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190샘물과 같은 보혈은, 요한복음7:40~44
1. 성령은 인간의 영적 갈증을 근원에서부터 해소하여 주십니다.
38,39절은 이미 지난주에 살펴보았습니다 만은 한번 더 보시면
예수님은 명절 끝날에 모인 무리들을 향해 자신을 믿는 자는 그 사람의 배에서,
곧 속에서부터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치게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육신의 목이 마를 경우에는 물을 마시면 갈증이 해소됩니다.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쌓이면 잠을 푹 자거나 휴식을 취하면 조금 풀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있는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고,
인간의 노력으로 채워지지 않는 것은 바로 인간의 영적 공허함 입니다.
사람의 영적 갈증은 그 누구도 해소할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 하나님만이 영적 공허함을 채우실 수 있고 영적 갈증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영적 존재로 지음 받은 인간의 영적 갈증은 영적인 것으로만 해결할 수 있기에,
물질적인 그 어떤 것도 영적 갈증을 해소하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우상들을 섬김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하지만,
실상 우상을 섬길수록 영적인 갈증은 없어지기는 커녕 오히려 더욱 심해지기만 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인간의 영적 갈증의 원인에 대해 렘2:13에서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 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이 영적 갈증을 느끼는 이유는
첫째로 생수의 근원 되신 하나님을 버린 것이며,
둘째로 스스로 갈증을 해결해 보고자 웅덩이를 판 것입니다.
그런데 그 웅덩이는 물을 보관할 수 없는 밑이 빠진 독입니다.
아무리 다른 것으로 채우려고 해보아도 금새 메말라 버리고 늘 공허한 상태가 됩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그 무엇으로도 해결할 수 없었던 인간의 영적 갈증이
해소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성령께서 내주하셔서
영적 갈증을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사역은 일시적인 것이 아닙니다. 영적 갈증의 근원인 내 심령에 내주하시는 것입니다.
마치 반석에서 생수가 흘러 넘치듯 인간의 내면에 끊임없이 흘러 넘치는 생수의 강이 하나 생겨나 인간의 영적 갈증을 근원적으로 해소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영적 갈증을 세상의 것, 돈으로 여행으로 휴식으로 그 갈증을 해소하려 하지만
그것은 사마리아 여인이 목마를 때 마다 마시는 우물물과 같습니다.
마시고 나면 그때 뿐이며, 또다시 목마름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 성령이 내 안에 내주하시므로 성령님을 인식하고 부르기만 하면
세상의 복잡하고 어지러운 것으로 채워져 있던 마음을 비우고 그 자리에 성령을 모시기만 하면
성령께서 생수의 강처럼 우리 안에서 역사하셔서 목마른 우리의 심령을 적셔 주시며 풍성한 생명력을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성령의 은혜를 누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2. 성령의 은혜를 누리려면 항상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하셨고,
또한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하셨습니다.
즉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자에게는 그 속에서부터 생수의 강이 끊임없이 흘러 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대로 예수를 믿을 때 전에 알지 못했던 진정한 만족과 기쁨을 맛보고 누리게 됩니다.
예수를 알기 이전의 삶과 예수를 알고 나서의 삶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은 명백합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속에서부터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는’ 체험을
매일의 삶 속에서 계속적으로 체험하며 살고 있느냐? 는 것입니다.
상당수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믿으면서도 여전히 영적 갈증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예수를 믿고 감격과 눈물의 체험을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그 감격은 마치 아득한 옛 사랑의 추억처럼 가물거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하여 믿는 자에게는 속에서부터 생수의 강이 흘러 난다는 주님의 말씀이
어쩐지 현실감이 부족한 것처럼 느껴 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 생수의 강이 흐르리라고 주님은 약속하셨는데,
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실제적으로 생수의 강이 흐르는 것을 누리지 못하고 살 고 있을까요?
그것의 해답은 바로 주님의 말씀 중 ‘마시라’ 와 ‘믿는 자는’이란 단어를 깊이 이해해야 합니다.
마시되 한번 마시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복해서 계속적으로 마셔야 하는 것이며,
예수를 믿되 한번 믿고 마는 것이 아니라 반복해서 계속하여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수의 강이 속에서부터 계속하여 흐르는 것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예수를 처음 구주로 믿고 일회적으로 신앙 고백을 드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적으로 우리 삶의 모든 영역 안에서 예수를 믿고 의지하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믿으면서도 생수의 강이 속에서 넘쳐나는 것을 계속하여
체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예수께 대한 우리의 신앙이 지속적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이 형식적인 신앙 고백으로만 그쳐서는 안 됩니다.
