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과 바나바는 이고니온에서도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설교하였다.
이 설교를 듣은 수많은 유대인들과 그리이스 사람들이 믿었으나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에게 악한 마음을 품게 하였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는 오랫동안 그 곳에 머물러 있으면서
주님을 의지하여 담대하게 말씀을 전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놀라운 기적을 행하게 하여
그들이 전하는 주의 은혜의 말씀을 믿도록 증거해 주셨다.
그러나 그 도시 사람들은 견해가 엇갈려 유대인 편을 드는 사람과
두 사도의 편을 드는 사람으로 나뉘어졌다.
믿지 않는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이 그들의 지도자들과 함께 사도들을 괴롭히고 돌로 쳐죽이려고 하자 그것을 알아차린 사도들은 루가오니아 지방의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피해 가서
복음(기쁜 소식)을 전하였다.
1. 우리는 복음 증거의 사명자 들이다.
우리가 복음을 전해보면 하나님 말씀을 듣고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으로 나누어 진다.
예배 중 설교를 하여도 마찬가지이다. 여러분 중 듣고 말씀이 믿어지는 사람이 있고
말씀을 전혀 듣지 않으려 하는 사람도 있고 말씀을 들어도 전혀 믿어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하나님이 택한 자녀는 처음 교회를 나와도 말씀이 들리고 믿어진다.
그러나 마귀에게 붙잡힌 자는 전혀 말씀을 듣지 않으려 하고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니고 말씀을 들어도 의심하고 믿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말씀을 듣고 믿는 자를 위하여 전도를 멈추어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을 전해보면 누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지 마귀에게 붙잡힌 자인지 판별된다.
그러나 그것은 한번으로 판단되지 않는다.
지금 말씀을 듣고 믿지 않아도 나중에는 듣고 믿음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전하되 많은 사람에게 계속해서 전해야 하고 한 사람에게 여러 번 전해야 한다.
롬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4.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누구든지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
그럼 예수님이 (구세주, 메시아) 그리스도이심을 알고 믿으려면 하나님 말씀을 들어야 한다.
하나님 말씀을 들으려면 말씀을 전하는 자가 있어야 한다.
말씀을 전하는 자가 있으면 듣는 자가 있고 듣는 자 중에 믿는 자가 나타나고
그 믿는 자가 또다시 전하는 자가 되어 전하게 된다. 그래서 교회는 부흥하고 성장한다.
그렇지 않고 그것이 멈추어 버리면 교회의 성도가 줄어들고 교회는 힘을 잃고 약화되어
유럽의 교회들처럼 되어 버린다.
자 그럼 누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전도를 멈추게 하는가? 사탄의 하수인들이다.
오늘 본문에서 보듯이 마귀에게 잡힌 유대인들이 복음을 방해하고 핍박 한다.
그들은 불신자들을 선동한다. 그래서 악한 감정이 생기도록 한다.
전도를 못하도록 방해하고 심지어 사도들을 돌로 쳐 죽이려고까지 하였다.
지금도 안티 기독교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 교회에서 잘하는 일은 절대 말하지 않는다.
교회가 사회에서 가난한 자들에게 구제사업을 하고, 병든 자들에게 의료선교를 하고
못 배우는 자들에게 지식선교를 하는 것을 절대 알리지 않는다.
그러면서 교인이나 목사님 중에 죄지은 일이 있으면 그것을 집중적으로 알리고 반복해서 알리고
교회전체를 나쁜 집단으로 만들어 버린다. 거기에 이단의 폐해도 한 몫하고 있다.
이단들이 비정상적인 종교활동을 하는 것을 기독교 전체로 매도해 버린다.
그러니 잘 모르는 일반 대중들이 기독교는 다 나쁜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래서 전도가 안 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복음 증거를 멈춰서는 안 된다.
바나바와 바울이 죽음을 무릎 쓰고 전도를 멈추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루스드라에는 태어나면서 앉은뱅이가 되어 전혀 걷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이 바울의 설교를 듣고 있을 때 바울은 그를 주시하면서
그에게 고침 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것을 보고 큰 소리로 '당신의 발로 일어서시오!' 하였다.
그러자 그 사람이 벌떡 일어나 걷기 시작하였다.
2.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여라.
하나님의 말씀이 그 사람에게 들어가 역사하게 하시려면 이 앉은뱅이와 같이 말씀에 집중해야 한다. 고침 받을 만한 믿음을 보여야 역사가 일어난다.
여러분은 두 가지 메시지를 받는다.
한가지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세상 지식과 함께“하나님은 없다.”라는 메시지를 6일 동안 계속해서 끊임없이 받는다. 그러다 보니 여러분의 생각과 말 속에는 하나님이 없다.
그러니 내 생각으로 산다. 내 마음대로 내 육신이 원하는 대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한다.
그리고 주일이 되면 교회에 와서 딱 한번 예배를 드린다. 그리고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시고 역사하신다 하나님 음성에 귀를 기우려라”는 메시지를 듣는다.
여러분! 어느 메시지가 더 많이 들리고 더 신빙성 있게 들리고 진실로 들리는가?
사람은 들리는 대로 믿는다. 틀린 말도 진실이 아닌 말도 자꾸 들으면 진실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국가가 역사를 왜곡하고 국민은 그 왜곡된 거짓을 진실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거짓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고 잊혀져도 결국 들어난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세상이 주는 메시지를 받지마라. 그대신 단 하루 단 1시간이라도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고 그 말씀을 자신이 받아드리고 의심하지 말고 믿어라
그래야 믿음이 굳건해지고 견고하게 다져져서 하나님의 때에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질병이 치유되기도 하고 문제가 해결되기도 하고 기적이 일어나게 된다.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그러자 그것을 지켜 본 사람들이 바울에게 '신들이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내려오셨다!' 하고 외치며 바나바를 '제우스'라 부르고 바울은 주로 말을 하기 때문에 '헤르메스'라 불렀다.
