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잠언

예배보다 기뻐하시는 것은?

21:2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하나님아버지,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보십니다. 그래서 사람의 판단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으나, 하나님의 판단은 완전하고 공의로우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정직한 행위를 한 것은 스스로 의롭기 때문이라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우리의 심령을 감찰하시고 인도하여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저희들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지난번 포항에 닥친 태풍의 영향으로 많은 비가 내림으로 인하여 집과 차량이 침수되고, 건물과 농작물이 폐허가 되어, 많은 재산을 손실한 사람이 있고, 안타깝게 목숨까지 잃은 사람들도 있다.

이 자연재해를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고 느껴야 할까?

나는 피해보지 않아 감사하다. 모든 것이 하나님 은혜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은 슬픔을 당한 사람이 있으므로 마음속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우리는 이 대자연의 재난 앞에서 인간의 무기력함을 깨닫고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 하나님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경배하여야 한다.

14:7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제가 사는 동네에는 오어지부터 형상강까지 흘려 내리는 하천이 있다. 냉천이라고 한다.

평상시에는 물 한 방울 없는 마른 하천이다. 그런데 비가 많이 오면 하천이 넘칠 정도로 많은 물이 흘러간다. 범람 직전까지 간 적이 두번이나 있었다. 그때마다 포항시와 오천읍에서 얼마나 많은 돈과 정성을 드려 다시 정비하였다. 하천을 깊게 파고 하천 제방을 돌과 시멘트로 튼튼히 쌓았다. 하천으로 오르내릴 수 있도록 나무 계단과 돌계단을 만들어 두었고, 하천 옆은 넓은 잔디를 깔아 두고, 산책로를 만들어 걷거나 자전거를 무료로 빌려주어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제방 언덕에는 수많은 꽃과 나무를 심어 두고, 여러가지 조형물과 운동기구도 설치되어 있고, 앉아서 쉴 수 있는 팔각정과 의자들을 있다.

저는 아침 저녁으로 아내와 아이들과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도 하고 운동도 하고, 때로는 도시락을 가지고 가서 자리를 깔고 밥도 먹고 쉬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번 태풍 때 시간당 400mm의 폭우가 하루동안 내림으로 인하여 다 떠내려갔다.

도로가 일부 잘려 나가고, 팔각정, 의자, 운동기구, 꽃과 나무가 다 떠내려갔다. 어디에 정차해 둔지 모르는 자동차도 3대나 하천에 처박혀 있고, 시멘트로 만든 산책로와 넓은 광장과 잔디밭이 흙으로 뒤덮였고 나무 계단과 돌 계단이 다 부서졌다.

뿐만 아니라 하천이 범람하여 하천 상부에 있는 저희 아파트를 포함하여 여러 아파트는 피해를 입지 않았으나 하천 하부에 위치한 아파트 들은 지하 주차장이 침수되어 모든 차량을 폐차할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었고 ㅇㅂ아파트는 지하주차장에 있는 차를 이동 주차하려다 7명이나 되는 귀한 생명까지 잃었다.

지금도 아직 복구되지 않아 길과 다리가 끊어지고, 큰 도로와 소방도로에 각종 생활 쓰레기가 흙으로 뒤덮혀 있었다. 군인과 청소공무원들이 지금도 청소하고 있다. 수도와 전기와 인터넷이 되지 않아 엄청난 불편을 겪고 있다. 그런데 또 태풍이 온다니 걱정이다.

이처럼 인간은 대 자연 앞에 속수무책이다. 연약하고 무능한 존재이다.

인간이 수년간 아름답게 조성한 하천이, 수십년간 집짓고 농사짓고 살던 땅이 한순간에 초토화 되어 버렸다. 지금도 인간은 바벨탑을 쌓듯이 좁고 좁은 이 땅에 빌딩을 쌓아 올리고 자랑하고 잘난 체하고 위세를 부리고 교만히 행하지만 언제 어느 때 어떤 상황에 재난이 닥칠 지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때의 재난은 이와는 비교할 수 없이 크고 두려운 일이 일어날 것이다. 우리가 편히 잠든 밤에 집체만한 또는 빌딩만한 소행성들이 지구를 스쳐 지나갔다.

가장 가깝게는 지난 4월에도 8월에도 소행성이 스쳐지나 갔다.

앞으로 또 언제 스쳐 지나갈지 그러다 언젠가는 지구에 충돌하게 될지 알 수 없다.

만약 지름이 10km 이상 되는 혜성이나 소행성이 지구의 육지나 바다에 충돌한다면

그 충격은 전 지구적 재앙과 환란이 될 것이다. 충돌이 일어나면 지구 곳곳에 충격파가 전달되어

화산폭발과 지진과 해일이 일어나고 모든 건물들은 무너지고 파괴되고 불타오를 것이다

사람을 비롯한 살아있는 생명체들, 들 짐승과 가축들, 하늘을 나는 새들, 물고기까지 다 죽는다.