처음 믿었을 때의 그 감격과 사랑으로, 매일의 삶의 영역에서 모든 상황 속에서 지속적으로 예수님은 나의 주요 그리스도라고 하는 뜨거운 신앙 고백을 드리는 삶을 살 때
우리 속에서부터 생수의 강이 흘러 넘쳐나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속적인 성령의 은혜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성령의 은혜를 지속적으로 누리지 못한다면 우리는 단 하루라도 신앙을 지탱하기 힘듭니다.
우리가 성령의 은혜를 매일 공급받지 못하고 살면
그리스도인이지만 세상사람과 별반 차이 없는 모습으로 살아 갈 것입니다.
진정 저와 여러분은 주님의 말씀처럼 생수의 강이 속에서 매일 넘쳐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매일의 삶에서 신앙을 고백하고 믿음을 선포하고 말씀대로 살아
항상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께서 믿음의 삶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3.잘못된 선입견이 신앙의 성장을 막습니다.
40-43절을 보면 초막절에 행하신 예수님의 설교를 들은 무리들의 예수께 대한 다양한 반응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구약에 예언된 선지자로 보았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직접적으로 그리스도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설교를 통해 예수님을 모세와 같은 위대한 선지자이거나
그리스도일 것이라고 인정할 만큼 큰 감동을 받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인류를 구원할 구원자로 보지 않고 고작 자기들 만을
구원할 구원자로 본 것입니다.
그런데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는 또 한 부류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고 하며 예수를 배척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다윗의 후손으로 유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다고 했는데
예수는 갈릴리 출신이므로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하며 예수를 배척한 것입니다.
그들은 성경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알지 못한 것은
다윗의 후손 요셉과 하나님의 선택함을 받은 여인 마리아에게서 나사렛에서 잉태하였지만,
호적을 위하여 베들레헴에 갔다가 마굿간에서 탄생하셨으며,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고 축하하기 위하여 하늘의 천사들이 노래하였고
그것을 목자들과 동방박사들이 방문하여 목격하였고 헤롯 왕을 피하여 애굽으로 갔다가
요셉과 마리아가 사는 나사렛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은 몰랐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성경에 예언된 그리스도인지 아닌지 알아보려 하였다면
예수님의 출생지가 어디인지 마리아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과정을 생략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선입견에 따라 잘못된 판단을 내린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종종 선입견으로 신앙적으로 문제가 생깁니다.
‘신앙은 이런 것이다’ 라고 하는 선입견이 분명한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신앙 행태를 보이는 사람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기도할 때에 소리 내어 부르짖어 기도할 수도 있고 마음 속으로 조용히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교회에서 기도할 수도 있고 골방에서도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상황과 환경과 기도 제목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기도할 수 있는데 이것만이 옳다고 주장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우리 교회처럼 전통적인 방식으로 예배 드리는 교회가 있고, 현실에 맞게 젊은 층을 겨냥하여 현대적인 방식으로 예배를 드리는 교회도 많습니다.
포장만 다를 뿐 내용물만 같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처럼 형식은 달라도 그 안에 기도와 찬양과 말씀과 헌금은 다 있는 것입니다.
너무나 형식만을 고집하면 교회에 더 이상 젊은 층을 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현대식으로 나가면 전통식을 고수하는 어른이 예배를 불편해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가 옳다 그러다 분쟁할 것이 아니라
대 예배는 전통방식으로 오후예배는 현대식으로 드리게 되면 교회에 어른들과 젊은이들이 공존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만 정확하게 선포되어 진다면 하나님은 역사하시고 교회를 부흥하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따라서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로 자기 나름대로 형성된 선입견을 버려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는 신앙의 영역에 있어서 좀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때로는 복음만큼은 정확하고도 타협 없는 판단을 내려야 할 때도 있겠지만,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선입견에 근거하여 판단을 내리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이 말씀하시면 나의 생각은 언제든지 고칠 수 있다는
겸손하여 열려진 마음을 가진 성도님들이 다 되시길 축복하며 기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 믿는 저희 마음 속에 성령께서 내주하시고,
우리 속에서 생수의 강처럼 흘러 목마른 우리의 심령을 그 근원에서부터 적셔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속에서부터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치는 것을 실제의 삶에서 지속적으로 누리기 위해서는, 주님을 향한 우리의 신앙 역시 지속적이어야 될 줄 믿습니다.
저희들이 매일의 삶에서 주님을 향해 뜨거운 신앙 고백을 드리고, 또한 전적인 신뢰와 도움의 기도를 드림으로써,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실제적으로 체험하는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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