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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요17:3-4)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88:13~15 여호와여 오직 내가 주께 부르짖었사오니 아침에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이르리이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나의 영혼을 버리시며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시나이까.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의 인생 가운데 개입하시고 함께 역사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인생에서 크고 작은 고난을 만나더라도 섣불리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고, 이 새벽에도 주님 앞에 나와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고, 어떤 문제이든지 기도하므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아 누리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찬송가 93. 예수는 나의 힘이요, 요한복음 173-4.

 

1. 하나님에 관한 바른 지식은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얻게 됩니다.

3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영생에 대한 정의를 내려 주셨습니다.

영생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하게 여기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과연 영생은 있는가, 누가 영생하는가 어떤 이가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품고 있으며,

심지어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의문을 품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알아야 한다고 정의하셨습니다.

하나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주체가 되시고 예수님은 구원의 근거와 통로가 되시기 때문에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는 것이 곧 영생이라는 말씀은 지극히 당연한 말씀입니다.

특히 ‘아는 것이니이다’ 라는 말씀은 내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 안다는 뜻입니다. 경험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해서 정확히 알 수 있는 방법은 성경뿐입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에 대해 기록되어 있으며, 예수님에 대해 예언하셨고,

신약에서는 구약에서 약속하신 구세주가 오시어 하신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요한복음은 요1:14에서 예수님은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시라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요1:18에서는 예수님을 본 자는 곧 하나님을 보았다고 하셨고,

14:9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라고 단언하십니다.

1:3에서도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며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라고 증거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알려고 하면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바로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예수님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성경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면 성경을 누구든지 읽거나 듣기만 하면 예수님을 알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성경을 읽어도 깨닫지 못하고 믿지 못하면 예수님을 알 수도 만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을 받지 못하면 성경을 아무리 읽고 들어도 예수님을 모릅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위한 필수조건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을 기초로 하여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만 성경이 읽혀지고 깨달아지고 믿어지는 것입니다.

불신 학자들이나 박사들이 성경을 연구하여 강의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믿음과 성령이 없는 학, 박사는 단지 성경을 이스라엘의 역사로 볼 뿐이고

하나님의 이적과 기적들은 신화로 받아들일 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도 모르고 하나님도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얻으려면 예수님에 관한 경험이 필수적이며, 그것은 믿음으로 만이 가능합니다.

즉 예수님을 경험적으로 알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믿음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우리가 어떤 사람의 가르침이나 주장을 단순히 신뢰하고 받아들이는 것과는 의미가 다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나와 예수님이 아주 특별한 관계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요한은 이것을 ‘영접’하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나의 인생 속에 모셔 들이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지배하던 인생을 예수님을 모셔 들이므로 내 인생의 주인은 예수님이 되시고

나는 예수님의 종으로서 살고자 하는 결단이 곧 진실한 믿음입니다.

그 누구도 이런 믿음이 없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없고, 하나님을 알 수 없으므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생이 없는 것입니다.

2:6에서 사람은 예수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참된 하나님의 지식을 가지게 되기 때문에

믿음이 없으면서 예수님과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는 이들이 가진 지식은 문학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유대인들은 선민 사상을 가지고 하나님을 안다고 자랑하지만 예수님을 거부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절반도 모르는 자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11: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2, 각 사람에게는 하나님께 받은 은사가 있습니다.

4절에서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시면서 행하신 모든 일들은 자기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하라고 주신 일이었음을 알게 합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분명히 아시고 한치의 오차나 빈틈이 없이 온전히 수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사역이 아버지의 뜻과 일치한다면 우리도 우리의 모든 사역이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도 역시 하나님께로 부터 보냄을 받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사명을 받아 이 땅에 왔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명과 더불어 그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각자에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사를 썩혀두지 말고 잘 사용하여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을 실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입니다.

은사는 크게 둘로 나누어집니다. 첫째는 일반 은사로서 재능이나 재질이라고 부르는 것들입니다.

이것은 성도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받은 것이지만 성도들을 제외하고서는 이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성경 창4:20-22을 보면 가인의 후손들 중에 야발, 유발, 두발가인 등이 나옵니다.

