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드리겠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찬송가 190. 성령이여 강림하사, 285. 주의 말씀 받은 그 날
잠1장20-26절. 하나님의 말씀은 인생 최고의 가치
시27:1-3 .
하나님 아버지,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1. 회개하면 인생을 성공으로 이끄는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
23절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책망을 받고 회개하면 성령을 부어주고 ‘나의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하신 말씀은 성령님이 지도하시고, 깨닫게하시고, 알게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또 다른 보혜사’ 라고 말씀합니다. ‘보혜사’란 우리 곁에 계시면서 상담도 해 주시고, 조언도 해주시는 일종의 인생의 지도자이시고, 인생의 스승이시며, 인생의 상담자 뿐만 아니라 인생의 해결자가 되십니다.
예날 전쟁에도 싸움만 잘하는 장수도 있어야 하지만 전략가도 있어야 합니다.
삼국지의 제갈공명 같은 지혜자 전략가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합니다.
한 나라의 전쟁에도 훌륭한 전략가가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데
항상 마귀와의 영적전쟁을 치루어야 할 우리들은 마귀보다 더 지혜로운 전략가가 있어야 합니다.
그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우리가 성령충만 하기만 하면 우리 인생은 반드시 승리합니다.
그러면 이 보혜사 성령을 모셔 들이기 위한 방법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회개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여 죄를 자복하기만 하면 성령을 우리 심령에 충만히 부으신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령께서는 거룩한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깨끗하지 않고서는 우리 안에 계시고 싶어도 계실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승천하시면서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지 말고 모여서 기도하며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사도 베드로는 (행2:38)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에 순종한 초대 교회 일백이십 문도들이 기도할 때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정으로 보혜사이신 성령님을 모셔 들이고 성령 충만한 임재를 체험하시기를 원하신다면,
그리고 성령께서 여러분의 인생의 모든 문제들을 지도하시고 가르치시기를 원하신다면,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유비도 제갈공명을 초빙하기 위해서 삼고초려 하였는데,
하물며 우리가 보혜사이신 성령을 인생의 스승으로 모셔들이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데 있어
날마다 주의 성전에 나와 자신의 믿음이 약하여 생각으로 말로 행동으로 지은 죄를 회개하시고 하나님의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십시오. 우리의 인생을 죽음의 길에서 생명의 길로 저주와 심판의 길에서 축복과 구원과 승리의 길로 뒤바뀔 것이며 진정한 형통과 성공을 향해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요14:17)“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냐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2. 하나님의 말씀을 인생 최고의 가치로 알아야 합니다.
24, 25절 “내가 불렀으나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폈으나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라고 말하였습니다.
즉 지혜는 세상을 향해 목놓아 외치고 있지만 지혜의 소리에 귀기울이는 자가 아무도 없는 안타까운 현실을 이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이처럼 절박하게 외치는 지혜의 소리에 반응이 없었던 것입니까?
그것은 그들이 그 지혜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유명 학원에서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대학 입시 설명회를 하면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또 투자 가치가 있는 아파트를 분양하면 수천 가구를 분양하는데도 수만명의 사람들이 몰려 와 진을 칩니다. 미국 한 도시에서는 유명 노트북을 값싼 가격에 판다는 광고에 엄청난 인파가 몰리면서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기물이 부줘지는 참사를 빚은 적도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오늘날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조금만 이익이 되고 도움이 되고 가치 있다 생각되면 불편함을 무릅쓰고라도 몰려듭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장소에서 식사까지 제공하는 설명회를 한다 해도 그것이 무가치한 것이라면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사람들의 한결같은 반응입니다.
이러한 상황이 솔로몬 당시라고 다르겠습니까? 이런 의미에서 볼 때 그들은 지혜가 외치는 말을 매우 무가치하고 그들 자신에게는 불필요한 말로 생각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또한 어떠한 유익도 없는 구시대적 산물 정도로 치부해 버렸을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 입니다. 사람들이 왜 이토록 교회에 대하여 무관심 합니까?
말씀을 듣는 것도, 읽는 것도 매우 귀찮아하며 의무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쁘다는 이유로, 삶이 힘들다는 이유로 하나님의 말씀을 등한시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 가는 이 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이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들어보았자, 읽어보았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에 애써 외면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이 말씀의 진정한 가치는 아닙니다. 다만 사람들이 무지하여 말씀의 참 가치를 알지 못하고 살아 가고 있을 뿐입니다.
이에 시편의 한 저자는 “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 (시119:5)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또한 “행위 완전하여 여호와의 법에 행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여호와의 증거를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시119:1, 2)라고 말하였습니다. 즉 말씀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진정한 축복을 얻게 하는 방편이며, 또한 곤란에서 우리를 건지고 위로하는 유일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삶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안내자요, 인도자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세상의 어떤 가치보다도 말씀의 가치를 알고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말씀에 우리의 눈을 가리고 귀를 가릴 때 우리의 삶은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삶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참된 축복에서 멀어지고 위로도 인도도 없는 암담한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의 빛이 우리의 삶을 비추고, 우리의 영혼을 비출 때 우리는 비로소 가치 있는 인생, 구원과 생명을 누리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3.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멸시하거나 외면해서는 안됩니다.
26절을 보면 악인들이 재앙과 두려움을 만날 때에 그들을 비웃을 것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악인들을 비웃으신다는 의미는 지혜의 충고와 권면에 무관심과 외면으로 일관했던 악인들의 어려움과 고통에 대하여 철저히 방관자적 자세로 일관할 것이며, 무관심하게 대처 하겠다는 사실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참 지혜되신 하나님께서는 어리석은 인생을 향해 끝없는 권면으로 돌아와 지혜의 말씀을 들으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파멸과 재앙의 자리로 들어 가는 그들에게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그처럼 이미 끝장난 인생을 누가 슬퍼하겠으며 애석해하겠습니까? 그것은 오히려 후대에 타산지석이 될 뿐이며, 또한 비웃음거리로 기억될 것이 자명한 일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흔히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이며, 용서의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교회 들마다 길거리에 내거는 현수막을 앞에서만 몸을 낮추는 기회 주의적인 자세로 보면 십중팔구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라는 말씀을 써넣습니다. 이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긍휼은 누구에게나 무조건적·무제한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그것을 순종함으로 받아 거룩한 빛 가운데 들어가는 자에게만 허락된 사랑이며 자비이며 긍흉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시91:14) 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평상시 지혜의 소리, 말씀의 소리에 귀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비웃고 철저히 불순종의 모습으로 살아가다가 재앙이 닥치고 근심거리가 닥칠 때에야 하나님께 나아와 사랑과 자비를 구하는 모습이 참으로 많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 이러 했습니다.
자신의 신앙과 삶의 자세를 바꾸려 노력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경책과 책망으로 고난이 다가올 때에만 무릎을 꿇고 상황이 바뀌기 만을 구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을 위협하는 환난이 떠나가면 여전히 똑같은 범죄의 일상으로 돌아가 교만하고 어리석은 삶을 반복하는 완악함을 보였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호6:4) 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지혜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습니까? 지혜가 이끄는 대로 삶의 방향을 세워 나가고 있습니까? 의를 따르며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긍휼하심을 시험하고 악을 저지르며 종종 있는 환난과 위기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결코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시며 악인에 대해 끝없이 인내하시는 분이 아님을 명심하십시오. 장차 있을 최종적 심판이 오늘 있는 것처럼 항상 마음에 새기고 매일 매일을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는 날로 삼으십시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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