실을 말씀하자 유대인들은 이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주님을 신성 모독자로 간주하고

돌로 쳐 죽이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이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 말씀은 매우 의미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이 숨어 보이지 않는 일은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또 그들의 성전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떠나신 일은 더욱 큰 불행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이 없다는 것은 더 이상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또 하나님 이 성전을 떠나가셨다는 것은 선민의 자격을 박탈당했다는 의미입니다.

에스겔 10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타락하여 하나님을 대적하여 하나님이 성전을 떠나셨습니다.

하나님이 떠난 자리에 바벨론 군대가 쳐 들어와 성전을 파괴하고 백성들을 포로로 잡혀가는 큰 불행을 당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을 몰라보고 죽이려고 한 유대인들에게는

더 이상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주후 70년경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 수백만 명이 살육당하고

성전은 그야말로 폐허로 변하였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세계 각국으로 흩어져 엄청난 고난을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을 배척하는 자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그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는

어리석은 자들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생명과 복의 근원이십니다. 그러한 예수님을 배척하면 영생과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배척하는 자에게는 영원한 불행만 따르게 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주님을 배척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거나 주님을 배신하는 길로 가면 그것이 곧 주님을 해하는 죄인이며

주님을 배신하는 사람은 주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죄를 범하는 것이며,

이런 사람에게는 긍휼 없는 하나님의 영원한 형벌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런 불행하고 어리석은 이들이 없는지 우리 주위를 돌아보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빛과 어두움, 진리와 악, 그리고 그리스도와 땅에 속한 자들의 불화와 갈등을 충분히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무리 깨우치시고 설득해도 유대인들은 그를 믿기는커녕 오히려 해치려 했습니다. 이는 그들의 신앙이 위선과 형식과 인본주의로 타락했다는 증거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들도 주님에 대한 참되고 진실한 사랑이 없으면 이런 무지하고 불행한 자들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늘 진실한 자세로 또 주님을 높이는 겸손한 자세로 주님을 섬기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오늘 이 새벽에도 예수님이 없는 인생은 불행이고 실패이고 저주의 삶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알게 하시고,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는데 우리는 자기의 유익만 위하고 평안하고 안일한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회개하는 시간이 되게 하시고, 구원받은 우리는 항상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거하고 그 은혜를 힘입어 살면서 천국의 소망을 바라보고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며 믿음으로 살고 증인의 삶을 사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