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요한복음7:45~49
1.신앙 문제에 관한 최종 권위는 성경 자체에 있습니다.
45-48절을 보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을 비롯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본문에서 하속으로 표현된 성전 경비대원들에게 예수를 체포하여 데려오라고 명절 중간에 보내었으나 명절이 끝난 후까지
나흘 정도의 시간이 흘렀으나 예수님을 체포하지 못하고 그냥 돌아온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들은 예수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발 아래 꿇어 앉히리라고 기대하였지만
그 기대가 물거품이 되자 화를 참지 못하고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고 질책하였습니다.
이것은 개인이나 나라나 누구든지 힘이 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과 계획을 자기 마음대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대지도자들의 질책에 하속들은 “그 사람의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 라고 하며 자신들이 예수를 잡지 않고 그냥 돌아오게 된 이유를 밝혔습니다.
예수님을 잡으러 갔던 하속들은 예수님의 설교를 듣고 큰 은혜를 받았을 뿐 아니라
그 권위에 압도되어 체포할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빈손으로 돌아온 하속들에게 “너희도 미혹되었느냐"라고 하며,
그들이 예수께 은혜 받은 것을 오히려 미혹되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판단을 내리는 근거로,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예수를 믿는 이가 없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뜻은 우리가 아니라 하면 아니고 맞다고 하면 맞다는 잘못된 신앙 독선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의 신앙을 판단할 수 있는 최종 권위는 어디에 있습니까?
교회에 있습니까? 교회의 어느 지도자에게 있습니까? 아닙니다.
신앙을 판단할 최종적인, 그리고 유일한 권위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있습니다.
어느 개인이나 종교 기구도 성경에 근거하지 않고서 개인의 신앙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이 말은 성경을 도구로 삼아 다른 사람의 신앙을 함부로 판단하라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경만이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완전하고도 유일한 판단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중세 시대에는 로마 가톨릭 교회가 사람들의 신앙을 판단하였습니다.
그저 교회가 정한 기준이 신앙의 기준이 되었고, 교회의 방침에 어긋나면 정죄 받았습니다.
그래서 종교 개혁이 일어났고 교황의 말보다 성경이 우위에 있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종교 개혁의 핵심은 교회의 교황보다 성경의 권위가 앞서야 한다는 것이고,
성경만이 신앙 문제에 있어서 유일하고도 완전한 권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만이 신앙과 삶에 있어서 최고의 규범과 권위의 원천인 것입니다.
오늘날, 개신교단들과 교회들이 종교 개혁의 기본 정신에 따라
성경에 권위를 두고 말씀을 전하고 있는지 살펴야 할 것 있습니다.
가톨릭이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게 되는 것은 교황청에서 뽑은 교황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보다 더한 권위를 가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부 개신교의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보다 목사님을 맹목적으로 따름으로 해서 교인 전체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고 심하면
이단 집단이 되고 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교회는 진정 개혁되어져야 합니다.
성경만이 성도들의 신앙의 유일하고도 완전한 권위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성도 개인의 신앙 생활과 교회의 활동 방향이 성경의 원리에 충실할 때,
성도 개개인은 물론 교회가 부패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개혁할 뿐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2. 그 누구도 예수님께 오는 것을 막을 자가 없습니다.
48절에서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이가 있느냐?
예수를 믿는 자가 있느냐? 라고 묻는 것은 없다는 부정적인 대답을 전제로한 것입니다.
그들이 의도하는 것은 적어도 지성이 있고 경건한 사람은
아무도 예수를 믿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 가운데 어느 한 사람이라도 그를 믿었느냐는 강한 부정으로서
진리에 대하여 무감각한 그들의 아집을 잘 드러냅니다. 동시에 이것은 그들의 오판이었습니다.