살아 남았다 하더라도 충돌 후 지구의 대기가 수개월 혹은 수년 동안 재로 덮이면서, 지구는 ‘핵겨울’ 상태로 진입할 것이다. 먹을 것을 차지하기 위하여 죽이고 죽는 살상이 발생할 것이다.

왜 우리가 이러한 뉴스에 귀 기우려 들어야 하고 알아야 하고 관심을 가져야 하나?

성경에 나오기 때문이다.

8:6~12 일곱 나팔 가진 일곱 천사가 나팔 불기를 예비하더라.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서 땅에 쏟아지매 땅의 삼분의 일이 타서 사위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서 사위고 각종 푸른 풀도 타서 사위더라.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지우매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깨어지더라.

세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 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샘에 떨어지니, 이 별 이름은 쑥이라 물들의 삼분의 일이 쑥이 되매 그 물들이 쓰게 됨을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더라. 네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침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낮 삼분의 일은 비췸이 없고 밤도 그러하더라

이미 지구 전체적으로 여러가지 재앙의 징조들을 보이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을까?

2022.09.05 현재 누적 확진자는 601189435, 누적 사망자는 6475346명이다.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한 숫자를 넘어서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거기에다 기후변화로 지구온난화로 남극과 북극의 빙하들이 녹아내리고 있으며,

이상기후로 영상 50도를 넘는 지역이 속출하고 유럽에서는 비가 내리지 않아 강 바닥이 다 말라 버렸고, 아시아에는 비가 너무 많이 내려 큰 비해를 입고 있고, 이번 태풍 힌남노도 비정상적인 발생과 비정상적인 활동으로 우리나라가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앞으로 어떤 재해가 닥칠지 모르나 소행성이 충돌하면 생명체의 3분의 1이 죽임을 당하게 된다.

지구 끝 날이 다가오고 있고 예수님의 재림의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날을 대비해야 한다.

25장에서 예수님이 열처녀를 비유로 말씀하셨다.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 때 밤중에 신랑이 오니 슬기있는 다섯처녀는 신랑을 맞이하고 미련한 다섯처녀는 그때서야 기름을 사러 갔지만 혼인 잔칫집에 문이 닫혀 들어갈 수가 없게 되었다고 말씀하시면서 마25: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과 환경 속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이 노아의 때처럼 돈버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어서는 안 된다. 먹고 마시고 놀고 즐기는 일에 온 신경을 기울이고 집중해서는 안 된다.

지금이 깨어 있어야 할 때이고, 기름을 준비해야 할 때이다.

영적인 잠에서 깨어 일어나 성령으로 충만한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살아야 한다.

하나님 앞에 겸손한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에게 범죄하지 말아야 한다. 말씀을 지키고 따르고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하나님을 섬기며 높이며 경배와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육신이 죽고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코로나에 걸린 사람이 있고 걸리지 않은 사람이 있다.

똑같이 코로나에 걸려도 산 사람이 있는 반면 죽는 사람도 있다.

이번 태풍도 마찬가지다. 일가족 세명이 피신을 하다가 어머니가 급류에 휘말려 죽고 아버지와 딸은 살았으며, 지하주차장에 위험을 알고 들어가지 않은 사람이 있고, 사망의 올무에 걸려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간 사람이 있다. 지하 주차장에 들어갔으나 빠져나온 사람이 있고,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이 있다.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 중에도 죽어서 나온 사람이 있고 살아서 나온 사람이 있다.

24:39~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아파트 주자창에서 아들은 죽고 엄마가 살아나왔다.

말하기 좋은 사람들은 예수 믿는 가정에서 왜 그런 일이 일어나?

앞 길이 창창한 아들이 살고, 차라리 엄마가 죽는 것이 낫지 않아?

그 엄마 자식 잃고 이제 어떻게 사나? 참 안되었다 불쌍하다. 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살아나온 엄마가 적은 일기를 찍어 인터넷에 올린 것을 지인을 통해 받아 읽어 보았다. 엄마가 살기 위해 14시간동안 배수관을 붙들고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있을 때

아들을 한 알의 밀알로 취하겠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아들이 천국에서 예수님의 품에 안기는 환상을 보았다고 한다.

육신이 죽고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영이 죽었느냐 살아 있느냐가 중요하다.

그 엄마는 사명이 있기 때문에 산 것이고 아들은 나이가 어려도 사명을 다하였기에 천국에 간 것이다. 그래서 엄마는 아들이 죽어도 하나님에게 감사할 수 있는 것이다.

엄마는 아이가 다니던 학교의 학생에게 햄버거를 돌렸다고 한다.

그것을 받아 던 아이들이 눈물을 흘리며 받았다고 한다.

