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사야

그분이 오십니다.

이사야서 9장은 예수님이 구세주 메시야로 오실 것을 예언한 내용이다.

예수님의 어떤 부분이 예언 되었는지 알아보고 은혜를 나누어 보자.

1.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현재 이스라엘 민족은 이방인의 침략으로 큰 고통을 겪고 있고 나라가 멸망할 지경에 놓여 있다.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이 왜 이런 수모와 고통을 겪게 되었나?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에게 범죄하였기 때문이며, 하나님을 떠나 이방신을 섬긴 결과다.

그래서 지금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는 흑암이다. 흑암! 암흑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암흑은 영적으로 하나님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암흑 속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삶의 희망이 없고 절망적이고 기쁨과 즐거움이 없고 고통과 괴로움만 가득한 상태를 말한다.

그리고 더더욱 절망적인 상황은 이 고통이 이제 시작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힘들고 어려운 나날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전혀 희망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 한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흑암이 사라졌다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다고 선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흑암이 사라질 것이다.’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실 것이다라고 미래시제를 사용하지 않고

흑암이 사라졌다. 영화롭게 하셨다라고 현재시제를 사용하였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때가 되면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라는 뜻이고, 그 말씀을 믿어라는 뜻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고 하지 않으시고 갈릴리라고 지명을 콕 집어서 말씀하셨다.

왜 그렇게 하셨나? 그것은 갈릴리에 나타나시어 활동하신 분을 알리기 위함이다.

이스라엘의 갈릴리 바다에서 활동하신 분이 누구신가? 우리가 잘 아는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의 복음 선교 활동의 중심지가 바로 갈릴리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대부분이

이곳에서 부르심을 받았다. 베드로가 살던 집도 이곳 갈릴리 해변의 가버나움 마을이다.

직업이 어부인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찾아 오셔서

나를 따르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하신 곳도 이곳이며,

부활하신 주님이 낙심하여 고기를 잡는 베드로에게

찾아 오시어 내 양을 먹이라. 내양을 치라고 하신 곳도 이곳 갈릴리 해변이다.

또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던 들판도 이곳이며, 예수님의 유명한 산상보훈의 설교도

이곳 언덕 위에서이고 예수님이 물위를 걸으신 장소도 이곳 갈릴리이다.

2.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흑암의 반대 되는 개념은 빛이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의 상태가 흑암이다.

1:2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상태를 말한다.

어둡고 캄캄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하나님은 창조를 시작하셨고

가장 먼저 만드신 것이 빛인 것이다. 빛은 어둠을 몰아낸다. 빛이 비취는 곳엔 어둠이 사라진다.

흑암 속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저주 받은 땅, 사망의 그늘진 땅에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빛이 비친다고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 빛은 성경에서 무엇이라고 말하나?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을 참 빛이라고 이렇게 증언하였다.

1:9~12 9.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그리고 예수님 스스로도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다.

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3.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4.이는 그들이 무겁게 멘 멍에와 그들의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주께서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5.어지러이 싸우는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옷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어둠에 빛이 비추이면 어떻게 되는가? 암흑 속의 백성들이 광명한 빛을 받을 것이다.

그것은 빛이 어둠을 몰아내듯 하나님께서 사탄을 물리치신다는 뜻이다.

마귀에게 눌려 신음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악한 원수 사탄 마귀에게서 해방될 것을 말하며,

마귀에게 빼앗긴 모든 지위와 권세와 능력이 회복될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저주 받은 땅은 축복 받는 땅으로 변화될 것이고, 사망의 그늘진 땅은 새 생명이 넘치는

밝고 환한 땅이 될 것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희망이 보일 것이며,

고통과 괴로움의 연속인 상태에서 벗어나, 기쁨과 즐거움이 넘쳐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이 내 마음에 있는 사람은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없는 사람은 어둠이고 사탄에게 잡힌 상태이고 사탄의 종 노릇하며

고통과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고단하고 힘든 인생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 빛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비취어 이스라엘이 이방인에게서 해방되듯이

어두운 이 세상에 비취어 하나님의 자녀들이 공중 권세 잡은 자들에게서 벗어나게 하실 것이다.

이사야는 6절에서 그 빛에 대하여 정확히 설명하고 있다.

6.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이사야가 말하는 한 아기, 한 아들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성령으로 잉태된 예수님을 말한다.

이사야는 예수님을 어떻게 정의하였나?

먼저 어깨에 정사를 매었다는 뜻은 주권이 주님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만물의 주권이 예수님에게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세상을 통치하시고 다스리신다.

기묘자라 모사라는 뜻은? 놀라우신 조력자라는 뜻으로 ‘경이로운 일’, ‘불가사의한 것’을 뜻한다.

