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90:1-5 인생의 허무를 극복하는 방법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로 인하여 겪는 슬픔을 회개하므로 기쁨으로 변화시키시는 분이십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저희들이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하고 고난과 역경 속에 있을 때 안타까이 지켜보고만 계시지 아니하고, 저희들에게 믿음을 주시어 참고 인내하고 견디게 하시고, 힘과 용기와 지혜와 강하고 담대함을 주셔서 능히 극복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만히 있지 않고 이 새벽에 나아와 나의 마음으로 영으로 주님을 찬양하며 경배하며 영광을 돌립니다. 여호와 내 하나님에게 감사하되 영원히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시90편은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 모세가 파란 만장한 인생 여정을 거치며 체험적으로 깨달은 인생 진리를 하나님에 대한 신앙 고백 형식으로 기록한 것으로서, 영원을 사모하는 인간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모세는 인생은 무상하며 헛될뿐이고, 그러한 인생을 위한 수고는 슬픔만 가져 온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인생의 소망은 없고 오직 영광과 참된 행복을 원한다면 우리가 진정으로 의지하고 바라보아야 할 소망은 영원하신 하나님뿐입니다. 시90편에서 모세는 유한하며 무상하기 그지 없는 인생과 영원하신 하나님을 극명하게 대조해 보임으로써 인생이 진정한 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영원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면에서 본시의 내용은 전도서와 비슷합니다.
1. 광야 같은 세상에서 우리의 진정한 거처와 피난처는 하나님뿐입니다.
1절에서 모세는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라는 기도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거처’는 ‘거주지’란 의미도 있지만 ‘피난처’,‘은신처’란 의미도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을 ‘집’ 또는 ‘은신처’에 빗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의 인생을 보면 이 말이 담고 있는 깊은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인생의 모든 굴곡을 다 경험해 보았습니다.
대제국 애굽의 왕궁 생활을 경험하였고, 광야에서 40년의 세월을 보내었습니다. 그의 평가는
히11:24-26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 되어 얼마든지 왕궁에서 안락한 삶을 살 수 있었지만 그렇게 살지 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 받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수모를 당하였습니다.
왜 그런 삶을 택하였을까요?
그것은 애굽의 왕궁이 자신의 진정한 거처이자, 영혼의 쉼터가 되지 못함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이 마치 자신들의 영원한 거처이고, 쉼터가 된다고 생각하고 더 안락하고 더 풍요로운 거처를 마련하며 살아가려고 힘쓰고 애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수억원 혹은 수십 억원 대의 아파트에 산다고 그 안에서 인생의 참 만족을 얻고 행복과 안정감을 누릴 수 있을까요? 아무리 아파트 평수가 넓고, 거대한 성과 같은 큰 건물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것만으로는 진정한 인생의 행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생의 본질적인 행복은 물질의 유무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진정한 행복은 돈으로 살수 있고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본질적으고 근본적인 행복은 하나님만 주실 수 있습니다.
아무리 커다란 저택에 살고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산다면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없고, 참 안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헐 벗고 굶주리는 것이 고통스러워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보다, 남들에 비해 많이 배우고 부러운 위치에 있던 사람들 부자, 탈랜트, 재벌, 등의 사람들이 자살하는 비율이 더 많은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이 부와 명예와 권력을 추구하며 살아왔고 자신의 모든 힘과 지혜와 역량을 기우려 성취하였지만 그런 것들로 참 기쁨과 참 즐거움과 참 만족을 느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바라고 원하는 것을 손에 쥐었지만 별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이런 것 때문에 산다면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라는 허무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생을 포기해 버리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은 4천년 전에 모세가 이미 깨달은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그렇게 허무하게 죽어 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우리의 진정한 거처와 피난처가 되시는 분은
우리 하나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시84:10~12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이 추구하는 것들, 세상 사람들이 안락하다고 여기는 것들, 그들이 피난처로 삼는 더 넓은 땅, 더 넓은 집, 더 많은 돈을 버는 데에만 집착하는 어리석은 삶을 살지 말아야 합니다. 가장 먼저는 하나님을 우리의 거처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 안에서 이 세상 어디에서도 누릴 수 없는 안전과 평안과 행복을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영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인생의 허무는 극복할 수 있습니다.