비록 드러내지는 않았어도 산헤드린 회원들 중에 예수를 믿는 이들이 분명히 있었으며,
밤에 예수께로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또한 그들의 이 말은 민심이 그들에게서 떠나고 있으며 그들의 권력 기반이 서서히 약화되고 있는데 대해 그들이 조바심과 신경질적인 반응을 나타내고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하속들마저도 그들의 통제권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데 대한 초조감과 불쾌감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도 바리새인들의 말 가운데는 당국자와 바리새인을 구분하여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율법에 정통한 바리새인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원문 전체를 직역하면 ‘당국자들 가운데 어떤 자가 그를 믿는가, 또 바리새인들 가운데서?’
그러므로 당국자들은 대제사장의 무리들, 사두개인들과 같은 산헤드린 공회의 모든 구성원들과 같은 공권력을 지닌 자들과 율법에 정통한 바라새인들 조차도 결코 예수를 믿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사용한 표현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은 아무도 강제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예수께로 오는 것을 금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성도는 어떠한 환경 가운데서도
반드시 하나님께로 나아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3.성경을 많이 아는 자는 독선주의에 빠질 위험을 경계해야 합니다.
49절을 보십시오. 산헤드린의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보낸 하속들이
예수를 체포하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오자 책망하는 것을 넘어서 저주를 퍼붓고 있습니다.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유대지도자들은 율법이 알기 때문에 예수가 절대로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데
너희는 율법을 몰라서 이단에게 미혹당하여 저주를 받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이 보기에 일반 백성들이 예수에게 미혹당하는 것은 자신들처럼
율법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기 때문이라고 본 것입니다.
한마디로, 산헤드린의 바리새인들은 자기들만이 바른 성경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일반 백성들은 무식하기 때문에 예수에게 미혹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짜 미혹당한 사람들은 율법을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하던 바리새인 자신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은 알아도 예수를 알지 못하는, 마귀에게 속은 마귀의 자식들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많은 성경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이런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성경 지식에 대한 우월감은 자기만이 바르게 알고 있다고 하는 독선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높고,
독선주의에 빠지게 되면 다른 사람들의 영적 깊이와 신앙의 성숙을 알지 못하고
쉽사리 판단하고 정죄하게 됩니다.
또한 만약 다른 사람들이 자신과 다른 입장을 취하면,
그들이 성경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라고 단정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인정해야 할 것은 우리의 성경에 대한 지식은 완전할 수 없기에,
본문에서 바리새인들이 행한 것과 같은 중대한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알면 우리는 좀더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물론 성경은 많이 알수록 좋습니다. 많이 알수록 하나님의 뜻을 좀더 명확히 깨달을 수 있고,
실제로 성경에 대한 무지 때문에 잘못된 이단 사상에 빠지는 것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스스로 성경을 많이 알고 있다고 하는 우월감에 빠지는 것입니다.
많은 성경 지식으로 교만해져서 남을 함부로 판단하는 것보다
차라리 적게 알아도 겸손한 편이 훨씬 낫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배우는 목적은 하나님의 뜻대로 말씀대로 살도록 하려고 하는 것이지,
남을 판단하도록 하는 도구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을 배우면서 지식만 쌓기 보다 배운 것을 실천하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혹시 성경을 제대로 알지 못해 잘못된 신앙의 길로 가는 사람을 보면,
바리새인들처럼 그들을 무시하고 저주를 퍼붓는 것이 아니라
인내와 사랑으로 가르치고 인도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할 수 있는 대로 성경을 많이 배워서 성경지식을 쌓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깨달을수록 더욱 겸손해지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알수록 상대적 우월감이나 독선주의에 빠질 것이 아니라
배운 성경 지식대로 삶 속에서 행하며, 다른 지체들을 사랑의 가르침으로 이끌어 주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모든 판단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모든 삶의 기준과 삶의 푯대가 성경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시고
그래서 우리는 시간이 나는 대로 또, 시간이 없으면 시간을 내서라도
날마다 성경 말씀을 가까이하고 말씀대로 살도록 힘쓰게 하시고
하지만 성경을 많이 안다고 성경 지식이 부족한 다른 사람을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고
사랑과 인내로 가르치고 인도하는 믿음의 성숙한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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