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중심으로 역사를 주관하시며 운행하십니다.
14절은 하나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사람을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에게 자기들이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 하셨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시키기 위하여 페르시아의 군대가 바벨론을 공격하게 하겠다는 말씀이다. 바벨론이 페르시아에 멸망된 것은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다. 원래 페르시아는 바벨론을 이길 만큼 강한 나라가 아니었다. 페르시아는 안산이라는 지역을 중심으로 세워진 작은 나라였는데 그 작은 나라가 당시 강대국인 메대를 순식간에 통합하고 바벨론까지 정복하여 페르시아 제국이 되었다. 심지어 바벨론을 정복할 때도 무혈입성하였다.
당대 최대강국인 바벨론 제국을 무혈 정복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부패하고 타락하여 스스로 멸망하였다. 자신들이 먹고 마시고 놀던 배를 타고 다 도망갔다.
결과적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하여 페르시아를 강성하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성경에서 앗수르, 바벨론, 메대와바사, 헬라와 로마제국을 성경에서 다 예언하셨다.
그 말인즉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따라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역사의 주인공은 바벨론도 아니고 페르시아도 아닌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역사의 주연으로, 바벨론과 페르시아를 조연으로 삼으신 것이다.
우리가 이 역사적 사실을 통하여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세상 역사는 결국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것이며, 그 중심에는 우리들이 있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힘이 있는 사람들, 많이 가진 자들, 높은 자리에 선 자들이
역사를 좌지우지 하는 것처럼 볼 것이나 사실 역사의 중심에 선 사람들은 그들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아벨은 형 가인의 시기로 짧은 생을 살고 죽었지만 믿음의 제사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고, 에녹은 300년간 하나님과 동행하다 하나님이 데려가시어 죽음을 보지 않았고,
노아는 사람이 죄악이 세상에 가득할 때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방주를 만들어 구원받았고,
아브라함은 죄악과 우상 숭배가 난무하는 땅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여 믿음의 순례를 하였고, 믿음의 대를 이어 이삭과 야곱,그리고 이스라엘의 12지파의 조상이 된 야곱의 열두 아들, 애굽 땅에서 종살이 하였지만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 능력으로 구원받아 광야를 행군하는 이스라엘 자손들, 세상 역사 가운데 흔적도 남기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보석과 같은 믿음을 지키며 묵묵히 살아 간 분들이 남은자들이 주인공이었다.
세상 사람들은 페르시아와 같은 강대국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계신다. 그래서 복음의 역사가 곧 인류의 역사다.
복음이신 예수님이 오셔서 제자와 사도들이 복음으로 세상을 정복하였다.
그리고 지금 우리도 복음의 역사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하는 이 사역이 지금 제대로 되지 않는 것 같고 문제가 많고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시고 우리를 사용하시려고 이알이비전센타를 개척하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장 큰 관심의 대상이며 청소년 복음 역사의 진정한 주역이다.
그러므로 세상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잊지 말자.
세상 모든 역사의 배후에는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계신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세상 역사를 주권적으로 이끌어 가신다.
세상 나라들의 흥망성쇠가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
이처럼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은 그 역사를 이루어가시면서 우리들을 그 주역으로 세우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 역사의 중심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당당하게 살아가야 한다.
우리들에 의해 천하보다도 귀한 한 영혼이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천국 백성이 된다는 것은 엄청난 사건이다. 그 당사자들도 이것이 얼마나 존귀한지 모르고 그 부모들은 더더욱 모르지만 언젠가는 인생 가운데에서 이알이비전센타로 인하여 구원 받았다는 것을 깨달아 알 때가 있을 것이다. 우리의 이 작은 일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삶이고,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지금 살고 있는 것이다.
2.하나님은 과거에 이루어진 어떤 일보다 크고 새로운 구원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18, 19절에서 하나님은“너희는 이전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전 일은 16, 17절에 기록된 출애굽 때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말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구원을 위하여 홍해를 가르시고 애굽의 군대를 홍해에 수장하셨다.
이스라엘에게는 대단히 놀라운 구원 사건으로 대대손손 영원히 기억되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놀라운 일을 기억하지 말고, 생각하지 마라고 하신다.
하나님이 왜 기억하지 말라고 하실까? 그것은 하나님이 이전일보다도 훨씬 더 놀라운 일을 행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구원 사역을 행하신다는 것이다.
그 구원 사역이 얼마나 놀라우면, 이전 일을 기억도 할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이다.
출애굽 사건도 역사상 기적 중의 기적이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민족 전체가 탈출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하나님이 10가지 재앙과 바다를 가르시기까지 하셨다.
그런데 그 당시 이스라엘은 고센 땅에 모여 살았기 때문에 모세의 명령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는 이점이 있었다. 그런데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국 전역에 흩어져 살았다. 그래서 그들을 한 자리에 끌어 모우는 일도 쉽지 않고 지도자 한 사람의 명령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포로에서 해방되자 자연스럽게 스스로 일시에 귀환한 것이다. 출애굽 때보다 더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다.
애굽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이스라엘을 보내지 않으려다 많은 죽임을 당하였지만,
페르시아 왕이 하나님에게 감동되어 스스로 돌려 보낸 것이라 전쟁과 죽음이 필요 없었다.
뿐만 아니라 2차 세계대전을 끝으로 2000년 만에 나라가 다시 세워지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역사를 보이셨다.
