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성경 안에서 근친상간의 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역사가 근친상간으로 시작 된다.
하나님은 첫사람으로 최초의 인간 아담을 만드셨다.
아담이 홀로 있는 것을 좋지 않게 보시고 돕는 베필로 하와를 아담의 갈비뼈로 만드셨다.
그리고 그의 아들 가인과 아벨, 그리고 셋 그들의 결혼 상대는 자신의 누이동생들이었다.
그러므로 인류가 번성하기 전까지는 적어도 근친상간이 죄가 아니었다 그리고
근친상간이 언제부터 죄가 되었는지는 정확히 몰라도 레20장에 율법으로 금하였고 어기면 사형에 처한다 레위기는 모세가 출애굽하고서 기록한 율법서 이다. 창세기에서 찾아보면
1. 소돔과 고모라 멸망 후 롯이 그의 두 딸과 더불어 동침하여 모압과 암몬을 낳은 것입니다.
2. 야곱의 장자였던 르우벤이 아버지의 첩이었던 빌하와 더불어 함께 누운 기록입니다(창35:22).
3. 시아버지 유다와 며느리 다말간에 불륜의 관계입니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게 시작 한다
창38:1 그 후에 유다가 자기 형제들로부터 떠나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와 가까이 하니라
1) 유다는 그의 형제들로부터 떠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다의 첫 번째 실수는 형제들로부터 떠난 것이었습니다. 떠난 이유는 나와 있지 않지만 짐작해
보면 요셉의 사건 이후로 봐서 결과야 어찌 되었건 유다는 동생 요셉을 애굽으로 팔고 아버지를
속인 죄책감 때문일 것이다.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지켜 볼 수 없었을 것이며
또한 공범자인 형제들과 함께 살기도 싫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버지를 떠난 것은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것과 같기 때문이다.
오늘날 하나님의 집, 교회에 상당한 문제가 많다. 그렇다고 교회를 떠나서는 안된다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안전한 곳은 주님의 교회이기 때문이다
교회를 떠나는 것은 말씀을 떠나는 것, 하나님을 떠나는 것, 하나님의 보호하심에서 벗어나는 것,
사탄의 공격의 대상이 되고 표적이 되는 것이다.
창38:2~5 유다가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과 결혼하여 아들 엘, 오난, 셀라 3형제를 낳는다
2) 유다는 이방여인 가나안 족속의 여인과 결혼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미 앞에서 가나안 족속의 여인을 택하지 말라는 명령에 대하여 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의 아내를 구함에 있어서 그의 종을 시켜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가나안 족속
가운데 아내를 얻지 않고 그의 고향으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이삭 역시 야곱을 불러 축복한 후에 가나안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라고 하고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보냈다. 그러나 유다는 가나안 여인을 아내로 얻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하여 약속하신 것을 역행하고 있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전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녀와의 관계를 통하여 얻은 후손들을 인정하지 않으셨다.
지금 유다는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행동들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분리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눈에 보기에 좋다고 세상과 타협할 수 없는 것은 이 세상은 장차 멸망 당할 것이라는
분명한 사실 때문입니다. 우리의 열매들은 철저히 주님의 말씀의 씨로부터 시작이 되어야만 한다.
그 외에 어떠한 것도 주님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아름답고, 풍성해도 그것이 주님의 뜻과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면 버려야 한다.
유다는 이 일에 실패를 함으로서 옳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38:6~11 첫째 아들 엘과 다말을 결혼 시켰는데 엘이 하나님께 악을 행하므로 죽게 됨
그래서 둘째 아들 오난에게 형을 대신하여 후손을 보게 하였으나 거부하여 불순종하였고
오난 역시 죽임을 당하니 셋째 아들까지 죽을까 두려워 다말을 자기 친정집으로 돌려 보낸다.
3) 유다는 영적으로 무지하여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형사 취수제, 형제 중 하나가 먼저 죽었을 때 그 아내 된 자는 다른 이에게 시집을 가지 말고
남편의 형제 된 자가 남편의 의무를 행하도록 말하고 있습니다(신25:5).
큰아들이 악으로 죽고 둘째 아들은 불순종으로 죽고 셋째 아들마저 죽임을 당할까 하여
아무 죄도 없는 며느리 다말을 집으로 돌려 보내버렸다
아들이 하나님에게 죄를 지어 죽었는데 며느리를 잘 못 얻어 죽은 것으로 잘못 판단 한 것이다
그것은 며느리 다말에게 큰 죄를 지은 것이고 한 여인을 고통의 수렁으로 밀어 넣은 행위다.
창38:12~18 유다의 아내가 죽고 한날 양털을 깎으러 딤나로 가게 된다.
그때 그 소식을 들은 다말은 자신의 후손을 얻기 위해 시아버지인 유다에게 창녀로 가장하여
접근하게 되고 결국 자기의 계획대로 유다와 동침하게 된다.
우리는 여기서 실패한 두 사람의 만남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가 좌절 중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상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오히려 그것은 주님의 은혜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이다.
롬5:20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그들의 상태가 지금 어떻습니까?
유다는 아버지와 형제를 떠나 잘 살아보려 했지만 이방여인을 아내로 맞이하여 전혀 신앙적으로
살지 못하고 자녀들을 신앙적으로 기르지도 못하여 두아들을 잃고 아내까지 잃는 슬픔에 빠졌다.
외롭고 쓸쓸하여 위로 받을 곳이 없었다. 그러던 중 다말의 유혹에 넘어가버린 것이다.
