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안의 압제에 시달리는 이스라엘에 기드온이라는 젊은 청년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그는 가난한 농부의 집안에 태어났고 그의 가문은 므낫세 지파중에 가장 약하며
가정에선 형제들 중에 가장 어리었다.
그리고 그의 성격은 소심하고 마음이 유약하고 겁이 많았다. 뿐만 아니라 신앙도 연약하였다.
그런 기드온을 하나님은 큰 용사라고 부르시고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는 약속과 함께
이스라엘의 사사로 삼으셨다. 그러나 그런 연약한 상태에서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 가 없었다.
기드온 자신도 과연 내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민족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과연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어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이 나타날 것인가? 의문이었다.
그래서 기드온은 하나님에게 표징을 구하였다.
기드온이 첫번째로 구한 표징은 ‘지금 저에게 찾아와 말씀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신지 아닌지를
보여 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염소 새끼 한 마리와 떡과 국을 만들어 예물로 드리었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의 요구대로 하나님이심을 보이셨다.
기드온이 드린 예물에 천사가 지팡이를 대자 바위에서 불이 나와 드린 예물을 불살랐던 것이다
믿음이 연약한 기드온이 두번째로 구한 것은 양털 표징이었다.
자신이 사사가 되어 이스라엘을 구원하게 된다면
양털 한 뭉치를 타작마당에 두고 이슬이 양털에만 내리고 주변 땅은 마르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황당한 요구 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기드온의 요구대로 양털에만 이슬이 내리게 하시어 양털을 짜니 물이 그릇에 가득하였다.
기드온의 요구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이슬이 양털에만 내리지 않고 주변 땅에는 내리게 해달라고 하였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을 시험하는 수준에 까지 이르렀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약한 믿음의 소유자 기드온을 꾸짖거나 버리지 않으시고
아무 말없이 다 들어 주셨다. 그 이유는?
믿음이 없는 기드온에게 믿음을 주시고 약한 믿음을 강하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럼 지금도 기드온처럼 기도하면 하나님은 무엇이든 들어줘요?
그럼 롯또 복권에 당첨 되게 해줘요 그럼 하나님 믿을께요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저에게도 기적을 보여 주세요
부자로 만들어 주시든지 공부 잘하는 수재로 만들어 주시든지 몸짱 얼짱으로 만들어 주세요
그것은 아니다. 왜? 아닌가? 목적이 다른 기도이기 때문이다.
약4: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하나님은 죄를 품고 기도하는 것과 의심하며 기도하는 것과 정욕으로 쓰려고 기도하는 것은
들어 주지 않으신다. 이런 뜻을 품고 기도해야 들어 주신다.
마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기도하면 필요한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신다
그리고 한가지 더 짚을 것은 우리는 표적을 따라 가서는 안된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가시니라”
선생님도 처음 예수님 믿을 때 이런 의문은 가졌었다.
성경에서는 엄청난 이적과 기적을 보이시고 기도하면 나타나시어 말씀하시는 하나님께서
왜 지금은 성경에 나오는 그런 이적과 기적을 보이지 않으실까?
우리가 성경을 읽다 보면 누구나 한번쯤은 의문을 품을 것이다. 왜 그럴까?
시대가 흐를수록 기적의 크기와 규모는 점점 줄어 들고 있고 기적의 횟수도 점점 줄어든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도 기적은 일어나지만 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다.
TV 뉴스나 신문에 날 정도로 객관적이고 검정 가능한 기적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구약시대에는 여호와가 하나님 되심을 알리기 위해 수많은 이적과 기적을 보이셨다.
그런대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되었나?
자신들의 할아버지 세대에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비롯한 수많은 이적이 일어났음을 들었다.
아버지 세대에 요단강이 갈라지는 기적을 비롯한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음을 보고 들었다.
그런데 가나안에 정착하여 살만하게 되니까 배부르고 등따시게 되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제1계명을 어기는 것을 시작으로
모든 계명을 다 어겨 버렸다. 하나님을 떠났고 하나님을 배반하여 버렸다.
신약시대에도 예수님이 구세주 되심을 알리기 위해 수많은 이적과 기적을 보이셨다.
그러나 결과가 어찌된 줄 아는가? 예수님을 배척하였다. 신성모독이라고 십자가에 못박아 버렸다.
그 후손인 지금의 이스라엘도 아무런 죄책감도 없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이지 않고
아직도 메시아가 오지 않았다고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이스라엘이 이러할진데 이방민족은 말해 무엇 하겠나?
이제는 이적과 기적이 필요치 않다. 예수님이 다 이루셨고 하나님의 말씀 성경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구약과 신약의 그 수많은 이적과 기적을 보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믿는다
내가 믿을려고 해서 믿는 것이 아니다. 믿을 수 없는 수많은 사건들을 의심 없이 받아 드리고
믿게 된 것은 바로 성령님이 우리 마음에 들어 오시어 감화 감동을 주시고 은혜를 주시니
가능한 것이다. 기적은 다른 것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기적이다.
