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의 성전에서의 한날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천날보다 더 귀하고 가치가 있음을 깨닫게 하여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저 하늘의 해가 없으면 살아갈 수가 없듯이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저희가 존재할 수가 없고, 하나님은 모든 환란을 막아 주시는 방패가 되시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게 하시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영화를 누리게 하시고 하나님 말씀대로 정직하게 사는 저희들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부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이 새벽에도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저희들에게 큰 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찬송가 , 요한복음 16장16-20절.
1. 부활의 주님을 만나야 성숙한 신앙인이 되는 지름길입니다.
16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리라’ 는 말씀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을 말씀하신 것이고,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부활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공생애 3년 동안 예수님과 동거 동락하면서 예수님의 모든 사역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에 들어가심으로 예수님을 보지 못하다가
예수님이 3일 만에 부활하시므로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2000년이 지난 오늘의 성도들은 예수님을 직접 만나 뵙지는 못하지만
말씀을 통해 영으로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또한 성경 말씀 속에서 만났던 예수님을
성령의 강림하심으로 만나게 되고,
또 마지막 때에는 공중에서 구름 타고 내려오시는 재림의 예수님을 만나 뵙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2000년 전의 예수님을 말씀 속에서 만난다는 것은 엄청난 은혜입니다.
우리가 예배 가운데 성령 임재를 체험하고, 말씀 가운데 성령의 내주하심을 경험하고,
기도 가운데 성령 충만하심을 받는 것은 놀라운 축복입니다.
세상 사람들을 전도하여 교회에 나오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교회 처음 나오신 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는 일은 더욱 어려운 일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이성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말씀을 믿는 것은 더더욱 힘든 일이며, 자기 믿음과 신앙으로 1,2년은 교회를 다닐 수는 있어도
10,20년 교회를 나오게 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적어도 10년, 20년 신앙 생활하신 성도님들은 다 한 두 번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신 분들이고, 일평생 예수님 믿고 살아가는 성도는 성령을 체험하신 분들입니다.
성령을 체험하신 분들만이 인생이 변하고 삶이 변합니다.
육신을 추구하는 삶이 영을 추구하는 삶으로 변화되고,
내 중심의 삶이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변화되고,
세상 속에서 참 기쁨과 즐거움을 찾으려 하지 않고 예수님 안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습니다.
성령체험하신 분들이 성숙한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고, 온전한 신앙인으로 성숙하는 것입니다.
부활의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도,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바울도 놀랍게 변화되었습니다.
제자들은 부활의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유대 당국자들이 두려워 도망하거나 은밀하게 숨어서 예배하였지만 부활의 주님을 만난 이후에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담대하게 전하면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또 바울은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 복음의 박해자에서 복음의 수호자요 전파자로 변하여 목숨을 버려 온 유럽을 복음화 시켰습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 사람들도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삶의 지혜를 터득합니다.
머리가 좋아 이론적으로 많이 알고 있어도 경험하지 않으면 그 지식은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바다에 관한 지식이 많고 또 배에 관한 이론을 충분히 익혔더라도 직접 바다에 나가서 배의 키를 잡고 바람과 파도와 싸운 경험이 없다면 풍랑을 만날 때에 제대로 대처하기가 어렵습니다.
성도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머리로 이론적으로 모든 것을 꿰뚫어 알고 있어도 부활의 주님을 만난 영적 체험이 없으면, 세상 사람들에게 성도 답고 당당하게 자신의 신앙을 나타내기가 어렵습니다.
머리로만 알고 체험이 없는 신앙은 논쟁은 할 수 있겠지만 한 영혼을 건져낼 수 없습니다.
