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122:6~9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네 성 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 내가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저희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주셔서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저희들이 이 험하고 악한 세상 속에서 죄악에 물들지 않고 거룩하고 정결하게 살아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복과 은혜를 풍성히 받아 누리며 살 수 있었던 것이 초대교회의 성도들의 본을 따라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사랑하고 날마다 교회에 모여서 예배하고, 교회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였기 때문입니다. 새벽기도에 나오는 성도들의 가정과 사업장을 평안케 하시고 영육간에 강건함을 더하여 주시고 때를 따라 도우시는 은혜와 넘치는 복으로 채워주시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다가 천국 가서 우리 주님에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라고 칭찬받고 상급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찬송가 , 요21장10~15절.
1.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10절에서 예수께서는 물고기가 가득 담긴 그물을 가지고 막 돌아온 제자들에게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거물에 가득 담긴 생선은 누구의 공로입니까?
예수님의 공로입니다. 그물을 던져서 생선을 잡고 육지로 끌어 올린 것은 제자들이지만,
예수님의 말씀하지 않으셨다면 제자들은 고기를 잡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의 것임을 아는 우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어떤 것도 내 것이라고 말하지 못합니다.
아무도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고 또 주장해서도 안됩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사용할 뿐 원래의 주인은 주님이십니다. 시 24:1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우리가 가진 것들 중에 하나님께로부터 받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고, 날마다 호흡할 수 있도록 공기도 주시며,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만물을 다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물건에 대해서도 이것은 내 것이라고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해서는 안됩니다. 모든 것은 우리의 필요를 따라 만유의 주재이신 하나님이 공급해 주신 것입니다.
어업이나 축산업이나 공업이나 농업이나 그곳에서 생산해 낸 모든 것은
주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얻을 수 없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비를 주시지 않으면 농업을 할 수 없고, 바다에서 물고기나 육지에서 가축들이 번식하지 않으면 어업과 축산업을 할 수 없고, 하나님이 광물과 같은 지하자원과 지혜를 주시지 않으면
공장에서 어떤 물건도 만들어 낼 수 없어 공업을 할 수 없습니다.
또한 오늘 본문 말씀처럼 갈릴리 바다에 어족이 풍부했음에도 예수의 제자들이 밤새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주님께서 그들에게 허락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성경을 믿는 우리는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이 물고기를 명하여 그물에 들어가라 하시면 들어가는 것이고, 피하여 그물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마라 하면 한 마리도 못 잡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여러 혜택의 배후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고전4:7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뇨
주님이 허락하셔야 모든 사람은 자신의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사수라 하더라도 주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참새 한 마리도 떨어 뜨리지 못합니다.
우리가 노력해서 얻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임을 알게 함과 동시에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고작해야 그것들 중에 일부라는 것을 말씀하여 줍니다.
우리 중에 누가 주를 위해서 아무리 많은 물질을 드릴지라도 그는 자신의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신 것들 가운데 일부를 돌려드리는 것뿐입니다.
또한 성도들은 자신의 소유가 남들보다 많이 있다면 하나님이 왜 넉넉하게 주셨는지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쌓아 두라고 많은 물질을 주시지 않습니다. 쌓아 두지 말고 흘려 보내는 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 누군가를 위해서 쓰도록 맡기신 것인데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오로지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만이 잘 먹고 잘사는 것으로 만족하면 다 빼앗깁니다.
질병으로 병원에 다 갔다주던지, 사업이 망하여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던지
그렇지 않고 재물을 쌓아 두고 이 세상을 떠나면 예수님에게 책망을 듣게 됩니다.
2. 주의 구원은 견고하여 약속하신 것을 얻습니다.
11절에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고 잡힌 고기가 153마리나 되었고,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잡혔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또한 누구보다 어부인 제자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정도의 고기가 잡히면 그물이 찢어져야 하는데 찢어지지 않아서 제자들은 또 놀랄수 밖에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주님의 구원도 견고하여 선택 받은 자는 반드시 구원 받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이루신 구원은 믿는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고도 남을 만큼 완전합니다. 예수를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됩니다. 이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죄로 인하여 마귀의 종의 신분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법적 지위의 변화를 나타내고,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에서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로 하나님과의 친밀성을 강조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구원을 위해서 우리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주께서 하셨고 우리는 주신 믿음을 받았을 뿐입니다.