다말의 불행도 유다 못지않게 불행한 여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녀가 비록 창녀로 변장을 하고 유다를 유혹했지만 오죽하면 그런 결단을 했을까 생각해 보면,
그녀는 결혼하고, 바로 남편을 잃었고, 시동생을 통해 자녀를 낳아 후손을 보려 했으나
그것 또한 뜻대로 되지 않은 채 시동생 마저 죽어 버렸고, 마지막 어린 시동생을 기다려도
안될 것 같고, 시아버지 유다로부터 경계의 대상이 되어 쫒겨난 신세가 되었다.
그래서 마침 시아버지의 소식을 듣고 계략을 꾸미고 결국 성공하여 후손을 보게 된 것이다.
창38:18~30절 그리고 다말은 유다에게서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담보물로 받고 아기를 가졌는데
그에게서 태어난 아기가 바로 성경에서 두번째 쌍둥이 베레스와 세라였다.
다말은 후손을 얻기 위해 죽기를 각오 하였다. 불륜이 발각되면 그 당시의 법은 돌로 쳐죽이거나
불로 태워 죽이는 끔찍한 형벌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지혜로운 다말은 다른 사람과 불륜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유다의 후손을 보기 위한 마지막 방법인 것을 증거하기 위해
유다에게서 인정 될 만한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담보물로 받아 놓은 것이다.
분명, 유다와 다말은 정상적인 관계가 아니다. 그것은 유다 자신 또한 너무나 잘 아는 바라
다말의 수태 사실을 알고 유다는 다말을 다시는 찾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유다는 자신의 아들 셀라를 주지 않은 것에 대해 자신의 잘못을 인정 했고
분명히 다말이 유혹을 해서 불륜이 되었지만 오히려 다말이 의롭다고 유다가 인정해 준 것이다.
다말이 유다의 후손을 사모 하듯이 사모하는 자에게 은혜가 주어지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알고 주님의 은혜를 사모해야 하고, 그것을 굳게 믿어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다말과는 달리 그 방법까지도 의로운 방법으로 해야 한다.
다말의 증거품에는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다.
1) 도장은 우리가 보통 성경 안에서 인(印)이라고 합니다.
유다가 다말에게 도장을 내어준 것은 너는 내 것이라고 도장을 찍은 것과 같은 의미이다.
다말이 죽을 위기에서 증거품으로 내놓은 도장이 오히려 의롭다고 인정을 받을 수 있었듯이
우리 또한 죄인의 신분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지만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치심을 받음으로서 오히려 의인의 신분으로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2) 팔찌는 장식품이고 결혼을 위한 예물로 쓰여 진 것이었습니다.
유다가 다말에게 팔찌를 주었다는 것은 유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다말이 아내가 되었다는의미
예수님은 죄인인 우리가 회개하고 주님을 믿으면 우리를 그리스도의 거룩한 신부로 맞이 하신다
그리고 천국에서 혼인잔치가 벌어지며 그 혼인잔치의 주인공이 바로 우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을 통해 주어진 약속입니다. 이것은 팔찌가 주는 또 다른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
3) 지팡이는 능력과 관련하여 쓰이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이 지팡이를 들고 다녔다. 그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모세의 지팡이(출7:2), 다윗의 지팡이(삼상17:40), 엘리야의 지팡이(왕하4:29)등은
모두 주님의 놀라운 능력을 드러낼 때에 사용되어진 것입니다.
유다는 자신의 지팡이를 다말에게 맡겼는데 그것은 다말에게 있어서 놀라운 능력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죄인의 신분이었던 그녀가 당당하게 아들들을 낳아 아브라함, 예수님의 가문에
들어 올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지팡이는 어떠한 의미입니까?
우리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어떠한 상황이 와도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미 영원한 생명을 보장받았고, 상속을 얻게 될 것이며, 장차 왕이 될 자로서 살아갈
것에 대하여 약속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능력 있는 생애를 사는 것은 매우 당연한 것입니다.
과연 우리의 손에 능력의 지팡이를 들고 있습니까?
그것은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사람의 병을 고치고, 마귀가 쫓겨나며,
사람들의 눈에 볼 때 신비스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능력 있는 일은 바로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들을 세상으로부터 주님께로 돌이키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오직 복음(말씀)으로 가능하다.
그리스도인의 지팡이는 바로 복음의 지팡이다 우리는 복음의 능력을 들고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
유다와 다말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이들은 분명히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행동을 했습니다.
그것은 용납될 수 없는 행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그들의 행위를 정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유다는 다말이 옳다고 하였고, 또한 예수님의 족보에 나오는
4명의 여인(1.다말 2.라합 3.밧세바 4.마리아) 중 첫번째 여인으로 이름을 올린다
마1:1 ~ 3절
유다 뿐만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삭은 아내를 팔았고 야곱은 아버지를 비롯해 많은 사람을 속였고
다윗은 불륜과 살인을 저지른 장본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조상으로 그것도 중요한 인물로 기록 되어져 있다.
어떻게 그럴 수 가 있는가? 그럼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모든 사람은 죄인이다. 인간의 행위로는 그 누구도 구원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쓰레기 더미 속의 장미꽃과 같이, 가시밭의 백합화 같이 죄로 가득한 인간의 역사 속에서
죄 때문에 누구도 하나님에게로 가까이 나아갈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의 모든 죄를 대신 뒤집어 쓰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예수님을 믿고 따르기만 하면 모든 죄가 사함을 받고 죄인에서 의인으로
마귀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영원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오늘 성경 말씀에 유다와 다말을 통해 세상에서 용서받지 못할 죄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여러분 그 하나님의 크고 놀라우신 사랑의 비밀을 듣고 알고도 계속 죄 속에 머물러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진심으로 영접하고 죄와 단절하십시오.
마귀와의 모든 관계를 끊고 어떤 것이라도 마귀와 거래해선 안된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승리하는 삶을 살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