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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말씀을 가르치는 자가 말씀대로 행해야

찬송가: 요한복음7:50~

 

1.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이 먼저 말씀대로 행하여야 합니다.

49절에서 산헤드린의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들먹이며 하속들을 저주하자,

50절에서 같은 산헤드린의 회원이자 전에 예수께 찾아온 적이 있었던

니고데모가 동료들을 하속들을 변호합니다.

니고데모가 속한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자기 들만이 의롭다고 믿고 하속들은 무시하고

심지어 예수님까지 멸시하는 자들입니다.

니고데모도 같은 공회원이지만 그는 아리마대 요셉과 같이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믿고 하속들을 변호하고 공회원들의 모순을 지적하였습니다.

니고데모는 무조건 예수에 대해 적대적으로 대하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태도가 옳지 못하다고 판단했기에 용기를 내어 그 부당성을 지적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니고데모가 의연 중에 자신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것을 들어낸 것입니다.

51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

니고데모의 이 말은 사람을 판결할 때에는 모세의 율법에 따라 하나님의 뜻대로 판결해야 하는데 왜 그렇게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율법을 판결할 때에는 두 가지 원칙을 가지고 해야 하는데,

하나는 그 사람의 말을 들어보는 것이고, 또 하나는 행위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사람의 말을 듣고는 먼저 당사자에게 변명할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이며,

행한 것을 알기 위해서는 그가 무엇을 행했는지 확인 절차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판결을 내리기 전에 증인들의 증언 등을 통해 사실 관계를 정확히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 이후에야 판결을 내려야 하는데 산헤드린이 율법이 정한 규정을 따르지 않고 어기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산헤드린의 심각한 모순을 목격합니다.

율법을 관장하며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고 지키도록 권장하는 자들이,

즉 율법의 수호자라고 자처하는 자들이,

정작 자기 자신들은 율법의 기본적인 요소마저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모른다고 백성들을 저주까지 하던 자들이 정작 자기들은 이미 알고 있는 것조차도 실천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모순된 상황입니까?

율법에 정통하였던 유대 종교 지도자들도 당연히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런 모순에 빠지게 된 것은 이미 편견과 선입견 속에 사로잡혀 판단력을 상실하였기 때문에 니고데모의 지적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막힌 모순은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에게서만이 아니라,

바로 오늘날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나 영적지도자들에게서도 발견될 수 있는 문제입니다.

많은 것을 가르치면서도 정작 자신은 자기가 가르치는 바를 행하지 못하는 것을 깨닫고는

회의감과 좌절감에 빠지기도 하는 분이 있는가 하면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저 자신은 가르치기만 하면 되고, 배우는 학생들이나 교인들은 지키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가르치는 것과 가르치는 것을 행하는 삶은 절대 분리될 수 없습니다.

한 설교학자는 삶이 메시지를 빛나게 하고 가리지 못하게 하라 고 한 적이 있습니다.

전하는 메시지 대로 살지 않으면 그것을 듣고 지켜보는 사람에게 은혜를 끼칠 수 없고

가르치는 자가 가르치는 대로 살지 못하면, 자신이 가르치는 내용은 빛을 잃고 맙니다.

그만큼 배우는 자들은 삶의 실천이 따르지 않는 자들의 가르침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자가 그 말씀대로 행하지 않으면,

결국 하나님의 말씀의 빛을 가리는 죄를 짓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삶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3:3)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배우는 자가 가르치는 자를 신뢰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 가르침의 내용만 받는다고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지금 기독교인들이 세상사람들에게 비난하고 손가락질하는 것은

악한 마귀의 공격일 수도 있지만. 우리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세상사람들에게 본이 되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고 회개할 것은 없는지 점검해 보아야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 만하고 하나님 말씀을 지키지 않는다면 진정한 자녀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신 성도 여러분,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면서 말씀대로 행하시기를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비록 내가 전하고 가르치는 대로 온전히 행할 수는 없다 할지라도,

자신이 말씀에 순종하려고 말씀 따라 실천하려고 몸부림치는 그 모습에서 그것을 지켜보는

모든 이들이 감동을 받고 은혜를 받고 우리와 같이 예수님을 믿으려 할 것입니다.

