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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하나님에게 죄를 감출 수 없어요

60:17-19 주의 우편에 있는 자 곧 주를 위하여 힘있게 하신 인자의 위에 주의 손을 얹으소서

그러하면 우리가 주에게서 물러가지 아니하오리니 우리를 소생케 하소서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 빛을 비취소서 우리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이 택하신 자녀와 이나라 이민족을 강하게 하시고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저들을 다시 회복시켜 주시고, 소생시켜 주시고, 자비를 베푸셔서 구원을 하여 주시고, 저들이 다시는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찬양하게 하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찬송가 195장 이 세상의 모든 죄를, 요한일서 18-10.

 

1. 이 세상에 죄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8절에 보면“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의 핵심적인 주제는 인간의 죄 와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체험한 사람들은 자신이 진정한 죄인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구원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합니다.

예수님에게 항상 책망받는 바리새인들을 보면 이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식사하시는 것을 의아하게 여겼던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 요 죄인을 부르러왔노라"(9:12,13).

만약 인간이 죄인이 아니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죄가 없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죄 없다고 생각하는 바리새인들에게

회칠한 무덤이라고 책망하신것입니다.

인간의 죄는 하와가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아진다는 마귀의 유혹에 속아 넘어가고

하와의 권유에 따라 아담조차도 속아서 들어온 것입니다.

그래서 신학자 니버라는 분은 인간의 죄는 스스로 하나님이라고 자처해서 그렇다”고 했습니다. 죄는 하나님께 예배해야 하는 인간의 본질적 사명을 버리고

하나님께 대적하여 자신의 야망을 쫓아 사는 것을 모두 포함합니다.

이러한 죄의 모습은 오늘날 모든 사람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때때로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이런 사실만 보더라도 인간은 근본적으로 죄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3:23)

따라서 자신에게는 죄가 없다고 하는 사람은 솔직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는 자신을 속이는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이 오는 그날까지

죄인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죄가 사망안에서 왕 노릇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함이니라"(5:12)

물론 우리 성도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에 힘입어 의롭다 칭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구속 사역이 완성되는 그 날까지 우리는 죄의 영향 아래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는 날마다 회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성도는 의인이지만, 하나님 앞에선 모든 자는 자신의 의를 내세울 수 없습니다. 불완전한 요소를 가지고 있고, 옛 습관을 가지고 있기에 때때로 죄를 짓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님 앞에서 취할 태도는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의 불완전함과 죄악됨과 죄악에 기웃대고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용서받은 죄인이고, 의인이 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항상 겸손한 모습으로 주님 앞에서 서야 할 것입니다.

 

2. 주님께 죄를 고백하는 것은 이 땅에서 가장 큰 명예를 얻는 것입니다.

9절에 보면“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현실적으로 인간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요한 사도는 (요일3:9)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 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날마다 죄를 짓는 존재’, 그리고‘죄를 짓지 않는 존재라는 상반된 표현을 볼 때 날마다 죄를 짓고 있는 우리들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죄에 대해 어떻게 해결을 해야 합니까?

죄에 대해 우리는 어떠한 태도를 지녀야 하는 것 입니까?

이에 대해서 9절은 말하고 있습니다. 죄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태도는

그것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인정하여 하나님께서 가능케 만드신 용서와

우리에 대한 약속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9절은 우리가 본성도 죄인이고 삶도 죄인임을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고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미쁘시고 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인격은 미쁘신 분이시고, 또한 하나님의 약속은 항상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주신 새 언약은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씀처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는 용서와 죄사함과 화해의 약속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미쁘시고 의로우신 주님 앞에서 죄를 고백하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법정에서 죄를 인정하면 실형이 선고될 것이지만 하나님 앞에서 죄를 고백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죄를 인정하는 것 자체는 내 실수와 허물과 잘못과 부당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만,

예수님 앞에서 죄의 인정은 죄사함 곧 무죄의 선고를 확정하는 순간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주님께 나아가 죄를 고백하는 것은 기쁨과 자유와 해방을 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로마서 말씀처럼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를 더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주님께 나아가 죄를 고백하는 것과 죄를 고백하지 않고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대 앞에 서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현명한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바른 대답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또 죄의 고백으로 죄사함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고백할 때 당당한 자세로 하나님 앞에 서서는 안 됩니다. 오직 겸손하고 공손한 태도로 마음을 다해 나의 연약함과 허물과 잘못과 실수와 죄를 인정하며 눈물로 고백하는 것이 우리가 주님 앞에서 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입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55:7)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3:19)

성도 여러분 하나님에게 날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여 항상 영적으로 정결한 상태가 되어 하나님과 나의 교통이 차단되지 않고 항상 원활한 관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3. 죄는 하나님 앞에서 감출 수 없습니다.

10절에 보면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 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8절에 대한 보충 설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죄를 짓고 나서 그 죄를 덮어버리기 위해 애씁니다.

그래서 그 죄를 덮어버리기 위해 또 다른 죄를 짓기도 합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죄를 물으시자 하나님을 탓하고 하와에게 죄를 떠넘깁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3:12).

하와도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죄를 물으시자 뱀에게로 떠넘깁니다.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3:13). 이뿐만이 아닙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후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

밧세바의 남편이자 자신의 충직한 부하인 우리아를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삼하11).

이것이 죄를 감추기 위해 또 다른 죄를 짓는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은 불꽃같이 우리의 모든 행위와 마음의 동기까지도 꿰뚫어 보십니다. 

139:1-4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숨길 수 있는 죄는 하나도 없습니다.

숨긴다고 하지만 결국은 그대로 드러나게 됩니다. 거짓은 거짓으로 죄는 죄로 드러날 것입니다. 세상의 법정에서는 공소 시효가 넘어서면 처벌을 받지 못하지만, 하늘의 심판대는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단단히 덮어 놓았어도, 또 아무도 모르게 한 것이라도 반드시 그 죄악성이 드러나게 되며 책임을 물을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하나님 앞에서 죄를 숨기려는 헛된 노력을 기울이지 말아야 합니다. 차라리 감추고 싶은 죄가 있다면 하나님에게 남김없이 고하고 용서를 구하면 하나님은 고한 모든 죄를 남김없이 깨끗이 지워 주십니다. 우리가 고백한 죄를 등뒤로 던지시어 기억도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죄를 깊은 바다에 빠뜨리시고 동이 서에서 먼 것과 같이 우리의 죄과를 멀리하십니다. 이렇듯 회개하므로 그때마다 지은 죄를 씻어내어 마지막 심판대에서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우리의 죄가 없다는 판정을 받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의인이라 칭함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여전히 죄를 짓는 저희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때마다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우리의 죄를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회개하므로 매일 손발을 씻듯이 세상에서 알게 모르게 때처럼 붙어있는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씻어내어 항상 정결하고 거룩한 삶을 사는 저희들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에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늘에 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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