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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요15:12-14)서로 사랑하라

66:17~20 내가 내 입으로 그에게 부르짖으며 내 혀로 높이 찬송하였도다.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실로 들으셨으며 내 기도 소리에 주의하셨도다.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저가 내 기도를 물리치지 아니하시고 그 인자하심을 내게서 거두지도 아니하셨도다. 하나님아버지, 저희들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는 주님. 저희의 기도를 물리치시지 아니하시고 항상 우리의 기도에 관심을 보이시고 응답하실 준비하시는 주님, 저희가 원하는 기도응답이 아니라 저희의 기도를 통해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원하옵나이다.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찬송가 369장 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요한복음 1512-14.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5:1-11절 말씀은 참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로 성도들은 예수님과 굳게 연합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이어지는 12-17절은 그리스도와 연합한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1-11절은 예수님과 성도와의 관계에 대하여 주신 말씀이고,

12-17절은 성도 상호간의 관계에 대한 말씀이다.

십자가 고난을 하루 앞두고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마지막 유언을 남기는

애절한 심정으로 주신 이 말씀에서 형제 사랑에 대한 권고를 주신 것은

예수님 안에서의 공동체가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 가운데 12절은 성도가 서로 나눌 사랑의 표본이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이신 것을 다시 한번 밝히고 있다. 참 포도나무와 연합한 가지인 성도는 마땅히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12절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는 것을 요13:34에 이어 다시 한번 밝히셨다. 단 그 사랑은 요일3:18 말과 혀로써 만의 사랑이어서는 안 되고, 조건이 따르는 사랑이어서도 안 된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라는 말로써 우리가 실행해야 할 사랑의 기준을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한 것은 조건 없는 사랑일뿐 아니라 목숨까지 내어주는 지고한 사랑이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점에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하나는 사랑에 대한 의무가 성도들 모두에게 주어졌다는 점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시 제자들 뿐 아니라 미래의 모든 성도들이 서로 사랑할 것을 당부하셨다.

다른 하나는 그 사랑이 일회적 사랑이 아니라 변함없이 지속적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도 상호간에 사소한 일로 인하여 심기가 불편하고 언짢은 일이 있을지라도

그것이 사랑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요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깨달은 사람이 먼저 이유불문하고 사과하면 됩니다.

예나 지금이나 교회 공동체들 가운데 근절되지 않고 있는 편당이나 분쟁, 불화 등은

다수의 그리스도교인들이 바로 이 사랑의 계명을 지키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죄인을 살리시기 위해 생명까지도 버리셨던 예수님의 그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을 받고 있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 사랑을 보여줄 수 있겠는가?

자기 자신과 돈과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과 이웃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는 이 말세에

우리는 진정 사랑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고 말씀하실 때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가 눈앞에 다가와 있을 때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하신 식사는 이 땅에서 나눌 수 있는 최후의 만찬이었으며 또한 제자들에게 남기신 유언과 같은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최후의 순간을 예수님은 가족들과 함께 보내지 않으시고 제자들과 함께하셨습니다.

이 사실만 보더라도 예수님께서 얼마나 제자들을 사랑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12:50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라고 말씀하신 것을 실천해 보이신 것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당시 제자들의 상황을 생각하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은 실천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은 서로 피를 나눈 형제들도 아니고 더구나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사이도 아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 대부분은 학력이나 경력 면에서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니 반대로 세리와 같이 모든 사람들로부터 지탄을 받는 자도 섞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서로를 아끼고 사랑보다는 견제하고 경쟁하는 관계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런 제자들을 가족들보다도 더 귀하게 여기며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서로 사랑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떠합니까?

주님께서 불러모아 주신 믿음의 형제 자매들을 귀하게 여기며 사랑하고 있습니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려면 세상을 보지 말고 먼저 믿음의 형제 자매들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의 사회적 배경 등을 따지지 말고 예수님께서 귀하게 여기신 것처럼

서로 귀하게 여기며 존중하고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그때 세상을 향한 우리의 사랑도 진정한 힘을 얻게 될 것이며 세상 역시 우리들이 참된 예수님의 제자임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13:35)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3절은 인간의 사랑 가운데 최고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 주시는 말씀이다.

