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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요16:2)경건하면 시련을 당해요

73:25~28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대저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멀지 않은 날에 죽음을 맞이하고 하늘에 올라간다 하더라도 저를 구원하실 분은 하나님 외에 누가 저를 구원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땅에 살아가면서 제가 사모할 분은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내 몸과 마음이 다 시들어가도, 하나님은 언제나 내 마음에 든든한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십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면 망하지만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자는 복을 받고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심을 전파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찬송가 , 요한복음 162-.

 

2.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뿐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하리라

영적으로 무지할 때 하나님의 이름으로도 악을 행합니다.

2절에 하반절을 먼저 보시면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을 출회하며 죽이는 자들이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가 된다고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정적을 제거하기 위하여 적당한 명분을 만들어 행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죽였던 명분을 ‘하나님을 위해서’ 라는 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과 제자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자로 인정하기는 고사하고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능력을 행한다고 비난했으며,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이단으로 규정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것을 하나님을 위한 일로 여긴 것입니다. 

그들의 영적 무지가 어느 정도 심각했는지 단적으로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대해 심하게 눈이 먼 사람 들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도리어 악을 행한 것입니다.

이 예언 그대로 몇 시간이 지난 바로 그날 밤 예수님께서는 체포되셨고,

유래없이 빠른 재판 진행으로 사형이 확정되어 불법적으로 당일 사형되셨다.

그리고 이를 시작으로 기독교 역사는 박해와 순교의 역사가 되었다.

이제 그때가 임박하였음을 예수님께서는 긴박감 있는 어조로 말씀하신 것이다.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는 직접적으로 자신들의 신념에 충실하여 새롭게 시작된 기독교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박해 했던 당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보다 넓게 볼 때는 역사상 등장하는 모든 기독교의 박해자들이 다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를 집요하게 박해하였던 로마 황제도 그렇고

중세시대의 교회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악을 행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영적으로 무지했던 중세 교회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수많은 경건한 사람들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사람들을 죽였고 또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십자군 전쟁은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는 살상에 불고한 것이다.

기독교를 인민의 적으로 규정하였던 공산주의자들, 그리고 오늘날까지 기독교인들을 대량 학살하고 있는 이방 종교의 추종자들까지 여기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누구든지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이든지 하나님의 뜻에 대해 무지하면

이와 같이 잘못을 범하게 됩니다. 기독교인이라고 예외가 아니며, 기독교 지도자들도 마찬가지다.  영적 무지는 신분이나 지식 정도, 교회 안에서의 직분으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지적 수준이 형편없이 낮았다거나 그들이 성경에 대해 무지 했었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들은 지식이 많은 사람들이었고 성경에 대해서는 잘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에 관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많은 지식을 가졌음에도 영적으로 무지하여 성경의 중심인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고 성도들마저 박해하고 죽였던 것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이러한 영적 무지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교만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사람이 영적 무지에 빠지는 것은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교만하여 진리를 진리로 다르지 않고 자의로 판단하며 자기 생각을 내세우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그때 영적 무지에 빠지지 않게 되며 영적 무지로 인해 하나님의 이름으로 도리어 악을 행하는 어리석음도 범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2절 상반절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유대 사회에서 쫓겨나거나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예수님이 예고 하셨습니다.

유일신 여호와를 섬기며 남달리 민족 의식이 강한 유대인들에게 종교 공동체로서 동족과 교류를 나누는 장소였던 회당에서 쫓겨난다는 것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고통스러운 형벌이었다.

하나님의 집으로 여겨졌던 회당은 유대인들의 생활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회당에서 드리지 않는 기도는 효과가 없다고 말할 정도로 회당을 특별하게 생각하였다.

따라서 출교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종교적 사형 혹은 사회적 사형이라고 할 만큼 견디기 힘든 가혹한 형벌이었다. 고침받은 소경의  부모나 실제로 예수를 믿으면서도 이를 공개적으로 밝히기를 두려워한 관원들의 태도에서 출교를 두려워하는 유대인들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하지만 예수의 증인으로 살아가야 할 제자들은 이 일을 기꺼이 감수할 준비가 필요했다.

