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드립니다. 전능하사~
찬송가 421장 내가 예수 믿고서 / 손경민 은혜
딤후4:7,8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연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자에게니라.
하나님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바울의 고백이 저희들의 고백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다시오실 날이 머지 않았음을 느낍니다. 저희들이 마지막 때까지 믿음을 잃지 않고,
승리의 면류관을 바라보며 날마다 영적 전쟁을 싸워 이기게 하시고,
결국 천국에 입성하고 받은 면류관을 주님께 돌려드리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눅16:19~24 부자와 거지 나사로.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 말씀은 예수님께서 당시의 소외된 계층에 대해 무관심 한 채
자신의 탐욕만을 채우려 한 위선적인 바리새인들을 책망하기 위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 비유에서 부자는 바리새인을, 나사로는 소외 계층을 상징합니다.
19-21절을 보면 부자와 나사로의 생활이 극명하게 대조됩니다.
19.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자색 옷은 왕족이나 귀족들이 입는 옷입니다.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기 위한 옷입니다.
또한 고운 베옷은 같은 무게의 금보다 두 배나 비싸서, 당시 노동자들의 하루 품삯의 34,000배에 해당하는 비싼 옷이었다고 합니다. 엄청난 부자들이 입는 옷입니다.
그리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고’ 있었습니다. 결혼식도 아니고 환갑잔치도 아니고
그냥 같은 부자 친구들을 불러 모아 날마다 큰 잔치를 벌여 즐겼다는 것입니다.
21절에 보면 온 동네 개들이 다 모여 들 정도로 음식이 차고 넘쳐 버릴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들고 굶주리는 불쌍한 이웃인 나사로를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22절에서 상황이 역전됩니다.
거지 나사로는 죽어서 천국으로 들어가고, 부자는 지옥으로 들어 갔습니다.
예수님은 부자가 왜 지옥으로 들어갔는지 나사로가 왜 천국에 들어 갔는지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부자는 왜 지옥으로 갔을까요? 예수님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란 낙타(밧줄)이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 하였기 때문일까요? 이 말씀은 부자 청년에게 하신 말씀이고 그 원 뜻은 예수님을 선택하지 않고 돈을 선택하였기 때문에 부자가 자신의 돈을 다 포기하고 예수님을 선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라는 것을 말씀하기 위한 예화입니다.
단지 돈이 많고 좋은 옷을 입고 날마다 잔치를 벌이면서도 나사로를 도와주지 않아서
지옥에 간 것이 아니라, 결론은 예수님을 믿지 않아서 지옥에 간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바리새인을 부자로 지징한다고 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불의한 방법으로 돈을 벌어
그 돈으로 오로지 먹고 마시고 즐기는 삶을 한 평생 살았기 때문에 지옥을 간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부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10억 정도 있으면 부자라 할 수 있을까요?
10억으로는 서울의 아파트 한 채 값도 안됩니다. 그럼 100억 정도 있으면 부자라 할 수 있을까요?
아무리 돈을 잘 벌어도 100억을 만들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순간에 날라갑니다.
돈을 많이 가져서 부자이고 부자이기 때문에 지옥을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돈만 추구하고 부하려고 하는 자가 영과 육이 파괴되고 피폐해지는 침륜으로 빠지는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은 거부였지만 자신이 거니는 가솔들을 다 먹여 살렸습니다.
이삭도 100배의 결실을 거둔이유가 우물을 양보 하였기 때문입니다.
야곱도 외삼촌 라반에게 온갖 고생을 다 하여 힘들게 번 재산을 형에서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어 이집트인들만 먹여 살린 것이 아니라 주변의 모든 나라들을 다 먹여 살렸습니다.
록펠러도 십일조를 잘하여 거부가 되었지만 많은 제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일도 하였습니다.
이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았기 때문에 부자라도 천국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러니 부자라 지옥에 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지 않으니 그런 삶을 살았고 그 결과 지옥으로 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나사로는 왜 천국으로 갔을까요? 그가 무슨 선행을 했다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었다는 말씀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나사로 이름의 뜻이 ‘하나님이 도우시는 자’ 라는 것을 통해
나사로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경외 하였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거지는 소외 계층을 상징한다 하였습니다.
바리새인의 악행으로 논과 밭과 집을 빼앗긴 사람들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은 왜 하필 개들이 헌데를 핥고 부자가 버린 음식 쓰레기나 먹는
병든 거지가 천국에 들어 가는 것으로 묘사 하였을까요?
제가 영적으로 깨닫는 것은 이 땅에서 아무리 떵떵거리며 높은 지위에서 일평생 풍요롭게 살아도 지옥으로 가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설사 일평생 병든 거지로 산다 하더라도 절대로 지옥에 가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조 하시기 위하여 이런 극단적인 예화를 말씀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왜 지옥에 가면 안됩니까? 지옥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곳인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24절.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얼마나 뜨겁고 목이 불타듯이 목이 마르면 손가락 끝에 물한방울만 찍어서 다른 곳도 아니고 내 혀를 서늘하게 시원하게도 아니고 해달라고 사정하겠습니까?