그것은 자기의 친구를 위해서라면 자기 목숨까지도 기꺼이 버릴 수 있는 희생의 실천이 뒤따르는 사랑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자신의 친구들이란 어떤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일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친구들’ 이란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인 것을 보여준다.

13절을 통해 우리는 이러한 사랑 가운데서도 최고의 사랑은

바로 자기의 목숨까지 버리는 사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의 목숨이란 마16:26 온 우주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목숨을 친구를 위하여 내어준다면

예수님 말씀처럼 이는 친구에 대한 사랑이 최고의 사랑임을 분명하게 입증하는 것이 된다.

예수님은 최고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셨다.

단순히 교훈으로 끝낸 것이 아니라 실제 역사 가운데서 실증된 것이기도 하다.

예수님께서 실제로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에 나오는 이 예수님의 말씀은 바로 다음날 예수님이 지실 십자가의 사랑이

최고의 사랑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이며, 동시에 앞으로 제자들도 이와 같은 자신의 삶을 본받아 희생적인 사랑을 실천하라는 말씀이기도 하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자신의 목숨까지 버리실 정도로 열렬히 사랑하시는 자들은 구체적으로 누구일까? 일차적으로는 제자들을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범위를 넓혀 보아야 한다.

이는 이 날이 지나고 다음날이 되면 친히 감당하실 그분의 대속적인 죽음과 관련이 있으므로

‘많은 사람’ 이 포함된다(10:45).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어 구원 얻은 모든 성도와

앞으로 동일한 은혜에 참예하게 될 모든 이들이 포함된다.

바울은 이들을 롬5:6 ‘경건치 않은 자’라고 증거하였다.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우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심으로

이미 우리를 친구로 생각하셨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본절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힘써 실천해야 할 사랑이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5:7,8 의인이나 선한 사람을 위해서 용감하게 죽는 자들이 더러 있기는 하나

예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사랑의 진수를 보여주셨고,

이것이 바로 성도인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사랑의 기준인 것이다.

실제 역사 가운데는 이 사랑이 실현된 예가 무수히 많다.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요한을 제외한 열 명의 다른 제자는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형제들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여 모두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함으로써 이 사랑을 그대로 실천하였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 역사 가운데 등장했던 많은 순교자들과 복음 전파자들도 자신보다 예수님과 인류를 더 사랑하여 자기 생명조차 돌보지 않고 예수님께서 명하신 이 사랑을 실천한 자들이다.

 

14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4절은 예수님의 친구가 되는 영예를 갖게 되는 조건을 가르쳐 주고 있다.

예수님과의 진정한 사귐은 우리가 예수님의 명령을 지킴으로써만 지속될 수 있다.

원문의 뉘앙스를 살려 14절을 다시 번역하면 ‘만일 너희가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명령을 무엇이든지 계속 행하면’ 이 된다.

여기서 ‘행하면’ 이라는 조건은 이 계명의 실천을 강조하는 말이다.

결국 예수님의 계명에 대한 순종이 제자됨과 사귐에 있어서 필수적임을 알게 한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계명을 소홀히 여기거나 지키지 않는다면

그는 예수님의 친구라 할 수 없으며 예수님과 사귐 역시 없는 상태라고 보아야 한다.

예수의 이름을 부른다고 모두 예수님의 친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의 친구가 되고자 하면 예수님의 계명을 계속해서 준행해야 한다.

일시적이 아닌, 지속적으로 순종함을 나타내는 사람이 예수님과의 사귐이 있는 것이다.

예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말이나 지식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바로 계명에 대한 순종이다.

그리고 이러한 순종은 강제적이 아닌 자발적인 사랑의 행위인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피조물로 여기기 않으시고, 종으로도 여기지 아니하시고 친구로 여기실 뿐만 아니라 친 형제자매보다도 더 사랑하시고 친구를 위하여 목숨까지 버리신 주님입니다.

그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만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다고 하셨는데

저희들이 진정으로 성도들 간에 서로 아끼고 위해주고 참아주고 받아주고 이해해주고 용납해주면서 서로를 귀히 여기고 사랑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여 주시옵시고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저희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의 마음을 부어주시어 사랑을 실천하는 주님의 제자가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