그런데 하나님은 출애굽이나 포로 귀환, 2000년만의 건국보다도 더 놀라운 구원 사건을 보이셨다. 이 엄청난 일들도 잊어버려야 할 만큼 전후무한 구원 사건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재림 사건이다. 이 세상의 마지막 때에 세상과 모든 악한 원수들을 심판하고 멸하시고 세상 곳곳, 동서남북, 온 세상에 흩어져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불러 모으시고 온전히 구원하시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여 들어가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우리에게 예비되었고 구체적으로 실현될 것이다.
지금까지 역사해 주신 크고 작은 일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미래에 있을 더 크고 놀라우신 역사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일뿐만 아니라 장차 이루실 더 큰 구원을 기대하고 소망하며 살아가자. 놀라우신 하나님은 우리의 기대와 소망을 충족하게 채우실 뿐 아니라 감당할 수조차 없는 감격과 감사가 넘치도록 은혜로운 일, 축복된 일을 이루어 주실 것이다.
3. 하나님은 우리 앞에 놓인 모든 장애를 제거하시고 완전한 구원을 베푸실 것입니다.
19,20절에서 하나님은“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고 말씀하였다. 19절의 새 일의 한 측면을 구체적으로 말씀한 것이다.
하나님은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실 것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전에 하신 일
곧 바다 가운데에 길을, 큰 불 가운데에 지름길을 내셨다고 하신 16절의 말씀과 대응을 이룬다.
16절의 바다가 광야로, 큰 물이 사막으로 바뀌었으며, 지름길이 강으로 바뀌었다. 이는 하나님께서 행하실 새 일이 상황만 바뀌었을 뿐 이전 일과 거의 유사하게 진행된다는 것이다.
바벨론 포로 귀환 사건은 제2의 출애굽 사건이라 불릴 정도로 출애굽 사건과는 아주 유사하다. 그러나 출애굽 당시에 하나님께서 홍해를 갈라 길을 내신 것은 문자적, 역사적 사실이지만
본절에서 말씀하는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낸다는 것은 문자적, 역사적 사건보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포로 귀환이 장애를 받지 아니하고 형통하게 이루어질 것을 말씀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러면 광야나 사막은 이스라엘의 포로 귀환을 방해하려는 요소들을 상징한다.
출애굽은 유월절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해방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나안으로 가는데 아무런 장애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이 가나안에 입성하기까지는 수많은 장애들을 만나야 했다.
홍해가 가로막혀 이스라엘이 절망적인 탄식을 하고 심지어 하나님을 의심하고 원망할 만큼 심각한 장애였다. 홍해를 통과하지 않고는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바벨론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그들이 본향으로 돌아가는데 있어서
홍해에 버금가는 장애 요소들이 있었다. 그 장애 요소들을 광야와 사막으로 표현된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너게 하신 것처럼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앞에 놓인 모든 장애 요소들도 다 거두어 주심으로 형통하게 본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셨다.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 행위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천국을 향해가는 순례길에서 나타나는
모든 장애 요소들도 다 제거하시고 완전히 천국에 입성하게 하실 것이다.
비록 우리들이 죄에서 자유하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한 구원에 이른 것은 아니다. 성도들의 완전한 구원은 천국 입성으로 완성된다. 그리고 그 이전까지는 우리들의 천국 길을 가로막은 홍해나 광야 같은 장애 요소들이 여전히 산적하여 있다.
그래서 우리들은 이런 장애 요소로 인하여 자칫 낙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가로막는 홍해를 가르셨듯이,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하는 이스라엘을 위해 사막에 길을 내셨듯이 하나님은 우리 앞에 놓인
모든 장애 요소들을 제거하여 주실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을 완성케 하실 것이다.
지금 우리 앞에 복음을 방해 하는 많은 요소들이 있다.
그런 방해 요소들을 하나님에게 아뢰고 기도하며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자연스럽게 해결해 주시고 지금 장애 요인들이 오히려 우리의 사역에 협력자가 되고 돕는 자로 바뀌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앞에서 길을 막는 장애 요소가 있다 해도 이를 두려워하지 말자.
그것이 아무리 크고 아무리 절망스럽게 보여도 결코 위축되거나 낙심하지 말자.
모세와 같이 담대하게 하나님이 행하실 큰 일을 기대하며 잠잠히 기다리자.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하여 우리의 발길을 담대히 내딛자.
절망의 장애가 사라지고 그 앞에 하나님의 구원의 대로가 놓여지는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낙심을 주며 심령을 곤고케 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는 사막이 변하여 생명의 강수로 변하는 역사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분명 하나님은 우리의 길에 놓인 모든 장애를 제거하시며
우리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충족하시켜 주시고 채워주시고 형통하게 하시며
완전한 구원을 이루어 주실 것이다.
(결론)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해 베푸시는 구원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 자신을 계시해 주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역사를 주관하시고 운행하시되 하나님의 백성들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구원을 베푸심을 축으로 하여 역사를 써내려 가고 계신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구원을 위해 이 세상을 운행하시며 주관하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는 결국 그것의 진정한 주역으로 삼으신 우리들의 완전한 구원으로 완결될 것이다.
우리는 이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자. 이 세상 역사의 주체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붙드심과 도우심을 확신하며 살자. 아울러 세상 역사의 주체로서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성실히 수행하는 복된 삶을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