이 시대는 예수님을 만나지 않고도 성령을 체험하지 않고도 집사, 권사, 장로가 될 수 있어도
세상의 염려와 재앙을 만나면 다 신앙을 저버리고 세상적인 방법을 선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운전 면허를 가지고 있더라도 운전을 해 본 일이 없는 사람은 안전하게 자동차를 운행할 수가 없는 것처럼 영적 체험이 없는 성도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기가 힘든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쫓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벧후 1: 16)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 (요일1:1, 2)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부활의 주를 만나는 신앙 체험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의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어떤 상황과 형편과 처지에 놓이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견고한 믿음으로 모든 힘듦과 역경을 이겨내고 믿음의 경주를 하여 영적 승리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2. 인간의 지적 능력만으로는 영적인 일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17절과 18절은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제자들 입장에서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말씀이라 쉽게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신 말씀에 의문을 제기한 것은 제자들의 영적 수준이 어린아이와 같다 하겠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믿는 사람들이었다면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셨고 이 그 소임을 다 마쳤으면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로 올라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제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 이해력의 분명한 한계를 보게 됩니다.
우리는 세상의 일반적 현상에 대해서는 쉽게 자각하고 이해합니다.
하지만 영적인 일들은 우리의 지혜와 지식으로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만 분별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영적인 일들을 이해시키기에는 인간의 지식과 노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사람이 영적인 일을 깨닫고 받아 들이고 믿는 것은 성령님 만이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별함이니라"(고전2:14)
당시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영적인 일들에 대해 깨닫지 못한 것도
제자들이 아직 성령의 도우심을 받지 못한 까닭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영적인 일을 깨닫기 위해서는 성령의 도우심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가리켜서 보혜사라고 하셨습니다. 보혜사는 ‘돕는 자’를 뜻합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영적인 일들을 지각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성령님의 도움을 받는 사람들만 영적인 일들을 깨달아 알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실히 알게 됩니다.
우리가 성경을 알고 깨닫고 그것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은 내가 지식이 뛰어나고 머리가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깨닫게 하시고 믿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지식이 많음을 자랑하면서도 영적인 일들에 대해서는 무지한 사람들이 많이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교회에서 세상적인 방법을 적용하려고 하지만 성공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머리 좋은 성도가 끌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다스리시는 곳이 교회이고 그런 교회가 진정한 부흥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방법으로 교인의 수가 늘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합니다.
설사 오래간다 하더라도 그런 인본주의적인 교회는 예수님이 함께하시지 않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지 못하는 교회는 대부분 신학적인 혼란을 초래합니다.
그들은 영적인 일,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 역사하시는 방법 등을 자신의 이해력이라는
한계성 안에 억지로 집어넣고서 임의로 해석하려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문제들이 생깁니다.
구원의 능력과는 하등의 관계도 없는 무익한 것으로 복음을 변질시켜 버리기도 하고,
전혀 성경적이지 못하며 복음과 동떨어진 말장난으로 사람들을 혼란 속에 빠뜨리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선포하는 교회의 교역자나 가르치는 교사들에게는 성령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성경은 어느 누구에게도 임의로 해석할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설교자는 성경의 해석에 자신의 생각과 사고를 맞춰야지 자신의 생각에 성경을 맞추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전1:21)
우리가 한 영혼에게 전도를 하여도 듣기 좋은 미사어구로 그들을 감동시키면 교회에 따라올 것으로 기대하지만 분명하고도 확실한 복음을 전하여야지만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이끄시어 그 영혼을 구원해 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 드립니다.
저희들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성령을 체험하므로 수십년 동안 예수님을 믿고 흔들림없이 신앙 생활을 잘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 누가 우리의 신앙을 빼앗아가기 위해 우리를 흔들어 환란과 풍파가 닥친다 하더라도 우리가 낙심하거나 좌절하여 넘어지지 않고 또 넘어졌다 하더라도 다시 일어나 믿음의 길을 계속 걸어 갈 수 있는 것은 성령 하나님께서 저희를 도와주시고 지켜 주시어 인도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남은 저희의 인생 여정도 주님을 의지하여 예배하고 말씀과 기도의 삶을 살아 늘 승리하여 천국에 들어 가는 그날까지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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