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은 75세에 하나님에게 부름을 받아 갈대아 우르를 떠나게 됩니다.
100세에 아들 이삭을 낳고 138세에 사라가 죽고 140세에 이삭을 리브가와 결혼시킵니다.
그후 오늘 본문1~6절 내용과 같이 후처(그두라)를 얻어 6명의 자녀를 더 낳았습니다
그리고 그들로 이삭을 떠나 동방으로 가서 살도록 하였는데 그것은 약속의 아들 이삭에게
모든 소유의 상속권을 주고 다른 아들들에게도 부족하지 않는 재산을 나누어 주어
사후에 재산 분쟁을 일으키지 않게 하기 위한 조처를 취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나이 160세에 야곱과 에서가 태어난 것을 보았고
오늘 본문 7~11절 나타나듯이 아브라함의 나이 175세, 야곱과 에서가 15세 되든 해에 죽습니다.
그리고 이삭과 이스마엘이 사라를 장사 지낸 막벨라 굴에 아브라함을 합장을 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로 여러 가지 고난을 겪기도 했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붙들고 사명을 잘 감당 함으로 일평생을 부귀와 영화와 장수를 누리고
아들 이삭에게 하나님의 구속 사역의 바통을 넘겨 주고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습니다.
우리도 아브라함과 같이 이 세상에서 복된 삶을 누리며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그리고 없어도 될 이스마엘의 족보가 12~18절에 언급된 이유는
앞으로 계속 이어질 구속 역사와 이방의 불신 역사 사이의 갈등이 성경 내내 나타날 것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한 복선인 것 입니다
믿음은 사단과의 끊임없는 영적 싸움의 연속 가운데서 성장 합니다. 만약 그리스도인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면 믿음이 더욱 성숙하여 져서 많은 복과 은혜를 누리게 될 것이고
영적 전쟁에서 패배하면 믿음이 퇴보하여 엄청난 고난과 고통을 맛보게 될 것 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성경은 지속적으로 기록하므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믿음으로 승리하여 복을 선택 하겠습니까? 실패하여 화를 선택하겠습니까?
그리고 19~26절에는 세번째 족장 야곱과 그의 쌍둥이 형 에서에 대한 탄생 기록이 나옵니다.
이삭은 늦은 나이 40세에 결혼을 하지만 20년이 지나도록 자녀는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믿음의 유산을 이어 받은 자녀답게 하나님에게 자식을 줄 것을 기도하여
이삭의 나이 60세에 아이를 가지는데 성경 인물 중 유일하게 쌍둥이 형제였습니다.
이들은 태어나기 전 배속에서부터 싸웁니다.
그러니 이 성경 말씀을 보더라도 형제 간에 싸우는 것은 어찌보면 이상한 것이 아니고
당연한 것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본성은 죄로 인하여 타락하므로 전적으로 부패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아! 형제간에 싸우는 것은 당연 하구나~하고 계속 싸우면 되겠습니까?
형제와 싸우는 것은 사단에게 속는 상태로 계속 사는 것이고
형제 간에 화목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 입니다.
형제간에 불화하면 가정과 교회가 지옥이고 화목하면 가정과 교회가 천국이 됩니다.
여러분은 천국에서 살고 싶어요? 지옥에서 살고 싶어요?
주먹만한 것들이 배속에서부터 싸우고 있으니 어머니인 리브가가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래서 그 이유를 하나님에게 물어 보자 하나님은 그 아이들에게 대한 예언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것은 태중에 두 민족이 있는데 아우인 야곱의 후손이 형인 에세의 후손보다 강하여 질 것이고
형의 후손이 동생의 후손을 섬길 것이라는 것 이었습니다.
그럼 선생님, 간난 아이가 배속에서 아무 짓도 안했는데 벌써 운명이 결정 되어진 건가요?
라는 의문이 들 것 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성경에서 명쾌하게 증명하고 있습니다.
롬9:11~13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배속에서부터 이미 선별된 이 예언은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 원리’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어떤 인간이 잘났고 머리 좋고 자신의 노력에 따라, 업적에 따라
결정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에 따른 주권적 결정에 근거한 것입니다. 따라서 구원 받은 성도는
내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따랐기 때문에 이렇게 큰 복을 받았다고
자랑 하는 것은 잘못 생각하는 것 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선택 한 것이지 내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시고 힘과 능력을 주셔서
아브라함이 열국의 아비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이지 결코 아브라함이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이룬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한 것은 단지 믿음과 순종뿐 인 것 입니다.
그럼 태어나지도 않은 야곱과 에서는 믿음과 순종을 어떻게 하나님이 판단하시고 선택하셨나요?