대통령이 되어서 무엇이 답답하여 예수님을 믿는가? (
국회의원, 장관, 판사, 변호사, 의사, 연예인, 기업가 그들은 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믿는가?
그들이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들이 지금의 그 위치에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감사하고 눈물 흘리며 간증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러기 때문에 오늘을 사는 우리는 오직 하나님 말씀만 믿고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고
말씀에 의지하여 기도하고 나가면 말씀이 능력이 되어 말씀대로 이루어 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한다. 그리고 말씀에 근거하여 기도하여야 한다.
세상을 살다 보면 벽에 부딪히고 산 같은 문제가 내 앞길을 가로 막을 때가 있다
미래가 암담하고 한치 앞도 보이고 않고 캄캄하고 답답할 때가 있다.
그때 하나님 말씀을 접하고 그 말씀에 의지하여 기도하게 되면
두려움과 근심걱정이 사라지고 힘과 용기와 자신감이 생겨 강하고 담대함으로 나갈 수 있다.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하고 어떠한 난관도 해쳐나가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고
또 도전하여 결국 승리하고 꿈과 비전을 성취해 나가는 것이다.
기드온도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응답받고 또 기도하고 응답받고를 거듭하여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하였다. 그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 하였던 것이다.
미디안과 성전을 치루기 위해 므낫세 스블론 납달리 등, 몇몇 이스라엘 족속들이 모여들었다.
군사의 수가 3만2천명에 달하였다. 그러나 상대는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사람들로 구성된 연합군으로 그 수가 13만5천명에 달하여 적의 군사에 4분의 1도 되지 않는 수였다.
이 상황에서 전쟁을 하여도 이스라엘이 이길 가능성은 없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군사도 많다고 하시며 군사의 수를 줄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전쟁에 두려워 떠는자 2만2천을 돌려 보냈다. 이제 남은 수는 만명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을 내리셨다.
만명 중 전쟁에 출전할 군사는 300명만 뽑으신 것이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전쟁에서 승리 한 후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미디안 연합군을 물리쳤다고 자랑하지 못하게 하심이었다.
300명이 13만5000명을 물리쳐 이긴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는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리기 위함인 것이다.
300명이 13만5000을 어떻게 이길 수 있는가?
하나님은 적들이 연합군이라는 사실을 이용하였다. 그들이 진친 곳은 골짜기였다.
그 수가 얼마나 많은지 메뚜기 숫자와 같고 낙타가 해변의 모래와 같이 많다고 하였다.
이스라엘이 기습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한 채 모두가 평온하게 잠든 밤에
갑자기 나팔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곳곳에서 군사들이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다’라는
함성이 곳곳에서 울리고 횃불 300개가 적진을 해집고 돌아다니자 기습을 당한 줄 알고
미디안 군과 아말렉 군과 동방군들이 비몽사몽 간에 서로 뒤엉켜 치고 찌르고 죽이고
자기들끼리 죽이고 죽는 촌극을 벌인 것이다.
그로인해 12만명이나 죽었다. 나머지 1만5000은 도망갔으나 요단강까지 쫓아가 섬멸시켰다.
이와 비슷한 전쟁이 현대에도 일어났었다. 1967년 일어난 6일 전쟁이다.
300만의 이스라엘이 1억이 넘는 아랍 연합군을 6일 만에 물리치고 승리하였다.
이를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전쟁은 사람의 수에 있지 않고
하나님이 누구 편인가 누가 하나님 편에 서 있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기드온은 이스라엘 군사가 전쟁을 위해 3만2000명이 모였어도 수가 적다고 불평하지 않았다
그런대 군사가 그렇잖아도 부족한데 하나님은 수가 많다고 줄이라고 명하셨다
전쟁이 시작도 하기 전에 일시에 2만2000명이 돌아 가 버렸다. 그래도 눈 깜박하지 않았다.
하나님! 만명 가지고 13만 오천을 어떻게 이깁니까?라고 원망하지도 않았다.
‘전 못합니다, 할 수 없습니다’라고 때를 쓰거나 비관하지도 않았다
어디 그뿐인가? 그 중 전쟁에 참여하는 수를 300명으로 제안하였음에도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무슨 말인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다는 뜻이고 하나님의 기적을 확신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만약 하나님께서 3만2000명으로 미디안 연합군과 맞짱 뜨게 해서 이기게 하셨다면
이스라엘은 분명 자기들의 힘과 능력으로 이겼다고 자랑하며 자기를 들어 내려고 하였을 것이다.
인간들은 얼마나 교만한지 모른다. 낮은 위치에서는 겸손한 모습으로 사람과 하나님을 섬기다가
하나님께서 재능을 주시고 지혜를 주시고 힘과 능력을 주시어 높여 주시면
갑자기 교만하게 바뀌는 것이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결코 오래 갈 수가 없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나타내고 하나님을 자랑해야 한다.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한다.
고전1:26~31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