아마 그 엄마는 앞으로 천국에 먼저 보낸 아들을 위하여 청소년의 영혼을 살리는 일을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 엄마의 마음이 어떨까? 일기를 읽어 본 우리 전도사 아들이 깨닫고 단톡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히도록 내어 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진다고 하였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어떤 상황과 형편 속에서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감사해야 한다.

그러나 원망 불평은 끝이 없다. 차라리 엄마가 죽고 아들을 살리시지, 아니 엄마와 아들을 둘 다 살리시지, 지하주차장에 들어가지 말도록 하시지, 하천이 범람하지 말도록 하시지, 비가 많이 내리지 말도록 하시지, 태풍이 오지 않게 하시지, 이렇듯 불평,불만,원망꺼리를 찾으면 끝이 없다.

우리는 왜 사는가? 왜 죽지 않고 살고 있는가?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1문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인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함이다.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14:7,8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성도 여러분 그렇습니다.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하나님에게 영광 돌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우리는 돈을 많이 벌기 위하여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대학가고, 좋은 직장 얻고

좋은 배필을 만나 결혼하고 부요하고 잘 먹고 잘살기 위해 예배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학생은 공부해야 하고, 예배 드리기 위해 6일 동안 세상에서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면 하나님은 예배를 잘 드리는 보상으로 물질의 복도 건강의 복도 여러가지 복을 받아 누리는 것이다. 이제 잘 먹고 잘살기 때문에 아무 걱정과 염려가 없기 때문에 예배 드리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마지막 때를 준비하기 위하여 우리는 기름을 준비해야 합니다. 성령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충만은 말씀이 충만하고 기도가 충만하고 예배에 은혜를 받을 때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하여 졌다면 그 다름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가 남았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의와 공평으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잠언213. 의와 공평을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의와 공평으로 살아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배가 정말 중요하지만 예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의와 공평으로 사는 것입니다.

‘의와 공평’으로 사는 삶은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을 말하며, 성도의 거룩한 삶을 말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거룩한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 가장 기쁘게 받으시는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잠언은 솔로몬이 지은 시입니다. 성전을 건축한 사람이 솔로몬이고, 제사의 본을 보여 주었다. 솔로몬의 일천번제는 하나님을 감동시킨 제사입니다. 그런데 그 솔로몬이 자신이 세운 성전에서 제사 드리는 것보다 의와 공평을 행하는 거룩한 삶이 하나님이 더 기뻐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 하노라고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고 하셨습니다. 물질적 희생 제사보다 성도의 거룩한 삶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은 신약시대가 아니라 예수님 이전의 구약 시대부터 강조된 하나님의 뜻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경 전체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 왜 그렇게 거룩한 삶을 강조하셨을까요?

첫째로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하신 목적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공의와 진리를 행함으로써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로 물질을 통한 희생 제사는 하나님을 향한 성도의 마음의 표현일 뿐 본질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거룩한 삶이 본질이고 희생 제사는 형식입니다. 본질이 없는 형식이 무의미하듯 거룩한 삶이 없는 예배는 껍데기에 불과하고 무의미한 예배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가인은 아벨과 똑같이 예배를 드렸지만 죄가 네 문 앞에 엎드리고 있다는 책망을 들었습니다.

결국 가인은 예배를 드렸으면서도 동생을 죽이는 최초의 살인자가 되어 저주받은 인생이었다.

사울은 다윗과 같이 예배를 중요하게 여기었지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므로

사무엘 선지자에게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책망을 받았습니다.

결국 사울도 예배를 드렸으면서도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다윗을 죽이려 하다가

오히려 자신이 이방의 소년에게 목베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엘리 제사장의 아들 흡니와 비느하스는 여호와를 멸시하는 제사를 드리다가 한날에 죽었고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다른 불을 여호와 앞에 드리다가 불타 죽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불의과 불법과 탈법과 편법을 저지르면서 교회 다닌다 하고

예배 드리는 사람들이 세상에 그 죄악이 들어나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있습니다.

불의한 삶을 살면서 형식적인 제사만 드리는 것은 알맹이는 없이 포장지만 선물하는 것과 같고

그것은 제사 자체를 더럽히는 무서운 범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죄와 우상 숭배로 일관하면서도 습관적으로 희생 제사를 드리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1: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고 말씀하셨고, 심지어 2:3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고까지 말씀하시며 진노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뿐만 아니라

항상 말씀과 기도로 성령충만함을 받고 의와 진리로 살아가므로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영향력을 끼치며 복음을 전하고 마지막 때임을 기억하고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이와 같은 일에 계속해서 매진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이번 코로나와 태풍을 통해 종말론적 신앙을 고수하고,

모든 공예배를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되, 선포되어진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말씀에 순종하므로 말씀을 따라 의와 진리의 삶을, 거룩한 삶을 살아감으로써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우리의 언행이 아름다운 입술과 아름다운 행위를 하므로 아름다운 대광 교회를 만들어 나가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