2절에서 모세는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라고 고백하소 있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인생들이 태어나고 죽었으며, 또 여러 나라들의 권력자들도 계속하여 바뀌고 있으며, 나라가 생기기도 하고 망하기도 하였습니다.
강산도 10년이면 변한다고 하였듯이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들도 엄청나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시작이 있는 것은 반드시 끝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릅니다.
이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은 변하고 사라진다 해도 하나님은 영원하시며 변하시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시작과 끝이 없는 분이시며 어제나 오늘이나 항상 동일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영원, 불변하신 분입니다.
(시102:26)“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같이 낡으리니 의복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그러면 모세가 본시에서 하나님의 영원성과 불변성을 찬양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바로 영원, 불변하시는 하나님에 비해 우리 인간은 유한하고 무상한 것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3절 이하를 보면 우리 인생을 티끌로 돌아감과 밤의 한순간과 잠깐 자는 것과 아침에 돋는 풀, 순식 간에, 날아감, 등의 표현을 사용하여 우리 인생의 유한함과 무상함을 들어내므로, 참으로 허무한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의 수명을 7,80이라고 하였습니다. 7,80이 길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지내 놓고 보면 순식간이며 마치 화살이 날아간 것 같다고 하며, 어릴적 일들이 마치 어제처럼 여겨질 정도로 세월이 빠르게 지나가 버립니다. 그래서 인생무상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인생이란 참으로 허무하기 그지 없습니다.
솔로몬도 탁월한 지혜를 가지고, 그토록 큰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며,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다 해 보았지만 인생 말년에 (전1:2-4)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라고 탄식하였습니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더 최고의 부와 영광을 누렸던 솔로몬이 지은 전도서가 이 세상 그 어떤 책보다도 인생의 허무함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책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유한한 인생이고 무상한 인간이 허무하지 않을 방법이 있습니다.
시90:1에서 모세는 인생의 허무를 말하기에 앞서 하나님의 영원하심에 대하여 말하였습니다.
그것은 앞에서 말한대로 이에 대조되는 인생의 허무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지만
거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허무한 인생은 인생의 창조자로서 영원하신 하나님 안에 거할 때에는 그 허무함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모세는 인생이 허무하게 된 이유가 3절에서 하나님이 인생으로 티끌로 돌아가게 하셨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인생의 허무는 인생을 지으신 하나님이 인생을 다시 티끌로 돌아가게 하신 데 있습니다. 인생은 본래 영원히 살 수 있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의 명을 거스르고 범죄한 결과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다시 티끌로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인생은 하나님 밖에 거하게 되면 허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은 다시 하나님 안에 거하게 되면 그 허무함을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주님 안에 거하는 인생을 얼마든지 영원한 삶을 주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의 전도서의 결론은 전12:1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하였습니다.
솔로몬이 전도서를 통하여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바로 이것입니다.
인생의 허무는 오직 창조자로서 영원하신 하나님 안에서만 극복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허무하고 유한한 삶이 아닌 영원히 사는 영생을 보장받게 된다고 롬5:21에서 약속하고 있습니다
롬5: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생의 허무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여 주셨습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인생의 허무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요일2:17)“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따라서 우리는 육체적으로는 죽으나 영혼은 영원히 살고
육체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다시 살되 다시는 죽지 않을 육체로 살게 됩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확신을 가진 자답게 당당하고 확고한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더 이상 허무한 것, 헛된 것에 매여 살지 말고 보다 확고하고 궁극적인 것,
보다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하는 삶, 땅엣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을 추구하는 가치있는 삶을 살고, 영원을 바라보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허무한 인생,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길에서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 드립니다.
광야같은 이 세상에 고아와 같이 우리를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성령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지켜주시고 보호하여 주시고 인도하여 주심을 감사 드립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영원히 머물 처소가 되지 못함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거할 곳은 하나님 아버지의 집인 줄 알고 이 세상에 미련을 두지 말되 주님만을 의지하고 주님만을 바라보고 주님의 말씀따라 살아가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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