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119:135-136 주의 얼굴로 주의 종에게 비취시고 주의 율례로 나를 가르치소서.
저희가 주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므로 내 눈물이 시냇물 같이 흐르나이다.
하나님 아버지 시편기자는 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을 보면서 시편기자는 저 불신자들이 저 상태로 계속 나가면
멸망할 것이고 죽어서 심판을 받아 지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크게 한탄하면서 내 눈물이 시냇물처럼 흐른다고 슬피 울고 있습니다.
저희들에게도 저 시편 기자와 같은 마음으로 불신 가족들을 보면서 애통해 하고 안타까워하고 눈물로써 기도하므로 저들을 살릴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오늘 이 새벽에도 주의 사랑으로 저희를 굽어 살피시고 저희들에게 주의 법을 가르쳐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찬송가 478장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 잠언16장6-7절.
1.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과 믿음은 사람에 대해서도 드러나야 합니다.
6절 전반부를 보면 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언급된 ‘인자와 진리’는 성경에서 대부분 하나님의 성품을 말합니다.
‘인자’는 언약에 근거하여 인간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의미하며
‘진리’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한결같으시고, 신실하고 믿음직스러운 면모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따라서 본문이 하나님과 관련하여 언급된 것이라면 인간의 죄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으로 말미암아 속하게 된다는 의미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하나님과 관련하여 언급한 말이 아닙니다.
여기서 ‘인자와 진리’는 인간의 행위와 관련된 것으로서
인자는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것을, 진리는 다른 사람을 진실하게 대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인자와 진리’를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 이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진실함으로 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인자와 진리를 인간에 대한 것으로 보면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죄 사함과 구원이 인간의 행위로 말미암아 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성경의 기본 사상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성경의 기본 사상은 인간은 자기 행위로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성경은 인간 스스로는 구원받을 만한 어떠한 선도 행할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이 자기의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면 본문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본문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인간이 인자와 진리를 행함으로 죄 사함을 받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는 인간을 구원으로 이끄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은
곧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곧잘 하나님을 사랑하며 믿는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시는 분이며
만져지거나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분도 아니시기에 그 사랑이 매우 추상적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은 어떠한 형태로 증명되고 보일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인자와 진리로 대하는 것을 통해 드러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요한은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요일4:12)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인 인간을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증명해 보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주시기까지 인간을 사랑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그들을 섬기고 신실한 자세로 대함으로
우리의 사랑과 믿음을 증명해 보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더욱더 완전한 것으로 세워질 수 있으며
우리의 삶 또한 더욱 확고하고 온전한 구원의 터 위에 세워질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그와 같은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경외할 때 참으로 악에서 떠날 수 있습니다.
6절 후반부를 보면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인하여 악에서 떠나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떠나게 된다’라는 말은 ‘떠나다’ 라는 의미 외에도 ‘쫓아버리다’ 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악에서 돌이켜 떠나는 것뿐 아니라
철저하게 악을 쫓아 버려 멀리한다는 적극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말입니다.
즉 솔로몬은 오늘 숱한 악의 유혹 가운데서 살아가는 인생을 향해
모든 악에서 벗어날 뿐 아니라 그것을 쫓아버릴 효과적인 방법을 제시하면서
그것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악에서 떠나고자 취하는 방법을 이야기 하라면
자신을 통제하고 절제하는 것, 유혹에 빠지지 않고 그것을 멀리하는 것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잘못된 방법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또한 성경이 권면하는 방법들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통제하고 절제하는 것만으로 악에서 떠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인간의 의지는 그 안에 있는 죄의 본성을 억제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선을 행하려는 강한 의지가 있다 해도 결국 악의 길로 행하는 것이 인간의 실상인 것입니다. 아무리 방어 기술이 탁월하다고 해도 “뭇매에 장사 없다” 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방어만 해가지고는 승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오늘 말씀에서 솔로몬은 이처럼 악의 공격에 대해 대적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편을 소개합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이는 단지 하나님을 공경하거나 두려워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표현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 선하고 의로운 일,
거룩하고 경건한 일을 도모한다는 의미를 함축하는 표현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들을
적극적으로 준행하고 성취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고 말씀하면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거룩한 일을 추구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
선하고 아름다운 뜻을 준행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온전히 하나님께 붙잡힌 바 되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바 되어 흑암의 세력을 대적할 뿐 아니라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룩하는 놀라운 권세와 능력을 소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여 선에 접근하는 만큼 악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을 가까이하는 만큼 우리는 강하고 견고하게 세워질 수 있으며
빛 되신 하나님과 가까이하는 자들인 우리에게서 마귀가 멀어지는 것은 자명한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죄를 경계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선한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들은 하나님과 연합하는 축복을 누리게 될 것이며
죄악에서 떠나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 안에 거하며 복된 삶,
충만한 결실이 있는 아름다운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3.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정립하면 사람들과도 원만한 대인 관계를 이룹니다.
