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가 주의 앞에 앞서 행하며 주의 종적으로 길을 삼으리로다.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를 사랑하셔서 진리대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셔서
저희를 구원하여 주시니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죄인 된 저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인이 되었고, 심판 받고 멸망 받을 수밖에 없었던 저희들을 구원하신 그 은혜에 감격하여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려드리고 찬양하며 영광 돌리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찬송가 359장 예수가 함께 계시니, 요한복음 16장22-24절.
1. 예수에게서 난 기쁨은 세상이 빼앗지 못합니다.
22절에서 예수님은 성도가 누리게 될 기쁨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기쁨은 성도 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것으로
세상이 주는 기쁨과는 전혀 다릅니다. 기쁨이라고 해서 다 같은 것이 아닙니다.
기쁨도 그 근원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에 따라서 질적으로 다르고 내용이 완전히 다릅니다.
세상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기쁨은 다분히 조건적이고 일시적이라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세상 것으로 기뻐하는 사람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의 기복이 심합니다.
사소한 일로 좋아하기도 하다가 또 사소한 일로 나쁘거나 슬퍼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간헐천과 같이 평상시에는 바짝 말라 있다가 비가 내려야 하천에 물이 흐르는 것처럼
뭔가 나에게 좋은 일이 생겨야 기뻐하고 그렇지 않으면 무미건조한 기분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뿌리를 내리고 있는 우리는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살 수 있고,
또,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합니다.
마치 마르지 않는 샘과 같이 땅 속 깊은 곳에서 끊임없이 솟구쳐 나오는 샘물과도 같아서
어떤 상황과 형편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기쁨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요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
성도가 최악의 여건 속에서도 기쁨을 잃지 않고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게 되는 것은
예수님이 주시는 기쁨이 우리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빌4:4에서 바울은 옥중에 있을 때에도 성도들에게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고 권면했습니다.
바울은 감옥에서도 기쁨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마게도냐에서 사역할 때에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실라와 함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였습니다.
바울이 고난과 핍박 가운데에서도 찬양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상사람들은 자신에게 잘못이 있어서 매를 맞고 옥에 갇혀도 불평하고 원망하는 게 일반적인데 바울은 잘못한 일이 없고 오히려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많은 매를 맞고 투옥되었음에도
불평하는 대신에 감사하고, 슬퍼하는 대신에 기뻐하였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직접 만났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어디에서나 예수님과 동행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예수님이 주시는 기쁨이 넘쳐 흐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누구든지 기쁨의 샘 되시는 예수님을 만나면 기쁨의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기쁨을 누리고 있는지 확인해 보아야합니다.
나에게는 과연 예수님으로 인해 끊이지 않는 기쁨이 있습니까?
어떤 상황과 형편에서도 기뻐하고 있습니까? 쉽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순간 순간 예수님을 잊어버리고 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잊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기도하면서 예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예수님과 동행하여야 예수님이 주시는 기쁨이 내 마음속에서 오늘도 계속 흘러나올 것입니다.
우리 안에 끊이지 않는 기쁨이 있느냐의 없느냐에 따라 내가 진정으로 예수님과 동행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판단 기준이 된다 하더라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데도 불구하고 기쁨이 없거나 삶의 소망이 없다면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그 어떤 것보다 값지고 존귀한 보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돈과 명예와 세상적인 인기를 부러워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세상은 장망성이고,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은 곧 썩어질 것들이고 불타 없어질 것입니다. 허탄한 곳에 마음을 두지 말고 기쁨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시16:11“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시편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할 때
사35:10“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 라고 노래할 것입니다.
2. 성도의 믿음을 재는 척도 중에 하나가 기도의 생활화입니다.
23절과 24절에서 예수님은 기도 응답에 대한 확실한 보증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무엇이든지 우리가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구하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것이라고
분명하게 확증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무슨 문제를 만나게 되거나 필요한 것이 있을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게 하시는 말씀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라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의 삶의 모든 부분에서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여 응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의 많고 적음이나 어려운 문제나 쉬운 문제나 상관없이
우리로 하여금 염려되거나 걱정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나님께로 가지고 나아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도움을 청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대광 교회 성도들도 기도하는 일이 어려운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기도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참으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기도는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기도는 아주 쉬운 일입니다.
기도는 단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는 일입니다.
아버지와 바른 관계를 유지하는 자녀는 아버지께 구하는 일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아버지께 구하는 일이 어렵다면 아버지와 바른 관계에 있는 자녀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자녀에게 아버지에 대한 신뢰만 있다면 얼마든지 아버지께 구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에 필요한 것은 믿음뿐입니다.
누구든지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구하기만 하면 됩니다.
기도는 성도들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마7:7).
이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 주신 특권이므로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든지
이 특권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구하면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성경은 마7:8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 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문제의 내용이 어떤 것이든지 개의치 않고 우리는 구할 수 있으며,
하나님은 적절한 방법으로 이에 응답하십니다. 우리는 기도로 닫힌 문들을 쉽게 열 수 있고
뒤엉킨 문제들을 간단히 풀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성도들이 이 특권을 충분히 활용치 못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믿음이 적거나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 응답의 약속을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이 없어서 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위대한 약속을 받았음에도 그로 인한 은혜를 체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하나님의 약속은 현실과 동떨어진 먼 곳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보다는 사람을 찾아가서 도움을 청하고 기도해야 할 시간에
여러 가지 인위적인 방법들을 강구하느라 바쁜 것입니다.
우리 자신도 혹시 이렇게 살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해야 합니다.
성도의 믿음을 재는 중요한 척도들에는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기도의 생활화입니다.
기도가 특별한 무엇이 아니라 자기 생활의 일부가 되어 자연스럽게 행하는 사람은 믿음이 좋은 것이고, 그것이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사용되는 비상 수단인 사람은 믿음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엡6:18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성령 안에서 무시로 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의 범위도 넓혀 나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여러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성숙한 믿음의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빌4:6.7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기도하되 염려하지 말고 기도해야 하며 감사함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의 생각을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살전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나님의 분명한 뜻은 우리가 기도하는 것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생각하는 존재입니다. 우리의 생각은 멈추지 않습니다.
모든 일에 대하여 생각하면서 단지 주여 라고 하기만 해도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십자가는 분명 슬프고 수치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늘날 도리어 기쁨과 소망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속하고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주님께서 다시 사는 일이 없었다면
십자가는 더욱 수치스러운 것이요 그 슬픔은 더욱 크게 우리를 짓눌렀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부활이 있었기에 우리는 십자가에서 기쁨과 소망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으로 인해 흔들리지 않는 넘치는 기쁨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죽음의 위기 속에서도 바울과 같이 기쁨의 찬송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죽어도 다시 사는 소망이 있다면, 주님을 다시 만나 영원히 사는 소망이 있다면
우리는 모두 이러한 기쁨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될 때,예수님으로 인하여 우리는 항상 기뻐하는 자가 될 수 있고 범사에 감사하는 자가 될 수 있으며, 쉬지 않고 기도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이 저에게 맡겨 주신 사명, 죽은 자를 살리는 사명을 잘 감당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칭찬 받고 사랑 받고 인정함을 받는 저희들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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