이와 같은 기존 공동체로부터의 분리는 예나 지금이나 그리고 앞으로도 성도들에게 요구되는 불 가피한 선택이다. 우리는 세상에 속하지 않고 그리스도에게 속한 까닭에 세상에 속한 자들과의 분리가 불가피하다. 때로는 신앙 때문에 혈연 관계에 있는 가족들로부터 소외될 수도 있으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원수가 되기도 할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함께 어우러져 살게 마련이지만 때로 성도는 이것까지도 포기해야 할지 모른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 하듯이 때로 우리는 어느 하나만을 취하고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따라서 신앙에는 언제든지 양자택일이 요구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와 같은 양자택일의 요구에 부딪칠 때에 우리에게는 ‘이것도 저것도’의 타협이 아니라 오직 ‘이것이냐 저것이냐 의 결단만이 있을 뿐이다.

 

경건한 성도일수록 많은 시련을 당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영광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고난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인데, 자기 십자가는 고난을 상징합니다. 

또한 예수님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들은 금생과 내생에 축복과 함께

핍박도 받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만 잘 믿으면 은혜만 받아 누리고 고난이나 시련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는 한 고난은 피할 수 없고, 말씀대로 살려고 할수록 고난과 핍박과 시련은 더 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이 자랄수록 고난도 많아집니다.

뿌리가 깊은 나무가 가지도 무성하고 가지가 많을수록 바람의 시달림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 나무는 뿌리가 튼튼하기 때문에 넘어질 염려가 없으며, 또 열매도 많이 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이라는 바람, 시험이라는 바람을 무서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그것을 애써 피하려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나무가 그 자리에 꼼짝도 하지 않고 서서

바람을 이겨내고 버터내듯이 우리 또한 고난이 닥쳐와도 믿음으로 견뎌 내야 합니다.

이번 태풍처럼 바람이 극심하여 나무가 뿌리채 뽑혀 나가듯이 시련과 고난이 크면

망하거나 죽지 않을까 염려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감당할 시험만 주십니다.

우리가 이겨 낼 수 있는 시험만 주십니다. 그러므로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설사 망한다 하더라도 다시 일어나 기필코 성공하게 하십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역전의 하나님이시며 고난 가운데 참고 인내하면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세를 가진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

예수님이 붙드시는 일꾼, 예수님에게 삶의 뿌리를 내린 인생은 결코 실족하거나 불행하게 되는 일이 없습니다. 이 땅에서 시련과 고난과 어려움을 누가 줍니까? 마귀가 줍니다.

모든 불행의 근원은 사단입니다. 그런데 세상을 지배한 사단이 전능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단은 예수님보다 강하지 못할 뿐만아니라 예수님과 맞설 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사단의 일을 멸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타락한 피조물에 불과하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하시므로 사단의 머리가 상한 상태입니다. 사단은 예수님에게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피하여 도망하는 것이 사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단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귀의 일을 멸하셨기 때문에 무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사단을 두려워 한다면 우리의 마음이 아직도 속된 것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거나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과 지혜로 마귀를 이길 수 없습니다. 마귀는 인간보다 강합니다.

이 세상 최고의 권력자나 부자나 지식인이나 인기인이라도 그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마귀의 유혹에 하나같이 다 쓰러지고 넘어지고 무너집니다.

하지만 예수님과 함께 하기만 하면 누구라도 마귀를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람들, 예수님이 붙드시는 사람들 앞에서 그는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뿌리 깊은 나무가 모진 바람에도 끄떡없이 서서 더욱 견실한 열매들을 내듯이 경건한 사람일수록 시련은 많이 따라도 실패하지 않으며, 더욱 귀한 열매들을 많이 내게 됩니다.

우리도 시련이 오면 더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고 성령충만함으로 그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

시련으로 인하여 오히려 더 귀한 열매를 내는 경건한 신앙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에게는 영광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고난도 있음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고난과 시련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그것을 참고 견디고 이겨내면 하나님께서 더 큰 복과 은혜를 풍성하게 부어주시고 많은 열매도맺게 해주신다는 약속을 잊지 말고, 우리를 불안과 두려움으로 몰아가는 악한 마귀의 계략에도 빠지지 말고 항상 기도와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치고 연약한 지체들에게 복음의 말씀과 생명의 말씀으로 서로에게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저희들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