7절을 보면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명령을 따라 순전하게 살아가는 의로운 사람의 삶의 면모를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본절에서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게 되면 하나님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인간 사이에 생겨난 모든 반목과 증오와 미움까지도 사랑과 우정의 관계로 돌이킬 수 있음을 말씀합니다. 사실 사람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인간 관계입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사람들은 모두가 올바른 인간 관계, 원만한 인간 관계를 맺기를 소원합니다. 그렇지만 세상을 살다 보면 원하든 원치 않든지
다른 사람과 갈등을 빚고 때로는 철천지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어려운 것이 인간관계이기에 오늘날 시중에는 보다 효과적으로 원만한 인간 관계를 맺는 방법에 대한 다양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현재 가장 많이 팔리는 책들 중에도 여지없이 인간관계에 대한 책들이 빠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솔로몬은 인간이 맺고 있는 모든 관계성은 가장 근본적으로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성 속에서 결정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다툼과 원수 맺음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문제를 넘어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깨어진 데서 비롯되었다고 말합니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의 단절과 파괴는 인간사이의 바른 관계를 파괴하며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악한 인간 관계 또한 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깨어진 데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사이의 바른 관계를 정립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갈 때 사람 사이의 관계는 저절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이를 보여주는 좋은 실례가 성경에 나옵니다.
바로 창세기에 기록된 이삭의 아들이며 에서의 쌍둥이 동생인 야곱입니다.
창세기 기자는 그를 매우 간교한 인물로 소개하는데 그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
팥죽 한 그릇으로 형 에서로부터 장자권을 빼앗고
사냥나간 형이 없는 사이 아버지를 속여 장자의 축복을 가로챈 일입니다.
이로 인해 그 둘은 철천지 원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로인해 야곱은 에서의 보복의 칼을 피해 멀리 맛단아람에 있는 외삼촌 라반의 집에 피신해 야 했습니다. 그곳에서 야곱은 자기 집을 세웠고, 에서 역시 자기 거처에서 나름의 삶을 영위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헤어진 채 수 십년을 지냈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그들 사이의 앙금, 깨어진 관계는 회복될 줄을 몰랐습니다.
야곱이 굳게 결심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했을 때 그 소식을 들은 형 에서는 400인의 가병을 이끌고 야곱에게 달려왔습니다. 이때 야곱이 취한 방편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어리석은 것으로 보이기도 했으나
야곱은 간곡한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렇게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정립되자
형 에서와의 관계가 회복되는 결과까지 체험한 것입니다.
곧 그를 죽이기 위해 달려왔던 것으로 생각했던 형 에서가
도리어 그를 따뜻하게 맞이하고 보호와 안내를 약속하는 말을 건네는 것을 듣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정립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은 원수도 다시금 형제가 되게 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을 지으신 분이기에 얼마든지 그 마음을 바꾸실 수 있습니다.
원수의 강팍하고 딱딱한 마음도 부드러운 스펀지와 같이 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원만한 대인 관계를 맺고 화목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먼저 하나님과 화목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정립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인간관계가 다 풀리게 됩니다. 우리는 이 원리를 잘 기억해 둡시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사람들에게 대하는 저희들의 태도에서 나타나게 하여주시옵소서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가므로 악을 물리치게 하시고
하나님과 화목함으로 모든 사람과 할 수만 있으면 화목한 관계를 유지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늘에 게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잠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교만은 무엇인가? (0) | 2022.11.23 |
---|---|
예배보다 기뻐하시는 것은? (0) | 2022.10.31 |
잠언 16장8-14절 적더라도 의로운 결실을 맺는 것이 불의를 겸한 부요함보다 복된 것입니다. (0) | 2022.04.06 |
잠언 16장3-4절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의 소원은 하나님으로 인해 더욱 온전케 됩니다. (0) | 2022.04.06 |
(잠16:1-2)매사에 하나님의 자문을 구할 때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0) | 2022.04.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