인간의 이성과 지혜, 상상과 감각으로써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분, 초월적인 능력과

성품으로 오묘하신 섭리를 수행하시는 분을 말한다. 그 분은 하나님이시고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영존하시는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며 평강의 왕이시다.

7.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이 말씀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빛이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셨으나,

우리는 여전히 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있으며, 죄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죄와 싸우고 있다.

지금은 빛과 어둠이 공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말씀이 언제 완벽히 이루어지나? 그것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이루어진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 전까지 우리는 여전히 죄와 싸워야 하고 빛 가운데 행해야 한다.

요일1: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에 순종하여 말씀대로 살면

우리는 빛 가운데 행하는 자이지만 마귀의 유혹에 빠져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고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어둠이 우리를 지배할 것이다.

우리 각자가 자신에게 물어 보아라. 나의 마음에 참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이 없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둠 속에 갇혀있는 상태다.

감사보다 원망 불평이 앞서는가? 그렇다면 어둠에 속고 있는 것이다.

나의 현실과 장래가 걱정과 근심과 염려와 불안으로 가득한가?

그렇다면 우리의 시선이 어둠을 향해 있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이사야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빛을 선포하고 있다.

그리고 700년 후 이사야의 예언은 그대로 성취 되었다.

죄로 물든 내 마음을 어둠이 지배하여 어두움 속에 살고, 미래가 어둡고 희망이 없는 나에게

여러분에게 예수님께서 빛으로 찾아 오셨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빛 가운데 행하여야 한다.

빛 가운데 행하는 것이 무엇인가? 먼저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고

형제와 이웃을 미워하지 말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랑해야 한다. 또한,

이 세대를 본 받지 않아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짓는 모든 악한 행실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어두운 이세상을 밝히 비추어야 한다. 그것은 착한 행실이다.

여러분이 왜 나는 예수님을 믿는 크리스찬이라고 밝히지 못하는가?

세상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기 싫어서이다. 세상사람들이 여러분을 향해

예수 믿는다는 사람이 그렇게 행동하나?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이 욕하면 같이 욕하고, 같이 거짓말 하고, 같이 싸우고

세상 사람들과 똑 같은 모습으로 살아야 손해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귀가 그렇게 유도하는 것이다. 마귀가 유도하는 대로 끌려가서는 안 된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구별 된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나에게 어떻게 대하든지 우리는 선한 말을 하고, 선한 행동을 하여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 자녀답게 사는 것이고, 하나님 자녀답게 사는 자는 하나님이 도와 주신다.

하나님이 대적을 이기게 하시고,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시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여 손해

보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손해 본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복을 주시어 복을 누리게 하신다.

현실이 힘들어도 장래가 불안하여도 하나님을 믿고 기뻐하라.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고,

결국 우리를 웃게 하신다. 어려운 일이 있어도 원망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고 감사하라.

어려운 일을 주신 이유가 있고, 그 어려운 일을 극복할 힘도 주시고, 감사는 기적을 일으킨다.

모든 일에 사소한 일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에게 기도하라. 끝으로 간증 한가지 하면

나의 큰 딸 강신영이가 가족관계증명서에 성씨가 한자로 잘못 기재되어 있었다.

읍사무소에 가서 말하니 남구청에 연락하라 하고 남구청은 법원에 신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무원이 실수한 것을 아무 잘못도 없는 내가 비용과 시간을 들여가며 서류를 준비하여

대구 법원까지 가서 신고 한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 부당한 일인가?

그것을 법원 관계자에게 말하였더니 알아보고 연락을 준다 하더니

며칠 후 법원에서 연락이 와서 법원에서 수정하면 시간도 많이 걸리니

다시 남구청에 서류를 넣어 직권 수정하라는 것이다.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그래서 기도시간에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남구청 담당자에게 전화하였더니

다른 담당자가 전화를 받아 출생신고서류 제출 없이 방문도 없이,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곧바로 수정해주겠다고 하고는 몇 시간 후 수정되었다고 문자가 날아왔다.

시간을 내어 찾아가고 비용을 드려 서류를 제출하고 하지 않고 전화 한 통으로 해결된 것이다.

시간과 비용이 들지 않고 수정한 것도 기쁘지만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 주셨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우리는 사람에게도 감사해야 한다. 감사할 것도 없지만 담당자에게 감사하다고 말해주었다.

이런 작고 사소한 것에서도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만나고 체험하라. 

작은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서는 크고 놀라운 일들도 응답하시고 이루어 주신다.


'이사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에게 능력을 주신이유?  (0) 2018.12.08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면  (0) 2018.11.10
마헬살랄하스바스  (0) 2018.09.22
하나님을 신뢰하라  (0) 2018.08.25
주님 내가 여기 있사오니  (0) 2018.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