라는 의문이 들 것 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은 아이가 태어나서 어떤 성품을 가지게 되고 어떤 신앙생활을 하고 사명은 무엇이고 비전은 무엇인지 이미 다 아시고 계시다는 것 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판 가롯 유다보고는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마14:21)하시고 그 말씀대로 유다는 자살 하였고
사도 바울에겐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행9:15)하셨고 그 말씀대로 로마 황제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베드로에게는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요21:18)
그 말씀대로 복음을 전하다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순교 했습니다.
하나님은 에서와 야곱이 태어나기도 전에 그들의 미래를 다 아시고 예언 하십니다.
세상 사람들도 자신의 앞날과 미래에 대한 궁금증으로 살아 갑니다.
대학에 갈지 못갈지, 취업이 될지 안될지, 사업이 잘될지 안될지, 심지어는 지식인들 중에서도
국회의원에 당선 될지 안될지 대통령에 당선 될지 안될지 줄을 섭니다. 그리고
점을 치기도 하고 굿을 하기도 하고 부적을 사기도 해서 자신의 미래가 어떤지
나쁜지 않고 좋게 되길 바라고 노력하고 애씁니다 그러나 그것은 헛된 짓 입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미래가 궁금하죠?
내가 앞으로 성인이 되어 세상에 나가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만약에 그런 것들을 기록하여 알 수 있는 책이 있다면 보고 싶어요? 안보고 싶어요?
아마 비싼 돈이 들어도 사 볼 것 입니다. 그런대 그런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은
여러분의 미래를 정확하게 알려주고 여러분의 인생의 여정에 확실한 가이드가 되며
여러분 인생의 종착점을 정확하게 예측해 주는 책 입니다. 무엇? 그것은 바로 성경 입니다.
성경은 하나님 말씀이고 기록 되어진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복된 삶이 될 것이고
말씀과 상관없이 살면 저주의 삶이 되는 것 입니다.
야곱과 에서 당시에는 성경이 없습니다. 그대신 생생한 간증들을 할아버지나 아버지로부터 전해 들었을 것 입니다.
추측하건대 그런 이야기를 전해 들은 야곱은 아브라함 할아버지의 비전을 아버지 이삭의 비전을 자신의 비전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했다는 것 입니다.
차자이기 때문에 자신이 가질 수 없는 비전을 그의 이름대로 ‘발꿈치를 잡은 자’ 또는 ‘빼앗는 자’, ‘속이는 자’로 그 이름이 암시 하듯이 야곱은 본성적으로 경쟁에서 이기기를 좋아하고 원하는 것은 기어코 손에 넣고야 마는 집념의 사람이었습니다 따라서
야곱은 차자 였지만 장자의 권리를 사모하였고 정말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장자의 명분은 단순히 아버지의 재산상속권을 가지는 것 뿐만아니라 영적 축복도 이어 받습니다.
장자의 명분에는 특히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 즉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는 특권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는 놀라운 특권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야곱은 어떻게 해서라도 그 장자의 명분을 빼앗기 위해 안감힘을 쓰다가
기회가 오자 즉각적으로 독수리가 먹이를 낚아채듯 물어가 버렸던 것 입니다.
그런데 에서는 장자이면서도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는 것 입니다.
할아버지, 아버지의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는 것 입니다. 그건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이고
내가 인생을 즐기는데 오히려 거추장스런 장애물 정도로 여긴 것 입니다.
내가 지금 배가 고파죽겠는데 나에게 아무 소용없는 장자의 명분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고
생각하고 헌신짝 버리듯 버린 것 입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에서와 같이 어리석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없습니까?
내가 지금 먹고 살기 바쁜데 예배(말씀)는 무슨 소용 있나? 내가 지금 인생을 즐기려는데
신앙이 오히려 발목을 잡고 나의 행동을 제약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약속이고
우리 미래에 대한 예언의 말씀 입니다.
네가 내 말을 듣고 내 말대로 살면 너에게 모든 복과 은혜를 부어 주겠다.
하지만 네가 내 말을 듣지 않고 네 맘대로 살면 모든 저주가 너희에게 임할 것 이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어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우리 모두는 장자의 명분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기업을 물려 받을 자격을 갖추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처럼 장자의 명분을 귀히 여겨 축복의 사람이 될 것 인지
에서처럼 장자의 명분을 만홀이 여겨 저주의 사람이 될 것 인지는 우리 하기 나름 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미 여러분이 축복의 사람으로 인생을 마감할 것 인지
저주의 사람으로 인생을 마감할 것인지를 다 알고 계신다는 것 입니다. 두렵지 않습니까?
하나님 한번도 나를 실망 시킨 적 없으시고,
여러분 내가 저주의 사람으로 이름이 기록되지 않고 축복의 사람으로 이름이 기록되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다 같이 기도 합시다
내가 지금까지 축복의 길을 걷고 있는지, 아니면 저주의 길을 걷고 있는지
만약 저주의 길을 걷고 있는 중이라면 한시라도 빨리 축복의 길로 돌이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저도 축복의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저를 도와 주세요 저를 만져 주세요 인도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