첫째로 지옥은 ‘불꽃 가운데’ 서 당하는 가장 큰 육체적 고통을 영원히 당하는 곳입니다.
불에 조금이라도 데어 본 사람은 그 아픔이 얼마나 큰지 잊지 못할 것입니다.
어릴 때 불장난 하다가 불꽃이 손등에 떨어졌는데 난생처음 겪은 고통입니다. 지금도 그 상처가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사우나 한증막에 10분, 5분도 못 견디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영원히 그곳에 갖혀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정말 끔찍합니다.
둘째로 지옥은 부자가 괴로워하고 있다고 할 정도로 가장 큰 정신적 고통을 주는 곳입니다.
번역된 헬라어는 너무 큰 정신적 고통으로 울부짖는 상태를 말합니다.
지금 자신이 지옥 불가운데 고통당하는 것도 힘든 일인데, 자신의 눈에 천국이 보이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보이고 행복한 나사로도 보이고 천사들과 아름다운 천국의 광경이 보이니,
그곳으로는 갈 수 없으니 그 얼마나 정신적으로 큰 고통이겠습니까?
천국을 눈으로보면서도 지옥의 형벌 속에 있는 그 정신적 고통은 가히 상상할 수 없을 것입니다.
끝으로 지옥은 영적으로 고통받는 곳입니다.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나사로를 통해 물 한 방울만 얻게 해 달라고 애걸합니다(24절).
그러나 거절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전혀 없는 곳,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과는 영원히 단절된 곳이 지옥입니다. 그러므로 지옥에서는 후회를 해도 소용없고, 뒤늦게 용서를 구하는 회개를 해도 용서 받을 수도, 위로받을 수도 없는 곳이 지옥입니다.
저희 아버지는 일평생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자신의 죄와 조상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만 깍지 않았을 뿐 종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아침마다 불평책을 펴 들고 복청을 가다듬고 불경을 외웠습니다. 생의 마지막 때가 다가왔습니다. 식도 암이 걸리셨고, 발견되었을 때는 위와 장으로 온 몸이 번저 더 이상 손될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가시기를 기도하였습니다.
매일 새벽에도 기도하고, 70Km를 달려 포항 직장으로 갔다가 다시 퇴근하면 대구로 돌아와 아버지를 병 간호하며 눈물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암은 극심한 고통에 시달립니다. 면도칼로 위장을 긋는듯한 고통이라고 합니다. 실재로 계속해서 혈변을 보시고 뼈와 가죽만 남기신 체 6개월간의 기난긴 암투병 끝에 아버지가 돌아 가셨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예수님 믿고 돌아가셨습니다. 할렐루야~
아버지 많이 고통스럽죠? 아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힌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허공을 항해 합장을 하고 감사합니다. 하셔서 아버지 무엇이 그리 감사하십니까?
세 번의 힌옷입은 천사가 와서 나에게 생수를 주는데 이 세상에 그처럼 달고 시원한 물은 처음먹어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와 눈을 마주 보시고 아들아 고맙다 하시는 눈빛으로 보시다가 그 밤에 임종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으며, 우리의 죽음이 저주의 죽음이 아니라 복된 죽음이어야 합니다.
세상의 부와 행복도, 또 괴로움도 잠시 뿐입니다. 삶의 종말이 우리에게 신속하게 닥칩니다.
우리는 이 종말을 준비하며 사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고후5:1,2)“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로 덧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로 그 끔찍한 지옥대신 천국의 시민권을 얻은 은혜에 큰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살면서 예수님의 사랑을 잊어버릴 정도로 세상을 사랑하고 돈을 사랑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무섭고 고통스러운 지옥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불신 영혼을 불쌍히 여기고 열심히 전도하여 구원해야 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이 땅에 태어나 눈에 보이는 물질만 보며 육체를 위해서 좋은 것을 먹고 좋은 것만 찾아서 놀지만, 참기쁨이 없고 참 평안과 안식이 없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아무 낙이 없다 할 때가 반드시 옵니다. 이 세상에서 높은 지위에 오르고 많은 부를 축척하고 인생을 즐긴다 하더라도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될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은 결단코 헛되지 않으며, 참 기쁨과 참 즐거움을 맛보며 복된 인생을 살다가 천국으로 이사가서 영원토록 영생복락을 누리게 하시니 무한 감사합니다.
천국가는 그날까지 오직 예수님 신앙, 오직 예배 신앙, 오직 천국 신앙으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 기도제목 )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땅을 보지말고, 하늘을 보고/육신을 따르지 않고 영을 따르는 삶을 살게 해달라고 기도.
2. 사랑하는 사람이 절대로 지옥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믿지 않는 부모와 형제자매를 위해,
남편과 자녀자손를 위해. 불신 이웃을 위해, 화요중보기도회와 전도팀들을 위해
3. 장덕환 목사님을 만나주시옵소서, 만져주시옵소서, 치유하여 주시옵소서, 강건하게 하옵소서
4. 김희숙 목사님에게 성령충만을 부여주셔서 말씀에 권세와 능력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5. 교회, 가정, 직장, 자녀(학업, 취업, 결혼, 임신, 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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