이 사람들은 각기 육축 치는 자의 조상, 악기를 만들고 연주하는 자의 조상, 동철로 각양 기계들을 제작하는 장인의 선두 주자가 되었는데, 이것이 하나님께서 각 개인들에게 주신 일반 은사입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으므로

우리 부모나 교사들은 자녀들의 재능을 어렸을 때부터 찾고 길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도록 지도해야 합니다.

둘째는 영적인 은사로서 로마서12:3-8과 고린도전서 12장에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물론 이 은사들은 성도들 만이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은사들을 주신 목적은 교회의 부흥과 성장을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자신의 영적 은사가 무엇인지 먼저 찾아내야 합니다.

우리 몸에 각각의 지체들이 있고 그 역할이 각기 다른 것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 은사들도 역할이 다르기 때문에

자신의 은사를 발견하지 못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봉사를 할 수 없습니다.

눈에게는 눈의 역할이 있고, 귀나 코, 입 등에는 각기 그에 맞는 역할이 있듯이 성도인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각 사람은 이것을 발견하도록 힘써야 하고 교회는 이것을 도와줘야 합니다.

자신의 은사대로 교회에서 사역하거나 봉사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깁니다.

만약에 코가 다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코는 숨을 쉬거나 냄새를 맡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다른 지체의 역할을 하려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사역을 잘 할 수도 없고 하지도 못합니다. 이처럼 자기 은사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으면 개인도 교회도 손해를 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자기의 은사를 발견하고 계발하되

자기 은사에 충실한 충성 된 하나님의 일꾼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자기 자리를 잘 지키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4절에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는지에 관해 간단하게 언급하십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하라고 주신 일을 온전히 이루심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성도인 우리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고 또 무엇을 힘써야만 하는지 잘 알게 합니다.

우리가 자신의 삶 전체를 통틀어서 궁극적으로 추구할 것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즉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만 해야 하는데,

그 방법은 하나님이 명하신 자기 자리를 잘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의 자리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스스로 만든 자리도 있고 사람들이 만들어 준 자리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계 속에서 우리가 어떤 특별한 역할을 담당하기 원하시기에 각자에게 그에 맞는 적절한 일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사명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여 세우신 목적은 바로 이 사명을 감당케 하시려는 것입니다(15:6). 

따라서 누구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하면 자기가 받은 사명을 충실히 감당해야 합니다.

곧 자기 자리를 잘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0장에 보면 포도원 주인과 품꾼의 비유가 나옵니다.

거기서 포도원 주인이 이른 아침부터 장터에 나간 이유가 무엇입니까?

포도원에 들여보내어 일을 시킬 일꾼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주인은 일이 없어서 노는 자들을 구제하려고 아침 일찍부터 장터에 나간 것이 아닙니다.

포도원에 할 일이 많으므로 일꾼을 구하려고 나갔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이 포도원에 들여보내신 일꾼들이므로 무엇을 힘써야 하는지 알아서 이에 충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고용된 일꾼이 자신의 직무를 소홀히 하여 주인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주인이 그 사람을 기뻐할까요?

우리는 우리 각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치가 있음을 명심하고 그에 부응하도록 최선을 다 해야 합니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며, 성실하게 자기 직무에 임하기만 하면 누구라도 할 수 있습니다.

‘달란트의 비유’(25:14-30)에 등장하는 세 사람은 우리에게 자기 자리를 잘 지키는 일이야말로 참으로 중요함을 가르쳐 줍니다. 그 중에 두 사람은 자기 자리를 잘 지킨 덕분에 주인을 기쁘게 하고 칭찬과 상급을 받았지만,

자기 자리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한 사람은 책망과 함께 형벌을 받았습니다.

누구라도 자기 자리를 지키지 못하면 이 사람과 같은 운명이 되고 맙니다.

그는 충분히 자기 자리를 지킬 수 있었음에도 주인의 뜻을 무시하고

자기 맘대로 하는 바람에 모든 것을 잃는 어리석은 자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매일 매순간 자신이 서 있는 곳을 점검하여 그 자리가 하나님께서 명하신 자리인지 확인하고

그 사명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으로부터 칭찬과 상급을 받아 울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저희들에게 믿음을 주시어 성경을 통하여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하시고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희들을 이 세상에 보내시어 맡겨진 사역을 잘 감당하게 하기 위하여 각자에게 은사와 재능을 주시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고 각자에게 주어진 자리를 잘 지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