외국인으로서 미국의 시민권을 얻으려고 하면 미국 정부가 요구하는 조건을 갖춰야 하듯이
죄인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도 반드시 갖춰야 할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스스로 충족시킬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지 않으셨다면 인류는 여전히 죄 아래서 소망이 없는 삶을 살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 구원의 길, 곧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을 열어 놓셔서
우리는 아무 공로없이 이 특권을 누리게 되었고, 확실하고 견고한 소망을 붙잡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듯이, 예수를 믿는 성도들의 미래가 확실히 보장되는 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이 특별한 관계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악하여 부모를 버리는 자녀도 있고, 자녀를 버리는 부모도 있습니다.
하지만 완전하게 의로우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결단코 자녀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예수를 믿는 성도들이 자신의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육신의 연약함으로 더러 실수도 하고 죄에 빠지기도 하지만 이로 인해 구원에서 제외되거나
소망이 끊어지지는 않습니다. 주님은 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요10:28,29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종종 주의 은혜를 말하고 주님의 일에 헌신하기를 다짐하면서도
헛되고 헛된 세상 일들에 마음을 빼앗기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성도의 본분을 망각한 것입니다. 주의 제자들은 제자로서 해야 할 일들, 주신 주의 명령이 있었듯이 오늘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는 각자가 감당해야 할 귀한 사명이 있으며, 이것을 찾아서 충실히 감당하는 것이 최선의 삶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시선을 세상의 헛된 일들에 두지 말고, 예수에게 고정시키고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심을 집중해야 하겠습니다.
3. 예수께 대한 사랑의 잣대는 충성과 헌신입니다.
15절에서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동료들보다, 생업보다, 돈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느냐고 물은 것입니다.
세속적인 것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느냐는 것입니다.
아마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에게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고 말씀하실 때에 베드로는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라고 자신있게 말한 것을 잊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 질문은 베드로가 했던 그 말을 확인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비록 연약함으로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지는 못하였어도 여전히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시는 주님께서 베드로의 목소리로 듣기 위하여 질문하신 것입니다.
사랑에는 분량과 크기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를 사랑한다고 말할지라도
그것의 분량과 크기는 다 다릅니다. 더 사랑하고, 덜 사랑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하고, 조건적으로 사랑하기도합니다.
그렇다면 예수에 대한 사랑의 분량과 크기잴 수 있는 잣대는 무엇일까요?
이 물음 속에 주께서 베드로에게 던지신 질문의 요지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주님께 대한 사랑을 재는 유일한 잣대는 충성과 헌신입니다.
예수를 사랑하는 만큼 충성하고 헌신하게 되어 있습니다.
많이 사랑하는 사람은 많이 충성하고, 적게 충성하는 사람은 주를 사랑함이 적은 것이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 주님이 베드로에게 하신 질문은
“네가 이 사람들보다 더 내게 충성하고 헌신할 수 있겠느냐” 라는 뜻입니다.
성도들 중에는 작은 일, 특별한 희생이 요구되지 않는 일에는 열심히 하지만
희생과 헌신이 요구되는 일에는 소극적이거나 아예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주를 말로만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주를 참으로 사랑하고 많이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을 위해서 죽도록 충성하며, 살아도 죽어도 주님을 위해서만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이해득실을 먼저 따지고 주를 위하는 일일지라도 자신에게 손해가 돌아온다고 판단되면 하지않는 사람은 주를 사랑하지 않음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거짓으로 주를 사랑하는 자가 되지 말고 진실한 사랑을 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 드립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은 주님이 주신 것이므로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저희들에 되게 하여 주시옵시고, 주님의 구원은 확실한 것이오니 어떤 경우에도 주님의 사랑을 의심하거나 주의 말씀에 주저하지 말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는 믿음을 주옵시고, 말로만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지 말고 실질적으로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충성 봉사 헌신하므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모든 복을 받아 누리는 저희들이 되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늘에 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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