그리고는 성 밖에 있는 제우스 신전의 제사장은 몇 마리의 황소와 화환을 성문에 가지고 와서 군중들과 함께 사도들에게 제사를 지내려고 하였다.
바나바와 바울은 이 말을 듣고 옷을 찢으며 군중 속으로 뛰어들어 이렇게 외쳤다.
'여러분, 왜 이러십니까?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그래서 우리가 여러분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하늘에서 비를 내려 주시고 열매 맺는 계절을 주셔서 선한 일을 하시고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만족하게 하셨습니다.' 하면서
두 사도는 이 말로 겨우 군중들을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던 중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유대인들이 몰려와 군중들을 선동하여
자기들 편에 끌어들이고 바울을 돌로 쳐서 죽은 줄 알고 성 밖에 내다 버렸다.
그래서 신자들이 모여들어 그의 주변에 둘러섰을 때 죽은 줄 알았던 바울이 벌떡 일어나
성 안으로 들어갔으며 이튿날 그는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떠났다.
3.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여러분 루스드라 사람들이 어떻게 돌변하였나?
바나바와 바울이 앉은뱅이로 태어나서 이때까지 한번도 걸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을
성령의 능력으로 고침 받고 벌떡 일어나 걷도록 만든 것을 보고는
하늘에서 신이 사람의 모습으로 내려왔다 하면서 제물을 드리고 제사까지 드리려고 했던 사람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온 유대인의 음해하고 모함하는 말을 듣고는
한 순간에 마음이 바뀌어 바울을 죽이려고 돌로 쳐 버렸다.
이럴 수가 있나? 이쪽지방 사람들의 인성이 좋지 않아서 그런가?
아니다. 그것은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수많은 유대인들이 나와
예수님 지나가시는 길에 자신들의 겉옷과 나뭇가지를 깔고 손에는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며 찬송하며 경배하던 사람들이 나중에 어떻게 돌변하였나?
예수님께서 힘없이 제사장이 보낸 군사에게 붙잡혀 빌라도의 법정에 섰을 때에
빌라도가 예수님을 풀어주려고 “바라바와 예수 중 누구를 풀어 주랴?”고 묻자
예루살렘 군중들이 바라바를 살리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야 한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래서 빌라도가 아무리 생각해도 예수는 아무 죄가 없어서 채찍으로 때리고 놓아주려고 했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민란이 일어날 정도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빌라도가 할 수 없이 ‘나는 이 일에 무죄하니 너희가 책임지라’ 하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내주자 유대인들은 “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우리와 우리 후손에게 돌리시오”하면서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로마병정에게 넘겨버린 것이다.
그 죄의 결과로 이스라엘은 2000년 동안이나 나라를 잃고 온 세상에 흩어져 온갖 고생을 하다가
히틀러의 등장으로 600만 명이 가스실로 들어가 죽임을 당하는 죄의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그럼 이스라엘 족속만 이렇게 조석지변으로 마음이 변하는가? 아니다. 모든 사람이 다 그렇다.
렘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의 마음은 부패하였다. 썩었다. 지독한 냄새가 난다.
인간이 얼마나 악하고 교활한지 모른다.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어제 찬양단 차량운행을 하면서 선생님이 어이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누가 봐도 멍청하고 무식한 운행을 하였다. 얼마나 내 자신을 자학한지 모른다.
‘내가 왜 그런 어리석은 판단을 하였나? 아 정말 제 정신이 아니네 도대체 내가 왜 그랬을까?
그리고 찬양 연습이 끝나고 가는 길에 내가 직진 신호를 받아 달리고 있는데
옆 도로에서 갑자기 차가 튀어나와 내가 가는 앞길을 가로 막으며 달렸다.
“아니 저 사람이 미쳤나? 운전을 왜 저 딴 식으로 해~” 하면서 막 화를 내었다.
그런데 불과 한 시간 전에 나는 저 사람 보다 더 심한 잘못을 저질렀다.
그것이 갑자기 떠오르자 더 이상 그 사람을 욕할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이 사람이다.
여러분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여러분의 친구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불신 친구들을 믿지 마라.
우리의 우정은 영원히 변치 말자하고 손가락 걸고 약속하지만 오래 가지 못한다.
해가 바뀌고 반이 바뀌면 만남이 뜸해지고 새로운 친구가 생기면 결국 멀어지게 되어있다.
일진들은 영화에서 조폭들이 하는 것을 보고 그대로 따라 한다.
술에다 자신의 핏방울을 떨구어 서로 바꾸어 마시기도 하지만
나중에 자신의 이익에 반하거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면 가차없이 버린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
심지어 요즘 세상에는 부모가 자식을 버리는 세상에 살고 있다.
얼마 전 뉴스에 누군가가 모텔에 아이를 낳아 버리고 도망갔다.
나중에 범인을 잡고 보니 엄마는 20대 여자 아이였고 아빠는 30대였는데 욕정에 이끌려 성관계를 맺었는데 임신이 되었고 아이를 낳고 보니 키울 수가 없어 버렸다는 것이다.
지금도 수 많은 아이들이 버려짐을 당하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를 낳은 너의 부모도 너를 버릴지라도 하나님은 절대 버리지 않으신다고
시편 27:10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히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그리고 하나님은 자고 일어나면 생각이 바뀌는 인간과는 달리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이 동일하시다.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신다.
우리가 어떤 죄를 짓더라도 우리가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고 하나님을 떠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사랑하신다.
그러니 우리는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고 감격하고 찬양하고 경배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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