삶의 실천을 통해 그 전하고 가르치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빛나게 하시고

모든 사람을 옳은 대로 이끄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2. 우리는 누구라도 정당한 건의나 충고를 잘 받아 드려야 합니다.

52절을 보면 율법으로 하속들을 저주하던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동료 공회원인 니고데모가

오히려 그들 자신이 율법 절차를 어기고 있지 않느냐고 지적하자 반성하기는 커녕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상고하여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고 하며

오히려 면박을 주고 있습니다.

이 말을 하는 사람도 니고데모가 갈릴리 출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말하는 것은 실제로는 니고데모를 예수를 지지하는 무리와 동등하게 취급하여 비난하는 것이다. 그들은 니고데모가 진실을 말하였음에도 이를 무시해 버리고 예수를 변호하려는 니고데모의 입을 막아 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 갈릴리에서 선지자가 나지 못한다고 하는 말도 맞지 않습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메시야를 포함하여 그 어떤 선지자도 갈릴리에서 나올 수 없다고 단정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선지자 요나, 호세아, 나훔이 갈릴리 출신이 었고, (왕하14:25)에 의하면 아모스와 엘리야 및 엘리사도 갈릴리 출신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당시 바리새인들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마저 왜곡시킬 정도로 지독한 지역적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편견 된 눈으로는 결코 진리를 볼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 들이 편견에 빠지게 된 것도 니고데모의 문제 제기로 곤란한 처지에 빠지게 되자,

지역감정 문제를 거론하며 곤경을 빠져나오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난한 지방 갈릴리 출신이고, 또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도 대부분 갈릴리 출신이기에,

너도 갈릴리 패거리냐 하며 오히려 니고데모를 공격하며 문제의 핵심을 피하고 있는 것입니다. 권위주의에 빠진 지도자일수록 충고를 수용하지 않습니다.

잘못된 문제를 지적하며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 그것을 곧 자신에 대한 반대와 공격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최선의 결정을 내리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반대의견을 내는 사람을 잘못되었다고 질책하며 면박을 주는 것입니다.

더욱이 권위주의에 빠진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견해를 하나님의 견해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교회 내에서는 하나님이 세우신 영적 질서를 존중해야 합니다.

또 하나님은 대체로 영적지도자를 통해 자신의 뜻을 나타내십니다.

따라서 교회내에서의 의사 결정은 일반 사회에서의 합의에 의한 의사 결정 과정과는 다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교회의 영적지도자가 모든 결정을 독단적으로 내리는 것은 옳지 않으며,

또한 그것이 항상 옳을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지도자는 다양한 의견을 듣고, 때에 따라서는 자신의 입장과 반대되는 건의까지도

수용할 수 있는 포용력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 입장에 반대되는 의견을 믿음이 없다고 한다거나, 무조건 부정하고 공격한다면,

자신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니고데모에 대해 너도 갈릴리 패거리냐고하는 산헤드린의 반응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영적지도자 뿐만 아니라 세상지도자도 어떤 건의나 충고에 대해서 귀가 열려 있어야 합니다.

물론 자신의 잘못이 드러날 때, 그것을 사실로 인정하고 고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잘못을 인정하고 다른 의견을 수용하는 것은 잠시 기분을 상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결코 지도자로서의 권위를 손상시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랫사람의 건의나 충고에 개방적인 지도자는 아랫사람들의 마음을 얻게 될 것이며,

따라서 그의 지도력은 더욱 강화될 것입니다.

회사의 직원들의 건의와 요구를 잘 받아주는 회사는 직원들이 더 진취적이고 열정적으로 일하여

회사가 더욱 더 발전할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영적 지도자와 중직자 분들이 성도들의 다양한 생각과 입장에 열린 귀와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것을 받아주고 들어준다면

온 성도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즐거이 마음을 모을 것이며,

하나님의 교회는 더욱 아름다운 모습을 이루어 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저희들이 바리새인과 같이 율법을 강조하면서도 율법을 지키지 않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이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만큼 저희들이 먼저 말씀에 순종하여 따르고 말씀대로

하나님의 자녀 답게 살아 가게 하여 주시옵시고

혹시 나의 잘못을 지적 받더라도 분노하거나 적대적으로 대하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잘 받아주고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주고

고칠 것이 있다면 고치고 회개할 것이 있다면 회개하여

더 크고 넓은 인격수양을 갖추어 모든 사람들을 품을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